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낙양대협(洛陽大俠)-2
금도표국은 오랜만에 큰 표물을 아무런 사고없이 운송하고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덤으로 표물이 도착한 지역에서 낙
양으로 가는 표물까지 맡게되어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
득했다. 특히 이번에 간 표물의 가치가 무가지보라 국주인
낙양대협 이장도까지 표행에 나서는 등, 여러가지로 단단히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탈없이 표행이 완료되
어 이장도의 마음은 편한했다. 물론 표행에 나선 표사들이
나 표두, 쟁자수들도 이번 표행이 무사히 끝났음에 기쁨을 면
치 못했다. 표행이 끝나면 받는 특별수당에 그들의 마음도
설레인 것이다. 더구나 목적지인 낙양이 눈앞에 있자 표행
전체가 들뜨기 시작했다. 금도표국의 표행은 낙양의 북쪽
에 도착했을 때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북망산(北邙山)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더 이상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이 든 이장도는 준비했던 술을 야숙(野宿)에 들어
간 표행의 식구들에게 돌리기로 했다. 거나하게 벌어진 술
판을 바라보며 몇 배의 술을 마신 이장도는 잠시 소피가 마
려워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이장도는 바지춤을 풀고 작은 일
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장도는 자신의 등뒤에서
들리는 싸늘한 목소리에 정신이 확 깨었다.
"자네가 낙양금도인가?"
"누구냐?"
이장도는 순식간에 몸을 회전하며 외쳤다. 그러나 눈앞에는
어둠이 깃든 숲이 있을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
시 등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림사에 있는 자네 부친에 대해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네."
"헉!"
이장도는 너무 놀라 헛바람을 내고 말았다. 누구도 알아서
는 안 되는 비밀을 의문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일부가 흘러나
오자 이장도의 안색은 무섭게 굳어갔다. 이장도는 천천히
주위를 돌려보며 누가 있는지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
았다.
"무엇을 찾으려고 그리 두리번거리는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
자 이장도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육합전성(六合轉聲)!"
상대는 고수였던 것이다. 육합전성을 사용할 정도로 놀라운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장도는 그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영원히 그의 입을 봉해야 했다.
"나를 찾고 싶은가? 그럼 북망산으로 오게나."
이장도는 자신의 애병인 금도를 굳게 잡았다. 표물을 나두
고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의문의
인물이 알고 있는 비밀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장도는 누구도 모르게 북망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 사실
은 표국의 식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기에 이장도는 누구에
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느덧 북망산에 도착한 이장도는 수
많은 무덤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전음을 날린 인물
을 찾는데 신경을 집중했다. 달빛으로 희미하게 비추는 숲
속뿐 아니라 무덤들마다 이장도의 시선이 가지 않는 곳이 없
었다. 또한 조그만 바람소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이장도는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이장도는 은밀하게 움
직이기 위해 걸을 때마다 소음이 나지 않도록 묘첨보를 사용
했다.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위
치마저 알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행
동이었다. 그러나 이장도가 무덤 가에 도착한 순간부터 무
덤들 사이에 있는 한 거대한 무덤 위에 흑의를 입은 한 노인
이 정좌자세로 앉은 채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흑의를 입은 노인은 이장도가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신
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
다. 흑의의 노인은 이장도가 자신이 있는 무덤 근처를 헤매
자 차갑게 외쳤다.
"나는 여기에 있네."
이장도는 머리 위에서 싸늘한 어조가 들려오자 깜짝 놀랬다.
무덤 위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을 발견한 이장도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장도는 노인이 있는 무덤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의문의 노인은 자기 앞에 멈추어 선 이장도
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알아서 안 되는 것을 안 이상 죽
어줘야겠소."
"자신이 있는가?"
"흥, 육합전성을 사용할 정도이니 당신이 뛰어난 고수라는 것
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는 것을 아오. 그러나 나는 내 무공
의 칠할 이상을 숨기고 여태까지 살아왔소."
"당연하겠지. 소림사에서 속가제자들에겐 금지된 소림 칠십이
종절학을 그대가 익히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큰일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신이 지닌 무공을 숨기고 있어야지."
"헉!"
이장도는 의문의 인물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있자 경악했다.
"그것도 무려 여덟 가지나 익히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당.. 당신은 누구요?"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이 비밀을 누가 또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 자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건... 그렇소."
