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
비단옷 입은 괴물들
아침에 일어나 뉴스 보기들 어떠신지 모르겠다. 난 겁이 난다. 어쩜 그리 나쁘고 잔인하고 답답한 일들은 수천 수만 가지 변주를 거쳐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건지. 언젠가 어머니께서, 따귀 때리고 울고 소리치고 속이고 싸우는 아침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시기에 ‘아침 드라마 보시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나쁘시냐, 조금 줄이시라’ 입바른 충고를 했던 나는 이제 아침에 뉴스를 훑어보는 것이 훨씬 정서에 안 좋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우리 어머니는 뉴스도 엄청 열심히 보시는데 어쩌나)
원고를 쓰고 있는 요즈음은 묶여있는 3개월 된 강아지를 수간한 20대 남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0만을 넘었다는 이야기와 전남편을 죽여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특히 그녀에 대한 뉴스 밑에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을 보았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절대 안 되는 괴물.’
동감이다, 괴물이다. 나는 인간, 너는 괴물. 성악설을 신봉하는 나조차 ‘나의 인간됨’에 대한 지나친 혐오가 생길까 싶어 이렇게라도 선을 그어 손가락질한다.
어릴 때 나를 두렵게 했던 괴물은, 어린이잡지 같은 데 단골로 등장하던 ‘네스호 괴물’이나 ‘히말라야 설인’ 혹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을 ‘외계인’ 같은 종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 네스호나 히말라야에 가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두려움의 대상은 ‘빨간 마스크 귀신’에서 ‘유괴범’으로,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을 떨게 했던 ‘봉고차 인신매매범’이나 ‘지존파’ 같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으로 옮겨갔다. 그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은 뭔가 더 잔인하고 흉악하게 생겼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교양 있고 온화하고 고운 보통 사람의 얼굴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고 난 지금은, 겉으로 보이는 형상이 ‘괴물’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런 괴물담론이 나오는 최근의 드라마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킹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2019
이 드라마의 원작은 ‘신의 나라’라고 하는 만화인데, 만화의 원작자가 바로 드라마 각본을 쓴 김은희 작가다.
이 드라마에는 두 종류의 괴물이 등장하는데, 첫째는 사람괴물, 둘째는 좀비괴물이다. 좀비 괴물은 누가 보아도 괴물 같다. 이를 드러내고 인육을 탐한다. 그들은 피칠갑을 하고는 어두컴컴한 마루 밑이나 뒤주 안에 숨어 있다가 해가 지면 기어 나와 오로지 식욕을 채우기 위해 걷고 뛰고 물어뜯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사람괴물은 좀 다른 형태다. 비단옷을 입고 문자를 쓰고 산해진미를 먹고, 식욕이 아닌 좀 더 다른(그들 스스로는 고상하다고 여기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이들은 걸핏하면 편을 나누어 싸우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왕권을 지키려는 세자와 세도정치를 꿈꾸는 해원 조씨라는 외척 세도가문, 그리고 각각 그들을 따르는 무리가 그들이다.
[킹덤] 첫 회, 좀비로 변해버린 왕의 실루엣을 어렴풋이 본 세자 이창은 영의정 조학주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강녕전에서 몰골이 끔찍한 괴물을 보았소.”
“나도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안위와 권세를 위해 그 아비가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괴물 같은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아들을 앞세워 전하를 시해하고 이 나라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사악한 생각만 가득한 괴물들을 보았습니다. 의금부 정청 뜰 앞에 그 괴물들이 흘린 피로 가득하지요. 그 피가 봇물이 되면 아마도 역모의 정보를 그들이 세우려 했던 새로운 왕의 정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일개 금군별장이라도 왕족의 피를 감당할 수 있겠지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괴물’이라 불렀다. 그 호칭을 부를 땐 증오와 불같은 욕망,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좀비가 되어버린 이들을 ‘괴물’이라 부를 땐 아무 주저함도 없었다. 그저 당연히 없애야 할 바퀴벌레를 부르는 것처럼 마음 놓고 ‘괴물’이라 부른 그 좀비는 기실 인간괴물들의 싸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극 괴수영화들이 종종 등장했지만, 그다지 많은 관객은 동원하지 못했다. 대단히 재미있거나 의미 깊은 서사가 아니라면,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요즘의 관객들에게 대부분의 괴수영화에서 답습하고 있는 뻔한 서사와 어설픈 CG는 매력요소가 아니었던가 보다. 게다가 ‘네스호의 괴물’이 네스호에 가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존재임을 알게 된 어린 시절의 나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상상 속 괴수 이야기에는 별반 끌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오래 전 이 땅에 살았던 민초들에게 진정한 괴물은 호환, 마마 같은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산중은 물론 민가와 심지어 궁에까지 출몰했던 호랑이라니..... [킹덤]에는 좀비괴물들을 해치우는 영신이란 인물이 전직 착호갑사였다는 설정인데, 착호갑사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특별 편성된 부대를 말한다.
