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강남대 백소영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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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여성주의’는 왜 한국교회의 내부 담론이 되지 못했나
* 이 글은 2023년 한 해 동안 필자가 여성주의 신학교육과 담론화를 주제로 발표한 몇 개의 글에서 주장한 주요 논지를 하나로 모으고 가독성 있게 풀어낸 에세이이다. “기독 여성주의, 교회 담론으로서의 실패와 가능성,” 「기독교사회윤리」 55 (2023): 169-201; “한국교회의 ‘공공적’(公共的) 역할에 대한 여성주의적 제언,” 감리교목회자모임 새물결 편저, 『공적 교회로 가는 길』(이야기Books, 2023), 287-312; “로잔운동의 ‘총체적 복음’에 대한 여성주의적 제언,” 「신학과 사회」 37, no. 4 (2023): 57-90;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한국 신학교육의 미래,”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1 (2024): 167-202.
‘0의 교육과정’, 듣지 못한 언어는 구사할 수 없다
언젠가 기독교교육학 전공자로부터 교육과정 분류방식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명시적 교육과정”과 “내재적 교육과정”, 그리고 “0의 교육과정”(null curriculum)이라는 세 가지 범주였다.1 명시적 교육과정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공식 교육과정이고, 내재적 교육과정은 우리가 흔히 ‘사회화’ 혹은 ‘제도적 감정’ 등의 이름으로도 언급하는 숨은 교과과정이다. ‘여자아이가 다소곳하게 앉아야지.’, ‘아이고 신통해라, 어쩜 저리 참할까.’ 등 가부장제의 규범과 윤리가 내재화된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는 그 사회에서 성장하는 어린 세대에게 내재적 교육과정으로 작용한다. 그럼 0의 교육과정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생활 세계 안에서 언어는 물론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으로라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 내용을 의미한다. 때론 의도적으로 배제되기도 하고 혹은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누락되기도 한다.
한국교회 내부에서 학습되는 내용으로 말한다면 ‘여성주의’(Feminism, 글의 맥락에 따라 ‘페미니즘’으로 병행 표기한다.)는 단연코 0의 교육과정이다. 나는 여성주의를 “현 체제 밖의 시선이고 사유이고 언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2 그야말로 바깥에 있는 내용이다. 당장 한국교회 청년부 부서 이름을 떠올려보라. 바울 청년부, 베드로 청년부, 디모데 청년부…. 분명 남자 청년으로만 구성된 모임이 아닐 텐데, 온통 성서 속 남자 이름들뿐이다. 그 안에서 활동을 하고 회장도 맡으며 성실하게 일하는 여자 청년들은 ‘나는 여자인데 왜 디모데 청년부에서 일하고 있지?’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최근 젊은이들은 사회에서 ‘젠더 전쟁’이라 불리는 치열한 성별 갈등을 겪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조차 남녀로 갈라치고 싸움을 붙여보려는 못된 심산은 아니다. 이게 바로 0의 교육과정이라는 지적일 뿐이다. 훌다 청년부, 드보라 청년부라는 이름이 그리스도인 젊은 남녀들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지 못하는 세계에서 나고 자란 신자는, ‘왜’를 묻지 못한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선과 사유와 언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시적·내재적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학습한 구성원은 ‘왜’를 묻기는커녕 한술 더 떠서 ‘배운 대로’ 행동하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기 쉽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한 지역교회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러 갔다. 워낙 길치인지라 일찌감치 도착했고 본당에 조용히 앉아 기도로 준비하던 차였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시간, 갑자기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쪼르르 본당으로 들어왔다. 낯선 얼굴이라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다가온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곧 친해졌고, 예배가 시작되었는데도 아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목사님의 강사 소개 이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그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온 힘을 다해 내 옷을 당겨 다시 자리에 앉히려 했다.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공포를 담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여자는 거기 올라가면 안 돼요. 그러면 혼나요.” 아찔했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 어린 소녀는 교회에서 자라는 동안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목사님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2023년 한국기독교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 신학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며 관련 연구를 진행했는데, 한국여성신학회 소속인 나는 이를 위해 교단 신학교와 일반 대학 신학과/기독교학과를 포함하여 총 14개 학교의 교과과정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하였다. 예상대로 보수적 신학교육을 진행하는 학교의 경우 여성주의적 시각이 반영되거나 여성신학적 내용을 담은 교과과정이 전무했다. 목사가 되는 교육과정 내내 ‘여성주의’를 배운 적이 없는데, 목회현장에 나가 교회 내 여성 배치의 문제점을 어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21세기 성평등 사회를 살아가면서 비로소 교회 내부에서도 여성주의적 시각과 사유와 언어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젊은 여성 신자들을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이들을 문제시하고 불신앙의 사람으로 몰아가게 된다. “교수님, 저는 신앙인이에요. 그리고 페미니스트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둘을 다 제 안에 통합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저는 교회 밖에서 신앙을 지키기로 했어요.” 제자들의 말을 들으며 슬펐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떠나야 한다니. 나는 그녀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정말로 기독교 신앙과 여성주의는 공존 불가능한 것일까?