"그럼 자네에게 이야기해주지.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직
단 두 명뿐이네."
"한 사람은 당신일 테고 남은 한 사람은 누구요?"
"그건 나를 쓰러트리면 알게 되네."
의문의 인물은 칼을 뽑으며 말했다. 도집에서 칼이 뽑혀 나
오자 살기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이장도는 의문의 인물이
칼을 뽑는 모습에서 그가 녹록치 않은 도의 달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의문의 노인이 뽑은 칼은 유려한 곡선을 가진
도배에 여섯 개의 구멍이 뚫려있었고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
이나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장도는
칼의 여섯 개의 구멍을 통해 달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칼의 이름이 기억났다.
"육공도! 그럼 당신이 환객 선배요?"
"그렇다네."
"믿을 수가 없구려..."
"무엇이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인가?"
"강호의 2대 신비객 중에 한 사람인 환객이 후배의 약점을
잡아 협박이나 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는 것
이오."
"흐흐흐, 내가 환객이라는 사실은 이 놈이 말해줄 것이네."
"환객 선배, 하나 만 물어 봅시다."
"말해 보게나."
"무엇 때문에 나를 유인한 것이오?"
"자네에게 한 가지 얻어야 할 것이 있네. 그런데 그 것을 아
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네."
"내게 얻을 것이 무언지 모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오."
"걱정 말게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환객은 음침한 시선으로 이장도를 바라보더니 육공도를 휘둘
렀다. 이장도는 육공도가 자신의 목을 노리며 날아오자 금
도를 들어 올려 방어했다.
[챙.]
환객은 육공도가 이장도의 칼에 막히자 반탄력을 이용해 자
신의 몸을 회전했다. 오른 발이 왼발의 뒤로 빼어 축으로
삼은 환객은 육공도를 통해 느껴지는 반탄력을 이용해 급속
도로 회전한 것이다. 환객은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며 나온
회전력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장
도는 발걸음 하나 움직이지 않고 금도를 우변에서 좌측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환객의 두 번째 공격을 막아냈다. 환객
은 이장도가 자신의 공격을 두 번씩이나 큰 움직임 없이 방
어했는데도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장도라면 이 정도
의 공격은 가볍게 방어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환객
의 두 차례 공격이 끝나자 이장도는 금도를 앞으로 주욱 밀
어냈다. 자신의 흉부를 향해 칼이 날아오자 환객은 마환보
를 사용해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렸다. 금도가 허공을 갈라지
만 이장도는 침착하게 환객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환객이
자신의 좌측 2장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나자 이장도는 금도에
내력을 집어넣고는 몸을 날렸다. 3장 높이의 허공으로 올라
간 이장도는 환객을 향해 떨어져 내려가면서 금도를 머리 위
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위이잉.]
금도는 강렬한 파공성을 내며 환객을 일도양단하려 했다.
그러나 환객은 이장도의 웅장한 자세를 보고는 야릇한 비웃
음을 던졌다. 금도는 환객을 머리끝에서 낭심까지 두 동
강내버렸다. 그러나 두 동강나서 땅바닥에 떨어져야 할 환
객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과연 마환영은 뛰어 나구려. 환객 선배."
"자네의 기세도 대단하네. 일격에 산악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
았네."
"고맙소. 선배. 하지만 그따위 환술로 나를 상대할 생각은 포
기하시오."
신기루처럼 사라진 환객의 환영 뒤에 환객이 유령처럼 나타
나더니 이장도에게 칭찬을 했다. 그러나 이장도는 환객의 칭
찬에도 달가운 기분은 들지는 않았다. 환객의 환술을 잡학
으로 취급하는 듯 말했지만 이장도의 내심은 그렇지가 않았
던 것이다. 비록 특별한 초식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래도 이번 일격에 혼을 담아 공격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심혈을 다한 공격을 환객은 환술을 사용해 너무나 간단하
게 피해 버렸기에 이장도의 마음에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이장도는 간단한 초식을 사용해 환객을
잡겠다는 생각을 접어 버렸다. 환객을 잡기 위해서는 특별
한 무공을 사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이장도는 평생을 통
털어 세 번 이상 사용한 적이 없는 비학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장도는 금도를 수평으로 세우고는 가슴 앞까지 올리고는
왼손으로 금도의 도첨을 잡았다. 환객은 이장도의 자세를
보더니 안색이 무섭게 굳어져 버렸다. 이장도의 자세는 소
림사에서도 특별한 승려들에게만 허락된 비전의 무공이었고
환객 자신이 꺼려하는 도법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대원도법(大元刀法)의 기수식인가?"
