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 14:16-20
제목 : 선교적 삶을 향한 보내심(6) -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과 함께 하라①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교회 전체가 이 코로나 때문에 영적으로, 또 보이는 수에 있어서도 너무나 많이 침체돼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됩니다.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교회의 제직들과 성도들이, 특별히 항존직들이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공예배와 기도회, 또 말씀 묵상 필사들을 적극적으로 함께 동참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결코 게을러지지 않도록
여러분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코로나와 같은 이 세상의 여러가지 홍수에 다 휩쓸려
정말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가 열심을 내야 될 것 같습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날 복된 날, 또 주일을 허락하셔서 주의 성도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나와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예배하는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말씀 듣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성령님 친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성령 안에 있는"
우리는 지난 다섯번에 걸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고
삶의 현장에 일터선교사로 보냄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자 이땅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일터선교사 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요 평강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즉 의로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서 화평하게 된 사람은
그 심령 속에 성령의 역사를 통한 참된 기쁨, 세상이 줄 수 없는 희락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우리는 의로운 삶, 화목케 하는 삶, 그리고 참된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교적 삶이란
1)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요
2)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를 먼저 맺고, 나아가 이웃과의 화평을 도모하는 삶이요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 구원의 기쁨을 나아가 전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이
바로 선교적 삶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선교적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 보시겠습니까..
(롬 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아멘
성령 안에서의 의로운 삶, 화평케 하는 삶, 기쁨을 전해주는 선교적 삶을 사는 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을 통해서도 칭찬을 받게 된다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의로운 삶, 평강의 삶, 참된 기쁨을 흘러보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아직 나누지 못한 매우 중요한 말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에서 "성령 안에 있는"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란 이 말씀은
성령 안에 있는 의, 성령 안에 있는 평강, 성령 안에 있는 희락이라는 말씀예요.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의로운 삶, 화평케 하는 삶, 기쁨을 전하는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능력 안에 있을 때 이런 삶을 살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적 삶을 살려면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심령 안에 내주하니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말씀이죠.
2. 또 다른 보혜사(성령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하는 이 고백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함께
너무나도 중요한 제 3위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또,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이 성령님에 대해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라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실제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고, 또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막연히 교리적으로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분이시라고 고백할 뿐,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보면,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에베소에 가서 행 19:1절 보면 "제자들을 만나"
그리고 2절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어요.
그때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을 합니다.
분명히 1절 말씀에 그들은 제자들이라 그랬어요.
그 제자들이란 말, '마데타스'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배우는 자,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도 사용됩니다.
열두 제자 뿐만이 아니고, 사도행전의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성령님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들은 바 없는데요"라고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흔적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너희들이 믿었다면 성령을 받았을텐데 왜 너희 모습속에 성령이 내주하시는 보습이 보이지 않느냐?라고 질문한 거예요.
어떻습니까? 오늘 예배드리고 있는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 여러분은 성령님을 경험하셨고 성령님을 만나셨습니까? 아멘!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늘도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계시지요? 아멘!
우리가 선교적 삶을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고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오늘을 포함해서 네 번에 걸쳐서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3.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심
오늘 본문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하신 예수님의 고별설교인 다락방강화로 알려진 부분의 시작입니다.
사실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가 다락방 강화에 관한 말씀이고,
특별히 14장에서 16장은 말하자면 예수님의 다락방 설교의 내용입니다.
이 다락방 설교는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세상에 남아서 핍박과 환난을 감수하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제자들고, 또 신약시대의 전 성도들인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목요일이죠)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에 전하신 이 설교는 말하자면 예수님의 유언설교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중요한 고별설교에서 무려 4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신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보혜사 성령님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유언과도 같은 설교에서 말예요. 한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번도 아니고, 네 번...
보혜사 성령님을 말씀하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4번에 걸쳐서 성령에 관해 설교하겠다는 거예요.
왜? 주님께서 성령에 관해서 네 가지를 가르치셨거든요. 주님이 친히 말씀 하셨어요.
예수님은 다락방강화가 시작되는 그 마가의 다락방에서
(요 13:1) "당신께서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14:2절에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 어딘가로 가신다고 하니까
제자들은 마치 부모 잃은 고아와 같은 심정이 돼서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13:36절에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 14:4) 말씀히시니까 그들은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지만, 그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도마가 요한복음 14:5절에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답답한 마음에 되묻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무엇인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해 주지는 않으시고, 또 이제 어디론가 떠나신다고 하니까 큰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된 거죠.
