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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웨스트엔드에서 1998년 초연된 연극 [코펜하겐]은 2009년에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한 과학연극시리즈에서 주목을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 남은 작품이다. 당시 국내에서 생소하기만 했던 과학연극을 시리즈로 기획한 두산아트센터의 뚝심있는 정극 기획력은 많은 찬사를 받았었다. 아직도 과학연극 하면 이 때 두산아트센터가 과학연극시리즈의 일환으로 선보인 [과학하는 마음3], [산소], [코펜하겐], [하얀앵두]가 떠오른다. 두산아트센터가 스페이스111에서 주로 선보이는 연극 기획력이 우수한 편인데 이 당시 과학연극의 시도도 굉장히 참신했던 기획이었다. 이 중 2008년 유시어터에서 초연했고 2009년 두산아트센터의 과학연극시리즈에 합류한 [코펜하겐]이 작품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것같다.
연극 [코펜하겐]의 국내 초연은 2008년 유시어터에서 가진 바 있지만 업계의 주목과 관객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던건 두산아트센터에서 기획한 과학연극시리즈에 포함되면서부터이다. 이 작품이 매해 선정하는 한국연극 베스트7 및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던것도 2009년 두산아트센터의 스페이스111공연이었다. 이 작품의 2008년 유시어터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총 4번의 [코펜하겐]의 연출을 전부 도맡은, 연극 [코펜하겐]을 기획한 극단 청맥의 대표이자 [코펜하겐]의 연출가인 윤우영도 2008년 유시어터 초연은 실수가 좀 있었다며 2009년 스페이스111공연을 사실상의 초연으로 인정하고 있다. 2009년 스페이스111공연이 성공적으로 뿌리 내리면서 이듬해 재공연과 올해 공연까지 작품의 명줄을 늘릴 수 있었던것같다.
유시어터 공연들은 대게가 주류 연극계에서 밀려난 인상이기 때문에 나도 연극 [코펜하겐]하면 스페이스111공연 때부터 떠오른다.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됐을 때 비로소 2008년 유시어터에서 초연됐다는것을 알았다. 연출가부터 자신이 전두지휘했던 2008년 초연을 초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도 2009년 스페이스111공연이 비공식 초연처럼 느껴진다. 연극 [코펜하겐]은 2009년 스페이스111공연 때부터 관심을 두었었다. 당시 이건명이 나와서 좀 더 눈길이 갔던 [산소]와 함께 공연 기간 내에 기회가 된다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한 쪽으로 살며시 밀쳐 두었던 작품이었다.
보통 이런 어중간한 관심권이면 안 보고 넘어갈 확률이 높다. 마음이야 관심 가는 공연은 전부 다 보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먹고 살다 보면 놓치는 작품이 부지기수인 현실이다. 공연계도 늘 볼게 많다 보니 2009년 [코펜하겐]은 당시의 우선순위에 의해 관람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스페이스111공연을 지나니 2010년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의 재공연은 관심이 안 갔다. 그 때엔 어디까지나 두산아트센터의 과학연극시리즈의 범주에서 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싶었다. 특정 주제로 묶여지는 기획 연극의 흐름에서 오는 일관된 정서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걸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로 재공연이 주관되는 [코펜하겐]엔 흥미가 없었다. 올해 이 작품의 재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반갑기만 했다. 한 때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 6년만에 재공연된다는것에 재공연 희소가치를 느낀것이다. 그래서 특정 기획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작품적으로 관람 의욕이 생겼다. 그래서 재고 따지는것 없이 예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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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예매 끝에 겨우 봤다. 예매에서 관람까지의 과정이 지지부진해서 올해 공연도 못 보는 줄 알았다. 상황이 계속 꼬였다. 4번째 [코펜하겐]이 당도한 공연장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이다. 극장은 내키지 않았지만 가격이 흡족했다. 동숭아트센터 공연의 정가는 두산아트센터의 기획공연 때처럼 저렴한데 이번엔 할인률도 높았다. 그래서 예매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소극장 공연의 정가가 3만원인건 10년 전 대학로 소극장 공연들의 평균 물가다. 고작 2주 조금 넘는 공연 기간인데도 온갖 할인률이 다 추가됐다. 조기예매 할인은 반값이었고 문화의 날 주간에는 그보다 10프로 인하돼 3D영화값도 안 되는 12,000원이었다. 그래서 문화의 날 주간 할인이 적용되는 마지막 회차를 12,000원에 예매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정가개념 없이 12,000원까지 타협해서 그런가 예매가 열리고 얼마 못 가 내가 애용하는 신한올댓컬쳐에서 슬그머니 전 회차를 만원으로 돌려놨다. 첫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했고 취소수수료율을 계산해보니 손해볼건 전혀 없어서 인터파크에서 예매한 표를 취소하고 인터파크와 좌석연동이 되는 신한올댓컬쳐에서 만원에 재예매를 했다. 인터파크 표를 취소하고 신한올댓컬쳐에서 동일 좌석으로 갈아치기 하면서 얻은 이익은 800원이었다. 800원의 이득이 생겼지만 취소하느라 인터파크에 뿌린 1,700원은 그래도 아깝기만 했다. 그렇게 유료 예매로 취소 후 재예매를 한번 하고 관람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소셜 커머스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할인이 인심 좋게 풀렸다.
