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4호선 명동 입구에 내렸다. 밀리오레와 맞붙은 새로 생긴 건물 앞에 대형 전광판이 보였다. 전광판 앞에 설치된 무대 위에 여자 가수가 나와 춤을 추며 행인을 유혹한다. 꽝꽝 소리내며 귓가에 음악을 불어넣고 있다. 초미니 스커트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무대 위를 오간다. 그녀의 가는 몸매는 환상적이다. 남자들의 눈길이 그녀의 허리에 머물고 있다.
「연인에게 사랑의 엔돌핀을 선사하세요」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명동거리는 젊은이들 천지다. 추운 겨울에도 짧은 팬츠를 입은 여자들이 손에 솜사탕을 물고 전광판을 바라보며 춤을 추고 있다. 갑자기 무대 앞에서 푸지직! 하고 불꽃이 터져 나온다. 금새 불꽃이 사방으로 퍼진다. 와우! 환호성이 동시에 터진다. 여가수의 몸놀림이 더 빨라진다. 허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몸매의 자신감을 뽐낸다. 부럽다!
어디선가 찬탄의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자리에 의류점이 보인다. 사방으로 뚫린 상가 거리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걸음을 옮길수록 음악이 홍수져 흐른다. 공해처럼 사람들의 뇌를 마구 침투하면서 정신을 분산시키고 있다. 바로 눈앞에 사보이 호텔이 보인다. 삼십 년 전에도 있었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명동 의류 앞쪽으로 리어카 노점상이 일렬 횡대로 보인다. 추억의 또뽑기 장사도 보인다. 설탕과 소다를 섞어 만든 설탕과자. 달고나.
어린 초등학교 시절 나는 동네 꼬마들과 함께 달고나를 사먹었다. 머리에 털모자를 쓴 아저씨가 동그란 국자에다 설탕을 녹여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동네 꼬마들은 쪼그리고 앉아 침을 흘리며 구경을 했다. 설탕이 다 녹으면 하얀 소다를 그 위에 얹고는 다시 휘휘 저었다. 다음 순간 설탕은 노란 고체로 변하면서 철판 위에 팍 엎어지면서 동그란 판에 의해 뽑기로 변신했다.
그 위에 철조각으로 만든 별, 십자가, 하트 등 각종 모양의 무늬가 새겨졌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 쥐고 가장자리부터 잘라 나갔다. 그러다 중간에 허리가 잘리면 아쉬운 탄성을 내질렀다. 어쩌다 제대로 오려내 성공하면 새로운 모양의 달고나를 공짜로 받았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공짜로 하는 아이도 있었다. 동그란 원판을 돌리고 중간에 화살촉을 꽂는 뽑기도 있었다. 대부분 꽝으로 나오지만 어쩌다 뽑히는 경우도 있었다. 물고기와 꽃모양의 설탕을 녹여 만든 투명한 설탕과자였다. 계속 꽝이 나오는 바람에 오기로 여러번 했다가 돈만 날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현이 너 또 뽑기했구나, 또 몽땅 잃었지 그러게 내가 뭐라든 하지 말랬지, 넌 운이 없어 그런 거 하면 안 돼,"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오빠는 내가 잃고 들어올 때마다 지청구를 주었다. 그래도 나는 학교가 파하고 나면 제일 먼저 또뽑기 장사에게로 갔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침을 묻혀가며 뽑기에 열중했다. 원판을 향해 화살촉을 꽃기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했던 것 같다.
"정현이 너 자꾸 또뽑기 하면 엄마한테 이른다. 이제 그만해라."
오빠와 친구들이 놀려도 나는 지치지도 않고 뽑기를 했다. 나이 사십이 되던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말했다.
"정현이 너 요새도 또뽑기 하니?"
기억력도 좋지. 그녀는 삼십 년 전의 일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이기만 하면 하고 싶은 심정이다,"
"넌 아직도 인생을 또뽑기 식으로 생각하니? 아서라 세상에 공짜 우연은 없단다, 치열한 경쟁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만 있을 뿐이란다."
이상고온이란다. 따듯한 봄날 같은 겨울이 명동 거리에 흐른다. 채 땅거미가 지지도 않았는데 거리는 불바다로 변하고 있다. 꼬마 전구를 잔뜩 매단 나무들이 전기고문을 당하고 서 있다. 건물마다 나무마다 고문을 당하고 있다. 신세계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조명 조형물이 밤을 낮처럼 밝히고 있다. 빨강 초록 노랑 조명이 새로운 밤의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 중앙 우체국 뒷길로는 중국대사관과 화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붙어 30년 전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린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행복했어요, 난생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어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전광판에서 여자 주인공이 옛애인을 향해 말하고 있다. 남자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죽기 전에 보고 싶었어요."