배제의 원리, ‘이단’으로서의 여성주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론적으로도, 신앙고백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주장에 성서적 근거가 있고, ‘(기독교) 자유주의’라는 다른 주장 역시 성서적 근거를 찾을 수 있듯이, ‘기독교 여성주의’를 위한 신앙적 근거 또한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지 못한’ 일이다. 사유하고 의미를 찾으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간은 ‘서로 마주 보고’(케네그도, כנגדו) 서로의 다름을 교환하며 상호 성장을 돕는(에제르, עזר) 관계적 인격체로 지음받았다. 이 때문에 ‘담론’(談論)은 성서적 근거를 가진다. 담론은 독백이나 외로운 글쓰기가 아니다. 신앙인들의 여러 생각이 교회 내부에서 공적으로 자유롭게 발화되고 교환되어야 한다. 프랑스어 ‘discours’나 영어 ‘discourse’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discursus’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담론’이란, 이론들이 부딪히고 갈등하는(이리 뛰고 저리 뛰는) 과정 가운데 만들어지는 ‘말의 집합체’인 셈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한국에는 ‘기독교 여성주의’(Christian Feminism)라는 학문적 범주에 담을 수 있는 여성신학적 주장과 글이 이미 반세기 전부터 있었다. 서구에서 들어온 페미니즘 사상과 함께 여성신학적 관점의 텍스트와 주장이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어 1980-90년대에는 일부 신학교를 중심으로 서구 여성신학자들의 주요 저서가 번역되어 읽히기도 하였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패러다임으로 삼는 각 신학 분과학문 전공자들이 모여 한국여성신학회를 조직(1985)하여 ‘여성신학’ 혹은 ‘기독교 여성주의’라는 계열로 묶일 수 있는 학문적 내용물을 지금까지 모아오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국교회 내부에서 언어를 만들고 ‘뛰어다니지’ 못했다. 거의 50년 동안이나 교회 바깥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며 유령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왜일까? 왜 한국교회 내부에서 ‘기독교 여성주의’는 담론을 형성할 기회나 대화 상대자를 찾지 못했던 걸까? 나는 그 첫째 이유를 한국 근대사의 비극에서 찾는다. 이는 비단 ‘기독교 여성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롭고 창발적인 담론들의 경합 가능성을 차단한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긴박하고 압축적인 근현대사의 정황과 그로 인해 권력을 획득한 주체들의 ‘위기 담론’ 혹은 ‘우선성 이데올로기’를 꼽는 학자들이 많다. 일제강점기에 뒤이은 전쟁과 쿠데타, 분단국가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확실하고 명료한 가이드가 요청되었고, 그것은 ‘잠정적’(이라고 믿는) 불의와 불평등을 인내하는 사회적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이, 전쟁 후에는 ‘산업화’가, 독재 정권에서는 ‘민주화’가 시대의 긴급한 과제였는데, 이러한 역사를 통과하면서 다른 과제에 대한 안건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같은 과제 안에서도 다른 시각의 언어가 들려지는 것 자체가 억압된 것이다. 한 가지 우선적 과제를 가지며 이에 대한 답안 또한 하나여야 하는 체제가 지속되는 사회에서 ‘담론들’의 경합은 불가능했다. 김진호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담론화 자체를 원천 차단한 체제를 “1948년 체제”라고 명명했는데, 그 주역 중 하나로 “월남자 중심의 개신교 세력”이 한국교회의 주류 담론을 독점해왔다고 지적한다.3 교회 내 권력 역학(power dynamics)을 아는 이들에게는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위기라고 호명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시민사회의 발생과 내부 구성원의 담론화 과정이 유보된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지닌 소수 주체의 주장이 그대로 ‘진리’가 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새로운 구성원들은 이미 ‘진리’의 위치를 선점한 지적 내용물이 존재하는 사회에 태어나고 그 안에서 사회화된다. 