집에서 대학로가 타 공연장 가는것보다 멀기도 하지만 대학로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해서 가급적 대학로 갈 일을 안 만들려고 한다. [트루 웨스트 리턴즈]를 관람한지도 얼마 안 지나서 대학로 가는게 부담스러웠는데 이왕 [코펜하겐]보러 대학로 가는거 겸사겸사 대학로에서 연속 공연 관람 일정을 맞추는게 효율적일것같았다. 원래는 다른 지역에서 영화 보고 움직일 계획이었다. 대학로에도 아트하우스관까지 포함된 대학로cgv가 있긴 하지만 여긴 시설이 너무 후지고 복잡해서 안 가야 되는 영화관으로 새겨진지 오래다. 영화 프로그램은 아트하우스관 덕분에 양호하지만 상영관 시설이 하나같이 답 안 나오는 멀티플랙스 영화관이다. 나는 영화 [스위니 토드]를 재미없게 본 이유 중 하나가 이 작품을 관람한 대학로cgv탓도 크다고 본다. 다른 시설 좋은 영화관에서 [스위니 토드]를 봤다면 좀 더 작품에 대한 만족감이 컸을것같다. 대학로를 지금보다 자주 갔던 시절에도 대학로cgv(그리고 그 전신인 씨너스와 판타지움)는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았다. 보통 영화 보고 공연보거나 공연보고 영화 보는 관람일정으로 두편 이상씩 연속 관람하는데 대학로에서 공연볼 때는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영화봤었다.
[키다리 아저씨]도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서 자포자기성 할인률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세 기획사에서 주관을 해서 그런가 개막 초기부터 정가개념을 포기한 할인률을 하나 둘 추가하길래 기꺼이 받아들였다. 원 캐스트 단기공연으로 올려지는 연극 [코펜하겐]과 달리 복수 출연진 조합으로 돌아가는 [키다리 아저씨]의 출연 일정표를 맞추다 보니 어차피 볼 예정인 [코펜하겐]을 또 취소하고 [키다리 아저씨]와 맞추는 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코펜하겐]은 단돈 만원에 예매한 공연이라 취소수수료도 천원 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키다리 아저씨]관람 일정을 맞추느라고 [코펜하겐]을 또 취소하고 재예매를 했다. 두번째 [코펜하겐]을 예매하면서 800원을 이득봤는데 세번째 [코펜하겐]을 예매하면서 1,000원을 잃었으니 결과적으로 [코펜하겐]은 맨 처음 예매했을 때 지불했던 금액에서 200원을 더 지출하게 된 셈이다. 그래도 두편을 한 날에 대학로에서 몰아 봤기 때문에 한갓진 관람 일정이었다. 정확히는 [코펜하겐]을 관람한 날의 오후에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를 관람했고 오전엔 영화 [제이슨 본]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관람했다. [코펜하겐]은 토요일 2회차 저녁공연을 봤다. 이 날 본 세편에 대체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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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코펜하겐]은 어려운 소재의 과학연극이다. 소재 자체가 일반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물리학에 관한 작품인데 나는 과학과 담쌓고 살았기 때문에 과학 소재만 들어도 골치 아프다. 대화가 중심인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듣고도 못 알아먹을 전문용어들 천지다. 그만큼 전문성을 필요로 한 소재였다.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토니상 수상 이력에 혹해 관심을 가졌고 관람으로 이어진거지만 작품의 소재에 따른 이해에 확신이 안 서서 예습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작품들을 관람할 때보단 좀 더 신경을 썼다. 예매처 소개말도 주의깊게 봤고 현장의 작품 관련 해설문도 꼼꼼히 읽었다. 10분 밖에 안 되는 쉬는시간에도 밖으로 나와 공연장에 마련된 전시물의 해설을 복습했다. 물리학 소재의 과학연극이란 대중적 괴리감을 의식하고 나 같은 관객을 위하여 프로그램에나 실릴 법한 과학 상식과 공연 관련 정보를 매표소 주변에 꼼꼼하게 실어 놓아서 기획사가 의도한만큼의 도움을 얻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의 습득이 있어야지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라면 그건 작품에 문제가 있는것이다. 나는 연극 [코펜하겐]이 담아낸 소재나 인물선정에 전혀 친근감을 느끼지 못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예습한것도 없지만 공연을 보고 나서 과학상식에 대한 공부가 된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뭘 알아야지 공부가 될텐데 물리학 분야나 해당 종사자들에 대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해서 특정 전문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넓히는데에는 조금도 도움된게 없다. 그러나 [코펜하겐]은 과학수업을 목적으로 짜여진 교재용이 아니라 과학분야의 물리학과 실존 물리학자를 소재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다행이 연극으로써, 이야기로써 소재에 따른 주객이 전도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기는 수월했다.