"죽기 전이라니……."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방금 전, 병원에서 조직검사 받고 나왔어요, 암일 가능성이……."
남자가 여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요즘 암은 완치율이 높대."
"전 괜찮아요, 죽어도 죽어도……."
여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내 어깨도 흔들린다. 손등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래도 저 여자는 행복하다. 죽음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여자는 죽음을 핑계로 남자에게 대시를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죽기 전에 당신을 만났으니…… 이 다음에 영원한 천국에서 또 만나요 그동안 당신 때문에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여자는 아예 유언을 하고 있다. 만일 저 여자가 암이 아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남자는 여자가 암이라는 말에 동정심과 연민이 발생한 모양이다. 계속 안타까운표정으로 서있다. 극이 끝나는지 시끄러운 불협화음과 함께 두 남녀 주인공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서있다 발걸음을 옮긴다. 세상은 온통 불빛 바다 같다. 음악과 불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옛날 엘칸토 자리에 대형 의류상가가 들어섰다. 에스콰이어, 반도패션. 그 유명하다는 PJ레스토랑과 스텐드바도 없어졌다. 하긴 세월이 삼십 년 가까이 흘렀으니까. 상가로 통하는 길 한가운데 핸드마이크를 쥔 여자가 보인다. 그녀는 성경을 손에 들고서 주목을 불끈 쥔 채 외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려함이로다."
복음성가도 들려온다.
"오직 그가 나의 길을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가리라"
광란의 음악에 파묻혀 성가는 이내 사람들의 귓전에서 사라진다. 저 여자는 무슨 희망으로 저 자리에 서서 외치는 걸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소리를 저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 걸까. 그녀가 외치고 섰는 등뒤로 검은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발걸음을 옛날 코스모스 백화점 자리로 옮겼다.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니 명동성당이 보였다. 그 역시 많이 변했다. 노동운동가들의 집결지처럼 변해버렸다. 각종 현수막과 잡상인들로 혼잡스럽다. 성당 맞은편으로 평화방송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증축한 영락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영락교회와 마주한 백병원으로 차량이 꼬리를 물고 들어서고 있다.
벌써 이십 년이 되었다. 나이 스물 일곱에 나는 한꺼번에 여러 죽음을 만났다. 가족 모두가 지방에 있는 친지 결혼식에 갔다가 비명횡사한 것이다. 친지들을 태운 전세버스가 고속도로 가드 레일을 들이받고 강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모두 참사한 끔찍한 사고였다. 마침 나는 그때 대학원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그 자리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그 버스 안에 동승하고 있었기에 줄초상이 나고 말았다. 사마(邪魔)가 낀 탓일까. 그날 결혼했던 신혼부부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갈라섰다. 한 순간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난 정신적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대학원을 포기한 건 물론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매일같이 하늘만 쳐다보며 나는 절대자를 원망했다. 나는 그때 분명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대자연과 우주를 섭리(攝理)하고 인생의 생사화복의 결정자가 신(神)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과응보의 진리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불시에 닥친 횡액(橫厄)이 내 의지를 배반하고 만 것이다. 인생의 화복(禍福)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가 아닌 외부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내 안에 불신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절대자와 사물(事物)에 대한 극한 불신과 분노였다. 그리고 행 불행과 황금률(黃金律)의 법칙도 불신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가친척들도 유족이 되어 슬프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래서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망연자실 얼빠진 내게 친척들은 유학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말이 유학이지, 누가 그 뒷바라지를 한단 말인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던 내게 갑자기 들이닥친 환란은 내 영(靈)을 꺾어버리고 마침내 삶의 의지마저 꺾어 놓았다.
결혼을 앞둔 남자가 있었지만 내 처지가 부담스럽다며 유학을 떠나고 말았다. 그건 떠나기 위한 구실이었다. 나는 그의 떠남에 대해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하도 큰 충격을 받아 감정이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큰집에 나 혼자 덩그만이 남자 그때부터 내 정신은 폭풍우 속에 휘말렸다. 친척의 소개로 집을 팔아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은 돈으로 여행을 다녔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안 다닌 데가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내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음이 실종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너 보헤미안이니?"
친구는 빈정거리며 말했다. 제 정신이냐는 뜻이었다.
"너가 나 같으면 제 정신 갖고 살 수 있겠니?"
"하긴……."