"그렇소. 환객 선배."
"허허허, 사대금강에게만 허락되는 대원도법마저 익혔단 말인
가? 정말 그대의 부친은 자식 사랑이 특별하구나."
"그분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시오. 환객 선배."
"흥, 대원도법이 무엇이냐! 아미의 금광도법(金光刀法), 보타
(普陀)의 복마도법(伏魔刀法)과 함께 불문의 3대 도법이 아니
더냐! 소림사 내에서도 선발된 소수에게만 전승하는 비학인
대원도법을 일개 속가제자인 너에게 전수하다니..."
"선배, 상관할 필요없소. 어차피 오늘 선배가 죽든 내가 죽든
결판이 나야 끝날 것인데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소."
"대원도법을 너무 믿는군. 그대가 비록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절기를 익혔는가 본데 중요한 것은 초식이 아니라
숙련이다."
"알고 있소이다. 선배. 천초를 아는 자보다 일초를 펼치는 자
가 두려운 법인 것을 이 내가 모르겠소."
"흐흐흐, 좋다. 과연 네가 얼마나 잘 배웠는지 시험해보마."
"오시오. 우리 사이엔 더 이상 말은 필요가 없소."
이장도는 말을 마치자 바로 나한기공을 일으켜 전신에 유포
했다. 나한기공의 힘은 이장도의 전신을 돌아다니며 근육과
뼈, 혈맥을 강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장도는 나한기공이 전
신에 퍼지자 외기에 흐르는 대기를 코로 빨아들여 내부의 나
한기공과 합일시켜 나갔다. 환객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장도
의 전신을 노려보며 허점을 찾다가 이장도의 신체에 일어난
현상을 목격했다. 이장도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낸 환객은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강기일식(剛氣一息)이군... 외문기공의 극치인 나한기
공으로 오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군."
강기일식은 외피를 강철같이 굳건하게 만드는 외문기공을 한
계를 넘도록 익힌 인물이 내공과 융합해 금강불괴에 가까운
상태를 만드는 무학의 경지에 대한 것이었다. 금종조나 철
포삼, 십삼태보횡련등의 외문공부를 익히는 사람들이 꿈처럼
여기는 경지가 강기일식이었다. 강기일식을 이룬 자의 피부
는 강철보다 더 강하고 질겨 도검의 날로는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내가장력이나 침투경등에 무력한 여타의 외문
기공과 다르게 내공의 공격마저 막을 수가 있는 것이 강기일
식이었다. 그런 강기일식을 이장도가 이룬 것을 목격한 환
객은 마음은 점차 어두워졌다. 생각 외로 이장도는 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장도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환
객은 이장도에게 받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또한 이장도
역시 환객을 그냥 내 보낼 수는 없었다. 자기 자신이나 소
림사에 있는 자신의 부친을 위해서도 환객을 보낼 수는 없었
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한순간 바람처
럼 움직였다.
[챙. 챙. 챙...]
육공도와 금도가 무서운 속도를 자랑하며 부딪쳐 나가며 날
카로움 소리를 냈다. 환객은 육공도를 더욱 빠르게 움직여
잔영조차 남기지 않았고 이장도는 대원도법의 절초를 금도로
실현해냈다. 육공도는 빠르게 움직일수록 여섯 개의 구멍을
통해 기괴한 바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특히 섭혼도법
의 연환식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바람소리는 더욱 커져 가더
니 귀청을 찢어버리는 소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퀴오오~..."
육공도에서 귀곡호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북망산의 묘지 위에
피어난 잡초들이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천지사방이 암흑
으로 덮여버렸다. 그러나 이장도는 내력을 모아 귀를 보호
하면서 금도에 더욱 강한 내력을 운용했다. 금도는 이장도
의 내력을 받자 은은히 진동하며 울기 시작했다.
"웅, 웅, 웅..."
도명(刀鳴)이었다. 그러나 그 뛰어난 도명조차도 귀곡호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섭혼도법의 기괴신랄한 변화
는 대원도법의 방어막을 뚫어버렸다.
