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성과는 부풀리고 피해 상황은 축소한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전쟁 선전 전략의 기본이다. 적의 기세를 꺾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가장 기본적인 공식이다. 필요하면 허위 발표(가짜 뉴스 발표)도 불사한다. 전쟁의 승리 앞에는 양심도 도덕도 부끄러움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 원칙은 변할 수가 없다. 수세에 몰릴 수록 전과 부풀리기 유혹은 더 커진다. 사력을 다하는 아군에게 심리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보탬을 주고자하는 마음에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19일 아침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중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州)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주도인 드네프르와 시넬리코보의 철도 시설이 파괴됐다. 파블로그라드와 크리보이 로그의 주요 인프라 시설도 손상됐다. 30여명의 사상자도 나왔다.
러시아의 이번 공습은 철저히 철도 인프라 파괴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는 현재 전투가 가장 치열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과 헤르손 등 남부 전선의 우크라이나군에게 중요한 병참 기지다. 러시아의 철도 인프라 공격은 우크라이나군의 군수 물자 보급로를 끊으려는 작전이라고 봐야 한다.
추락한 러시아 전략 폭격기 Tu-22 잔해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19일 러시아군 발표를 인용, "공습에 가담했던 러시아 전략 폭격기 Tu-22MZ 한대가 크림반도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추락했다"며 "폭격기는 기술적 오작동으로 엔진에 화재가 발생,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발표에 따르면 유압 시스템의 고장으로 엔진 하나가 멈추고 화재가 발생했으며, 조종사는 두 번째 엔진만으로 비행기가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사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은 Kh-22 순항 미사일(러시아어로는 X-22 미사일)로 공습에 나선 러시아 Tu-22MZ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약 300km 떨어진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러시아 '장거리 레이더 탐지기'(공중 정찰기) A-50를 공격했던 것과 동일한 수단으로' 폭격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A-50 정찰기는 지난 1월 아조프(아조우)해 상공에서 패트리어트 방어 시스템에 의해, 2월에는 크라스노다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방공포에 의해 격추됐다고 GUR은 발표한 바 있다.
키릴 부다노프 GUR 국장은 "이번에는 오래된 부품을 사용해 새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소련제 S-200을 개량한 방공 미사일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한 언론 매체는 "Tu-22MZ기는 개량된 소련제 S-200 대공방어 시스템(SAM)에 의해 격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부는 "작전중인 Tu-22MZ를 상공에서 처음으로 격추했다"며 "적 폭격기는 미사일에 맞은 뒤 우크라이나에서 약 300km 떨어진 스타브로폴 지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이 폭격기를 격추시킬 수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약 150km로, 러시아 폭격기는 사정거리 바깥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개량된 소련제 S-200 방공미사일 격추설이 힘을 얻은 이유다.
엔진 이상에 의한 추락일까? 미사일에 의한 격추일까?
Tu-22 전략 폭격기가 꼬리에 불길을 물고 추락하는 모습/사진출처:영상 캡처
우선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폭격기는 엔진이 있는 꼬리 부분이 불길에 휩싸인 채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비행기 엔진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은 러시아 측이 발표한 내용과 같다. 문제는 엔진이 왜 불타고 있느냐다.
스트라나.ua는 "미사일이 엔진을 타격했을 경우, 기체는 파손 조각이 별로 없는 상태로 추락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코메르산트는 항공기가 미사일에 맞으면 공중에서 일부 파괴돼 파편이 떨어지고, 잔해는 심하게 손상된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미사일에 맞으면 동체 일부가 파괴될 것으로 추정된다. 엔진 고장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면, 외부 충격 흔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치열하게 다툴 때에는 통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 보듯, 같은 증거를 두고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게 다반사다.
Tu-22 전략 폭격기의 잔해/사진출처:텔레그램 @vvv5807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추락한 폭격기는 전투 임무를 완료(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를 공습한 것으로 스트라나.ua는 추정)한 후 귀환하던 중 스타브로폴 지역에 추락했다. “기내에 탄약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귀환중에 기술적인 오작동으로 추락했다"고 거듭 확인했다.
스타브로폴 지역 수장인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프는 "폭격기에 탄 승무원 4명은 모두 탈출했다"면서 "한명은 사망하고, 두명은 부상했으며, 나머지 한명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주 조종사는 함께 탑승한 세 명의 승무원들에게 탈출을 명령한 뒤, 혼자서 주거 지역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기체를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크눔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22일 추락한 Tu-22MZ3의 블랙박스를 찾아내 해독을 맡겼다. 비행 기록과 음성 기록 모두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박스가 풀리면, 이 전략폭격기가 어떻게 파괴됐는지, 드러날 것이다. 하긴, 블랙박스마저 조작되거나 조작됐다고 주장하면 더 이상 논쟁은 무의미하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네 번째 승무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러-우크라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건은 또 하나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잔코이 군사 기지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이다.
우크라이나군 군사총국(GUR)은 "지난 17일 밤 잔코이 군사 비행장을 타격했다"며 "S-400 대공미사일 발사대 4대, 레이더 장비 3개 등을 파괴했다"고 18일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일간 키이우포스트는 "집속탄 미사일 7발이 항공기 격납고가 있는 비행장에, 고폭탄 미사일 5발이 유류고와 탄약소에 떨어졌다”며 “최소 네 차례의 강력한 폭발과 수십 차례의 2차 폭발이 발생, 30여 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이 기지에는 평소 50여 대의 전투기와 헬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 측은 공식적으로 잔코이 비행장 타격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잔코이로 향하는 도로를 차단했다"며 "일부 텔레그램 채널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부상자 수십 명에 실종자가 20명이나 되고, 발사대 3대와 레이더 기지 1개가 파괴된 것으로 썼다"고 밝혔다. 또 "이번 공격에는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이 사용됐으며, 흑해 상공의 미군 ‘글로벌 호크’ 정찰기가 미사일 유도를 도왔다”는 우크라이나 매체의 보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토치카-U 미사일, 뱀파이어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MLRS), 드론, 폭탄 풍선 공격을 받았으나 방공망으로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는 S-400 대공미사일 포대의 파괴 영상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튿날(19일)에는 잔코이 비행장에 대한 위성 사진도 공개됐다. 영상에는 탄약고 주변과 방공망 시스템, 항공기 격납고 등 기지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손상된 항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라온 잔코이 러시아군 기지의 파괴된 S-400 방공포대/사진출처:텔레그램
잔코이 기지에 대한 위성 사진/사진출처:스트라나.ua
러시아의 한 텔레그램 채널은 "항공기들은 사전에 대피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격납고나 계류장이 손상되거나 불에 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S-400 방공 포대의 손실이 확인된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S-400 방공 시스템은 에이태큼스 장거리 미사일과 영국산 '스톰 섀도' 공대지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사실이라면, 러시아 S-400 방공 미사일이 날아오는 에이태큼스, 스톰 섀도 미사일을 격추하고 또 격추하다가, 마지막 한방에 파괴됐을 수도 있다. 양측의 주장이 어디까지 팩트인지 헷갈린다. 전쟁 전과에 대한 발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