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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친구외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근데 미리 말씀 드리자면 제 친구 이야기보다는 친구 아버지와 그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친구의 자산이 어느 정도는 친구 부모님의 영향이 키기 때문일 겁니다.
이 친구는 저의 가장 절친으로 거의 비밀이 없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이글은 돈 버는 비법은 없습니다.
또 제 이야기가 아니고 친구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보니 다소 부정확하고, 글의 묘사와 재현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 점 이해해 주셨으년 합니다.
1. 가문의 비밀(?)
친구 아버지는 46년생이십니다.
대전 출신이시구요.
친구가 전에 우스개 소리로 자신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둘째 부인의 아들이라서,
조선시대로 치면 서자 취급을 받았을거고 자기도 업신여김을 받았을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자(?)의 자손들이라서 더 가난했다더군요.
친구 말로는 친구 아버지가 대전 유성구 원촌동이 고향이랍니다.
50년 전후의 원촌동은 대전에서 둔산동 다음으로 가난한 마을이었죠.
대전정부청사가 둔산동에 생기기 전의 이 곳 주민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였답니다.
그런 둔산동이 지금은 대전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가 되다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하여튼 친구 아버지는 둔산동 다음으로 가난한 원촌동에서 4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친구는 장손이구요.
그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그랬겠지만,
친구 아버지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학교 도시락을 사 갈 때 반찬으로 항상 된장을 가져갔답니다.
된장을 반찬으로 가져 가는게 부끄러워서 항상 숨어서 밥을 먹었다는군요.
친구 아버지는 그 가난이 너무 싫어서 이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답니다.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중학교 진학은 당시 대전/충남에서는 최고의 중학교를 가셨답니다.
시골 아이가 도시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다보니 시골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열등감이 더 많았답니다.
행색부터 시작하여, 도시락 반찬에서부터 차이가 났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진학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대전/충남에서는 최고의 학교였구요.
고등학생 시절 때는 약간의 방황도 있었답니다.
2. 아버지의 부름을 어기고 난 이후의 대가(?)
대학 진학을 할 당시에 친구 아버지 점수로 보아서는 고려대 상대와 부산대 모 단과대학을 갈 수 있었답니다.
당시에는 대학교마다 시험 치는 과목이 달라서 거기에 맞추다보니 해당학교가 위 두 학교가 되었답니다.
친구 아버지는 상과대학은 체질상 맞지 않을 거 같아서, 부산대 모 단과대학을 가기로 진학했답니다.
물론 여기에는 대전에 남게 되면 계속되는 가난은 둘째 치고,
가난한 사람들의 체질화된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 같아서 부산으로 오게 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 할아버지가 반대가 심했다는군요.
장남이니까, 대전에 있는 대학교를 다녀야한다는 게 이유였죠.
친구 할아버지를 어렵게 어렵게 설득했지만, 문제는 대학 등록금이었죠. 나중에 친구 할머니가 등록금을 겨우겨우 해결해 주셨지만, 이후 대학 등록금을 한 푼도 받아보지 못하고,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해결하셨답니다. 그 일 때문인지 친구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이전까지 관계가 소원했답니다.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안의 4남 2녀 중 장남이니까 뭐 그럴 수 있었겠네요.
친구 아버지는 이런저런 과정 속에서 부산대를 진학하게 되고, 명륜동에 하숙을 하기 시작합니다.
첫 대학 등록금과 입학금만 친구 할머니가 해결해주시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등록금을 지원받지 못했답니다.
가난해서 그럴 형편이 못 되기도 했지만, 아까 말한대로 장남이 고향을 떠났다는 이유로 해서요.
여기서 친구 어머니를 만나게 되구요. 결혼 승낙을 받으려 했으나, 친구 외할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심했답니다.
나중에 집 대문 앞 골목에서 무릎 꿇고 몇 시간동안 빌어서 결혼 승낙을 받았답니다.
결혼 준비와 그에 관련된 거의 모든 돈도 친구 외갓집에서 해결했답니다.
친구 외갓집도 당시에는 형편이 어려웠는데 말이죠.
친구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너무 힘들었죠.
신혼집을 구할 돈조차 없어서, 친구 외갓집에서 조금 도와줄 형편이었고,
그렇게 해서 구한 집이 아미동 어느 언저리에 있는 단칸방이었답니다.
친구 할머니가 부산 신혼집으로 와 보신 적이 있는데, 단칸방이다 보니 3명이서 한 방에서 잤다는군요 ㅠㅠ
친구 어머니를 가끔씩 뵐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아미동에서의 생활은 너무나도 끔찍하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친구 부모님은 50평대에 계십니다. 60평대에 사시다가 50평대로 옮기셨죠.
