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
출가는 곧 발심
- 반야암 지안 큰스님을 찾아뵙고 -
혜견 / 사교과(3학년)
여르므로 뜨거웠던 여름철을 뒤로 하고 귀한 시간을 내주신 지안 스님을 뵈러 우리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에 반야암으로 향했다. 통도사에서 반야암을 찾아 올라가는 길에는 무려 19개나 되는 암자들의 방향을 알려 주는 팻말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스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1만 5천 권의 가량의 책들을 보관할 장소를 구하다가 인연이 모여 지어진 반야암, 습습한 날에 딱 필요했던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 종이책보다 휴대폰이나 전자매체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우리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며 스님께서는 자연스레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셨다.
요새는 검색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사색이 실종된 시대. 출가도 '여기도 편하나, 저길 갈까' 하면서 검색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3년까지도 행자생활을 했는데 요즘은 6개월 기간을 알고 와요. 모두가 그런 긴 아니지만 발심이 옛날처럼 잘 안 되는 거지요.
무엇보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는 개인의 이익이 있는 부분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에게 필요 없는 건 자연히 멀리하죠. 절집안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불교의 승가라는 것은 대중이에요. 여럿이 어울려 사는 곳인데, 요즘은 선방에도 각방을 줘야 수좌들이 잘 온다고 하네요.
부처님 당시 승가의 모습을 아직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우리 한국불교의 우수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꾸만 밖으로 방황하는 오늘날의 젊은 출가수행자들을 위해 해주시는 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가 얼마나 청정범행을 닦을 수 있는 완벽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요즘 젊은 스님들 보면 우리 불교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만족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한국 승가가 세계에서 최고라 생각해요. 출가 의지가 선행하고, 비구 비구니로 종신토록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승가 대중을 구성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산사처럼 공기 맑고 물 맑고 자연 그대로인 청정지역이 어디 또 있어요? 너무 자화자찬했나?
한국불교의 이런 훌륭한 면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나라 스님들 수행도 얼마나 잘해요? 한국 비구니계의 최고 어른이신 명성 스님도 그야말로 우리 종단의 보물이랄까, 나라의 보물이지요.
넘쳐흐르는 정보망 안에서 바른 법만을 골라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인들을 대표해 우리는 21세기의 출가생활 중 느끼는 점들에 대해 말씀드렸고, 스님께서는 직접 몸답고 계시던 강원의 모습을 말씀으로 생생히 펼쳐 보여주섰다.
스님께서 기억하시는 강원의 생활과 요즘 학인들의 생활에 어떤 차이점이 보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때가 선심이 참 깊었다 할까. 예를 들면 통도사는 큰법당 말고도 용화전, 극락전, 나한전 등 12법당이 있는데 그중 적어도 두세 법당에서는 저녁예불 후 다음날 새벽예불까지 목탁을 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성도재일에는 섣달 초하루부터 8일 새벽까지 잠 안 자고 밥 안 먹고 견디는 것을 여사로 했다니까요. 우리끼리 반성하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 정진의 정신이 점점 옛날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죠.
요즘 저희는 출가를 해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별심을 다스릴 줄 모르고, 수행자로서의 근기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발심이 안 돼서 그렇지요. 출가라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세속적인 나를 버리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나를 지키려고 하니 출가와 모순되는 거지요. 불교 하면 공空, 그리고 무아無我 사상이잖아요. 상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라는 자아의식(아상)에 붙들려 잇으니까 신심이 안 나죠. 공이 뭔지 관심도 없고,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이란 말도 들어도 헛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럴 거예요.
금강경오가해를 보면
야부송이 있죠.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如是我聞' 으로 시작하는데,
야부는 '여시' 두 글자를 두고 이렇게 읇었어요.
'여여如如, 정야장천일원고靜夜長天一月孤
시시是是, 수불리파파시수水不離波波是水
여라는 여는 고요한 밤하늘에 달이 홀로 비추고 있네.
시라는 시는 물이 파도를 떠나지 않고 파도가 그대로 이 물인 것인다.'
얼마나 멋진가요. 이거야말로 논리적, 사회적 차원을 넘어서 도와 부딪힌 경계에서 설해진 말이랄까. 그래서 불교를 좀더 깊이 탐구하는 마음으로 배우면 희열이 솟아나고, 부처님이 가슴에 더욱 깊이 느껴지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일어나요.
탈종교시대에 접어들어 종교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낮아졌는데, 오히려 영성이라든지 정신에 관한 관심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불교 안팎으로도 명상은 굉장히 상업화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이 펴져 있는 이 새대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많이 피로해지고 사람들은 자기 비위에 안 맞는 개념에 잡히고 싶지 않아 해요. 이건 불교에서 말하는 말세증후군 현상인데요. 이는 시절인연 따라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1991년인가 우연히 여행 중 바티칸 교황청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32년 전인 그$때 벌써 예비신부들이 큰방에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있는 주제가 '앞으로 탈종교시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였어요. 이제 우리가 종교가 사람을 어려워졌다는 점을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돼요. 그래도 출가한 사람, 발심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야 되고, 그런 사람이 나오고 안 나오고에 따라 승가가 점점 번창하거나 약해지는 거죠.