[파바바박.]
육공도는 이장도의 두 팔과 허리, 왼쪽 무릎, 목, 두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육공도의 칼날이
베어낸 것은 이장도의 옷뿐이었다. 베어져 갈라진 옷 사이
로 보이는 이장도의 몸통에는 붉은 실선이 그어진 정도의 생
채기만 나 있었다. 환객은 이장도의 나한기공에 감탄하며
육공도에 더욱 내력을 집어넣어 섭혼도법을 펼쳤다. 육공
도는 환객의 내력을 받자 심하게 요동치며 귀곡호와 도명이
한꺼번에 일어나더니 회색 빛이 나는 안개를 뿜어내었다.
유형화된 도기(刀氣)인 도무(刀霧)가 육공도를 감싸자 이장도
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나한기공을 익혀 강기일식
까지 이루어 창칼이 두렵지 않은 이장도였지만 도무는 문제
가 달랐다. 단순한 칼날과 도무는 단순한 칼날이 아니었다.
도무가 실린 칼을 맨몸으로 받아 낸다는 것은 갑옷을 벗고
맨살로 칼을 막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섭혼도법의 현란한
칼날 앞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대원도법과
나한기공으로 막아서던 이장도가 도무 앞에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정했다. 신법을 사용해 몸을 회피하면서 환객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장도는 연대구품을 사용해 발을
내밀어 환객의 좌측면에 다가가서는 대원도법의 절초인 만광
장불(萬廣藏佛)의 초식을 사용했다. 강력한 내공으로 팔방
을 여덟 번을 일시에 갈라 육십사변을 일으키는 만장광불은
대원도법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파괴적인 공격 절초였다.
그러나 환객은 금도가 팔방을 점하고 각기 여덟 개의 변화를
만들어 내자 천영롱(千影朧)을 펼쳐 버렸다. 순식간에 환
객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수십 개가 넘는 뿌연 영상을 만들어
내버렸다. 모든 것이 흐릿해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을 할 수 없자 이장도는 이를 악물고는 나한기공을 풀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십팔나한공을 운용해 대력금강장(大
力金剛掌)을 환객의 허상들을 향해 날렸다.
[쾅, 쾅, 콰쾅....]
"대력금강장이군. 과연 소림이 자랑할 만큼 뛰어난 장력이야.
덕분에 북망산에 있는 무덤들 비석이 하나도 남지 않겠어."
뒤에서 환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장도는 바로 회전하면서
금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두 동강나 버린 것은 환객의 허상
과 무덤 앞에 서 있던 비석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네. 어디를 베는 건가. 괜히 애꿎은 비석만
부시는군."
"타아!"
뒤에서 환객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내뱉자 이장도는 허공으로
몸을 띄우고 관음십팔족(觀音十八足)을 펼쳐 환객을 내리쳤
다.
[파바바박...]
가공할 족기(足技)였다. 횡으로 차고 종으로 내려 깍고 앞으
로 미는 현란한 발의 움직임은 바람을 동반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서져 나가는 것은 무덤과 비석들뿐이었다. 이장도
는 연속적으로 관음십팔족과 대력금강장을 연이어 사용해 환
객의 천영롱이 만든 허상을 부셔 나가다가 그만 내력이 순간
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환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천영롱을 펼치는 동안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아
장식품으로 전락했던 육공도가 다시 무섭게 떨리며 도명과
귀곡호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또한 회백색으로 빛나던 도기
가 삽시간에 어두워지면서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육공도
는 섭혼도법의 3대절초인 차한면면, 규환노도, 아비광란의 움
직임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장도는 섭혼도법의 3대
절초가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검은 색 도기와 함께 광란의 질
주를 하자 안색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대원도법으로는 방어
가 불가능한 초식이 섭혼도법의 삼절초였다. 또한 검은색의
도무마저 일렁거려 강기일식으로도 막아내지는 못하는 상황
이었기에 이장도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대원도법의 방어초
식인 대연무애(大衍無涯)를 사용해 도무를 막으면서 섭혼도법
의 3절초의 변화를 금강지(金剛指)를 운용한 손가락을 이용해
연화금나수(蓮花擒拿手)로 방어하기로 한 것이다.
[따따당.]
[쩌엉.]