(요 16:6)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근심하고 두려움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내시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오늘 본문 말씀예요.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여기서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 했는데, "다른"이라는 헬라말이 참 중요해요.
'알존'이라는 말인데, 이는 문자적으로 '첫번째 경우와 똑같으나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다른"이란 단어는 처음 것과 내용은 똑같은데 다른 개체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또 다를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것일까요. 처음 보혜사가 있는데 그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처음 보혜사는 누구죠?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세요.
여기, 보혜사라는 말이 파라클레토스인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번째 격인 성령님을 표하는데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바로 파라클레트스라는 그 단어를 사용해서 요한1서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톤/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본문의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분명히 말씀하고 있어요. 즉,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예수님과 그 본질과 능력에 있어서 똑같은데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보내시겠다 하는 말씀이었지요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파라"(옆에 서는)와 "클레토스"(부르심을 받은)의 합성어입니다.
즉, 파라클레토스(보혜사)는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하여 그 사람 옆에 부르심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분"(Helper)으로
변호해주고 중재해주는 중재자(intercessor)로, 그리고 위로자(Comforter)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제 어디론가 가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큰 실망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돕는 자이신 성령님,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중재자이신 성령님, 위로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위로와 용기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죠.
왜냐면,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시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은
성령의 임재를 통한 또 다른 형태의 예수님의 동행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육체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던 첫번째 보혜사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잠시 후에 고난당하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이고,
그 후에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으로,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들과 계속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과 더불어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또 다른 보혜사로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은 성 목요일 밤에
큰 두려움과 실망 가운데 놓여있던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이었던 겁니다.
4. "또 다른 보혜사"로 우리 안에 내주하심
그런데 주안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저 이천년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또 다른 보혜사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 (요 14:16)이라는 약속의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마 28:20)는 예수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같고,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의 제자로서 "선교적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 지금 이 자리에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으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서 내주하시며 역사하심에 대한 이 신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죠.
왜? 그분은 영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17절)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와 함께"(17절)라는 말은 "파르 휘민"인데, "파르"는 "곁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너희 속에"는 "엔 휘민"인데, "엔"은 "속에"(in)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속에 내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로 고백할 때
보혜사 성령님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심령속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저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다는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바울이 분명히 얘기했죠.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으시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세례를 받으신 겁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뭐라고 말씀했지요?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성령님은 우리 심령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 몸은 보혜사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문제가 있습니까? 그래서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삶의 역경으로 인해서 시련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그런데, 내 이 고통과 시련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다고,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와 같이 생각되어 더욱 실망과 좌절 가운데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인 한 결코 우리는 고아처럼 홀로 남겨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누구보다도 나의 문제, 여러분의 시련, 우리의 고통을 다 알고 계세요.
그리고 그 보혜사 성령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노라"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보혜사 성령께서 내 곁어서 나를 도와 주시겠다는 말씀 이지요.
나의 짐을 보혜사께서 함께 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 손 붙잡아 주시고 이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돕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태산과 같은 장애물을 보혜사께서 치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홍해와 같은 큰 바다속에 보혜사께서 큰 길을, 대로를, 곧은 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길을 갔습니까?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성령 받기 이전에 그들은 정말 연약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의심했어요. 두려워 떨었어요.
결국 예수님께서 원수의 무리들에 의해 잡혀가셨을 때 그들은 다 도망쳐 버리고 숨었지요.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그들은 완전히 변했어요.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그들은 자신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나아가 복음의 진리를 외쳤어요.
* 베드로 -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협박하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그는 말합니다.
(행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여러분, 한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쳤던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변할 수 있었습니까?
[오순절에],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시고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과 함께하신 성령님, 제자들의 심령속에 내주하셨던 보혜사 성령님이 오늘의 제자들인 우리들과도 함께 계십니다.
지금 이 예배당 안에, 영상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처소에 함께 계시고,
우리 각 사람의 심령속에 지금 내주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제자들처럼 이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고,
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5. 박상원 선교사 이야기(『하나님, 살리시든지 데려가든지 하세요!』규장, 2022)
여기,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삶의 자리에 찾아오신 보혜사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성령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통해 저 아프리카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하고있는 한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니, 선교사님 아내, 아내 선교사의 이야기죠.)
지난 37년 간 아프리카의 8개국에 교회, 병원, 고아원, 신학교, 기도원, 선교 농장, 학교, 의대를 세운
김종양, 박상원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선교사님 부부는 원래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 김종양 선교사님이 독일에 국비장학생으로 연수를 받으러 혼자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김종양 선교사님이 독일에서 혼자 지내다가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을 하고 선교사로까지 파송이 됐어요.