그 안에서 성장하는 동안 주류가 된 담론은 ‘정상성’, ‘진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 발화자들은 ‘환자’, ‘정신병자’, ‘이단’으로 배치되고 배제된다. ‘기독교 여성주의’라는 지식복합체, 즉 기독교 사상과 페미니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담론화 과정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기도 전에 이미 이단 사상으로 분류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국 개신교가 신앙을 건네받은 ‘미국적 기독교’에 의존도가 높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맞물려 있다. 18세기 말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청교도 전통이 상실되는 것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여 대각성운동을 일으켰고, 이로써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선교지로 향하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는데, 물론 고마운 일이다. 다만 한국 개신교 ‘주류’가 그 출발부터 미국적 정황에서, 복음의 정체성 위기 속에 강력하게 응집된 복음/근본주의적 내용‘만’을 ‘(정통) 기독교’로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미국 친화적 연계성은 지속되었고, 설상가상 1950-60년대 냉전체제하 자유연방의 경찰국가이던 미국의 위기 상황에서 생산된 기독교적 내용물 역시 고스란히 한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일어난 반(反)문화운동을 페미니즘, 동성애/낙태, 공산주의라는 키워드로 묶어 기독교 신앙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 신(新)복음주의(neo-evangelism) 범주의 말들을 생산해냈다. 이러한 내용들이 ‘담론화 과정’(다른 관점이나 주장과 논쟁하여 검증받는 과정) 없이 또다시 한국교회에 고스란히 유입된 것이다.
1960년대 미국 상황에서는 하나의 대항 담론 혹은 대안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시대적 담론으로 본격 부상하면서 치열한 부딪힘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 신복음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었던 반면, 한국교회는 이미 미국교회가 페미니즘을 반(反)신앙적 ‘이단’ 사상으로 분류하고 적대시와 배제의 과정을 거친 상태로 가공한 ‘신복음주의’만을 교회 내부 담론으로 받아들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공자의 사상을 중국으로부터 수용한 한국 유교가 (정작 중국은 ‘유교’라는 큰 우산 아래 다양한 학문적 논의를 펼쳐가는 마당에) 받아들인 그대로를 ‘정통’으로 주장하면서 주체적·토착적 읽기를 시도하는 한국 유학자들의 시도를 ‘사’(邪)로 규정하며 배제한 모양새 그대로를, ‘미국적 기독교’를 받아들인 보수적(혹은 근본주의적)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유교 지식인에게 ‘야만’ 혹은 ‘열등의 기호’로 취급당한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들어보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어찌 성급히 사람의 사상을 ‘사’(邪)라고 칭할까?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여권이나 여성 지도력이라는 특수한 의제를 교회 내부에서 성취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기독교 사상을 ‘정통’과 ‘이단’의 프레임 안에서 바라보고 힘의 논리로 제압하던 한국 개신교의 초기 기조가 지금까지도 교회 안에서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역학 안에서 ‘기독교 여성주의’는 배제된 교과과정일 수밖에 없고 이를 발설하는 사람은 이단이 된다.