정신의 폭풍은 안정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부평초처럼 떠도는 마음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절간에 가서 몇 년간 기식(寄食)해 보았다. 수녀가 될까해서 수도원에도 잠시 있어 보았다. 현실 삶과 동 떨어져 생활한 결과는 언제나 패배감이었다. 불암산 근처에 있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중 못 견디고 뛰쳐나온 이후로는 다신 그곳을 찾지 않았다. 차라리 속세가 나았다.
금욕생활에 지친 내 영혼이, 숨죽이고 있던 내 의지가 비로소 본성을 찾은 것이다. 뒤늦게 나는 삶의 전장에 참여했다. 내 나이 삼십이 넘어서였다.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찾았는데 강남에 있는 회화학원이었다. 일류대 출신이란 게 입사동기가 되어 난생 처음 취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좌충우돌, 시행착오, 나보다 어린 동료강사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사람 사는 모습을 배워갔다.
영악하지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수칙이 있었다. 서로 해코지 안하기. 남의 영역 침범 안 하기. 남의 사생활 캐묻지 않기. 상사에게 고자질 안 하기.
그들 중에는 유학파도 있었다. 물론 나이는 나보다 아래였다. 집안도 모두 좋았다. 결혼 적령기에 있었지만 어쩐지 결혼에는 모두 무관심한 듯했다. 내게 왜 아직까지 결혼 안 했느냐는 흔히 있을 법한 질문 한번 없었다. 그 점이 좋았다. 남에게 상처될 만한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이기적이고 영악하고 까탈스러웠지만 모두들 공부에는 열심이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 년쯤 흐르고 났을 때였다. 퇴근 후 학원가를 지나는데 낯익은 얼굴이 스쳐 지나는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모습이었다. 체조선수 같은 건장한 체격에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 내 곁을 지나는데 하마터면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그였다. 그가 지나자 거리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다.
길을 지나던 남자들도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기들도 한꺼번에 고개를 돌려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자주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완전 패션모델감이었다. 남자다운 카리스마에 잘 차려 입은 옷이 매치를 이루어 여자들의 시선을 당길 만도 했다. 그가 한팔을 올려 거리 간판을 가리키며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비디오 카메라를 어깨에 멘 남자 서넛이 건물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갔다. 그가 머리를 흔들며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이상한 충격에 휩싸였다. 몸이 바위처럼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심각한 수치감이 느껴졌다. 분노와 슬픔이 머리를 태울 듯이 달려들었다. 그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잠시 후 그가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떼의 남자들과 무언가를 의논하며 나오다가 갑자기 내가 서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나를 보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얼굴이 굳어지면서 잠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수습한 그는 동료로 보이는 남자들과 어깨를 같이 하더니 골목길로 사라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기억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집안끼리 약혼식을 치르느냐 아님 곧바로 결혼식을 하느냐 옥신각신 할 때였다. 그가 갑자기 태도가 냉정하게 변하더니 좀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실 그와 나는 중매로 만나 한참 교제하던 중이었다. 서로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 별다른 불협화음도 없었다. 집안도 학력도 인물도 서로 발란스가 맞다고 누구나 부러워했다.
다만 한 가지, 그의 외모가 너무 출중했다는 게 걱정 아닌 걱정이었다. 외모가 출중하다보니 중매 자리가 봇물 터지듯 들어온다고 했다. 심지어 재벌가에서도 손을 뻗고 있다고 했다. 하긴 나 자신도 그를 보는 순간 정신이 멍할 정도였다. 생긴 외모와는 달리 그는 보수적이었다. 헤픈 여자는 딱 질색이라 했다. 약혼 말이 오갈 때까지 흔한 농담 한번 손 한번 잡지 않았다. 어리숙하긴 하지만 나 역시 냉정한 걸로 말하면 뒤지지 않았다. 가족의 죽음에도 혼이 빠질 지경인데 그가 이별을 선포했는데도 나는 울지 않았다.
이미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가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떠날 줄 알고 있었다. 친척들은 우리를 가리켜 둘 다 독한 것들이라 했다. 누군가 말했었다. 남자의 이별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지만 여자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멍에가 된다. 그 말의 의미가 왜 지금 내게 살아나는 걸까.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난 후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는 이미 상실감으로 반은 미쳐 있던 상태라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칠 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때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새삼스럽게 리바이벌 되는 것이다. 리바이벌이란 말은 적당치 않다. 그러나…….
기억의 회로가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시작해서 교제가 한참 진행되어 약혼 말이 오갈 때까지 그는 냉철하고 잔인하리만치 이기적이었다. 단 한번의 말실수도 흔한 사랑의 제스츄어도 없었다. 그는 그것을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까다롭고 계산적인 그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진실이 아닌 사랑의 무리수가 두어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그의 감정에 목숨걸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나를 조종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옷차림이 그게 뭐야? 어린 나이도 아니고……."
