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썼느냐? - 아아, 이것은 합작이라는 것이다. 연성을 하게 해 줄 핑계가 되지.
왜 치킨인가? - 제가 좋아합니다.
각종 고증은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가독성 좋은 주소는 moon-s-h.tistory.com/44 로.
트럭에 치이면 여기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리무진도 전철도 안 되고 꼭 트럭이어야 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 정확한 원리가 밝혀질 수 있는 거였다면 이미 누군가가 시공간을 오갈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떼돈을 벌었을 거다. 그러니까, 그는 트럭에 받히는 순간 주마등 대신 그런 짧은 상념을 떠올렸다.
“위험해!”
놀라면 눈도 깜빡이지 못한다. 다가오는 위험에 굳어버렸는지 커다란 황구는 머루처럼 새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몸을 날려 있는 힘껏 황구를 쳐냈다. 깨앵! 갑작스럽게 밀쳐진 황구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뒤로 ‘끼이익!’하는 강렬한 마찰음이 그의 귀를 강타했다.
나는 개를 사랑해. 말도 좋아하고.
“형님!!”
누렁이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 기억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그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멀게만 들렸다.
“관……. 저, 선생님. 환자분하고 형제분 맞으시죠?”
“그렇소. 내가 저분의 첫째 아우 되는 사람이오.”
성이 다른데. 병원 창구의 접수 담당 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에 빠졌다. 부모의 재혼으로 성이 달라진 형제인가? 가족관계증명서 상세본을 떼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러자 뒤에서 앳된 얼굴을 한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운장 숙부님, 제가 대신 쓸게요. 전 아들이잖아요.”
유봉은 관우를 제치고 창구로 나서서 볼펜을 쥐었다. 그런데.
“잠깐만요, 성인 맞으시죠?”
“……아직 고등학생인데요.”
“학생, 어머님은 오고 계시는 중인가요?”
“그게……, 전 양자라서…….”
아들도 의제도 보호자를 자처할 수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래서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가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결국 직원은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원무과로 보내야 한다. 그때였다.
“에헤이, 내 이럴 줄 알고 부랴부랴 왔지. 거, 여사님. 입원하신 양반 우리 사장님이우. 여기 명함 받으소.”
살면서 한 번도 ‘여사님’이란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던 창구 직원은 간옹의 말에 눈을 깜빡깜빡하며 명함을 받았다.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그 통닭, 옛 추억 그 맛을 돌려드립니다.’ 여백 전체에 커다란 프라이드 치킨이 인쇄된 특이한 명함이었다. 뒷면은 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감자튀김, 로제 떡볶이……. 로제 찜닭…?
“아, 아차. 잘못 꺼냈다. 그건 우리 가게구, 이게 진짜.”
간옹은 잘못 꺼낸 명함 아니 가게 명함을 회수하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잠재적인 고객이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라 멈추고 진짜 명함을 한 장 더 내밀었다. 치킨을 만든다는 건 변함 없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들 아니우. 어쨌든 우린 우리 사장님 데려갈게. 며칠 뒤 방송 나가야 하거든. 자, 가자!”
“어, 수고하셨습니다! 아빠~!”
간옹의 재촉에 유봉은 가장 먼저 직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응급실을 향했다. 관우도 성큼성큼 걸으며 뒤를 따랐다. 트럭에 받혔는데도 이렇게 일찍 퇴원할 수 있다니, 역시 주먹으로 삼 형제의 맏형 자리를 얻어낸 큰형님이시다. 집에 돌아가 푹 쉬게 해드리면 앞으로 걱정할 일 없겠지. 워낙 강골이시니.
그러나 관우의 행복한 미래 구상은 밑바닥 깊은 곳부터 쩌적쩌적 갈라지고 있었다.
“……누구?”
