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야기 김성동(소설가)--나의 인생, 나의 문학

[산책시간]

  
  살아 있는 시대의 언어를 담아라

김성동(소설가)

 [꿈]이라는 제목으로 6년 만에 소설을 써서 5월에 책이 나왔습니다. 저는 1995년에 역사소설 [국수]를 4권 내고서 더 이상 쓰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모종의 벽에 부딪쳐 붓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세기 전에 우리 민족이 소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거센 파도에 떠밀려야 했습니다. {국수}는 서양에서부터 거센 기독교를 종교적인 상징으로 해서 앞서가는 문명의 물결이 엄청나게 밀려왔을 때, 무너지기 직전의 조선, 아직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기 전, 산천도 무너지기 전의 시절에서 시작해서 1894년 갑오 5년 소위 동학(東學)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기 전야까지를 다루는 소설이었습니다.

 당대의 언어로 말해야

 소설을 쓸 때 제일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시 그 시대 사람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달리 말하면 사람의 마음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육체 속에 있고, 육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땅이고 산천입니다. 한 세기 전의 역사를 재현하자니, 풍속이라든가 당시의 생활 모습 같은 것은 공부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 가능한데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언어였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면서 남북한을 통틀어서 역사소설이라고 하는 것을 거의 다 읽어 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참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소위 불후의 고전적 노장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깜짝 놀랍게도 대부분 탁월한 작가들의 작품이었습니다. 30년대 40년대에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라고 하는 [천변풍경]을 쓴 우보 박태원 선생이 가서 쓴 [갑오농민전쟁]이라든가 저쪽에서 혁명적 노장으로 뽑아주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 역사소설에서 우리 조선 이래의 삶을 진실에 입각하여 그려낸 점은 후배로서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이건 소설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선과 악, 지배와 피지배, 당시로 말하면 갑오 전야의 사회상을 그리다 보니까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 등 철저한 이원론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지주라는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기득권 보수세력을 말합니다. 지주는 거의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이, 악인도 그렇게 지독한 악인은 없습니다. 또 반대쪽에 있는 대다수 당시 농민 대중들은 그렇게 사람들이 거룩하고 마음도 너그럽고 생긴 것도 하나같이 잘 생긴 것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남자는 아주 씩씩하고 정의감에 불타며 민족의식을 가지고 개인보다도 전체를 위해서, 소승이 아닌 대승적 삶을 사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80년대 이른바 동구권이 몰락하고 소비에트가 해체되어서 이른바 자본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형식적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줄여서 말하면 사람의 존재를 잘못 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학습이나 훈련, 조직에 의해서 개조될 수 있고, 이상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인간들끼리 모여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나갔던 것인데, 소비에트의 가정 부인들이 미제의 전자제품들,온갖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을 보고서 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자' 고 그 열화와 같은 인간의 욕망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언어를 복원해 보려고 참으로 고심참담했는데 굉장히 힘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말을 쓰고 있습니다만 언어라고 하는 것은 계급의 산물입니다. 즉 자기가 사는 삶의 조건에 의해서 규정됩니다. 지금도 사실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있는 것 같지만 다 다릅니다. 자기 삶의 조건에 의해서 언어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소수였습니다만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어 가는 계급은 사대부였습니다. 즉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 기층 민중이라고 하는 농민 대중들, 세 번째는 아전이라고 하는 중간계급, 네 번째는 천민이라고 하는 노비로 크게 나누어졌었습니다. 이렇게네 계급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반계급과 농민계급은 지금도 우리가 쓰고 있고 복원이 가능한데, 당시 실질적으로 행정사무를 맡았던 아전계급 언어, 노비계급의 언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고심하면서 학자들을 만나 물어보았는데 헛고생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조상이나 할아버지가 아전이었다거나 노비였다고 누가 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껏 남아 있는 것이 제 개인적으로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직 살아 계신 노모에게서 들은 몇 가지 단편적인 것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소설 집필 작업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나서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습니다. 가출을 한 것은 늘 사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내 삶이 전부인가, 이게 다인가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너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내 삶이 끝나는가 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문학을 만나게 되고 작가로서 밥을 먹게 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여전히 괴롭고 풀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의 유행어인 화두(話頭)와 같은 것에 부딪친 거죠. 그래서 소설을 접었고 잊어 버렸습니다.