별로 타이트하게 입지도 않았는데 눈길이 사나워지고 있었다.
"대학원 준비는 잘 돼가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난 말이지, 여자가 결혼했다 해서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원하지 않아, 여자도 자기만의 쟙이 있어야 해, 요컨대 전문직종에서 자기 고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당신도 말야, 이번 학부 마치고 나면 박사과정에 들어가 할 수 있지, 내가 원하면……."
나는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야, 앞으로 일 관계가 됐던 어떤 경우에서든 남자를 만나면 절대 악수하지 마, 누가 이유를 따져 묻거들랑 내가 그랬다고 해."
나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넌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그렇다고 생각지 않아?"
"무슨 뜻예요?"
"남자를 외조할만큼 마음 씀씀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야, 말하자면 넌 글을 쓰는 작가가 되던지 아님 화가가 되는 쪽을 택한 편이 나을 뻔했어."
"전 예술가 타입은 아니잖아요."
"성격이 그렇단 뜻이야."
나의 어떤 점을 두고 한 말이었을까. 집안에서 본격적으로 결혼 말이 오가자 그는 드러내 놓고 부담스러워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 저 사람 대학원 합격하고 나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
그러다 내 집안에 우환이 닥치자 때를 만난 듯 떠나버렸다. 어쩌면 지난 7-8년간의 나의 방황이 그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思考)하는 것조차 두려워 나는 속세를 떠난 중처럼 살았는지 모른다. 실종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어서 허무감속에 나를 방치했는지 모른다. 그가 사라진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통곡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자였다. 그와 헤어지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니 그와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늘 혼자였다. 그 뼈아픈 사실이 내 가슴을 옥죄고 있었다. 강남역 입구에 수많은 젊은 발걸음이 모여들고 있었다. 미래의 준비를 위해 책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젊은이들이 일초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전철역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나는 그가 사라져버린 텅빈 거리에 서서 건물 간판을 읽었다. 유학준비를 위한 영어학원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여자 탤런트가 운영하는 유학원 건물도 보였다. 족집게 학원으로 유명하다는 간판도 보였다.
화려하게 조명 조형물로 장식된 지하 나이트 클럽도 보였다. 그 옆으로 단란주점, pc방, 찜질방도 보였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팔짱낀 모습으로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갑자기 생각난 듯 계단으로 마구 돌진해 내려갔다.
정신차려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때였다. 내 귓가에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네 얼굴에서 수치를 제하리라」
전철 안으로 발걸음을 디미는 순간 그 소리는 굉음과 함께 내 귓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하를 빠져나온 전철이 한강 고수부지를 지나고 있었다. 우뚝 솟은 도심의 건물이 내 눈을 찌를 듯이 다가왔다. 전철이 곡선을 지나자 내가 졸업한 대학 건물이 발끝에 머물러 있었다.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 밖으로 뛰쳐나갔다. 통로가 기다란 통로가 보였다. 지하 동굴처럼 기다란 통로가 내 의식속으로 무언가 자꾸 말하고 있었다.
가끔씩 내 안의 두려움과 맞부딪친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 그것은 무의식에서 반추되는 상한 영혼의 울림이다. 과거는 무의식을 반추한다. 은폐하고 싶은 기억까지. 기억은 생각을 조정하고 현재를 결정한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내 기억은 더 이상 반추를 금지한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정신이 무엇엔가 단단히 부상을 당한 모양이다. 정신도 견딜 수 있는 함량이 있다.
그 함량에서 벗어났을 때 정신은 궤도를 이탈, 비정상의 레일을 달린다. 삭풍과 외로움이 뼈속 깊이 스며든다. 거리를 지나는 연인들을 바라본다. 찰나의 기쁨을 껴안고 음악속에 발목을 파묻는 그들, 어깨 위로 추억의 그림이 그려진다. 더 이상 혼자일 수 없다고 손목을 악죄고 있다. 이별과 미래를 배제한 풋풋한 감정이 가슴을 누른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쩌릿쩌릿하다. 잊고 있던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가슴에 통증이 시작된 때부터 나는 삶의 전의(戰意)를 상실했다. 무기력과 어둠의 세력에 휩싸이면서 전쟁터로 변해버린 정신은 투지와 무기력이 무한정 승패를 거듭했다. 결국 중압감에 패한 혼미한 정신이 세월을 낭비하고 말았다. 그 지나온 세월이 내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그 구멍을 메워 놓을 그 무엇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의식은 타성에 젖어 늘 현재를 고수하고 있다. 매양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또뽑기 하는 식으로.