세상을 살면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다. 예금을 넣어둔 은행이 도산해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뉴스에서 봐도 이보단 더 놀랍지 않았을 거다. 끔뻑끔뻑. 끔뻑끔뻑.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사람이 낯선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관우는 할 말을 잊고 소리 못 내는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옆에서 퇴원 수속을 돕던 간호사가 관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일시적으로 기억에 혼란이 오셨을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경과를…….”
알 게 뭐냐. 유봉은 유비의 손을 잡고 외쳤다.
“아, 아빠. 나야! 나 모르겠어?”
유비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이라고? 이렇게 큰…….”
“이봐, 사장님. 안 되지, 안 돼. 애한테 상처를 주면 못 써.”
간옹은 유비의 입을 손으로 텁 틀어막았다. 그러자 유비의 눈에 생전 처음 보는 두려움의 빛이 깃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는지 모르는 채. 이 사람들은 누구지? 아들? 나와 안 닮았는데 얘 엄마를 닮았나? 얘 엄마라면 내 마누라일 텐데 그 여자는 어떻게 생겼지? 그리고 동생? 이 사람은 뭘 봐도 나보단 연배가 위인 거 같은데?
“……형님. 집으로 갑시다. 기억은 천천히 떠올려 봅시다. 괜찮소. 기다릴 수 있소.”
관우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유비를 안심시키려 했다. 간옹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어서 가자구. 치킨 튀겨야지. 우리 애들 다 기다린다, 빨리 가자.”
나는 치킨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 유비는 입이 막힌 채로 손을 약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손에 익은 쌍식칼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려다가 이내 사라지며 장난질을 친다. 더 떠올릴 시간은 없었다. 바쁜 병원을 빠져나가며 간옹은 “고맙습니다! 복 받으시오! 수고들 하셨소!”라며 여기저기 외쳤다. 유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가 울렸다. 그렇게 그들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개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형씨도 내 아우란 거요? 난…… 아니,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사촌인가. 시집간 고모나 이모 중에 장씨랑 결혼한 사람이 있던가. 유비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거한을 보다가 으으 잇소리를 내며 관자놀이께를 짚었다. 아버지, 맞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남겨진 홀아비 중에 늦게라도 새 사랑을 찾으셔서 내게 의붓동생들이 생겼나? 관씨하고 장씨하고? 내 새아버지는 둘인가? 아니면…….
“어머니, 어머니에게 연락을…….”
유비는 전화기를 쓰려 손을 뻗었다. 사인회도 인터뷰 요청도 아닌데 둘러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화기를 쓰려면 인간 장벽을 뚫고 가게 생겼다. 그러자 하얀 손이 부드럽게 손을 잡아 제지했다.
“이봐, 매제. 지금 이 상태로 전화했다간 공연히 심려만 끼쳐 드릴 걸세. 진정하고 차츰 회복한 뒤에 연락을 드리자고. 그런데 정말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나?”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병원에서도 큰 문제는 없다 하니 기다려 보죠.”
미축이 타이르자 미방이 거들었다. 유비는 두 형제를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내 처남들입니까? 우리 집사람…… 형제들입니까?”
“그래. 우리는 가족이 맞아.”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미축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닫지도 못한 채 대답하지 못했다. 누이는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금 전에 전화하려고 했던 어머니처럼. 딸랑딸랑. 잠시 뒤 방문을 알리려 문 위에 달아놓은 종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다녀왔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다들 모여서.”
차례로 손건과 조운이 들어왔다. 모인 일동은 새로 들어온 사람의 면면을 보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향 친구도 몰라보고 의제도 몰라보는데 저들이라고 기억해낼 리가.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유비 가라사대.
“…자네같이 잘생긴 사람은 내가 잊을 리가 없을 텐데…….”
참 고맙게도 함께 온 손건은 완전히 무시하시는 발언을 하셨다. 조운은 보기 드물게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조운입니다. 여기 누상촌치킨 신야본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손공우 님과 함께 탑차를 몰고 돌아왔습니다.”