아미동에서 50평까지지. 정말 치열하게 사신 거 같아요...
아미동에서 살림이 나아져서 시내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지만,
역시 세입자의 생활은 계속 되었답니다.
친구가 말하기를 친구 어머니가 세입자의 설움을 가장 크게 느낀 에피소드가
주인집 아들이 화장대 위의 화장품과 립스틱을 온 방에 다 칠했는데, 아무 소리도 못하고 넘어간 거라더군요.
친구 아버지는 교육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조금씩조금씩 집을 넓혀 나갔답니다.
물론 그 몫은 친구 어머니였겠죠.
친구 아버지의 대학 동기들은 형편이 좋아서 의사/변호사 개업도 하고 개인사업도 하였지만,
가난한 친구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는군요.
결국 나중에 교육공무원이 되었구요.
친구들은 모두 큰 집에 살고, 승용차도 탈 시기에 친구 아버지는 그때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매매했답니다.
3. 개발 - 고향 땅이 상전벽해가 되다
친구 아버지가 세입자에서 벗어날 때쯤 고향 대전에서 연구단지개발이 시작됩니다.
지금의 원촌동 일대가 전부 연구단지가 됩니다.
지금 원촌동은 삼성, LG, sk 등등의 기업 연구소가 엄청 많습니다.
원촌동은 아니지만 인근에 대전 엑스포공원과 카이스트가 있구요.
원촌동 전체가 토지 편입이 되니까 그 동네 자체가 대전에서는 개발의 핵이 되었답니다.
친구 할아버지는 당시 몇 십년동안 벼농사를 하면서, 배 과수원으로 확장을 했고,
나중에는 사과 과수원까지 확장을 하셨답니다.
1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친구 따라 배 수확할 때 과수원에서 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1주일간 농사 체험(?)을 했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고작 농사일을 1주일 도와줬는데 “세상에서 공부가 젤 쉬웠어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원촌동이 전체 개발이 되고, 그 곳 주민들은 보상금과 함께 인근 전민동으로 이주하였답니다.
지금의 전민동은 20여년전 원촌동에서 이주한 주민들과, 연구소 직원 등등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친구 할아버지도 많은 보상금을 받았답니다.
원촌동이 친구네 집안/가문이 집성촌 비스무리하게 살았기 때문에
“전민동에서 돈자랑 하지마라”라는 말이 아직도 이곳에서 유효하답니다.
그 중 몇몇은 보상금을 받고나서도 농사를 계속 하기 위해서 둔산동 인근에 땅을 산 사람이 있는데,
둔산동에 정부청사가 들어섰기 때문에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되었죠.
친구 할아버지는 둔산동은 아니었지만 농사를 계속 하기 위해서 인근 지역에 땅을 사서 농사를 계속 했답니다.
둔산동 인근에 땅 산 사람들이 떼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내심 속상했겟지만,
애초에 농사를 계속 하기 위해서 땅을 샀으니 사실 분할 필요는 없는거지요.
그런데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고나서 친구 할아버지가 땅 사 둔 곳이 또한번 개발열풍에 불게 되는데,
그 곳이 세종시라 부르는 연기군입니다.
땅을 사 둔 곳이 세종시의 핵심 자리는 아이었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죠.
세종시 열풍일 불 때는 친구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상태라,
그 열풍을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그 혜택은 모두 그 자손들이 물려받았습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보상금은 많이 받은 거 같습니다.
친구가 정확하게 말을 안 합니다. 다른 건 속속들이 말하지만, 이 부분은 말을 하기 꺼려 하더군요.
장손이라서 물려받은 땅과 선산이 있다라고만 말을 하고 더 이상 말을 안 합니다.
여기서 친구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친구가 지금의 친구 와이프와 맞선을 봤는데 맘에 들었다더군요.
근데, 친구는 사실 여자한테 별로 인기도 없고 매력적인 스탈이 아니라서 고민을 했답니다.
이전에도 여자들한테 심심찮게(?) 차인 적이 많았구요.
친구는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 처럼 말했다더군요.
“저 실은,, 시골에 물려받은 땅과 선산이... 있어요”
나중에 친구 와이프 말을 들으니 그 말이 너무 어설퍼 보였다는 겁니다.
아주 세련되게 말을 했으면 "속물"이라고 생각했을텐데,
물려받은 땅과 선산이 있다라는 말이 왠지 그런 말을 처음 해 보는 사람처럼 아주 어설퍼 보였다는 거죠.