육공도와 금도의 격돌은 강철이 끊어지는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그 무시무시함을 선보였다. 그러나 섭혼도법의 3절초는
너무나 강력한 초식이었다. 대원도법은 섭혼도법의 3절초를
방어하지 못하고 사그라져 버렸다. 이장도는 연화금나수와
금강지로 섭혼도법 3절초의 남은 변화를 막아내지 못하자 연
대팔품의 신법을 이용해 겨우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장도가 그리도 아끼던 금도가 육공도에서 쏟아져 나온 도
무를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았다.
[창.]
이장도는 금도가 두 동강나자 미련없이 버렸다. 그리고 부친
에게 대원도법을 얻을 때 같이 얻은 다른 비학을 쏟아내려
했다. 환객은 이장도가 미련도 없이 금도를 버리고는 오른
손을 갑자기 말더니 슬쩍 뒤로 빼는 것을 보자 의아했다.
그런데 이장도의 어깨에서부터 시작한 강대한 진력의 움직임
이 손끝까지 관통하고 동시에 근육이 나선형으로 꼬이는 것
을 목격한 환객의 안색은 시퍼렇게 변해버렸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이장도는 환객이 경악하며 자신이 펼칠 무학의 이름을 외치
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환객은 공격을 멈추고 바로 천영
롱을 펼치기 시작했다. 천영롱은 환객이라는 명성을 만들어
낸 무학으로 수백 개가 넘는 허상을 만드는 일종의 환술이
포함된 신법이었다. 그러나 천영롱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
었으니 여타 무공과 함께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
서 환객은 섭혼도법을 멈추고 바로 천영롱의 운기법에 따라
호흡했다. 그리고 삽시간에 사방이 환객의 허상으로 가득해
마치 북망산에 떠도는 유령과 같았다. 그러나 이장도는 환
객의 천영롱을 보면서도 비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이장도는
수백 명이나 되는 환객의 허상들 중심으로 일권을 쭉 밀어냈
다.
[고오오.]
일권이 내지르자 이장도 주위는 진공상태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대기의 압력이 압축되더니 이장도의 권을 따라 움직
였다. 백보신권의 궤도에 따라 날아간 진공의 압력이 환객
의 허상들을 내리 쳤다.
[퍼벅, 퍼벅, 퍼벅...]
환객의 허상들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압력에 으스러지면서 허
깨비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허상들이 일제히
사라지더니 이장도와 5장 정도의 거리에 환객이 실체를 들어
냈다. 환객은 육공도를 앞으로 내지르는 자세를 취하자 한순
간에 이장도의 면전에 도달해 버렸다. 이장도는 환객이 자
기 면전에 도달해 있자 백보신권의 압력을 가중시켰다.
[우우웅...]
환객은 몰아치는 진공의 압력으로 미세 혈관들이 터져 나갔
는지 땀구멍을 통해 피가 스며 나왔고 코와 입을 통해 진홍
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환객은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육공도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아무런 변화나 내력이 없고 흔한 도기마저 보이지 않은 평
범한 칼질이었다. 그러나 이장도는 환객이 펼친 횡격도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이장도는 오른
손으로 연환금나수를 펼쳐 육공도의 도배를 잡으면서 왼손의
중지에 금강지를 운용해 육공도의 여섯 개 구멍중에 하나에
찔러 넣었다.
[서걱.]
"으아악..."
이장도의 오른 손은 유공도의 칼날에 절단돼 피를 뿌리며 허
공으로 날아 올랐다. 손목이 잘린 이장도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금강지를 운용한 왼 손의 손가락을
육공도의 구멍에 집어넣었다. 육공도의 구멍 중에 한군데에
이장도의 손가락이 들어가는 바람에 귀곡호를 사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공격마저 힘들어진 환객은 난처한 표정을 지
었다. 환객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이장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관음십팔족의 초식 중에 슬격(膝擊)의 요결을 사용해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장도는 오른 손을 자른 환객에게
깊은 원한을 가졌기에 자신이 받는 고통을 몇 배로 갚기로
했다. 환객의 낭심을 향해 이장도의 오른 쪽 무릎이 가차
없이 날아갔다. 그런데 환객이 육공도의 도병에서 손을 떼
면서 뒤로 후퇴해 이장도의 슬격을 피하더니 양손을 머리위
로 올렸다. 양손은 환객의 머리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공을
감싸듯이 손가락을 구부려 웅조(熊爪)형태를 취했다. 또한
양손이 회백색으로 변하자 환객은 음산한 웃음을 짓더니 벼
락같이 이장도의 가슴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이장도는 환객
이 갑자기 돌진해 들어오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환객이
척 보기에도 허점 투성으로 달려오자 이장도는 의아함이 들
기도 했지만 급한 불을 끈다는 기분으로 관음십팔족을 날렸
다. 그런데 이장도의 오른 발등이 환객의 얼굴을 향해 날아
오르자 기묘한 변화가 생겼다. 기묘하게 구부려진 환객의
왼손이 이장도의 오른 발을 잡아 챈 것이다.