그리고 원래 불교가 명상의 종교잖아요. 부처님 생애를 봐요. 룸비니 동산의 나무 밑에서 태어나셨어요. 나무 밑에서 정각을 이루셨고, 처음 설법과 열반에 드신 것도 나무 밑이지요. 나무 밑이라는 게 사색과 명상을 뜻하는 거예ㅖㅖ요. 나무 밑에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느 놈 때려죽일까?' 하는 분노의 표출보다는 '인생이 뭔가?' 하는 사색을 하겠죠.
요즘 재가수행자들이 운영하는 명상센터가 여기저기 많이 생겼지요. 수행을 좀 쉽게 해보자는 취지일 텐데, 서울 가는 데에 비행기, 기차 등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체험은 제일 많이 하겠지요. 그런 의미로 불교의 전통은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이익이 있는 길, 즉 출가수행이예요. 출가수행 함으로써 승가가 존재하고요.
스님께서는 승가대학장, 역경위원장, 고시원장 등 다양한 이력을 거쳐 오셨고 지금은 반야암에서 인문학 특강, 반야불교문화연구원 학술대회 외에도 해운대 포교당의 경전 강의를 통해서 광범위한 전법을 하고 계신데 그 다양한 일들을 어떤 원력으로 이루어나가고 계신지요?
원력이라 할 것까진 없지만 사람마다 마음에 와닿는 경 구절이 있지요. 비여암중보譬如暗中寶 무등불가견無燈不可見 수혜막능료受慧莫能了니라. 『화엄경』 「수미정상계찬품」에 나오죠. '비유하건데 어둠속의 보배를 등불이 없어면 볼 수 없듯이, 불법을 설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비록 지혜로우나 능히 알 수가 없느니나.' 이사구계가 마음에 참 와닿아서 나도 남에게 불법을 많이 소개해야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그러다보니 승가교육에 남보다 조금 오래 종사를 했어요. 스님들 교육을 39년 했네요, 이쯤 되면 박수 한번 칠 만하죠?
도반들끼리 이제 졸업하면 뭘 할 지 고민을 나누게 됩니다. 옛날에는 졸업하면 당연히 선방으로 가는 게 우선시되어서 선방에 가기 위해 다 같이 법당에 모여서 기도도 하고, 소임 살아야 하는 스님들은 소임 살고 나서 가는 그런 방향성이 딱 잡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출가자가 적어지다 보니 집에 소임 맡아야 하는 경우도 많고, 학교에 진학해서 교학 쪽으로 뒤로 물려받았으면 하는 윗하람의 압박을 느끼는 스님들오 꽤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앞둔 학인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본진심守本眞心이 제일정진第一精進이라. 본래의 참마음만 지키면 그것이 가장 으뜸가는 정신이라고 하잖아요. 선방 갈 형편이 되면 선방 가고, 기도를 하고 싶으면 기도를 하면 돼요. 물론 과거부터 전통적인 선수행 위주의 가풍이 있었기 때문에 강원을 나오면 선방 가서 정진하는 것이 잘사는 거라고 말해온 것도 있긴 하지요. 선방 갈 기회가 되면 좋지요. 하지만 중이 중노릇 잘 하려면 항복기심降伏基心 잘하면 되고 선용지심善用之心 잘하면 돼요. 항복기심은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마음 항복시키라는 말이고, 선용지심은 어질고 착하게 진심眞心을 잘 쓰란 말이에요. 맑은 정신으로 비구니가 됐으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은사 스님 간병을 하는 것도, 마당에 풀 뽑고 도량을 청소하는 것도 다 수행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학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꼭 해주고 싶어신가요?
아까 한 말, 그 말이 핵심이에요. '중 됐으면 발샘해아!'
제가 우리 은사 스님한테 계를 받고 인사를 드리니까 하시는 말씀이 이제 중 됐으니, 금생 안 태어난 셈 치고 중로릇 하라 하셨어요. 우리도 젊었을 때 여러 가지 절집안 현실에 불만스럽고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은사스님의 그 말씀이 다시 내 마음을 다잡아 줬지요. 내가 없으면 편하잖아요. 내가 있으니까 내 자존심 내세워야 되고 내 체면 세워야 되잖아요. 하심하고 살면 체면도 없는 거에요. 단지 밝은 마음으로 편안하게 살면 돼요. No Problem! 중이 문제가 뭐가 있어요? 내일 죽어도 그만이라고요.
운문사 문화부를 통해 이렇게 직접 큰스님을 찾아 뵙고 나니 옛 학인들이 왜 그렇게 방학마다 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 다녔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초심자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고, 스님께서는 반복되는 질문에도 전혀 지치지 않고 자비로운 미소로 기쁨과 함께 지혜를 나누어 주셨다.
파도를 거스르려면 큰 힘이 들기 마련인데 편안함만 추구하다 보면 시대의 흐름을 그저 따라가게 된다 출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흐트러져 간다. 진심으로 참회하고 밝은 마음으로 잘 살겠다고 스님께 다짐의 삼배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어런저런 숙고를 해보았다. 금강경을 배룰 때 넘치던 환희심은 어디로 가고, 대상을 바꿔가며 분별심을 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발심을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처음 머리 깎았던 날 얼마나 신심이 넘쳤고 어떤 발심을 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이 글은 불기 2567년 雲門지 가을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
자세한 기도 참여 소식과
한결같은 소식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매주 운문사 ,사리암~~
아름다움 소식을 접할수 있어서 고맙습니다_()_()_()_
사리암 한번 다녀온 완전 초보 궁금한것들 자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차량 운행 일정 많은 도움될듯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