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창녕 남지읍에서 밀양 삼랑진읍에 이르는 낙동강변을 여행했다. 도시를 끼지 않는 강변은 평화로웠다. 겉으로는…. 그러나 어디, 홍수와 태풍, 개발로 점철돼온 강과 사람의 영욕이 한낱 '평화'라는 말로 표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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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삼랑진 금세리 깐촌마을 배수장 옆 언덕에 오르면 낙동강의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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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구간이 삼랑진읍에서 양산 원동·물금을 거쳐 부산 구포로 연결된다. 강 옆의 사람이 만들어낸 '도시'라는 거대한 존재를 멀리서부터 경험하는 구간이 된다. 새삼 개발의 위력과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한 소설가가 이 구간의 곳곳을 샅샅이 글로 승화시켜 사람들 가슴속에 담았다. 삼랑진의 뒷기미나루와 양산의 원동면 화제리를, 부산의 구포와 을숙도를, 그 속의 사람들을 손금을 읽듯 그렸다. 요산 김정한 선생이다. 마치 강과 같이 흐르는 그의 소설을 보면 낙동강과 사람이 얽혔던 영욕의 역사가 읽힌다. 오늘, <수라도>나 <사밧재> 같은 소설이 담긴 요산의 단편소설집 한 권을 들고 강변에 우뚝 서 보자.
△삼랑진에서 깐촌까지의 산책길
뒷기미나루를 들어서면 삼랑진읍이 시작된다. 마산·창원이나 진주 쪽에서 짧은 기차여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낙동강역과 삼랑진역·원동역 등 어느 곳에서 내려도 모자람 없는 정취 속의 역이 이어진다. 취재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구간이 삼랑진읍에서 양산 원동역 사이였다. 철길 주변 으로 지금의 국도나 지방도가 아닌 산책로가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거론됐고, 그것도 강변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는 '성찬'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삼랑진역에 들러 그 길을 찾기로 했다.
없었다. 철길 주변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을 뿐 산책로로 연결될만한 공간이 없었다. 양산 원동 방향으로 조금 더 지방도를 타고 갔다. 3분 정도 갔을까. 오른쪽 철길 안쪽으로 연결되는 작은 도로가 나와, 곧장 들어갔더니 점점 더 낙동강과 가까워지는 길이 하나 있었다. 삼랑진 역쪽에서 양산 방향으로 그 길을 타고 갔다. 길은 곧 좁아졌지만 차 한 대가 지나가기에 충분하다.
길은 금세리 깐촌마을 앞 안태배수장까지 연결됐다. 포장이 끝나는 곳에서 50m 가량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흙길이 연장됐고, 산 위로는 등산로가 있었다. 특히 등산로를 조금 올라가 언덕 위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가히 장관이었다. 강이 흐르고 산이 흐르고, 철길이 흐르는 듯했다. 맞은편으로 삼랑진읍을 바라보면 동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길이 책이나 신문에 거론됐던 산책길인지, 궁금했던 생각은 그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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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 원동면 천태산 깎아지른 곳에 천태사가 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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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도의 현장, 원동면 화제마을
왼쪽으로 삼랑진양수발전소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밀양과 양산을 경계 짓는 천태산 고개가 시작된다. 고개를 올라갈수록 가을은 깊어지고 밀양댐은 넓어진다. 가을은 이제 막바지인가. 아쉬운 듯 단풍은 노랗고 빨갛고 푸르른 자태로 온 산하를 물들였다. 고갯마루에서 커피 한잔하는 여유를….
산을 넘으면 양산시 원동면이다. 천태산의 고랑을 타고 내려와 앉은 듯 천태사 가파른 자리에 숨이 넘어간다. 매실마을이 서너 곳 있고, 마을로 연결되는 버스가 원동역에서 기다리는 곳. 매화가 흐드러진 봄에는 연인들이 기차 타고 찾는 곳 아닌가. 마산역에서 오전 6시20분에 뜨는 첫 차를 비롯해 하루 여섯 번, 진주역에서 오전 8시25분 첫 차를 포함해 하루 세 번 원동역에서 내린다.
고개를 또 하나 넘으면 나오는 곳이 원동면 화제리다. 낙동강 하류 곳곳을 소설 속에 담아 사람들 가슴에 강을 살아나게 했던 요산 김정한 선생의 처가가 여기에 있다. 특히 화제리의 화제와 명언, 토교, 죽전마을 등을 담은 소설 <수라도>는 요산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현장성 높은 작품으로 알려졌다. 조선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라는 상징적 시간대에서 한 선비집안의 부침을 때로 다독거리고, 때로 날을 세웠던 화제리 가야부인의 '아수라' 같은 역정을 담았다. 소설가 조갑상은 자신의 책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에서 '화제마을 초입의 정자나무 아래에서 담배라도 한 대 물고 앞으로는 화제들을 보고, 뒤로는 오봉산을 보며 작품(수라도)을 읽어보자'고 했다.
△강은 도시를 만들고
원동면 화제리에서 물금읍 넘어가는 화제고개를 그냥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의 낙동강과 앞으로 펼쳐질 낙동강이 180도 달라진다. 자연의 강과 도시 속의 강이랄까. 더구나 헬기 착륙시설에 예비군 훈련장까지 갖춘 이 고개 위에 서면 마치 한반도의 지도처럼 꿈틀대며 흘러온 낙동강의 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보기 드물게…. 곳곳에 참호와 진지를 만든 이곳 예비군 훈련장을 보면 말로만 들었던 6·25 때의 낙동강 전투가 연상된다.
독자들은 양산 물금을 어떻게 기억하실까. 그냥 양산의 한 동네로, 아니면… 물금은 세계 제일의 '철광석' 산지로 남한 제일의 철 매장량을 갖고 있고, 1970년대까지 생산이 됐다. 그 구체적인 지점은 원동면 화제리와의 경계지역으로 화제고개 쪽이다. 어쨌든 물금은 부산했다. 부산에 가까워 그런지 신도시 조성사업으로 온 동네가 파헤쳐지고, 구획되고, 불과 몇 년 전까지의 모습이 오간 데 없다. 이제 낙동강은 자신이 만들다시피 한 도시로 인해 사방이 포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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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건너편은 앞서 삼랑진에서부터 이미 공장지대로 점점 바뀌어왔다. 삼랑진의 맞은편 김해 생림이나, 원동·물금의 맞은편 김해 상동이 그랬다. 이 때문에 강변을 여행할만한 구간으로는 강 이쪽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작전을 바꾼다. 일단 물금에서 부산시 북구의 금곡 화명 등을 거쳐 구포대교까지 갔다가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구포대교를 건너면 부산시 강서구로, 본래 낙동강의 본류였던 서낙동강을 찾을 수 있다. 이왕이면 부산시 강서구에 있는 낙동강 대저수문을 찾는 것이 좋다.
여기서 지금의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이 갈라지는 것이다. 알고 있는 대로 본류는 흘러흘러 을숙도와 다대포에 이르고, 서낙동강은 김해와 부산을 경계 지으며 명지에 이른다. 서낙동강 강변 위에 서니 멀리 불모산 너머로 해가 떨어졌다.
글·사진/이일균 유은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