다루는 소재는 어렵고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까다롭지만 긍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것은 인간이 느끼는 양심이기 때문에 소재 자체에 깊숙히 들어갈 필요는 없다. 종사자들이거나 이 분야에 관심이 깊은 관객이라면 소재를 통한 입체성을 느낄 수 있겠고 배경지식의 여유로 보다 많은것을 파악할 순 있을것이다. 아는만큼 보이는것이니까. 그러나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지식싸움을 하며 속사포로 내뱉는 지적인 과학용어들을 거의 못 알아듣는다 하여도 작품 이해에 있어서는 별로 저하될건 없다.
이 작품은 특정 분야의 일인자가 훗날에 상처로 남게 된 부끄러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죄의식과 그로 인한 억울함, 항변을 그리고 있다. 수많은 뛰어난 전문가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우연찮게 개입하면서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고 그러다가 가해자 입장에서 연좌제로 묶여 비난 받기도 하는 일들은 늘상 있어왔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는 문제다. 인간의 삶이 지금과 같은 틀로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반복하며 쌓일 역사다. 대외적으로 인정 받은 재능이나 특정 분야의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것이다. 큰 사건, 사고가 터지면 해당 분야의 고위 관리직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됐건 어쨌건 대표의 입장에서 사죄하는 마음을 사퇴로 표시하지 않나. 인정 받은 실력에 대한 책임은 막중한것이다.
[코펜하겐]이 말하는것도 같다. 세명의 주인공은 망자가 되어 저승에서 지난 날을 되짚어 본다. 죄책감과 억울함, 자신의 신념과 행동들을 이해받고자 하는 인물의 넋두리를 그렸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곳은 저승이 아닌 중천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1941년 9월에 하이젠베르그가 [코펜하겐]에 있는 스승이자 친구이고 평생의 라이벌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인 보어를 찾아가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다 결론없이 대화가 중단되어 버렸는지에 대한, 미스테리로 남겨진 일화를 [라쇼몽]과도 같은 방향으로 해석한다. 과학계에 족적을 남겼던 실존인물들인 두 과학자가 시대의 위험을 뚫고 격렬한 토론을 했다는 사실은 전해지고 있지만 대화의 내용은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에선 세가지의 각기 다른 해석을 내려 극적인 과정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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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 나찌당에서 핵분열 프로그램을 지휘했던 하이젠베르그의 행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하이젠베르그에 대한 평가는 나찌에서의 활동 전력으로 후대의 평가가 갈리는 모양인데 연극 [코펜하겐]에선 하이젠베르그의 입장에서 유럽의 상처로 남은 나찌 활동에 대해 변명할 기회도 마련해주고 그러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하게 만든 재능에 대한 죄목도 가차없이 들춘다. 극은 [라쇼몽]식의 구조로 의문으로 남은 보어와 하이젠베르그의 대화를 해석했지만 청문회에서 재연하는 상황극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하이젠베르그는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하이젠베르그가 본인의 의사와 달리 나찌 활동에 휘말려서 억울해 한들 그가 자신의 재능을 활용한 각종 실험들과 연구는 2차 세계대전의 아픔으로 상처를 남긴것이다.