살아있는 시늉만 반복하며 똑같은 모양으로 또뽑기 또뽑기. 새로운 변화는 꿈도 못 꿀 또뽑기 인생. 내 의식은 구태에 젖어 무기력과 야합해 끊임없이 중독현상을 일흐키고 있다. 무책임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분노의 자의식이다. 그때마다 내 의식 저변에서 항변의 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고 사는 건데? 좀더 인생을 진지하게 살 수는 없는 거니?"
비아냥과 함께 가슴 밑바닥에서 세미한 음성도 들려온다.
「내가 네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네 얼굴에서 수치를 제하리라」
시장 어귀를 지나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조막만한 얼굴에 선한 눈빛. 늘씬한 체격에 곱슬진 머리까지 꼭 그녀를 닮았다. 마치 20년 전 그녀가 살아온 느낌이다. 나는 여자애에게 다가간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애는 성숙미가 물씬 풍겨 호감 가는 인상이다.
"혹시 엄마 이름이……."
"네?"
나는 잘못 본 것처럼 얼른 말을 거둔다.
"아니에요 사람을 잘못 본 모양예요."
나는 대형마트가 보이는 한길 쪽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거리는 폭풍 같은 음악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낚아채고 있다. 그 바람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다는 뉴스가 귓전에서 떠밀려가고 있다. 이상고온 현상이 사람들의 의식마저 바꿔 놓은 모양이다. 사는 것을 포기한 걸일까. 사람들은 죽음도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개업한 병원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왜?
사람들은 병원 앞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어린아이를 들쳐업은 여자부터 노인네까지 계속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병원 쪽이 아니고 그 옆에 맞붙은 제과점이다. 오늘 개업한 모양이다. 이벤트 회사 도우미들이 추운 날씨에도 허벅지를 드러낸 팬츠 차림으로 힙합 춤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들의 긴 다리가 공중을 향해 치솟을 때마다 남자들의 눈길이 모아진다. 조각 같은 몸매다. 저 정도 몸매면 슈퍼 모델감이다.
음악이 빠른 템포로 사람들의 의식을 휘어잡는다.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트럭에서 트롯가요가 울려 퍼진다. 힙합 노래와 힘겨루기를 하며 음률이 엉킨다. 천막을 치고 야채 등속을 파는 여자는 가스 난로를 껴안은 채 TV에 몰두하고 있다.
"난 사는 게 너무 두려워요."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안으며 말한다.
"상처가 깊은 탓이야."
여자가 채널을 돌린다. 오색 풍선이 날아다니고 70년대 풍경이 보인다. 이승연, 임예진, 이덕화의 얼굴이 보인다. 밤송이 갈래머리 소년 소녀가 사랑을 한다. 해맑은 표정으로 눈망울을 붉히며 뭔가를 호소하고 있다. 30년 전, 태풍처럼 유행했던 하이틴 영화다. 진짜 진짜 좋아해.
순진하다 못해 유치찬란한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기억의 회로를 리바운드 시키며 외친다. 과거는 흐을러어 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계바늘을 사람들은 과거라 부르며 회상의 영상카드를 꺼내든다. 탄식하며 말한다. 좋은 세월 다 흘려 보내고선…….
눈 한번 깜빡이고 났더니 세월이 후딱 지나고 말았구나. 그것도 삼십 년이란 세월이. 주워 담을 수 없는 물 같은 세월이 가슴을 가로질러 가고 말았다. 삼십 년이란 세월의 격랑 속에 나는 오뚝이처럼 한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늘 혼자였다. 한번도 단 한번도 나는 여자가 되어보지 못했다. 아니 나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 것 같다. 나는 자문한다. 과연 그러한가.
시장 입구를 지나자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봉고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승객이 내리고 탄다. 무심코 그 광경을 보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친다.
"정현이 아니니? 맞지?"
세상에……. 조금 전에 보았던 조막만한 얼굴에 선한 눈빛이 둘이나 내 앞에 서 있다. 그러면 그렇지. 내 눈이 정확하지.
"윤혜영?"
"그래 나 혜영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친정집에 온 거니?"
그녀는 친정집에 다녀가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고 지레 짐작해 말하는 것이다. 그녀 곁에 서있는 여자애는 엄마의 젊은 날의 모습을 판박이 해 놓은 듯하다. 키와 몸매 얼굴 형태가 그대로 닮았다. 핏줄은 못 속인다니까.
"한 칠 년쯤 됐나?"
그녀는 내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어 놓으며 말한다. 온화한 미소가 만면에 흐른다. 하나도 늙지 않았다. 옆에 서 있는 딸이 동생이라 해도 믿을 판이다.