아내 박상원 선교사님은 남편과 떨어져서 한국에서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라는 남편의 권고에 따라서 한국에서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온 가족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하는 남편의 권면에
아무것도 모른채 가족들과 함께 아내 박상원 선교사남이 선교지로 떠납니다.
그렇게 도착한 아프리카 말라위에는 도마뱀, 바퀴벌레, 그리고 아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교단체의 후원이 제 때에 오지 않아서 선교사님 가정은 현지인들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 때가 여러번 있었어요.
그래서 열살 된 아이에게 계란 하나 맘껏 먹이지 못하고 현지인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박상원 선교사님이 너무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맘속에 오는 거예요.
배고픈 아들에게 계란 한개 못 먹이는게 선교사라면 나는 돌아갈래요 하면서 남편 선교사에게 분노했고, 매일같이 다퉜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만 걸려도 힘든 황달과 말라리아에 동시에 걸려서 의사도 포기할만큼 거의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그녀는 남편 선교사에게 혹시 내가 여기서 죽으면
돈이 아무리 들어도 한국에 데려다 묻어달라고, 여기다 묻으면 가만히 안 둘 거라고 그러면서 으름장을 놨다 그래요.
그러던 어느날 밤, 아파서 그리고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죽더라도 기도하다 죽겠다' 하고는 방 밖으로 나와서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든지 데려가시든지 하세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이땅에 살기 싫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하는 내 딸아"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어요.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몰라서 밖에 누가 온 줄 알고 문쪽으로 걸어가는데,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그때까지도 박상원 선교사님은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으면,
'아니, 뭘 저렇게 요란스럽게 예수를 믿지?' 하면서 그런 내용을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간증에서나 들었던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인 줄 깨닫게 된 선교사님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듯이 엎드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보혜사 성령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어. 내가 너를 사용할 거야"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박선교사님은 늘 남편 선교사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불렀지, 날 안 불렀어.
난 정말 재수없이 온 거야. 당신이랑 결혼한 죄로 여기까지 온 거야' 하면서 불평과 원망을 했었다 그래요.
그런데 그 날 보혜사 성령께서
'하나님이 당신만 불렀어. 난 안 불렀어'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던 그녀에게 "내가 너를 불렀다" 말씀하시고,
나는 사용하지 않아 불평하는 그녀에게 "내가 너를 사용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는데,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요.
그 때, 보혜사 성령님이 계속 말씀 하시길, "너는 거듭나야겠다" 말씀하시더래요.
그래서 그녀는 '주님, 저 거듭났는데요' 대답했답니다.
성령께서 "너, 거듭나지 않았어. 지금 너의 모습은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대요.
그 순간, 생각도 못했던 아주 말할 수 없는 죄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요.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들,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종 남편을 마치 마귀처럼 대적하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여 주셨대요.
그날 밤, 그녀는 밤새도록 거꾸러져 울면서 회개기도를 했어요.
선교사의 아내론서 교회에 출석하고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던 그녀는 그날 밤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진실로 만나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밤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채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쳐서 봤더니 남편 선교사님이 서 있었어요.
그때, 박상원 선교사님이
"여보 나 당신한테 너무 악한 아내였어요.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나는 당신의 아내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방해자로 왔어요.
지난밤에 주님이 날 찾아오셔서 내가 널 사랑한다. 내가 널 아프리카로 불렀고 내가 널 쓸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 선교사님이 끌어안고 한참 둘이 울었다고 그래요.
그 후부터 박상원 선교사님은 치유받고, 부부가 함께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따라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37년 동안 아프리카 8개국에 7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병원과 의과대학과 20여 개의 학교,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세우는 놀라운 선교의 역사를 써내려가게 되는데,
그 기록들이 박상원 선교사님의 책 『하나님, 살리시든지 데려가시든지 하세요!』 저 책이 올해 2월달에 나왔어요.
저 책에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실화입니다.
6. 나가는 말 :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선교적 삶을 살자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저 이천년 전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고 약속하신 주님,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주님,
그리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에 또 다른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주님,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찬 삶을 살고 있던 박상원 선교사님에게 찾아오셔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다. 내가 널 사용할 것이다"
말씀하시고, 치유해 주시고 그녀와 함께하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지금 이 자리에, 예배하는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주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는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 우리의 심령속에 성령님이 지금 내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그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삶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의로운 삶, 화평케 하는 삶, 이웃에게 기쁨을 흘러보내는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 :
아버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중재하시고 위로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안교회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귀를 열어 주셔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그가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