유비는 조운과 손건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나이 차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직급 없이 상호 존중을 지향하는 회사인 건가. 조운, 조운. 유비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려 입을 우물거렸다. 어쩐지 조운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다. 그러자 장비가 다급하게 유비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큰형님. 나는 익덕이오, 장익덕. 장비. 큰형님은 날 셋째라고 불렀소.”
장비는 첫사랑과 헤어질 때도 보이지 않았던 애절한 표정으로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현덕이 이 사람, 나는 간헌화라고 하네. 자네의 고향 친구야.”
“형님은 미자중, 저는 미자방입니다. 저, 다시 잘 부탁드립니다. 자형.”
“……난 유봉. 원래는 구씨인데 아빠가 날 데려왔어. 아빠, 사랑해. 곧 괜찮아질 거야.”
“큰아버지, 저는 관평입니다. 큰아버지를 병원에서 데려오신 분이 제 아버지십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저, 아까 자룡이 얼핏 이름을 얘기했지만 전 손공우입니다. 재고 담당이고요. 일 이야기는 회복하시면 하겠습니다. 걱정할만한 일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그렇게 모인 사람 전원의 인사를 받은 유비는 한 명 한 명 짚으며 그들의 외모와 이름을 뇌리에 연결하려 노력했다. 간옹, 자는 헌화, 미축, 자는 자중. 장비, 자는 익덕. 어렵지 않다. 외울 수 있다.
“그런데 그 이름 긴 녀석은 왜 안 나타나나?”
간옹이 물었다. 있어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빠졌다. 미축이 대답했다.
“그 친구 아직 자고 있을 겁니다. 어제는 공휴일이라 밤늦게까지 일했으니까요. 브이로그인지 뭔지 하는 것도 찍고….”
“브이로그가 뭔가?”
“그건 나중에 설명하죠. 아무튼, 깨우러 가면 됩니까?”
요즘 젊은 애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브이로그인지 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유비를 쉬게 해야 하니까. 사장님이 없어도 가게는 돌아간다. 아직 개점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띵동띵동 “중화의 민족, 주문!” “저기요~” 하며 울리는 예약주문 알림이 그렇듯이. 그들은 유비를 데리고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자, 여기 있다 보면 뭐라도 떠오를지 모르지. 푹 자게.”
“큰형님, 나와 둘째 형님을 잊지 마시오.”
“편히 쉬십시오. 이따가 치킨 먹으러 나오시고요.”
“형님, 우리가 아무리 치킨집이라지만 또 치킨입니까?”
“그래도 이십여 년 치킨만 튀기셨으니 기억 찾기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머리는 잊어도 손은 기억한다고 하고요. 큰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잘 자!”
이래서야 자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치 어디 대회 출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유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까딱까딱 들어 보였다. 재물운을 가져다준다는 해바라기 모양의 무소음시계는 어느새 오후 1시 40분을 가리켰다.
휴게실.
유비는 휴게실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눈 앞에 펼쳐진 방의 생김새를 되짚어 보았다. 휴게실이 아닌 것 같다. 휴게실이라면 긴 소파, 커피 내리는 자판기, 품종도 알 수 없는 실내 식물 등이 놓여있지 않던가? 카페테리아 비스름한 분위기를 맞춰보려고 노력이라도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이 방은 널찍할 뿐 별다른 게 없었다. 아니, 아니다. 벽면에 웬일인지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다. 유비는 그중 하나를 열어보았다. 탕비실을 간이화했나?
착각이었다. 장 속에는 커피믹스나 종이컵, 음료수 대신 각 잡힌 커다란 이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베개도 있었다. 유비는 휴게실에 대한 개념을 적어도 여기에서만은 새로 잡기로 했다. 휴게실이 아니다. 수면실이지. 그러면 이제 여기서 베개 꺼내고 이불 펴고 자야 하나. 이런 대낮부터?
누군가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새근새근하는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 잠에 푹 빠진 소리다. 유비는 발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방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눈이 부신지 얼굴이 흰 청년 하나가 등을 돌려 벽을 보고 자는 중이다.
