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추라이 ( Chu Lai ) 지역 작전 6) 길룡전투시 제 1대대 의 상황
* 제 1대대 제1중대장 이 영희 대위 *
길룡전투에서 각소대장들의 관등성명은 제1소대장에 이화수 중위, 제2소대장에 유재원 중위, 제3소대장 에는 이길남중위 였습니다.
5월 7일 제2대대에 배속되어 길룡전투에 투입된 상황은 제1중대는 대대CP기지에 있다가 헬리곱터로 투입되었는데, Lz 에내릴때는 상황이 없었습니다.
An Thimh 마을에 나가다가 일병 김용운이 골반뼈에 부상을 입었는데, 첨병소대원 이었습니다. 나머지 활동은 전투상보와 같습니다.
ㅇ 5월 8일은 제7중대와 병행해 나가면서 Phu Nhieu 마을까지 공격했는데, 이날 상황은? ㅇ
대대의 우일선 중대로서 목표11(30고지) 에 공격해 나갔는데, 이고지 주변은 숲이 울창했습니다. 이고지 하단에 중대가 진출 했을때, 상공에서 정찰 중이던 미군 O-1기가 "30고지정상에는 베트콩 10여명이 교통호에 배치되어 공격하는 우리중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고 통보해 왔습니다. ( 30고지 정상에는 교통호가 원형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하였음)
Air Strike 를 요청했으나 우리중대와 베트콩이 불과 10여 미터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어 사격이 불가능 하다고 하여 중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Green Smoke 탄을 올리고 난다음 적이 배치된 정상에 네이팜 탄을 사격했습니다.
화염이 터질때는 얼굴이 화끈 하거군요. 화상을 입었는가 해서 소대장들을 불러 확인했으나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후 무전으로 연락을 해서 Air Strike 네이팜탄 공격을 중지시킨후 우리중대가 돌격해 목표를 점령 했는데, 항공기의 네이팜판 공격시 불타죽은 베트콩 5명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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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5월 9일에는 다시북상하면서 목표11을 재탐색했는데? ㅇ
제7중대 공격을 지원하고, 목표11을 재탐색 하였으며 탐색중 적 1명을 사살한것은 전투상보의 기록과 같습니다. 이날밤 제6중대와 같이 야간방어를 했습니다.
ㅇ 이날밤 대대의 지시에 의해서 야간전투(이동) 를 했는데, 당시의 상황은? ㅇ
중대장 부임이래 제일 어려운 야간전투 였습니다. 칠흙같은 어두운밤이어서 발앞도 보이지않고, 상황 도 예측할수없는 위험한 전투였습니다.
이동은 전술종대로 걸어나갔는데, 소대장과의 통신도 어려웠습니다. 무전기가 있지만 떠들수가 없어 사용을 제한했지요.
그때 소대장들에게 강조하였던것은 나가다가 사격을 받더라도 엎드려 응사하지 말고, 지시가 있을때 반격하도록 했습니다. 종대로 행군해 나가니까 무질서한 사격은 아군의 피해만 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밤 특별한 상황이 없어 다행이었는데, 만약 교전이 있었으면 어려움이 많았을것 입니다. 이때의 야간전투는 취약한 시간(어두움) 에 하등에 얻은것도 없는 무모한 작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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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중대 제1소대장 노현량 중위 *
길룡전투시 제3중대 제1소대장으로 참전했는데, 당시중대장은 이재춘 대위, 제1소대장은 본인 이고 제3소대장은 권용술 중위, 제2소대장은 문학옥 중위였습니다. 제2소대장은 우동환 중위가 전사하고 문학옥 중위가 부임했습니다. 중대장은 김형광 대위가 목에 부상을 입어 후송된 다음 이재춘 대위가 부임해 왔습니다.
ㅇ 5월 5일 제5중대 탐색을 차단진지에서 지원하였는데, 이날상황은? ㅇ
이지대는 우리중대가 자주정찰 하던곳 입니다. 집은 거의 불타버리고 몇채 안되었으며, 주민은 부녀자들만 살고있는곳인데, 몇명안되었습니다. 차단중 특별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ㅇ 이때 기지에 1개소대가 남고 중대가 참가했는데, 몇소대가 참전했습니까? ㅇ
제1소대와 제3소대가 참가한것 같습니다.
