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유두류록에 언급된 성모상에 관한 구절입니다.
500년 전 당시나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성모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사를 마치고는 함께 신위(神位) 앞에 앉아서 술을 두어 잔씩 나누고 파하였다. 그 사옥(祠屋)은 다만 3칸으로 되었는데, 엄천리(嚴川里) 사람이 고쳐 지은 것으로, 이 또한 판자 지붕에다 못을 박아놓아서 매우 튼튼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릴 수밖에 없었다. 두 중이 그 벽(壁)에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모(聖母)의 옛 석상(石像)이란 것이었다. 그런데 미목(眉目)과 쪽머리[髻鬟]에는 모두 분대(粉黛)를 발라놓았고 목에는 결획(缺畫)이 있으므로 그 사실을 물어보니 말하기를,

“태조(太祖)가 인월역(引月驛)에서 왜구(倭寇)와 싸워 승첩을 거두었던 해에 왜구가 이 봉우리에 올라와 그 곳을 찍고 갔으므로, 후인이 풀을 발라서 다시 붙여놓은 것입니다.”

하였다. 그 동편으로 움푹 들어간 석루(石壘)에는 해공 등이 희롱하던 소불(小佛)이 있는데, 이를 국사(國師)라 호칭하며, 세속에서는 성모의 음부(淫夫)라고 전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또 묻기를,

“성모는 세속에서 무슨 신(神)이라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석가(釋迦)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입니다.”

하였다. 아, 이런 일이 있다니. 서축(西竺)과 우리 동방은 천백(千百)의 세계(世界)로 막혀 있는데, 가유국(迦維國)의 부인이 어떻게 이 땅의 귀신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읽어보니, ‘성모가 선사를 명했다[聖母命詵師]’는 주석에 이르기를,

“지금 지리산의 천왕(天王)이니, 바로 고려 태조(高麗太祖)의 비(妣)인 위숙왕후(威肅王后)를 가리킨다.”

하였다. 이는 곧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에 관한 말을 익히 듣고서 자기 임금의 계통을 신격화시키기 위하여 이런 말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승휴는 그 말을 믿고 《제왕운기》에 기록해 놓았으니, 이 또한 고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구나 승려들의 세상을 현혹시키는 황당무계한 말임에랴. 또 이미 마야부인이라 하고서 국사(國師)로써 더럽혔으니, 그 설만(褻慢)하고 불경(不敬)스럽기가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이것을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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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일요일 산행안내 및 예약 Re:Re:Re:3월 8일(168차) 성모석상 수난의 역사
김혁 추천 0 조회 26 09.03.04 08: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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