‘얘도 설마 내 아들은 아니겠지?’
그건 그렇고 이 친구는 왜 자기 집 내버려 두고 여기서 자고 있나. 나는 사람을 집에도 못 들어가게 할 만큼 혹사하는 악덕 고용주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숙식 제공을 걸고 상주 직원을 뽑았나? 겨우 치킨집에서 사람이 상주해야 할 이유가 뭐지? 경쟁사가 몰래 불이라도 질렀나?
유비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한두 번 여기서 밤을 새운 게 아닌지 베개도 이불도 감각이 익숙했다. 그렇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원래 이 시간에 잠을 잤을 리 없잖은가. 아침에도 그렇다. 나는 그때 이미…….
이미…….
뭐지?
나는…… 누구지……?
“여러분, ‘좋아요.’ ‘구독’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만들어볼게요.”
한참을 자던 젊은이가 느지막이 일어나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다리를 구부릴 수 있는 삼각대에 핸드폰을 고정하고 영상을 찍는다. 유비는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조금 전 유비가 청년에게 기억을 잃었음을 솔직히 밝히고 이름을 물었을 때, 청년은 어물전에서 소불고기를 판매하는 걸 목격한 것과 같은 어리벙벙한 눈을 하더니 “제갈량입니다. 그냥 제갈이라 부르세요. 남들 다 그렇게 부르거든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지금, 유비는 정통 프라이드를 중시하던 자신의 점포에 뜬금없이 로제 떡볶이 같은 메뉴가 생긴 게 이 사람 때문임을 알았다.
“에이, 형님이 저 친구 데려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한테도 저 친구 채널 보여주고 꼭 데려와야 한다면서 우리 형제 셋이 다 같이 찾아갔구만.”
“익덕 말이 맞습니다. 덕분에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늘었습니다.”
장비와 조운이 차례로 싱글싱글 웃으며 제갈량의 편을 들었다. 그러니까 본래 아버지 유홍 대부터 탁현에 뿌리내렸던 누상촌치킨은 차례차례 점포를 이전하고 확장하다가 진류의 조조가 대기업 프랜차이즈 조가네 불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더니, 상장기업이 되며 동종업계의 흑기사로 돌변했다. 명칭은 불닭이지만 소금구이, 양념구이에 이어 각종 치킨 신메뉴를 내놓고 광고를 도배하니 다른 업체가 배겨낼 리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남 점포를 정리한 누상촌치킨은 오너 유비의 종형 유표 덕분에 임대료 걱정을 덜고 신야로 이전한 뒤 인원을 나눠 오너 유비가 직접 관리하는 본점과 관우가 맡은 2호점으로 권역을 확장 중이다.
“새 고객층 확보하려면 젊은 애들 입맛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 건 형님이었소. 뭐, 기억이 없겠지만.”
“그래, 현덕이. 뭐든지 젊은 애들이 먼저 먹어보고 그다음에 제 부모 끌고 와서 함께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장비의 말에 간옹이 거들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먹는 별미는 성공하지 못한다.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자꾸만 먹고 싶어져야 새 메뉴가 안착한다. 단순히 요즘 이게 유행이라며 우르르 창업하는 점포가 2년도 못 버티고 사라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늘은 주방에 나오지 말고 쉬십시오. 편찮으신데 자칫 잘못하다가 다치시면 안 되니까요.”
유비는 조운의 만류를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에 그랬던 것처럼 손을 쥐고 펴기를 반복했다. 분명 식칼의 감촉이 익숙하다. 그것도 양손으로 휘둘렀던 것 같다. 누군가가 영상을 찍었던 거 같은데…….
“…방송, 방송.”
퇴원하기 전 간옹이 방송 나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그렇지!”
간옹은 손뼉을 짝 쳤다. 별로 당황하는 일이 없을 것 같던 조운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지금 바로 PD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쉬어야 하는 환자입니다. 안 됩니다.”
