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마치며] 첨단 기술·장비 갖춘 한국의 암센터들… 환자 마음 고려하는 따뜻한 감성 갖추길
- 조선일보 2011.10.15(토)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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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김의신 교수가 들려준 '암 이야기'에는 한국 암 치료의 발전 방향과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 유명 암센터의 환자 중심 통합진료체계는 한국 병원이 따라잡아야 할 숙제다. 국내 대학병원들도 통합진료를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진료과 간 장벽이 크다. 같은 암을 놓고도 환자가 외과에 가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방사선 종양학과에 가면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고, 종양내과에 가면 항암제부터 맞으라는 얘기를 듣는 게 현실이다. 진료 인센티브가 크다 보니 서로 암 환자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는 현상도 있다. 개별 암 치료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이를 아우르는 통합진료는 여전히 미흡하다.
외국 의사들이 한국 암센터에 처음 와보면 첨단 기술과 장비에 놀란다. 그러다 이내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에 실망하곤 한다.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 암 환자의 20~30%를 독식하는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는 넘쳐나는 암 환자로 새벽 2~3시까지 방사선 치료를 하고, 밤늦은 자정시간에 환자를 불러내 CT를 찍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암 환자들의 정신적인 면까지 다스려주는 감성 진료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 물론 우리나라 의료수가(醫療酬價)가 선진국보다 낮아서 환자를 많이 보지 않고서는 암센터 경영이 어려운 점은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암 치료를 찍어내듯 하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이제 우리도 진료 수입과 인센티브로 운영되는 암센터보다 외부 연구비와 기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헌신으로 움직이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병원이 발전하면 가장 혜택을 입는 사람은 지역사회 주민이다. 미국에서는 병원이 암센터를 지으려고 하면 지역사회가 각종 자선행사와 카니발을 열어서 기부 축제를 벌인다. 초고령 장수사회에서는 절반이 암으로 죽음을 맞는다. '좋은 암 병원'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癌치료방향, 전문가들·환자 함께 토론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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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앤더슨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의 癌이야기] <7·끝> MD앤더슨의 환자 중심 통합진료시스템
의사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 외과·종양내과·병리학 등 각 분야 전문의들이 회의, 수술할지 항암제 먹을지 결론… 환자가 거부하면 차선책 제시
청원제도 운영 - 진료불만 땐 변호사에 알려 고충처리위원회서 조사, '의사가 환자무시' 판단땐 징계
동료 미국인 의사가 폐암 환자를 3시간 붙잡고 진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대기 환자들이 줄줄이 밀려 있는데, 암 환자와 의사 간의 질의응답은 끝날 줄 몰랐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에게 "불만이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괜찮다(no problem)"는 반응이었다. "내 생명이 저 환자처럼 절박한 상황이 되면 이 의사는 나에게도 그렇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MD 앤더슨 진료는 암 환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암에 걸렸다고 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어디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를 위해 병원은 '통합 암진료과(general oncology)'를 운영한다. 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환자들이 모두 이곳을 거친다. 여기에는 각 분야 암 전문의가 모여 있다. 외과, 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병리학 전문의 등이 토론을 통해 환자의 치료방침을 정한다. 환자들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수술을 먼저 할지, 방사선 치료를 할지, 항암제를 시도할지가 정해지면 그 결론을 환자에게 제시한다. 암 치료 교통정리를 하는 셈이다. 최종 결정은 환자가 한다. 환자가 죽어도 수술은 못 받겠다고 하면 차선책을 권한다. 때론 담당 의사를 정해주기도 한다.
암 치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하기 때문에 암 환자가 적합한 치료를 받으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암 치료는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치료 결과도 나쁘고 환자가 고생하게 된다. 암 환자가 처음부터 의료진의 치료법에 확실한 신뢰를 가져야 낫는다는 희망도 생기고 결과도 좋다.
MD 앤더슨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많이 보거나, 수술을 많이 하거나, 검사를 많이 낸다고 해서 의사에게 '인센티브(연봉 외 가외 수당)'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의사들이 환자를 서로 가져가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협동진료가 잘 이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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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D 앤더슨 암센터 전문의들이 유방암 환자 치료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 MD 앤더슨에서는 모든 암 환자 치료 방침을 여러 진료과(科) 의사들이 모여 결정한다. /앤더슨 암센터 제공
의사 연봉은 군대조직과 같아서 직급이 높거나 근속 연수가 많은 사람이 높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의사가 편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료 경험이 많은 정교수급 의사들이 환자를 더 많이 봐야 한다. 그게 병원 운영 방침이다. 젊은 교수들은 주로 싱싱한 아이디어를 갖고 임상 연구에 매달린다. 나이 들었다고 환자 진료는 젊은 교수들에게 맡기고 뒷짐만 지고 있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이다.
텍사스 주립대학 부속병원인 이곳의 의료진 연봉은 사립대 병원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국 최고의 암센터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다른 곳으로 잘 가지 않는다. 한 해 연구비는 약 6100억원으로 단일 의료기관 가운데 전 세계에서 암 연구에 가장 많은 돈을 쓴다. 이제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의학 연구와 암 진료의 복합체(cluster)'인 것이다.
암 환자 중심 체계의 백미는 청원(請願)제도다. 진료에 불만이 있는 환자들은 언제든지 병원 내 상주하는 변호사에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일종의 고충처리 위원회로, 청원 담당자들은 환자 편에 서서 일을 처리한다. 최종 결론은 목사·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내린다. 만약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조사되면, 그 의사는 무조건 징계를 받는다.
최근 한국 병원의 암 치료 수준은 급속히 발전했다. 내가 만약 암에 걸리면 한국에 와서 치료받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병원의 암 치료 기술은 정말 신속하고 정확하다. 하지만 아직 암 환자 중심의 진료 문화는 부족한 듯싶다. 암 치료의 기술뿐 아니라 환자 중심의 문화와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더욱 힘썼으면 한다.
☞ MD 앤더슨 암센터
미 휴스턴에 있는 된 텍사스 주립대 부속병원. 1930년대 목화 사업으로 큰돈을 번 MD 앤더슨의 기부로 병원이 세워졌다. 546병상에 의료진이 1만8000여명 근무한다. 병상당 의료진 수가 한국 대형병원의 10배가량 된다. 지난해 113만명의 암환자가 이 병원을 방문했으며, 새로운 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임상 연구가 한 해 1009건에 달한다. 지난 2000년 폐암에 걸린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나았다. 세계 최고 암센터라는 명성 덕분에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 환자가 전체 환자의 30%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