마치 평소에 안 입는 옷을 그날처음 입은 거처럼......
시골 총각이 도시 처녀한테 말 하듯이 해서... 오히려 친구의 그런 모습이 순수해 보여서 맘에 들었다는군요.
4. 위대한 유산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자녀들이 상속을 받게 되었지만,
친구 아버지는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많은 것을 상속받지는 못했습니다.
친구 할아버지를 대전에서 모시고 살았던 3남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고, 그 다음으로 친구 아버지가 물려받으셨답니다.
뭐, 남의 집안 상속문제니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만,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친구의 고모부 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상속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친구는 한다는군요.
왜냐하면 친구 고모부가 건축업자였는데,
사업을 한다면서 이리저리 돈을 빌려서 건축 사업을 했는데 돈을 무려 60억 가까이 날려 먹었답니다.
60억이라는 말은 친구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똑똑히 들어서 알고 있답니다.
친구 고모부가 친구 할아버지한테 돈을 크게 불려주겠다 해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했는데, 그 돈을 모조리 날려먹었다는군요.
친구 고모부가 대기업 건설사의 건축기사였는데, 보상금 이야기를 듣고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한 거랍니다.
그 60억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금액을 그 자손들은 상속받을 수 있었겠죠.
처음에는 친구 할아버지의 자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3남에게 많은 줘서 가족들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장남인 친구 아버지가 모든 것을 중재해서 결국 3남에게 많은 자산이 상속되게 되었답니다.
제가 친구 아버지에게 왜 그랬냐고? 장남이니까 당신이 더 많이 받아갈 수 있었을텐데 왜 그랬냐고 여쭤보니
모든 건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장남 자신에게 있다면서 대답을 대신 하셨습니다.
대신에(?) 친구 아버지는 차관급 공무원까지 오르셨습니다.
고위공무원은 임용이 되기 전에도 재산신고를 하고 여러 단계 검증을 거치지만,
그 공무원 기간이 끝나고도 2년간은 재산 추적을 합니다. 물론 직계가족의 자산까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히려 이 기간에는 자산을 불리지 못한 시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친구 아버지는 워낙 엄격하셔서 돈에 관한한 정말 깨끗할 것으로 생각이 납니다
중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자기 어머니가 김치 공장을 만들어서 김치 사업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못한다는 겁니다.
제가 왜?라고 묻자, 친구가 말하기를 친구 아버지가 "공무원 아내가 사업하면 주위 시선이 좋지 못하다"는게 이유였죠.
어찌보면 너무 결벽증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 보면 그러 자기 관리 때문에 차관급까지 올라간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혹시 친구 어머니가 김치 사업을 해서 사업을 하다보면 나올 수 있는 불법 행위 때문에
친구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에 올라가지 못하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거 생각해보면
친구 아버지의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친구 어머니는 투기는 아니겠지만, 서울/경기도에 아파트 투자를 해서 자산을 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도 문상을 갔었습니다. 약 10년 전이었죠.
그때쯤에 친구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 되셨구요.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개월 뒤쯤에 해운대 신시가지 아파트를 증여받았다고 말하더군요.
24평이었고, 채 1억도 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의금 일부로 친구 부모님이 집을 샀는데, 친구에게로 증여를 해 줬답니다.
그 집은 10년 가까이 월세를 받다가 얼마 전에 팔았답니다.
솔직히 조금 시샘은 났습니다. 부의금을 얼마나 많이 받았으면 집을 살 수 있을가....
근데 한편으로는 동네 아저씨가 부의금 받는 거랑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인맥이 넓은 분이 부의금 받는거랑 그 차이를 인정한다면 그렇게 시샘낼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의금/축의금이 당사자가 언젠가는 갚아야 될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축의금/부의금이 많다고 좋아할만한 일은 아니죠.
몇 년 뒤 친구가 결혼할 때는 축의금의 일부를 어느 단체에 기부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친구 아버지의 생각이었겠죠.
5. 마지막으로 주절거리면서....
오늘은 결론이 없네요.
그냥 주저리주저리입니다.
친구 말을 오래 듣다보면, 자기 일에 충실할 때, 메인 잡에 충실할 때, 재테크도 성공한다는 겁니다.
친구 할아버지가 빚을 내서 땅을 사서 농사 짓지 아니하고 계속 소작농으로만 살았다면 원촌동 개발이 불 때 소외 되었을거고,
원촌동 보상금액으로 다시 땅을 사서 농사를 짓지 않았다면 세종시 열풍을 맛보지 못 했을거구요.