“그, 그래. 자중이가 PD 전화번호 알고 있을 테지. 어이, 자중이~?”
그렇지만 조금 전 손건과 함께 은행으로 떠난 미축이 대답할 리가 없다. 장비는 유비의 핸드폰을 찾아오겠다며 휴게실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뒤 기본 제공 벨소리 중 최대한 밝은 걸로 적당히 고른 벨소리가 울렸다. 무사히 핸드폰을 찾아낸 장비는 그것을 들고 유비에게 돌아왔다.
“형님, 패턴, 지문, 그러니까 잠금 좀 풀어주시오. 어서.”
유비는 거미줄 모양으로 깨져버린 핸드폰 액정을 빤히 보았다. 그래, 그때 찍혔나 보다. 그때…….
“셋째 아우, 너무 서두르지 말게. 해보지 않고는 모르잖나.”
형님! 사고가 난 후 처음으로 자신을 ‘셋째 아우’라 부르자 장비는 기쁨에 벅차 유비를 덥석 끌어안았다. 언제나 보고 있으면서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뜬금없는 감동의 물결에 간옹은 “나도 안아봄세. 현덕이, 사랑해.” 하며 유비와 장비 둘을 같이 안았다. 조운은 그 모습을 보며 얼이 빠졌다.
“자룡 숙부님, 음료수 옮겨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팔레트를 끼운 지게차가 슬슬 움직였다. 관평이었다. 원래 2호점에 있어야 하는데 맏형을 걱정하는 착한 아우 관우가 놓고 갔다. 조운은 아직도 얼싸안고 있는 세 사람을 내버려 두기로 하고 두꺼운 비닐로 포장된 유리병 박스를 팔레트에 실었다.
유비와 장비는 주방으로 이동했다. 보글보글. 치킨집이 아니라 파스타집에 온 것 같은 토마토 냄새와 우유 끓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 제갈!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해!”
장비는 한 손을 들고 활짝 웃어보였다. 제갈량은 가볍게 목례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방송을 이어 나갔다.
“저분이 누구냐고요? 우리 수석 셰프님이세요. 저분이 못 다루시는 칼이 없다고 해요. 네, 기회가 되면 한 번 영상 촬영 부탁드려 볼게요. 그때도 ‘구독’ ‘좋아요’ 잊지 마세요, 여러분. 누상촌치킨 신야본점, 신야2호점 많이 사랑해주세요.”
“자, 형님. 한번 잡아보시오. 여기 닭 있소.”
장비는 유비를 도마 위로 인도하고 매끈한 닭을 내밀었다. 옛날통닭 프라이드로 내놓을 용도였지만 기억을 되살리려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유비는 네모난 절단용 식칼을 쥐었다. 역시 손 하나로는 허전하다. 빈손이 앞으로 쓱 다가오자 장비는 식칼 하나를 더 유비 손에 쥐여 주었다. 탁탁. 탁탁탁. 생닭은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햐, 역시 형님이시오. 조조가 이 솜씨 갖고 싶어서 역세권 150석짜리 샐러드바 홀 지점장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너희들 없으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준대도 싫다. 그리고 그때 내가 그 조건을 받았으면 보나 마나 둘째는 조조 직속으로 가고 너도 멀리 떨어져 우리 삼 형제 일 년에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려웠겠지.”
엉? 장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끔뻑였다. 그리고 “형님, 형님!” 외치며 여전히 양손에 식칼을 든 유비를 덥석 끌어안고 깡충깡충 뛰었다.
“기억이 돌아왔소? 이제 날 아시오? 아니지, 이 기쁜 소식을 어서 둘째 형님께 전해야지! 잠깐 기다리시오, 내 바로 전화하겠소.”
“셋째야, 잠깐만. 운장에게는 아직 말하지 마라.”