[콰직.]
"으아악!"
이장도의 오른 발은 환객의 손에 잡히는 순간 뼈마디가 수수
깡처럼 박살나버렸다. 그리고 이장도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
고 비명을 질렀다. 환객은 더욱 음침한 표정으로 이장도의
안쪽으로 파고들더니 오른 손을 내리 눌렀다.
[와드득.]
"크아악!"
환객의 오른 손이 이장도의 왼쪽 가슴을 뚫고 들어가더니 허
연 갈비뼈 한 개를 뽑아서 가지고 나왔다. 그 고통은 너무
나 컸고 이장도를 기절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환객은 이장
도가 곱게 기절하도록 나눌 인물이 아니었다. 이장도의 손
가락에 끼어져 있는 육공도의 손잡이를 잡고는 물레방아 돌
리듯이 돌려 버렸다. 그러자 육공도의 구멍에 끼어져 있던
이장도의 손가락은 축이 되었다. 육공도가 수레바퀴처럼 회
전하자 이장도의 손가락은 절단돼 날아가 버렸다. 피가 몰
려 있었는지 잘려진 손가락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커억..."
기절하려던 이장도의 정신은 손가락이 잘리는 충격으로 되돌
아 왔다. 이장도는 육공도를 회수하고는 자신을 싸늘한 눈
매로 처다 보는 환객을 노려보며 말했다.
"쿨럭... 강호에서 신비객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 환객이 칠
대금지무공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음시조(陰屍爪)를 익혔을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흥, 희고 검고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칼에 맞아 죽든 독
살을 당하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칠대금지무공을 익힌 것
이 무엇이 그리 큰 충격이냐!"
"쿨럭... 시신을 꺼내 시독을 만들어 손톱으로 흡수해야 완성
하는 무학이 음시조가 아닌가! 그런 천인공노할 방법을 사용
해 익히는 사공으로 내 무릎을 끓게 한다고 내 정신마저 패
배를 자인하지는 안는다... 쿨럭, 쿨럭..."
이장도는 피를 토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날수록 음시조의 음독이 이장도의 피를 차갑게
만들어 갔다. 환객은 이장도가 박살난 무릎을 억지로 세
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자 안색이 굳어
졌다.
"과연 낙양대협이라는 명성이 절대로 아깝지 않군."
"흥, 아무리 그따위 입 바른 소리를 한들 내 마음에서 너는
인간의 도리를 벗어버린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쿨럭... "
"뭐라 말해도 좋다. 어차피 그대의 생명은 일 각뿐이 안 남았
다. 그러나 그대의 무위를 보니 진정 아깝다. 소림사에서도
그대 정도의 무위를 가진 자는 다섯이 넘지 않을 것이다."
"크크크, 너 따위가 감히 소림사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인
가! 쿨럭, 쿨럭..."
"아깝구나. 시간이 부족하니 이만 그대를 보내야겠다."
"쿨럭, 쿨럭..."
"걱정하지 말아라.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것이다."
환객이 한순간에 움직였다. 이장도의 등뒤에 환객이 나타났
다. 그리고 이장도의 수급은 허공으로 치솟았고 잘려진 목
부위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땅으로 떨어지는 이
장도의 수급은 환객의 왼 손에 잡혔다. 이장도의 목 없는
육신은 부셔진 무덤에 엎어져 버렸고 수급은 환객의 손에 대
롱대롱 움직이고 있었다. 이장도의 수급을 머리 위로 올린
환객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낙양 시
내로 시선을 옮겼다. 낙양 시내를 바라보는 환객의 눈빛은
섬뜩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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