 떠돌아다니는데 계속 산자락을 도는 것이었습니다. 산은 들어가지 못하고 산밑의 옆으로만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더니 제가 산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거기서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맺혀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옆으로만 돈다는 것은 세월도 많이 흘렀고 모든 조건이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절의 객실에 가서 있기도 하곤 했습니다. 설악산의 내설악 백담사라고 하는 절의 객실에 있었는데 봉정암이나 오세암으로 가는 쪽의 길은 참 그윽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매일 그 길을 올라다니다 보니까 내가 소설을 썼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하루는 어떤 청년이 와서 소설을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하고 물었더니 불교신문 기자라면서 연재소설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깜짝 놀란 것은 내가 새삼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었고, 그보다도 더 놀랐던 것은 불교신문이라는 매체에서 저한테 소설을 쓰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청탁을 받았던 것처럼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 어느 잡지사에서 청탁을 받았는데 제목은 자유, 내용도 자유 매수는 80장 안팎, 제가 깜짝 놀랐던 것은 '귀하의 옥고(玉稿)를 청탁하오니 며칠까지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옥고라는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 내가 쓰는 글이 옥고라고 불려지는구나. 내가 옥고를 할 수 있을까. 물론 형식적으로 쓴 말인지는 압니다.

 처음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떨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 다시 왔던 것은 불교신문이라는 매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신문]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집안 신문인데 거기서 나한테 청탁을 했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소설을 썼다고 공문을 보내서 나를 쫓아낸 것입니다. 밥도 주지 말고 재워주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썼다고 나를 쫓아낸 것은 정신적으로 고통이었습니다. 결국은 나오게 되었습니다만 그런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면서 이 사람들이 나더러 소설을 쓰라고 하면 나를 문학적 복권을 시킨다는 것이구나 해서 얼른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쓴 것이 [꿈]이었습니다.

 한 작가가 소설을 창작하게 되면 가정이라는 게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일간지에 연재도 해보고 잡지도 해봤지만 편집자를 만나서 무얼 쓰겠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소설 삼국유사]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이 내세울 수 있는 정신의 원형질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는 중국의 사대 기서(奇書)라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을 골라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상당한 한학(漢學)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내 또래의 작가들에게 과연 그런 실력이 있는지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민주일보]에 연재를 하다가 두 달 만에 폐간되고 만 적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재될 신문지상에 [작가의 말]까지 썼는데, 갑자기 이걸 쓸 수 없겠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도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천년 전 당시 삼국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언어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서, 저로서는 '그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속된 것이고 해서, 저로서는 집필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삼국유사에 조신 공소가 나옵니다. 조신이라는 중이 태수의 딸을 절에서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여자인데 연모하는 마음이 생겨서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지금의 낙산사 홍련암에서 제발 만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으니까 관세음보살 앞에서 빌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둘이 사는데 아이를 다섯 명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름답던 여인과 잘 생겼던 스님도 늙고 생활도 어렵게 되어서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참혹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늙은 낭자가 헤어지자고 합니다.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는 꽃처럼 아름답고 가진 것은 없어도 배가 불렀는데 살아봤더니 결국은 이렇구나, 하면서 아이들은 반으로 나누어서 가는 겁니다. 돌아서서 가는 순간 깜짝 놀라서 보니까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관세음보살 앞에서 기도를 하는 동안 꾸었던 것입니다. 초저녁에 등잔불에 불을 붙여놓고서 불이 가물가물 할 때까지 하룻밤을 샌 것입니다. 하룻밤에 일어났던 꿈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제가 모티브만 빌려와서 썼던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가 같은 제목으로 [꿈]이라고 해서 긴 단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티브만 빌려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했던 것입니다. 저는 삼국유사보다는 더 세게 나가야한다고 해서 거기서는 하룻밤을 샌 것인데 망치소리 한 번, 주인공이 역시 똑같이 기도를 합니다. 새벽에 장엄염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이 한 번 땡 치고 나서 염불을 하고, 종소리가 잦아들 때 다시 한 번 치게 됩니다. 소설은 원고지로 천 이삼백 장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인데, 끝 부분에 여자를 쫓아가다가 앞으로 팍 고꾸라져 풀뿌리에 걸려서 이마를 땅에 이마받이를 해 아파서 깜짝 놀라서 보니까, 종을 치고 그 종소리가 잦아들기 직전에 꾸었던 꿈이었던 것이죠. 짧은 찰나의 일장춘몽이었다. 일장춘몽이니까 교훈적이고 사람의 삶은 무상하고 덧없고 부질없고 그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꾸물꾸물 계속 하지만 결국은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그러니까 세속적인 부질없는 삶에 아둥바둥 얽매이지 말고 다 버리고 집착하지 말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진정한 공부를 해야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구조입니다.