"아까 봤는데 딸이니? 그렇지 않아도 하도 닮아서 묻고 싶었는데."
딸아이가 말한다.
"아! 그래서 아까 엄마 이름을 물으셨군요."
여자애는 그제서야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자세히 볼수록 귀염성 있고 미모다.
"얘가 나 젊었을 때랑 똑같지 않니?"
"아주 판박이야, 어느 대학 다니니?"
"응 서울 대학 다녀, 의대. 얘가 내 소원 풀어준 셈이지."
그녀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듯 딸의 얼굴을 쓰다듬기까지 한다.
"몇학년?"
"응 본과 3학년이야."
"전공은 뭘로 할 건데?"
"성형외과 시키려고 하는데 졸업하고 나면 결혼부터 시키고 유학 보낼 생각이야."
윤혜영은 복을 타고 났다.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 외딸로 자라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더니 결혼도 대학 졸업하자마자 했다. 집안에서 서둘러 보낸 것이다. 그녀는 대학 다닐 때도 여러번 맞선을 보았다. 부모의 연령이 높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외손자 보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그때 칠십이 가까웠던 그녀의 부모는 구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살고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얘를 너무 좋아하셔, 하도 보고 싶다고 성화를 해대길래 잠깐 들른 거야, 그보다도 너도 친정에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그녀는 또 지레짐작한다. 자기가 친정에 일이 생겨 들렀으니 나도 그런 줄 안다.설마 지금까지 결혼 안 했다고는 생각지 못한다.
"응. 그래."
"그런데 정현이 너 요새도 또뽑기 하니?"
그녀는 생각 난 듯이 묻고는 한바탕 웃음을 흩날린다. 초등학교 다닐 때 그녀와 나는 학교 앞 노점에서 줄창 또뽑기에 몰입했었다. 언젠가 나이 사십이 되던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었다.
"정현이 너 아직도 또뽑기 하니? 넌 아직도 인생을 또뽑기 식으로 생각하니? 아 서라 세상에 공짜 우연은 없단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녀는 생각난 듯이 묻는다.
"남편은 뭐하는 분이시니? 아이들은 다 학교 졸업했고."
마음속에서 짜증이 난다. 나는 손으로 버스를 카리키며 말한다.
"버스가 왔네 다음에 또 만나자."
"그래 잘 가."
"안녕히 가세요."
나는 버스에 뛰어 올라 모녀에게 손을 흔든다. 그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복도 많지. 복은 노력만 한다고 오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듯이.
나는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 검색코너를 누른다. 그의 이름을 입력하고 엔터를 누른다. 없다. 전혀 다른 사람의 신상명세만 떠오른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짓인가.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이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성(理性)이 감성(感性)에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이라고 포기의 감정을 불어넣고 있다.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무의식에서 반추되는 상처로 인한 신음소리이다. 의식 속에 한번 뿌리 내려진 상흔은 갖가지 부정적 양상을 일흐킨다. 상처에 대한 방어기능으로 감정을 차단한다. 그 방어 기능에 대처하느라 나는 세월을 13년이나 떠나보냈다. 상흔으로 굳어진 마음을 다시 회복하기란 어려웠다. 끊임없이 무의식과의 전쟁을 치렀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일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지낸 적도 있다. 음악도 TV도 외면하고 두꺼운 철학서적에 정신을 매달고 살았다.
심리학 책을 앞에 두고서 대학원 진학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넘어 대학원 진학은 해서 뭘하나 하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친구의 도움으로 동네에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다가 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집어치우는 사건도 발생했다. 세월은 망각의 바람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망각은 고통의 마취제 역할을 했다. 그동안 친구들은 팔자 좋은 여편네가 되어 세월을 낚으로 다니기에 바빴다.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고 자신들은 쇼핑에다 문화센타다 돌아다니며 여가생활을 즐긴다. 내 앞에는 항상 세월이 멈춰선 느낌이다.
친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내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다. 내 모습은 세월 앞에 언제나 멈춰 서있다. 그 느낌이 뇌리에 전해올 때마다 나는 수치심으로 온몸을 떨었다. 수치심으로 나는 온통 내 몸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노가…… 머리를 태울 듯이 달려들었다. 한참의 소용돌이가 끝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세미한 음성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내가 네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네 얼굴에서 수치를 제하리라」
평안과 재앙은 가슴속에 뒤엉켜 저주와 축복처럼 되살아났다. 남들은 모두 앞서 가는데 나만 혼자 뒤떨어져 세월을 낭비하고 있구나. 책임의식이 가슴속에서 계속 부채질했다.