개신교 가부장제의 여성 담론, 낭만화의 함정
‘기독교 여성주의’가 한국교회 내부 담론으로 자리 잡는 데 실패한 요인 중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한국교회 여신도들이 근대 세계의 핵심 담론이던 ‘주체성 담론’을 여성의 자리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교회 여성만의 한계는 아니었다. 서구 페미니즘이 전개되는 초기 과정에서도 근현대 가부장제의 사회 구조적 문제를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이름의 의미 그대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근대 사상의 핵심이라면, 원칙상 개인의 범주에 여성이 배제될 이성적·합리적 근거는 없다. 그리하여 이전 사회의 기득권 집단인 1계급(성직자)과 2계급(귀족)에 저항하며 신민(臣民)이 아닌 시민(市民)의 위상을 확보할 이념적 근거를 만든 유럽발 계몽주의 사상은 ‘계몽된’ 여성들에게도 당연한 문제 제기와 주장을 가능하게 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여성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를 시작으로 ‘이성의 보편성’에 근거한 여성의 권리 주장은 예측 가능한 행보였다.
그런데 이런 인식하에 권리를 주장한 ‘페미니즘 1기’(19세기 후반-1930년대) 여성들은 교육권과 선거권 획득 정도만 주목했지, 가부장제가 배치한 여성의 자리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교회 배경 페미니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인권을 획득하기 위해 굳이 성서의 ‘전통적’(다분히 정통이라고 믿는) 여성관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앙과 인권은 별개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의 성서』(Womans Bible, 1895)를 통해 성서 안의 가부장적 내용과 편집을 문제 제기하며 여성의 자리에서 성서 본문을 재해석한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의 시도에 화들짝 놀라며 선을 그었다. 우리는 성서와 전통은 건들지 않는 ‘경건한 여신도들’이라고! 그래서 보지 못한 거다. 근대 가부장제가 낭만화한 여성의 배치는 결코 여성 정체성을 평등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성 본연의 정체성에도 반(反)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근대화와 맞물려 진행된 서구 개신교에는 이미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전면적으로 재정립했던 역사가 있다. 평등 개념에 기초한 ‘근대적 주체’ 담론이 시대의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자, 교회도 더는 여성을 ‘열등의 기호’(교부와 중세 신학자의 발언 중에는 어마어마하게 여성 혐오적인 발언도 있었다.)로 주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개혁교회를 구원한 것이 초대교회 시절부터 존재한 목회서신이나 후기 바울 저작 등에 담긴 ‘온건한 가부장제’였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사랑에 기반한 남녀의 기능적 위계를 정당화하는 담론인데, 이를 교회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람들이 개혁주의 목회자들, 특히 청교도 신학자들이었다. 청교도 학자들의 주장에 동조적인 입장에서 『청교도-이 세상의 성자들』을 저술한 라이큰(Leland Ryken)은 평등하지 않으나 사랑에 근거한 가부장제(여성주의 성서학자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의 표현으로는 “사랑의 가부장제”)를 이렇게 서술한다.
