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분화 되어 고층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섰지만
'70년대 초반엔 그저 빈 들판에 황토 밭에 황무지 였어요.
오죽하면 "강남에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산다"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 났을 지경이었지요.
밤새 자고 나서 아파트 옆 빈 땅에 새끼줄 치고
"이 거 내 땅"하면서 투기꾼들이 사 놓은 땅에......
이웃 주부들과 삽질, 호미질 해 가며 두 아이들과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던 일...자연 현장학습이 따로 필요 없었어요.
그 해 가을, 콩 한말...들깨 한말 수확... 배추60여 포기로
김장을 하고 여름 내내 들깻잎 나물, 장아찌, 쑥갓과 생추랑...
고추랑... 푸짐한 저녁 반찬이 되었고...
그해 겨울 콩으로 메주를 쓰고...
아이들하고 자연에서 좋은 추억거리로 재미 있었지요.
지금의 개나리 진달래 아파트 자리였지요.
학교도 없어서 콩밭 매는 밭을 지나 논뚜렁 지나...
개구리 잡으며 아이들은 말죽거리에 있는 학교를
걸어서 다녔지요. 아이들 지각이 보통이었고...
우리들의 꿈인 첫 아이이기에 부모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
아이보다 더 열심히 학교를 삼개월이나 따라 다녔어요.
봄시샘 추위로 입학 시키고 나서 눈이 걸핏하면 쏟아져 내려
산과 들이 시베리아처럼 얼어 붙곤 했답니다.
그 시절 집도 별로 없어 공기도 서울보다 추워서 오월까지
두터운 잠바를 걸치고 다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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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징돌이 초등학교 입학식.
아침부터 아이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전교생이 250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로 올해 입학하는 아이는
30명입니다.
그래서 1학년 1반이지요.
엄마들 손을 잡고 온 신입생보다, 엄마들이 더 설레는 듯 했습니다.
남자 16명 여자 14명.
아이들을 유심히 보아 두었습니다.
징돌이에게는 좋은 친구가 될 아이들이니까요.
어느덧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 징돌이를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이 신입생들에게
"넌 참 예쁘게 생겼구나."
"넌 참 옷을 멋지게 입었는 걸"
하시며 일일이 악수를 해 주시니...오히려 적은 학교가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걱정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의젓한데, 징돌이만 어린 듯 싶어서..
맨 앞에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또 인사는 고개를 뒤로 젖혀서 하고.
한 대 쥐어박을래다 참았습니다.
딴에는 좋아서 그러는 것이고, 주눅들어 있는 것 보단 낳을 듯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