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어려운 시기라, 저절로 국내에서 여행할 곳을 찾는다. 하지만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기에, 이왕이면 국내지만 해외의 느낌이 나는 곳이 없을까 기대하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내 여행의 편리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이국적인 풍경이 있는 곳은 없을까라는 생각이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검색에 검색을 거쳐,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야 말았다. 서퍼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양양'이야말로 내가 생각한 여행지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양양을 검색하자, 여기가 과연 한국인지, 아니면 외국인지 헷갈리는 풍경이 눈을 유혹했다. 양양이라고 하면, 노년층이 주를 이루는 시골의 작은 어촌 마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러 떠나는 핫한 여행지가 되어있었다... 서핑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 양양으로 향했다.
국내 서핑 성지로 불리는 양양
그렇다면 왜 양양은 서핑으로 유명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서울과 접근성이 높은 것도 있지만, 양양군 소재의 해변들의 특성에 있다고들 한다. 강원도의 해변은 대부분 절벽인 경우가 많고 수심이 깊은 편인데, 여기에 바위가 많아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양양군 주변의 해변들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해안의 다른 해변에 비해 경사가 완만해 파도가 고르게 자주 들어오는 편이라고. 덕분에 이전부터 서핑을 즐기던 이들이 양양을 찾았고, 아예 정착해 살면서 서핑 숍, 펜션, 카페 등의 상권을 키워내고 있다. 또한 이전까지 젊은 세대만 즐기는 낯선 레저 활동으로만 여겨지던 서핑이 점차 남녀노소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놀 거리로 인식되면서 서핑을 즐기는 인구는 더더욱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서핑을 즐기려 양양군부터 경포대 일대까지, 이른바 '서핑 상권'에 들른 사람이 7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여기에 성수기로 여겨지는 6~8월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여름보다 가을, 겨울에 파도가 더 좋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서핑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양양의 바다에 반해 정착해 사는 이들이 늘면서, 양양군과 강릉시 주변 해변 일대에 거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다른 지방 도시는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 비교하면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강원도는 지난해 '서핑해양레저특화지구'를 양양군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까지, 총 42억여 원을 투입해 해변을 따라 서프보드 거치대, 샤워시설, 캠핑장 등을 만들고 서핑 국제 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하니, 양양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여행지이다.
서핑이라고 해봤자 베트남 리조트에서 패들 보드를 탄 것이 전부였던 우리 부부는 양양에서 서핑을 즐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양양 해변의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려 양양의 인구 해변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을 뿐이었다. 굳이, 서핑을 즐기려 떠난다기보다는 서핑을 테마로 상권이 만들어진 해변의 모습이 살짝 궁금했기에 시작된 여행이었다. 또, 서핑의 성지라고 불리고 있지만, 과장된 유명세라고 여겼다. 적어도 양양군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구해변에 도착하고 나서는 우리가 무척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바다에 서핑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았고, 해변은 서핑을 즐겨서 까맣게 탄 사람들로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해변의 분위기는 낯설기만 했다.
한국이야? 외국이야? 저절로 묻게 되는 바닷가 모습
현재 서핑의 명소로 유명한 곳은 하조대의 서피 비치와 죽도 해변, 인구해변이 있다. 그중 인구 해변을 고른 이유는 너무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서도 이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마따나, 인구 해변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 들어온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요즘 감성이 느껴지는 건물들의 모습, 느릿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시끄러운 음악 소리... 순간 한국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 넘실댄다.
인구 해변은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해변은 곳곳에 트렌디함이 절절히 묻어났다. 사람들에게 '양리단길'로 불리고 있는 이 해변 곳곳에는 펍과 맛집, 카페, 편집숍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전국 각지에서 트렌드를 좇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공간들이 각자 자신감을 뽐낸다. 서핑 맛집으로 알려진 곳답게, 곳곳에 파도를 그린 벽화와 더불어 감각적인 그라피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꽤 이국적이다. 왜 이곳이 양양의 '핫플레이스'로 여겨지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구해변에서 해변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연스레 죽도 해변으로 이어진다. 죽도 해변은 인구해변이 인기 있기 이전, 서핑으로 먼저 유명해진 곳이다. 국내 최초로 서핑 전용 해변으로 지정된 이 해변은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아 초보자부터 상급자까지 고루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인구해변보다 더 먼저 알려진 곳이기에, 해변에 있는 가게에서는 연륜이 묻어났다. 해변의 길이도 인구해변보다 더 길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서퍼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두 해변을 고루 둘러보며, 서핑이라는 레저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해변에 오기까지, 전혀 서핑을 즐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모두들 모래밭에서 서핑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파도를 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핑을 즐기려 열심히 파도를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넘쳤다. 힘든 물놀이를 하면서도 웃음이 넘쳐나는 건, 서핑의 매력이 그만큼 즐겁다는 것이다. 해변가 풍경 구경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나중에는 꼭 서핑을 배우러 다시 찾아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여행의 끝이 아쉬운 이들에게 추천하는 '낙산사'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즐겁게 여행을 즐기다가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면 괜스레 아쉬워질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낙산사에 들렀다. 크고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던 해변가에서 조용한 분위기의 절을 찾아가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낙산사는 양양 8경 중 하나이며 통일신라시대인 671년에 세워진 사찰로,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자리 잡고 있다. 낙산사는 유독 사건사고로 소실되는 아픔을 많이 겪은 사찰이다.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화재로, 이어 6·25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2005년에 삼척, 강릉, 고성을 휩쓴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기도 했다. 이 산불로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중이 녹아서 소실되기도 했다. 이런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전소 이후 진행된 복원 작업 덕분에 아름다운 낙산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픔이 많은 사찰이지만, 바닷가와 함께 사이좋게 사리잡은 낙산사의 모습은 그저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절이 주는 한적함과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양양에서 느꼈던 흥분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차분함이 자리 잡았다. 낙산사를 오기 전까지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도 났었는데, 그 짜증마저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이번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평온함을 얻게 되어 여운이 길게 남은 곳이다. 서퍼들의 천국에서 동양미가 느껴지는 사찰까지, 양양에서 트렌드와 힐링을 함께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