우사(牛舍)를 집필실로 꾸며 글을 쓰다

 저는 그게 아니고 그런 교훈적인 것에는 별 의미가 없고 문학 작품에서까지 그런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보았습니다. 과연 중생들이 꿈을 제대로 꾸어 봤는가. 정식으로 치열하게 꿈을 꾸자. 덧없고 부질없지만 그것은 나중 얘기고 꾸어보고 나서 얘기를 하자. 제가 그걸 쓰는데 2년 간 계속 떠돌아다녔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유원지 민박집에도 지내고 무당집이나 폐가에서도 있고 제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 우사암이라는 암자였습니다. 강릉 수목원의 봉선사라는 절이 있는데 불편해서 우사암이라는 암자로 갔습니다. 소를 키우는 우사(牛舍)를 개조해서 방을 만든 곳에서 살고 있는데, 친구들이 가끔 찾아와서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니가 왜 지금 이렇게 사느냐고 하면서 명색이 소설가가 살려고만 하면 잘 살 있는데 화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소를 키우는 축사라고 하기가 좀 그런데 암자만 붙이면 되지 않겠는가, 해서 우사암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거기서 글을 쓰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연재소설은 숨이 막힙니다. 저는 직업 중에서 가장 단명한 것이 소설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의사라고 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가가 1위이고 다음으로는 음악 지휘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정치가들은 쌓이는 게 없어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을 합니다.

 저의 별명은 작가 박범신 씨가 붙여준 것인데 자해공갈단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술을 죽자고 자학적으로 마시니 자해공갈단이 아니냐고 합니다. 술을 3박 4일 마시고 119 구급대에 실려서 옵니다. 원고는 써서 줘야 하기 때문에 거의 정신없이 쓰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면서 물이 들어오니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봤더니 정말 물이 찰랑찰랑 토방으로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내가 메고 다니는 가방에 쓰던 원고와 담배를 집어넣고 나오는데 이미 물이 거의 배꼽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것입니다. 나와서 생각하니 내가 몸만 나오면 뭐하나 살림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힘들게 찾아냈던 자료와 사전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죽는다면서 잡았습니다. 글을 써서 이튿날 아침에 우체국에 가서 부쳐야 하기 때문에 봉선사 절에 올라가서 젖은 옷은 벗고 발가벗은 상태로 글을 썼습니다.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부치고 물이 빠진 집으로 들어갔더니 진흙으로 뒤덮였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그곳에서 제가 원고를 천 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진 다음의 일입니다. 진흙으로 덮여서 앉을 수가 없으니까 책상으로 썼던 식탁 옆에 창황방조 우두망찰 나무나 기가 막힌 나머지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부처님이 나타나 "얘야, 나 좀 꺼내 줘"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러봐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별꼴 다 보겠네" 하면서 또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이상해서 밖으로 살살 나가봤더니 모래 속에 40센티 정도 되는 돌로 된 석불이 진짜 있었습니다. 연대는 언젠지 모르고 망치로 쪼아 만든 미륵불이었습니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모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잃어버린 원고가 바로 미륵 이야기를 쓴 것이었습니다. 가제로 [마하 신돈]이라 하여 고려말의 우승(愚僧) 신돈을 소재로 쓴 작품이었습니다. 우승으로 낙인 찍힌 신돈을 역사적으로 복원시키기 위하여 쓴 소설이었습니다. 한 천 장을 썼는데 그게 통째로 날아간 거지요. 그렇게 해서 미륵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내가 다시 쓰게 해주마' 하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경기도 양평 옥천에 모셔놓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경우에 소설 쓰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가 데뷔작인 [목탁조]를 쓴 게 스물 여덟이던 1974년이었습니다. 당시의 나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도 전혀 몰랐고 원고지 다루는 법도 몰라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한테도 물어보지 않고 자력갱생을 했습니다. 김동리 선생께서 심사를 하셨는데, 응모작 중에서 원고지를 다루는 것이 제일 법도에 맞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가가 되면 수지를 맞는 줄 알았습니다. 내 괴로움, 고통, 내가 읽어낸 세상, 내가 보아낸 사물과 인상을 아무도 보지 못한 나만의 눈으로, 즉 자기만의 목소리나 문장으로 나타내야 하는 겁니다. 그 고통은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오늘날 문학이 일회용 일회용 밴드나 껌처럼 단물이 빠지면 뱉어버리듯이 인스턴트 식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힘들여서 읽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대중화라고 하는 명분을 가지고 맞춰 가는, 그래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한 소리, 심하게 말하면 범죄적인 현상들이 민활(敏活)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산다고 해서 대단한 것이 건져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천부의 재능과 거기에 필적하는 엄청난 죽음의 터널을 통과할 정도의 노력이 함께 가야 되겠지만, 반드시 걸작이 낳아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신나고 수지맞은 걸로 알았는데 '이게 아니구나. 잘못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바로 했습니다. 지금도 글을 쓴다거나 갓 데뷔를 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그 얘기를 합니다. "뭐가 이게 좋은 거라고 죽을 자리를 찾아왔느냐고 합니다. 절대 좋은 자리가 아니라 죽음이다." 영광은 짧고 고통은 길다는 것입니다.