유비는 주먹으로 장비의 손목을 꾹 눌렀다. 칼을 놓으면 될 텐데 당황해서 생각이 바로 미치지 못했다.
“기억이 다 돌아온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네가 셋째는 맞는데, 그, 불닭이…….”
치킨은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맛있어야 한다. 혀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소스를 개발해 닭에 바를 생각을 한 놈이 대체 누구인가? 처음 시도한 놈이 누군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놈은 그 지옥의 불맛을 느끼게 하는 소스를 닭에도 바르고 돼지에도 발랐다. 그래, 그놈은 나쁜 놈이다. 치킨은 고소해야 한다.
으으.
챙강. 유비 손에 들렸던 식칼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팽그르르 굴렀다. 유비는 식칼을 놓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장비는 당황하며 유비를 잡았다.
“아, 알았소. 뭐든지 큰형님 말대로 할 거요. 걱정말고 빨리 낫기나 하시오. 아니지, 어서 들어가 쉬시오. 가게는 우리가 알아서 보겠소. 닭이야 원래 내가 튀겼고. 일어나실 수 있겠소?”
“익덕 님, 지금 공기가 고인 실내에 계시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깥으로 모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느 틈에 영상 송출을 껐는지 제갈량이 다가와 물었다. 장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게 좋겠다. 부탁 좀 해도 될까? 잠시 내가 네 몫까지 다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사장…, 현덕 님. 저랑 같이 밖으로 나가시죠.”
제갈량은 몸을 낮춰 시선을 맞추고 유비에게 하얀 손을 내밀었다. 유비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역시나 이 손길도 낯익다. 내가 이 청년을 데려왔다고 했지, 데려오고서 좋아했다고….
“……이런 걸 물어서 미안하네만.”
유비는 서서히 일어서며 제갈량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났나?”
제갈량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작년 요리 대회를 나갔을 때 거기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셨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청년이 여기 있는 것도 말이 된다. 치킨집에 치킨이 아닌 메뉴가 추가된 것도. 유비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회를 나갈 정도면 꽤 실력이 좋을 텐데 우리 같은 작은 가게로 와서 속상했겠군.”
“저는 사장님, 아니 현덕 님이 좋아서 여기 왔습니다. 서주에서 누상촌치킨을 여셨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유비는 다시 관자놀이께를 손바닥으로 꾸욱 눌렀다. 분명히 누상촌치킨의 이력을 들었는데 그 과거 속에 자신이 없는 것 같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그때 저는 막 중학교 입학을 앞둔 꼬마였습니다.”
제갈량은 문을 벌컥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눈 부신 햇살이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유비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자갈을 깔아둔 넓은 공터, 노끈으로 표시해둔 주차 구역, 누상촌이란 이름에 걸맞게 건물 오른편에 그늘처럼 심은 뽕나무.
“운장 아우가 있는 2호점에도 나무를 심었으면 좋을 텐데.”
유비의 중얼거림에 제갈량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운장 님도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2호점은 평범한 번화가 상권입니다.”
“자네가 추가한 메뉴는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레시피는 2호점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책하듯이 가게 주위를 걸었다. 며칠 전 꽃씨를 심은 화단을 보았다. 무슨 꽃이었는지 유비는 여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꽃이 필지 기다리자고 제갈량은 말했다. 납품받은 순살 닭다리살을 조금씩 주다 보니 완전히 이 가게 고양이가 되어버린 검은 고양이가 “먀~” 소리를 내며 사뿐사뿐 다가와 사람 다리에 몸을 비볐다.
“나는 개가 더 좋은데.”
“그 말씀 고양이가 알아들으면 서운해할 겁니다.”
제갈량은 몸을 낮추고 고양이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은지 등을 돌려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들었다. 예쁜 연둣빛 눈동자였다. 이번에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누군지 기억난다면 참 좋을 텐데.”
제갈량은 유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제 이름은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래, 다른 친구들이 자네를 제갈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는데…….”
