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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cent Children
1장. 배회하는소년
#4
‘나란 인간은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지?’
그다지 정상적인 삶은 아니었다. 지난 18년간 즐겁게 웃어본 적이 없 었다. 부모란 인간들은 애초에 글러 먹어서 이혼 후에도 여러 일로 다 시금 만나 다투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구석에 쪼그려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어차피 뭐랄 일도 없었다. 자신은 부모에게 있어 그저 ‘배경’에 불과했으니···. 학교에선 문제를 일으켜 정학, 그리고 어딘가로 도망치듯 몸을 움직이 던 서지혁은 어느새 이 꼴이 되어있었다. 좋은 기억도 없었고, 가치있는 기억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서지혁은 그렇게 자신을 불행한 인간으로 왜곡시켜버렸다.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죽어야 했어.’
어둠 속에서 소년의 눈동자가 깜박였다. 커진 동공으로 인해 소년의 눈동자는 한층 더 깊고, 한층 더 어둡게 보였다.
‘마주 오는 차와 부딪쳐 자신이 공중으로 튕겨오른다. 산산조각 나 는 바이크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가슴을 꿰뚫는다. 폐까지 파고든 조 각에 의해 나는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의식을 잃어간다.’
서지혁은 나름대로 ‘벌어질 수 있었던’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그러나 자신은 이렇게 살아 있지 않은가. 곧 이어 지혁에게 또다시 권태와 패배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가슴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분노가 그의 자살충동을 찔렀지만 서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더럽게도, 두렵거든.’
몸이 지금처럼 불편하지 않을 땐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거리를 달리곤 했다. 그게 자신을 달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 것마저 불가능한 지금의 서지혁은 온 몸을 떨며 마치 중독증세라도 보이는 듯한 환자에 불과했다. ‘속도’라는 마약에 자신을 맡겨 고통을 잊는 중독자. 그에게 있어 삶이란건 빨리 끝나냐 늦게 끝나냐였다. 다만 후자 쪽이 좀 더 고통스러울 뿐이지. 소년은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 . .
“민호영. ID넘버 81407. 본인일치.”
호영은 불이 꺼진 독방에 있었다. 아니, 독방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거 대한 검은 공간에서 무언가에 몸을 맡긴 채 앉아 있었다. 아무 것도 없 는 허공에선 계속해서 디지털음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약관을 들으시겠습니까?” “바로 접속한다. 지금은 바빠.” “처리완료. 즐거운 CTR 되시길 바랍니다.”
가상현실게임 CTRacer Online의 개발자. 민호영은 약관 쯤이야 꿰뚫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디지털음성에게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물론 디지털음성엔 아무런 의도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호영은 지금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다. 서지혁과 만난 이 후부터 그는 모든 것에 짜증내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일정한 말만 되풀이하는 시스템과 말싸움이라도 붙을 순 없는 노릇아닌가. 게다가 이 신경과민증세의 원 인이 되는 서지혁에겐 정작 짜증을 낼 자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호영은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여러 생각이 떠오르던 중 별안간 어둡기만 하던 공간은 쏟아지는 빛에 의해 순식간에 소멸해가기 시작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쏟아지던 빛은 점점 옅어지며 서로 무리를 이루어 건물을 이루고, 나무를 이루고, 거 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빛의 점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 하늘을 날아 도로위에 타인을 형성하고 색을 입혀갔다. 그리고 눈 앞에는 실제의 서 울과 다름없는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동작은 불과 몇 초 안에 일어나 일련의 동작만으로 완료되었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 었지만 호영은 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뒤에 자리잡은 ‘CTRacer online . 게임내부본사’라 적힌 건물로 들어섰다.
“일찍 오셨네요. 팀장님.”
호영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한 남자에게 눈인사로 답했다. 인물묘사 역시 완벽에 가까워 실사와 다름 없기에 누구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있었 다.
“금방 가봐야 할거야.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마무리단계에요. 오늘 안에 로드테스트 종료할겁니다.” “그래···?” “······.”
호영은 힘없이 소파에 몸을 맡겼다. 푸슉-하며 공기 빠지는 소리가 귓 전에 흘러들어와 그를 괴롭혔다.
“빌어먹을 소파.” “···오늘도 걔네들 문안가시나보죠? 뭐라 그러셨더라? 아, 그 충 돌사고 있었다는 겁대가리 없는 애들요.” “그래.” “뭐하러 그런 일에 자진해서 얽히시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어차피 나 몰라라 하고 손떼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뭐, 나도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가긴 해. 그렇다고 집도 절도 없는 녀석을 매정하게 대할 순 없잖아.” “···힘드시겠군요.”
‘힘든 정도가 아니야. 이 녀석아.’라고 핀잔섞인 눈빛을 보내곤 호영 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말한대로 오늘 역시 서지혁에게 가봐야 했다. 그렇다 소년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예수란 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가페적 사랑으로 관대해보자. 아니꼬움에 몸이 비틀리더라도 말이다. 호영은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의무감을 부여했다. 우선적으로 친해지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보리라고 그는 다짐했다. 어쨌 든 그는 자진해서 ‘임시보호자’를 맡은 셈이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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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걱 CT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