작법이나 구성보다 먼저 가슴으로 다가와야

 작가의 길은 힘들고 괴롭습니다.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1인분이고 개체고 단독자고 홀수입니다. 이게 냉엄한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하는데 냉정하게 보면 부모와 자식도 남남입니다. 자기가 감당하고 자기 스스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하나의 인연으로 잠시 맡아주는 것뿐입니다. 즉 매개체일 뿐이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출발된 것이 종교, 예술, 사상, 철학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인류사를 보면 종교라는 것이 그런 문제를 다 감당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가 그 구실을 못하고 철학한테 넘겨주었습니다. 철학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를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직무유기를 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뚫고 들어간 것이 문학을 필두로 하는 예술입니다. 그것 또한 다른 것에 자리를 넘겨주려고 하는 과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미진한 부분들에 대하여는 질의 응답을 통해 의견을 나누도록 하지요.
문; 소설을 쓰는 데 맨 처음 줄거리를 잡는 게 어려운지 아니면 구성이 어려운지 다른 사람의 이목도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우선 소설을 쓰려면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것이 영상으로 자기 뇌속에 정확하게 나오기까지가 힘듭니다. 그것만 잡히면 그 다음에는 팔이 아플 뿐 힘들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문학개론}을 샀다가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선 '플롯'이라는 말에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설이라는 자체가 부르주아적 문화의 산물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쓰고 있을 뿐이지만, 저는 여기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 경우에는 소설의 첫 장면과 끝장 면이 떠오르면 그것으로 다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나오면, 구상이나 구성도 없이 다 메워지는 걸 봅니다. 저로서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첫 장면을 만날 때는 천운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작가에게는 두 부류가 있다고 봅니다. 의지로써 쓰는 작가가 있고, 의지 이전에 가슴으로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역사 의식도 좋고 건축물 설계도를 짜듯이 치밀하게 구성을 짜는 것도 좋지만, 우선 가슴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수기나 다큐멘터리와 분명히 다르므로, 소설만의 그릇을 얻어야 된다고 봅니다.
오늘날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찍는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어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름지기 작가라면 모름지기 어휘가 풍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편리하다는 것 못지 않게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글쓰기에 왕도는 없습니다. 또 책이 주는 지식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되리라 봅니다. 꾸준히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소설을 찾는 노력을 기울일 때, 좋은 글은 탄생되리라 봅니다. ◈

[산책시간]

http://www.kcaf.or.kr/lecture/munhak/munhak.htm 들려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