영화 [대호]의 한 장면
2015년 영화 [대호]는 ‘산군’이라 불린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를 잡는 한물 간 착호갑사의 이야기다. 대호를 잡기 위해 일본군은 지리산 곳곳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불태운다. 그렇게 해도 도무지 아무도 대호를 잡을 수 없자, 일본군은 한때 날렸던 착호갑사 만덕을 불러들이는데, 영화를 본 이들은 대호와 주인공 만덕이 결국 같은 신세라는 걸 눈치 챌 것이다. 비록 대호가 만덕의 아들을 죽게 만들고, 만덕이 대호의 어미를 죽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그래서 마지막, 대호와 만덕은 함께 절벽 끝에서 떨어져 자의적인 죽음을 맞음으로써, 일제에 의해 그들의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거부한다.
영화 [대호] 2015
좀비는 상상의 존재고, 호랑이는 인간이 아니라 치자.
여기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인간 괴물들이 있다.
즉 ‘인간이 만든 인간 괴물’이다.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와 같은 시기에 개봉해 쌍 천만 영화의 전설을 써내려간 [실미도]에도 그런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오늘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 배우가 연기했던 ‘진태’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2004
진태는 종로통에서 구두를 닦으며 홀어머니 봉양하고 동생 진석을 공부시키며, 사랑하는 여인 영신과의 결혼을 꿈꾸는 순박한 청년이다. 6.25 전쟁이 터지자 피난길에 오른 두 형제는 강제 징집되어 낙동강 전선으로 배치되는데, 무공을 세우면 동생 진석을 제대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진태는 전장을 뛰어다니며 미친 듯 적들을 무찌른다. 진석은 이런 형의 변화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심지어 인민군 포로로 끌려온 동네 친구가 죽은 것이 진태 탓이라며 ‘이 살인자, 훈장에만 눈 먼 미친놈’이라며 욕을 퍼붓는다. 그럼에도 오로지 동생의 제대를 위해 진태는 냉혈한 군인이 되어 전장을 누빈다. 서울이 수복되고 이전 살던 동네로 간 두 형제는 거기서 애국청년단에 의해 빨갱이로 지목된 영신을 만난다. 영신을 살리기 위해 청년단과 맞서는 두 형제. 그러나 ‘영신이 인민군들에게 몸을 팔았다’는 음해에 한순간 흔들린 진태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결국 영신은 죽고 두 형제는 영창에까지 갇힌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동생을 풀어달라는 진태의 요구를 묵살하고 감옥을 불태우라 지시한 상관. 그때 인민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진태는 감옥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감옥은 불에 타고 있다. 진석이 불에 타 죽었다고 생각한 진태는 상관을 돌로 쳐 죽이고 인민군에 의해 끌려간다. 사실 진석은 죽지 않았다. 이를 모르는 진태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인민군의 영웅이자 전장의 괴물이 되어갔다. 형을 찾기 위해 전선으로 자원해 간 진석과 진태의 만남. 동생인 줄도 모른 채 죽이려고 달려드는 진태를 향해 “형, 나야, 정신 차려.” 울면서 외치는 진석. 쓰러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진석에게 총검을 겨누던 진태의 허옇게 뒤집힌 눈. 이미 진태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계처럼 총검으로 사람을 푹푹 찌르며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괴물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진태는 결국 동생을 알아보고,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러나 진태가 죽지 않았더라도 그에게 다른 해피엔딩이 허락되었을까? 괴물은 오직 소탕되어야 할 대상일 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어쩌면 종로통에서 순박한 얼굴로 구두를 닦으며 사랑하는 여인, 가족과 더불어 알콩달콩 살 수 있었던 진태가 왜 괴물이 되었는가. 그에게 딱히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비단 옷 입은 괴물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적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싸우고 죽이고 찌르라 명령했다.
아직도 이 땅엔 버젓이 고개 들고 활보하는 괴물들이 있다. 죄 없는 국민들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린 그는 누구인가. 총검으로 찌르게 한 이는 누구인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구하지 못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잠수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그 괴물은 누구인가.
하지만 그렇게 이름난 ‘괴물’들만을 향해 손가락질하기엔 뜨끔한 양심의 어느 한 부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럴만한 환경만 주어지면 우리 모두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괴물이 되어가기에. 그 ‘괴물’은 ‘욕망’을 엔진으로, ‘내가 만들어낸 적’을 연료로 커간다는 것을 알기에.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 손가락질하는 나 자신에게서 혹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는지 화들짝 놀라게 되는 하루하루다.
집필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