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래 속한 회사에서 회식이 있다고 나오라고 했다.
매미 유충이 매미되는것마냥 늦지말라고..
(젠장찌게...멀찍이 파견 보내놓고 늦지말라는게 말이 되냐..)
하여간 요즘 몸도 허해졌고, 해서, 저녁에 절대 금하고 있던 고기와 술로 몸을 달달하게 달래주기위해
약국가서 술안취하는 약까지 사 먹고 일과시간보다 30분! 씩이나 더 일해드리고 부랴부랴 나와서
전철을 타고 회식장소까지 다 왔는데...
"야.. 덕현아. 다시 들어와라. -_-;;;"
-"예? 아.. 저.. 지금전철이고... 회식있다고 말씀드렸고, 아까 그러라고 하셨고... 궁얼궁얼.."
"야~!! 안돼~!! 할거 더 있어!! 그리고 니가 이거 설명 해주고가야지 임마~~~ 빨리 들어와~~~"
-_-;;; 우렁된장 우라질레이션.. 젠장 쌈밥찌게...
퇴근한지 한시간만에 다시 들어갔고, 일하다보니 아홉시 반.. -_-;;
사장님 주관인 회식을 진행하시던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 부장님, 전데요 -_-;;; 저 이제 끝났는데.. 어떻게 지금이라도 갈까요?"
오지 말란다.. 헤휴.. 눈앞에 고기가 떠다닌다-_-;;;
역시 집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래서 마음을 비우기로 했으나, 속도 비어있던 터라...밥집을 찾아서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회식에 가지 못했던 때문일까.. 혼자 밥먹기가 싫어서 그냥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삼각지에서 서울역까지.. 방향 확인차 마주오던 노부부에게 물었고,
거리가 꽤 되니까 차라리 버스를 타라는 그들의 권유에,
"그냥 좀 천천히 걷고싶어서요 헤헤.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곤 걷기 시작했다.
바삐 움직이던 출근시간.. 그와는 반대로 아주 천천히 걷는 퇴근길..
사람들의 움직임도 눈에 들어오고, 여기저기에서 새삼스레 새로운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왠지.. 점점 즐거웠다.
숙대입구역 근처의 떡볶이 집에서 덜불어서 약간 딱딱한 떡볶이와 함께
순대튀김과 메추리알 꼬치를 함께 먹고 어묵국물로 입가심을 해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허기가 사라졌다.
그러나 칼로리 생각으로 약간 우울... But! 배고픔에 쩔어버린 위도 달래주었고 해서, 다시 출발~!
걷다보니 평소엔 먹지도 않는 후식이 땡겼다.
가장 먼저 보이는 가게에서 포카칩을 사 먹으리라.. 하던 찰나에 뭔가가 신경쓰여서 뒤돌아보니
굉장히 허름해서 간판조차 눈에 띄지않는 정말 작은 구멍가게가 보였다.
꼬마들이 마법의 성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게 그 가게로 들어갔는데, 왠지 얼굴에 미소를 짓고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옛날 진열장 그대로, 리모델링하지 않은 정말 옛날 그대로의 구멍가게..
여기를 거쳐간 많은 아이들, 지금은 엄청나게 커서 각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영화처럼 눈앞에 스쳐가는거.. 나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게 떠올랐다.
하지만, 작고 허름한 가게이다보니 내가 기분 좋게 웃는것이 가게 주인 아저씨가 보시기에
비웃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포카칩을 들곤 천원을 내드렸다.
그때 한번 놀랐던게.. 아저씨가 직접 돈을 받으러 출입구까지 와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종이장 하나를 받으시는거..
포카칩을 왼손에 들고 있던 나는 오른손 한 손으로 드린게 굉장히 죄송스러워졌다...
그래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오려는데, 눈에 띄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보통 가게에서는 밀어올리는 유리문 바로 아래에까지 아이스크림이 차 있는데,
그 가게의 냉장고에는 냉장고의 맨 아래 바닥에만,
왼쪽부터 세 개, 가운데줄 네 개, 오른쪽 줄 네개.. 도합 열 한개의 아이스크림들 -그것들은 돼지바였다. -_-;;-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이유는 없지만.. 약간의 띵~ 한 느낌...
치열하게 돌아가는 회사 안보다.. 이 가게 주인아저씨도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떡복이와 순대/메추리알 튀김의 칼로리의 압박으로 인해 차마 아이스크림을 집을 순 없었다.. 이 저주받을놈의 체질이여....
나도 맘껏먹어도 살 안쪄봤음 좋겠다...
그렇게 양복입고 한손에 과자봉지 들고 우물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사관학교 다닐때, 첫휴가 나가기 전, 선배들에게 정신교육을 받았었다.
"작년에 생도 정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오뎅 먹다가 품위유지 위반으로 퇴교당한 동기가 있었다.
그러니 귀관들은 절대 노상에서 음식물을 취식하지 말도록 할 것."이라는...
뭐,. 사실 확인은 안되는 말이었지만, 그 조그만 세계의 틀에 어거지로 끼워맞춰가던 나는,
정말로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술.담배,여자는 고사하고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산에 놀러가서 먹은적은 있구나.....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정말 맛있었고, 행복했다.
그 가게에서 산 과자인게 더 맛있었다. (실제로 좀 짰다. -_-;;;)
그러다가 백원넣고 하는 오락실을 발견했다.
겜방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사라진 백원 게임방..
아까 그 가게를 거쳐간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 처럼, 30대 이상의 아저씨들만이 군데군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옛날에는 나쁜 형아들이 가서 너희들 돈 뺐는 데니까 가면 안되는 무서운 곳이었지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삼십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추억거리 삼아 갈 수 있게 된 장소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하하.. 재밌었다.