그동안 그는 유명 인사가 되어 가끔씩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문에 의하면 정치인들과도 교분이 짙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유명인사가 되어 시사월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아이들은 조기유학하여 미국에 체류 중이라 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죽음의 강을 두 번이나 건넜다. 한번은 뇌일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살아났고 3-4년 전에는 암 수술을 받고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다. 삶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내 심성은 더 강퍅해졌다. 악한 기운이 끝도 없이 내부에서 살아났다. 원망과 시기가 분초를 다투며 내 머리를 점령했다. 어느날인가부터 뼈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었다. 통증이 온몸 뼈마디로 전해질 때마다 나는 절대자를 원망했다. 죽음도 병고(病苦)도 겁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의 한계상황을 두 번이나 겪은 터라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벌써 두 달째 방안에 틀어박혀 칩거하던 나는 뉴스에서 북한 핵실험이 두 번째 행해질 거란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여러 단어가 떠올랐다. 자포자기. 무기력, 미래포기. 무용지물. 나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극장 안으로 발걸음을 디민다. 화면이 마음을 덮쳐 오면서 내 혼을 점령한다. 사랑의 룰 게임을 배우는 여자는 30대의 나이답지 않게 섹시미가 흘러 넘친다.
"사랑은 감정에 대한 권력 게임이야."
화면의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진실해야지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아 싫어요."
여자는 솔직한 감정표현을 주장하고 있다. 떠난 애인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새 애인에게 사랑의 전술법(연애는 파워 게임)을 전수받고 있다. 감정의 양극화 현상에서 여자는 새 애인을 선택하고 운다. 드디어 사랑의 감정 게임에서 승리한 히로인은 남자와 키스를 하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영화가 끝나자 들어올 때와는 달리 출구가 앞쪽에 있다.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야 한단다.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르고, 요즘은 그런 모양이다. 극장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빛이 눈에 쏟아진다. 충무로 거리가 옛날에 비해 단순해진 것 같다. 네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 영락교회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 있던 제과점과 돌다방이 사라지고 새로운 상호가 보였다. 좁은 찻길을 건너자 이번에는 백병원이 그대로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꽤 쌀쌀하다. 등이 시렵다. 나이가 들고부터 추위가 뼈속까지 스미는 것 같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길을 건넌다.
평화방송 앞을 지난다. 또다시 명동거리다. 불빛과 음악이 정신을 산만하게 흐뜨려 놓는다. 거리는 상인들 천지다. 크고 작은 좌판이 발에 채이고 넘친다.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도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다. 그러다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대형 의류점 귀퉁이에 난 달고나 장사다. 나이가 오십쯤 되었을까. 여자는 머플러를 목에 두른 채 동그란 의자 위에 앉아 조그만 가스불 위에 설탕을 녹이고 있다. 소다를 나무 젓가락 끝에 묻히더니 설탕과 혼합한 뒤 다시 휘휘 젓는다.
나는 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다 태풍 같은 바람결에 발걸음이 묶이고 말았다. 명동거리에 느닷없이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그때였다. 나의 뇌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차도를 향해 뛰어갔다.
"아저씨 빨리 행당동으로……."
택시 안에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른다. 늦으면 안 된다. 담당의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 약속에 칼이다. 신호등이 걸린다. 나는 속이 탄다. 빨리 빨리…… 마음이 급할수록 택시는 더디게 움직이는 것 같다. 자꾸 신호등에 걸린다. 이윽고 택시가 병원에 닿았다. 정신없이 뛰어 약속된 병동으로 향한다. 짜증난 의사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웬일인지 발걸음이 나를 듯이 가볍다.
환자 맞아?
이상하게 통증이 멎은 느낌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발걸음이 머무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있다. 누구? 얼굴을 들여다 본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여긴 웬일이지?"
"……."
약간 여윈 듯한 얼굴에 영화배우 같이 잘생긴 중년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서있다. 십여 년 전 강남 네거리에서 카메라맨들과 함께 뛰어가던 그다. 여자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모았던…… 병원 복도를 오가던 여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서로 수군거리며 그의 얼굴을 흘끔거린다. "영화배우 아닐까." 간호사 복장의 여자가 옆에 서있는 또다른 간호사에게 귀엣말을 한다.
"암 조직 검사 받으러 왔어요."
"암?"
그의 안색이 삽시간에 변하면서 두려움과 근심, 연민의 빛이 떠오른다.
"거기는요?"
"나?"
"네."
"난 집사람 수술결과 보러 왔다가…… 나도 함께 검진 받았어, 암이래."
"네?"
이건 무슨 시나리오인가. 무슨 허무맹랑한 소설이란 말인가. 순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랑은 감정에 대한 권력 게임이야."