ㅇ 5월 6일은 오전중 "다" 진지에서 차단하고, 13:00부로 제2대대로 배속되어 제5중대가 공격한 "목표가" 의 적퇴로 차단및 봉쇄임무를 수행하였는데? ㅇ
오전중 차단에서도 별상황이 없었습니다. 오후는 128고지의 능선을 따라 진출해서 제5중대가 공격하고 우리가 지원 하였습니다. 이곳은 자주나가지 않았던곳 인데, 차단진지에서 별적정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128고지까지 나가는데는 정글이 무성하고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소대단위 단독행동은 곤란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ㅇ 이날 15:30에 차단 지원이 끝나고, 20:05에 방어진지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약 5시간 동안2Km 정도밖에 이동을 못한 이유는? ㅇ
야간방어진지에 나가다가 앞으로 제5중대가 지나가는것을 본것 같습니다. 이날 행군이 지채된 것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기록에 차이가 난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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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5월 7일은 제5중대와 같이 다시 목표(가)를 재 수색했는데? ㅇ
이날은 미군 억류자 탐색을 한것 같으며,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없습니다.
ㅇ 5월 7일 오후에 제2대대에서 배속해제하여 귀대하였는데, 현 전투상보에는 "5월 8일, 제5중대가 "목표가" 를 수색하는동안 지원했다" 고 하는데, 여러상황을 종합 검토해 볼때, 재수색에 출동한것이 사실이었던지, 기록의 착오인지 의문이 많습니다. ㅇ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하기는 곤란 합니다. 그런데 작전에 나갔다가 복귀한후에 다시 나간 기억은 없습 니다. 5월 8일의 출동기록은 잘못된것 같습니다.
ㅇ 길룡작전은 3일 밖에 안됩니다만 작전지원에 애로 사항은? ㅇ
이작전에는 곤란을 받은 기억이 없고, 해룡작전시 적의 대공사격 때문에 보급추진 헬기가 내리지 못하여 곤란을 겪고 굶은적이 있습니다.
ㅇ 이작전을 마치고 한달후에 노룡제2호 전투가 실시되었는데, 이때 제3중대는 중대(-)가 제7중대 기지에 나가 경계지원을 했습니다. 이때상황 몇가지 추가 알아 보겠습니다. 6월 7일 제3중대 기지로 이동하였는데, 몇소대가 나갔지요? ㅇ
이때도 제1소대와 제3소대 였던것 같습니다. 이때의 소대장들은 전과 같았습니다(주: 제2소대장 문학옥 중위는 그후임자가 해간33기 권태정 중위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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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7중대 기지에서 실시한 주요활동은? ㅇ
중대기지 외곽 경계가 주임무이고 중대기지 남쪽 소대기지의 경계도 하였습니다. 주간에는 기지주변에 나가 다니며 정찰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ㅇ 이날(5월 11일) 중대장이 부상을 입었다는데? ㅇ
작전이 끝나고 철수하려고 준비하고 있던중 적의 유탄이 날아와 중대장이 머리에 부상을 입고 바로후송 하였습니다. 중대장으로 근무를 오래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중대장(감성찬 대위) 도 부상을 입었고, 이재춘 대위도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지요. 그후임은 문수장 대위가 부임했습니다.
ㅇ 소대장은 언제까지 했습니까? 부상을 당했다고 하던데 어느작전 이었습니까? ㅇ
소대장 근무는 8월 말까지 하고, 9월 부터 10월까지 대대 연락장교로 여단상황실 근무를 하고 그후 대대 S-3에 근무를 하다가 12월 20일 1개소대를 편성, 정보를 입수하여 첩자를 앞세우고 작전에 나갔다가 다리부상을 입었습니다.
ㅇ 소대장 근무중 기억에 남는 전투는? ㅇ
뇌룡작전 이었습니다. 가장치열한 전투였습니다. 제2중대 제1소대(소대장 이무수 중위) 가 제일 희생자 가 많았습니다. 약 2/3가 깨졌습니다.우리소대도 1/3 정도 피해를 보았습니다.
ㅇ 소대장 근무중 미담, 일화, 비화 같은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오 ㅇ
전투중 제일 어려운것은 실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사자를 끌어내는것이고, 해병대는 병력이 모자라는데, 넓은 작전지역을 맡아 어려웠습니다. 해병은 나이가 어린편 이어서 겁없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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