청교도들이 이해한 머리 됨은 전횡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뿌리박은 지도력이다. 벤자민 워즈워스는 좋은 남편은 자고로 “자상하고 순탄하게 아내를 이끌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 사랑하고 싶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법이다.”라고 썼다. 사무엘 월라드가 말하는 좋은 남편은 “아내가 남편의 지도력을 즐겁게 따르고, 그것을 노예가 된 기분이 아니라 자유와 특권으로 느끼도록” 이끄는 사람이다.4
결과적으로 기능적 위계가 낭만화된 교회 안에서 교육받은 여신도들은 근현대 사회구조의 공/사 이분적 배치 속에서 아내와 엄마의 소명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하는 ‘가정의 천사’가 되는 것이, 신이 부여하신 여성의 정체성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나마 중산층 전업주부의 배치가 많았던 20세기 말까지 “사랑의 가부장제”는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칸막이로 나뉜 공적 세계에서 근대적 주체로서 전문적인 일을 수행하게 된 다수의 21세기 교회 여성에게 성별 분업노동의 신적 정당화는 설득력을 잃는다. 그러니 한국교회 안의 젊은 자매들이 ‘왜’를 물을 수밖에…. 하지만 근대적 주체로서 단독자의 권리와 능력을 제한받는 (‘노예’의) 삶을 낭만화하여 ‘자유와 특권’으로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신적 질서’로 절대화된 교회 안에서 ‘기독교 여성주의’는 발화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적 관점과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탈(脫)교회’, ‘탈(脫)기독교’를 선택함으로써,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주체 안에서 통합되고 교회공동체 내부에서 담론화될 가능성은 멀어져 갔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교회 안에서 들려야 할 목소리
올해 9월 우리나라에서는 ‘로잔대회’라고 불리는 제4차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가 열린다. 한국교회는 커다란 국제행사를 준비하며 작년부터 들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여지없이 “0의 교육과정”은 존재한다. 로잔의 경우 내부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 제3세계 교회 참가자들이 ‘왜’를 물었다. “왜 너희만 복음의 전달자라고 생각하는가?” 제3세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주체 선언이었다. 그리고 제3세계의 상황에서 복음(기쁜 소식)이란 영혼 구원의 개인적 전도만이 아니라 사회/제도가 하나님 나라와 같이 사랑과 정의로 넘치는 사회 구원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 목소리가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로잔대회는 “총체적 복음”(holistic/integral Gospel)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내어놓게 된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왜’의 도전을 만나면서 그야말로 복음의 ‘총체성’을 채워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낭만적 가부장제의 전제에서 시작한 로잔의 신학은 제3세계를 포함하고 자연을 포함하고 심지어 인공지능 로봇까지(4차산업혁명의 결과물 활용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4차 서울대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이다.) 논의의 대상으로 확장하는 마당에, 정작 ‘여성’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부터 빠져 있는 상태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게 빠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 주체들에게 내부적 발화자로서 권위와 힘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익숙함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는 시선과 사유와 언어를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고서 어떻게 ‘복음의 총체성’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어쩌다 초대된 로잔대회 관련 준비모임에서 이 말을 했더니 세상 썰렁해졌고, 나는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사자성을 가진 여성 활동가들은) 조용히 배제되었다. “아, 그녀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메리 댈리(Mary Daly)는 교회 내부에서 여성주의적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으며 노력했던 7년 전의 자신을 비웃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AF’(anno feminarum 여성들 이후)를 선언하고 교회를 떠나버린 댈리의 뒤를 따라나서야 할까?
하지만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녀가 좋은 것을 선택했고 결코 빼앗기지 않으리라.”, “그녀의 이 일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전파되어야 하리라.” 하시며 여성 제자직을 인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편파적 ‘주의’(-ism)의 절대화를 넘어 새 사상을 새 부대에 담으라고 힘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가부장제가 설득력도, 신적 정당성도 가지기 어려운 탈근대적 사회를 통과하고 있다. ‘남자냐, 여자냐’보다 개인의 능력과 재능이 더 엄중한 평가의 기준이 되는 때이다. 개신교가 근대라는 세계를 통과하며 (성서적) 여성관을 새롭게 개혁해야 했듯이 이제 탈근대를 살아가는 개신교회는 성서적 근거와 시대적 적합성을 가지는 새로운 여성관(인간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이루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잃은 양 한 마리를 기어이 찾아내어 우리(교회)에게 참여시키고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지 않는 한 하나님 나라는 계속 뒤로 물러날 것이다.
주(註)
1 아이즈너(Ellot W. Eisner)가 『교육적 상상력』(1979) 4장에서 제시한 용어이다.
2 백소영,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뉴스앤조이, 2018), 20.
3 김진호, “모두에게 파괴였던 시간의 바깥,” 권지성 외, 『혐오와 한국교회』(삼인, 2020), 83.
4 리랜드 라이큰, 김성웅 옮김, 『청교도-이 세상의 성자들』(생명의말씀사, 2003), 168.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와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다. 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살아내고 살려내고』, 『적당맘 재능맘』,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