퍼즐버블... 라이덴... 이름은 모르겠지만 같은 색 구슬을 세개 모으면 사라지는게임... 그리고 킹 어브 파이터즈...
한때는 공략집까지 나올정도로 대단한 인기였지만 지금은 거의 매니아 층에서만 거론되는 게임이다..
거기서 오백원 정도를 쓰고 나와보니 드디어 서울역....
서울역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삼각지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이 마치 멈춰버린 듯,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난 그 시간대에 녹아들어버렸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고나서야
전철역 두 구간을 걸어오는데 50분이나 소비했다는것을 알고 적잖이 놀랬으니까..
뭐, 떡볶이도 먹고, 숙대입구에서 약간 길 헤매기도 하고, 수퍼도 갔다왔고, 오락실도 갔었으니 뭐 ^^
왠지 긴 여행을 다녀온 듯...
아마 천천히 걷지 않았다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으리라.
한시간에 한 대 온다는 집 바로 앞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동생을 통해 버스가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말들 들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라고..
아마 내가 천천히 걷지 않고 버스나 전철을 탔다면, 난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림이라는 짜증스런 시간으로 보냈으리라.
하지만 난 그 시간동안에 너무 행복했다.
그때...
새삼스레 8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태극권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태극권에서는 파바밧!!! 하고 빠르게 움직이라 하지않는다.
오히려 더 천천히, 가능한 천천히 움직일것을 요한다.
움직이는 가운데 멈추어 있고, 멈추어 있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는
정중동 동중정...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
하하.. 예전에도 몇번 느꼈던거지만 새삼 또 느낀다.
행복이 뭐 별거냐... 하하...
첫댓글 와.. 다읽었어.. 힘들었어.. 대단해.. 근데 형 !!! 거기속한 회사고 사장이고 부장이고 이거 맞는 직급이야? 사장은 대대장 이런거? ㅋㅋ
아.. 그건 말 못해주지 ^^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점심때 읽어야겠다~ -_-;;
ㅋㅋ ㅇㅇ 읽어달라고 쓴건 아니지만 읽어준다니 쌩유^^
우리회사 근처네;;; ㅋ 오빠 근데.. 진짜 작은거에 행복을 느끼시네요~ ㅋㅋㅋㅋ
하하. 그런가요? 저때보다 더 행복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때얘기는 게시로 쓸게요 ^^
무지 긴 일기네요;;;ㅎㅎㅎ
일기랄것 까지는 없는데.. 그냥 넋두리예요 ^^ 가슴에 담아두었던 느낌. 모기에게 뜯겨 일어난 새벽에 조용해서 쏟아버린거죠 뭐.
소박한 것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 그것이 살아가는 재미죠 ^^
ㅇㅇ 하지만 일부러 의식해서 느려야 할 만큼 치열하게도 살아봐야 느린게 정말 느린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
5백원씩이나 오락실에 투자하고도 50분을 넘기지 않고 도착한 그대는 정녕.....난 5백원이면 오락실에서 몇시간을;;;쿨럭-_-;;; 글읽을때마다 느끼는건데 정말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듯이 잘 써내려간 기행문을 읽는것같아...긴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쓰는 너의 문법은 정말 버릴데라곤 한군데도 없구나....지나간 추억을 잠시나마 돌려준 "덕현"이에게 감사의 댓글 한표~ㅎㅎ
아아...그리고 꼭 메모장을 이용해라...웬지 "로그인"이나 글쓰기 에러의 냄새가 날법한 긴 문장을 채용하고 있구나...ㅋㅋㅋ
이봐.. 내가 잘하는 게임이 없었다고. -_-;;; 반프레스토 사의 가디언, 야구왕 이런거 있었으면 백원으로 끝판은 기본이...었구나 -_-;; 안한지 벌써 4년 정도 된 듯..그리고 문법 틀린데 엄청 많아. 시제 틀린데 세군데, 맞춤법 틀린거 하나.. -_-;;; 게다가 매끄럽지도 못하고..
오오...대책없이 겸손하구나..ㅋㅋㅋㅋㅋㅋㅋ
와 ㅋㅋ 소설같은데용? ㅋㅋ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아니야 짧으니까 미셀러니? ^^ 그치만 그냥 넋두리야 ^^
ㅎ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느리게...? 근데 난왜 윤택이 생각날까? -_-;
원래 쾌검하는 사람보다 만검하는 사람이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여.. ^^ 각오해여~~~
와 일기다 ㅡ_ㅡ; 잘봤읍니다,
부끄러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느리게 살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이제 슬슬 여자친구도 만나고 해야지
익숙함에서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리라~신선함에서 익숙함을 느끼지도 못하리라~
"찌개"를 사랑하는 그대여!^^!
저도 한번해볼께여~~~ ㅋㅋ 아직 느끼지 못할 땐가??
빨리 걸어본 사람만이 '천천히'와 '빠른'의 차이를 알 수 있겠지... 네가 빨리 움직이고 있다면 천천히 걸어보는것도 좋을거야
거참.... 항상 느끼는거지만 난 정말 회사 잘 선택한거 같다.... 더 일하고 싶어도 또 일이 아무리 많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칼퇴근을 강요하는..... 이노무 회사 어쩔꺼~~!!!
아무래도 형은 나와 같은 업계 종사가 아니라 유사업계에 종사하는것 같아.. -_-;; 마인드가 이토록 다르니.. 원..-_-;;;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글을 참 소박하게 잘 쓰시네요 ... 읽는내내 같이 걷고 있는듯한 동화된 느낌... 좋았습니다
앗...과찬을.... 부끄럽습니다. 제가 느낌 감정을 미약하게나마 느끼셨다면 저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