보상 받기 위해서 땅을 산 거라면, 보상받는 그 날까지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았을지도 모르구요.
친구 이야기가 아니고 제 이야기를 들려줘야하지만,
저를 비롯한 우리 집은 그럭저럭한 일생사고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없기에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시 모르는 우리 집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빠른 시간 내에 발굴(?)해서 글 올리도록 하지요 ^^
6. 잡동산에 올라서서
완전 잡동사니 글이네요...ㅋㅋ
까페에 향후 부동산 급등락에 관한 말들이 많네요.
저도 급등락 그 들 중에 하나의 의견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그 둘 중 어느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믿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자기 믿은은 스스로의 공부로부터 시작디 되구요.
"어느 누구가 앞으로 부동산 떨어진다고 해서 집 안 샀는데, 집값만 올라갔다. 그 사람 때문에 망했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 어느 누구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죠.
자기 자신 때문에 망한거죠.
이상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은 부자된 이유를 "남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데
빈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빈자가 된 이유를 "남탓"으로 돌립니다.
외뢈된 말씀이지만, 남탓하는 사람들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상황이 급등을 할지, 급락을 할지를 모르나(사실 말씀 드리기가 어려우나)
조심해야 될 분위기인건 맞는 거 같아요.
조심해야 될 분위기라고 해서 급락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급등을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어느 급등락 어느 포지션을 취하든 자기 믿음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 믿음은 스스로의 공부로부터 출발합니다.
설령 누가 쪽집게처럼 부동산 유망처를 집어준다고 하더라도,
수익을 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까지는 불안한 맘을 떨칠 수가 없지요.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없을까? 저 사람이 헛소리를 했는데 그게에 내가 빠져든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겠죠.
내가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항상 초조하고 자신이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기말고사를 치를 때 공부를 안 한 상태에서는 시험 기간 내내 힘들었고, 괴로웠던 게 기억이 납니다.
시험을 망칠까라는 걱정보다는 아무 것도 공부하지 못해서 두렵다라는 걱정이겠지요.
반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적은 어서 빨리 시험이 치기를 바랬던 적이 있습니다.
또한
공부(연구)하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더 하고 싶은데,
누가 방해를 할 때가 젤 속상햇엇던 아주 신비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많고 재미 있으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서 더 매진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누가 가르쳐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부동산 정보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하구요.
스스로의 믿음을 길러야 될 중요한 때라고 생각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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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긴 글이 부담 안되고 한번에 읽혀지네요 ^^
음....아주 재미있고 의미 또한 있는 글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나쯤 이런 스토리 가지고 있을 듯한데....저도 시샘이 많이 나더군여....
'재미없고 지루한 글' ^^* 이지만, 정독하게 하는 글재주를 가지셨습니다. 마지막 글은 저도 같은 생각 입니다.
글 정말 맛있게 잘 쓰시네요..하하^^ 날씨 너무 좋아요..~~
솔직히 쪼곰.. 지루했습니다..ㅋㅋ
쪼금 지루하긴 해요...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저 자신을 믿어야겠네요. 요즘 쫌 흔들리고 있었는데....
스스로의 믿음...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잼납니다. 감사감사
제목부터 거짓말인 글입니다...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구만요~ ㅎㅎ
"거짓"이라는 글만 보고 깜짝 놀랬어요 ㅋㅋ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많이 배우고 저 자신을 돌아보고갑니다..
재밌어요 감동과 교훈까지 감사합니다
우와 제가 며칠전 대전에 원촌동 전민동 그리고 둔산동 마지막으로 도안동까지 임장갔다 와서 그런지
더더 와닿네요. 그리고 빚을 내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다 라는 말 지금 집없이 전세로 전전하시는 분들께
희망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서 어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빚을 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이지만 메세지가 있어서 쭉 단번에 읽어내려갑니다.
마지막에 자신을 믿어야 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ㅎ
잘읽었습니다...또하나 교훈 얻어 갑니다...저의 아주 가까운 지인중에 그 분의 아버님이 보상으로 인해 100억 부자가 되신분이 계십니다...읽는 내내 그분이 생각났는데,,,,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 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맘은 좀 편히 먹으려고 합니다....돈은 내가 쫓아간다고 오지않는것 같아요..
글이 어렵지 않고 평이한 것 같은데도 알맹이가 꽉 찬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무슨글일까, 무슨내용일까 궁금해 하며 읽었어요...
마지막 마무리도 공감이 가고요...
재목에 끌려 읽었습니다.
글을 풀어 가는 솜씨 또한 대단하네요.
읽고 나니 입가에 미소가.... 재밋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