"사람이 진실해야지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아 싫어요."
떠난 애인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새 애인에게 사랑의 전술법(연애는 파워 게임)을 전수 받고 있는 여자 주인공, 엄정화. 그녀의 섹시한 표정 위에 내 얼굴이 겹치고 있다.
"암? 무슨 암이래요?"
"응 췌장암, 발견 시기가 늦었다나 봐."
표정으로 보아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 자기 몸을 두고 장난질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당신은 무슨 암조직 검사 받은 건데."
당신이라니…… 생소한 호칭에 나는 잠시 멍한 느낌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다.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병원에서 해후한 옛연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분명하다.
"밖으로 나가지."
병원 밖으로 나오자 바로 옆 병동 지하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발걸음이 마치 스폰지 위를 걷는 것처럼 공중에 붕붕 뜨는 느낌이다. 현실감각 위에다 착각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자포자기. 무기력, 미래포기. 실종 된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암조직 검사를 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건 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재검을 위해 온 것이다.
"요즘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고칠 확률이 높대. 몸조심하라구 나처럼 몸 혹사해 서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그걸 니가 왜 걱정하는데? 나는 속으로만 말할 뿐 참는다.
"그동안 마음 고생 심했지?"
뜬금없는 말에 나는 정신이 아연하다.
무슨?
"지난 세월 동안 나 한번도 마음 편히 지낸 적 없어, 당신 생각만 하면 마음이 괴로워서 벌받은 모양이야."
나는 다시 정신이 산란해지기 시작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애들만 불쌍하지, 나야 뭐."
"시기는 늦은 거래요, 암 수술할 시기가."
"응, 몸이 이상하게 피곤하다 그랬지,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그는 고개를 푹 떨군다.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이 자신만만하던 남자가 저렇게 약해지다니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전 괜찮대요, 의사가 그러는데 암일 가능성은 5%래요."
"다행이군."
나는 거짓말을 주워대며 그의 표정을 살핀다. 그는 느닷없는 몰락에 혼이 빠진 모양이다.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인생의 화복(禍福)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가 아닌 외부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나는 그를 보면서 깨닫는다.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지 알지 못함이라.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건강 조심하세요, 전 바빠서. 계산은 제가 할게요."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걸어가는데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한다. 지갑을 여는데 눈물방울이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슬픔과 분노가 뒤에서 내 어깨를 확 덮쳐왔다. 병동 건물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장송곡이 마음속에서 꽝꽝 울려왔다. 내 눈에서 그렇게 눈물 뽑더니…….
며칠 후 나는 명동으로 나갔다. 또뽑기 장사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사보이 호텔 쪽으로 걸어가는데 내 귓가에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네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을 것이며 네 얼굴에서 수치를 제하리라"
전에 명동 한복판에서 복음을 외치던 여자전도자였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면서 언젠가 전광판에서 보았던 극 내용을 떠올렸다.
"죽기 전에 보고 싶었어요."
"죽기 전이라니……."
"방금 전, 병원에서 조직검사 받고 나왔어요, 암일 가능성이……."
"너무 걱정하지 마, 요즘 암은 완치율이 높대."
"전 괜찮아요, 죽어도 죽어도……."
그에게 했던 거짓말과 그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동시에 떠올랐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에 달고나 장사가 보였다.
"이거 하나에 얼마예요?"
"오백 원요."
"뽑기해서 맞추면 또 해주나요."
"그럼요."
나는 오백 원을 여자의 손에 올려준다. 받아 쥐고 돌아서는데 여자의 외침이 또 들려왔다.
"내가 네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을 것이며 네 얼굴에서 수치를 제하리라"
눈물과 함께 수치가 사라지고 있었다. 절대자와 사물(事物)에 대한 극한 불신과 분노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지 왼쪽 가슴에서 쩍! 하고 뼈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달려오는 버스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버스가 신호등 네거리 앞에 멈춰 서는데 창 밖에서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윤혜영이 딸과 함께 서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달고나 뽑기 과자가 보였다. 그것을 양손에 쥐고서 내게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그들의 모습이 뒤로 밀려나면서 두려움과 무기력이 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순간 자유가 밀물처럼 내 마음에 몰려왔다. 끝
첫댓글 소설 같은 소설 재미 있네요.좋은 작품집 기대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삶속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임하시길 간구합니다. 늘 강건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늘 부지런한 신선생. 소설 잘 읽고있습니다. 도입부 명동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불쑥 불쑥 기억의 곳간에 숨어있던 옛기억이 되살아나네요.그 많은 글들을 어찌 다 품고 사시는지..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