목숨의 위협을 느껴 나찌에서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하여도 구제할 방도는 없다. 친일파들 모두가 주도적으로 친일을 했을까. 이유가 어찌됐건 친일한 사람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것처럼 역사의 한켠에선 나찌의 핵분열 프로그램 실험를 지휘했던 하이젠베르그의 행동처럼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가담 행위도 있는것이다. 하이젠베르그와 보어, 그리고 보어의 아내인 마그리트는 죽어서 의문으로 남은 1941년 9월의 중단된 대화를 재연하면서 전문적인 실력을 갖춘 능력있는 인물의 행동에는 그만큼이나 큰 책임이 따른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재능 이전에 인간으로서 보어와 하이젠베르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다. [라쇼몽]식 구조로 연결되는 세번의 대화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려운 과학 용어 때문에 초반 집중이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귀 기울여 등장인물들의 열띤 토론을 듣고 있다 보면 극이 이성적으로 심어 놓은 해석의 방향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것이다.
토씨 하나 틀려도 대화의 흐름이 망가지는 전문 용어들로 가득한데다 대사량도 방대해서 대사 암기 하느라 고생 꽤나 했을것같은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깊다. 극중 하이젠베르그나 보어는 그 분야에서 날고 뛰는 전문가들로 자신들의 지적 우월감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반론으로 가득찬 이 둘의 대화에서 대사를 버벅대면 인물간의 긴장감으로 생성되는 드라마의 균형이 흔들릴 수가 있다. 이 작품에 3번째 참여하는 남명렬과 이번 공연에 처음 합류하게 된 서상원은 극중 인물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깔려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배역의 폭을 넓혔다. 하이젠베르그가 보어의 잃은 아들에 대한 결핍을 채워주는 동료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좀 더 젊은 배우가 하이젠베르그를 연기했다면 좋았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서상원의 연기도 훌륭했다. 다만 극의 특성상 정제된 연기로 인물이 빠진 굴레를 서서히 증폭시키다가 대미에서 감정의 고지를 밟아야 하는데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초장부터 끓어 오를 때가 많은 점은 아쉽다. 차분하고 지적인 정서를 깔고 가긴 하지만 동시에 노골적인 감정 호소로 들쩍지근하게 불려내길 좋아하는 라이센스극의 전형적인 한계도 느낄 수 있었다.
- 무대와 객석 간격이 굉장히 좁았다. 관객들이 무대를 넘지 않고는 객석에 착석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간격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무대를 구성할 때 최소한 관객들이 입장할 통로는 마련하고 무대 동선을 짜야하는데 이 작품은 단차도 없이 꾸민 무대가 객석 바로 코앞에 있고 그런 무대 앞쪽의 바닥에 조명이 설치돼 있다. 그러니 입장하는 관객이 실수로 조명을 발로 차 손상을 입히기 쉬운것이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도 작은데다 검은 무대에 검은 덮개의 작은 조명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공연 시작 전에 관객이 입장하다 조명을 망가뜨렸고 쉬는시간에도 관객이 입장하다가 조명이 발에 걸려 망가졌다. 관리자는 1,2막 공연 시작 전에 조명 고치는게 일이었고 안내원은 1,2막 공연 시작 전에 바닥에 설치된 조명을 밟지 말아달라고 앵무새처럼 수십번 외쳐야 했다. 그런데도 안내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조명을 망가뜨린 관객도 짜증났지만(특히 1막 전에 안내원이 그렇게 애원조로 조명 보호를 외쳤는데도 불구하고 2막 시작 전에도 망가뜨린건) 생각없이 무대를 조성한 탓이 더 크다.
조명을 단차도 없는 무대 앞쪽에 꼭 설치를 해야만 했고 관객의 발에 걸려 조명이 망가질 위험이 크다면 공연 시작 전에 조명 보호를 위해 의자가 됐건 상자가 됐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막아 놓던지 해야 하는데 그러한 사전방지는 안 하고 안내원 한명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니 순간 방심하다가 조명이 망가져 고치느라고 고생인것이다. 공연 막바지에 본건데도 조명 보호를 위해 안내원이 수십번 똑같은 안내를 반복했다는건 개막 때부터 불거진 기술상의 문제라는건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상황이 그 정도 됐으면 조명을 보호할 보호막을 설치했다가 공연 시작 전에 제거하는게 맞는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