어쩐지 그게 입에 붙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거 같은데. 유비는 머릿속에 물음표 십만 개를 띄웠다. 물음표 십만 개 따위 짚단과 배가 없어도 사흘은커녕 한 시간도 안 되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니까. 그때였다. 트럭이 자갈을 밟으며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위험해! 공명!!”
유비는 저도 모르게 외치며 제갈량을 잡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제갈량의 키가 더 컸기에 원하는 대로 멀찍이 떨어지지 못하고 서너 발짝 뒤로 쓰러져 구르게 되었다. 쿠당탕! 그들이 바닥을 구르자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물론 가장 먼저 나온 건 트럭을 운전하던 사람이었다.
“사장님, 접니다. 2호점의 요원검입니다. 괜찮으십니까? 공명 님?”
요화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운전석에서 내려 유비와 제갈량을 살폈다. 그러는 찰나 간옹이 소리치며 달려와 정신을 잃고 포개진 둘을 떼어 놓고 유비의 뺨을 약하게 찰싹찰싹 쳤다.
“이보게, 현덕이! 아이구, 이놈이 현덕이 잡네! 오늘 운수가 왜 이 모양인가!”
“제, 제가 사장님을 잡은 게 아닙니다! 전 그저 주차하려 했을 뿐인데 사장님께서 갑자기…….”
“시끄러, 이놈아! 네 녀석이 우리 제갈이도 잡았어!”
요화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차올랐다. 조운이 다가와 간옹을 말렸다.
“아마 원검 말이 맞을 겁니다. 아무리 자갈밭이라도 그 정도로 빨리 달렸다면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보다 두 분 괜찮은 겁니까?”
“…난 괜찮네, 자룡. 골은 좀 울리지만.”
조운의 얼굴에 바로 화색이 돌았다. “예, 맞습니다. 제가 자룡입니다.” 조운은 유비의 손을 덥석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보고 유비도 마주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래, 내가 왜 잊었을까. 이제 다 기억이 났다.
“모두들 고생 많았네. 난 이제 괜찮아.”
유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제갈량은 내팽개쳐진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못했다. 자신보다 왜소한 사람은 유사시에 안고 몸을 날릴 수 있는데 키 큰 사람은 그게 어렵다. 무심코 한 행동이 오히려 일을 더 키운 모양이었다.
“어, 어이? 제갈아?”
“공명? 공명, 이봐…. 누, 눈 좀…….”
간옹과 유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번갈아가며 제갈량을 불렀다. 그때였다.
“다녀왔…….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매제? 또 넘어졌나? 옆에 저 친구는 왜 저러고 있는 건가?”
손건과 미축은 각자 질문을 던지며 뭉쳐 있는 사람들에게로 후다닥 다가왔다. 사람이 쓰러졌으니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치인 게 아니라 쓰러뜨려서 정신을 잃었는데 그러면 폭행으로 접수되는 게 아닐까,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은가. 쓰러진 제갈량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결국 제갈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시끄러워서. 그리고.
“……여러분들은 누구십니까?”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작은 새들의 맑은 지저귐과 어우러졌다. 열어둔 창문으로 “중화의 민족, 주문!” “저기요~” 라며 예약 배달주문 알림음이 띠링띠링 새어 나왔다. 오늘 개점까지는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도망감)(이건 하루만에 썼는데 흑흑흑)
첫댓글 조조: 충신한테 도시락 보냈더니 빈게 왔네요 신고합니다ㅡㅡ
우리 조승상은 패드립을 쳐 삐라를 돌려도 글 잘 썼다며 두통이 낫는 대인배입니다 적폐캐해 신고합니다(ㅇㅁㅇ)/ (???)
문화 게시판에 올리시면 됩니다 (?
으아아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엎어짐)
쬬가 닭요리집을 차린다면 그건 닭갈비집일줄 알았는데.. 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 조가니 족발보쌈 유가네 치킨 손가네 피자로 언젠가 한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닭갈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