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Predestination / Foreordination)
세계의 창조 이전에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해 놓으셨
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러나 더 좁게는 지성을 가진 피조물의 운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과 영원하신 작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교리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의 중요한 이견들이 있고, 그 각 견해들은 다시 여러 가지 변형들을 가지고 있
다. 전타락설(supra- 혹은 antelapsarianism)은 강한 예정설로서, 창조와 타락
(lapsus) 이전에 이미 인간의 공적이나 가치에 관계없이 몇몇 사람을 구원하시
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좀더 온건한 형태인 후타락설(infra- 혹은 sub- 혹
은 postlapsarianism)은, 하나님의 작정이 인간의 타락 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은 멸망당할 사람 중 일부를 구원하셨다. 후타
락론자들은 전타락설이 인간의 창조와 그들의 자유 행사 이전에 사람들을 저주
아래 두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와 사랑에 위배된다고 하며 전타락
설을 비판한다. 이에 대하여 전타락론자들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타락을 포함하여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정하시는 것이 논리적으로 신
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반박한다. 후기 칼빈주의에서는 위의 두 입장이 더 세분
되어서(특히 후타락설이) 저주에 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견해가 두 가지로 나
뉜다.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와 유기하실 자를 선택하셨다는 '이
중 예정'을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는 택하셨으나 그
나머지는 '간과'하셨고, 그들의 운명에 관한 아무런 적극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
으셨다고 하는 "단일 예정"을 주장하였다.
어거스틴(Augustine) 이전까지는 이 예정설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지 않았었
다. 어거스틴은 그의 명상과 논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은 잃어버린 바 되었다. (2) 오직 은혜만이 인간의 의지
로 하여금 신앙을 갖게 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4) 이 은혜는 오직 제한된 숫자의 사람에게만 주셨고, 그 외의 사람들은 멸망
한다. 제2차 오렌지 종교회의(529년)에서는 어거스틴의 은혜의 필연성과 선행
성에 대한 견해는 채택되었지만, 예정의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중예
정"은 분명히 거부되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견해도
공식 교리로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자유로운 협동을
미리 아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몰리니즘(Molinism)의 견해와, 또한 좀더 엄
격한 아퀴나스(Aquinas)의 견해를 모두 허용한다. 그러나 아무리 엄격한 아퀴
나스의 견해라도 칼빈주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전타락설인지 후타락설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중
예정"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였다. 칼빈은 이 교리를 가장 체계적으로 발전시키
고 옹호하였다. 좀더 그에게 동정적인 학자들은, 그의 예정론이 하나님의 권능
과 전능에 의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을
선택하셨다는 성경의 주제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변호하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또다른 사람들을 위하여는 저주가 예
정되었다"고 하는 교리를 분명히 견지하고 있다. 선택도, 유기도, 인간의 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칼빈의 견해에 알미니안들이 반대하였으나, 도르트 대회(
1618-1619년)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6년)에 의하여 재확인 되었다.
현대 신개혁주의 신학자들, 특히 바르트와 브루너는 칼빈주의 예정설이 하
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성경적 개념을 올바르게 대하려는 하나의 시도였지
만, 그 교리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브루너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교리
는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에 오염되었으며, 인격적인
인과관계 대신에 기계적인 인과관계를 대치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바르트는,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한' 존재(즉, 인간을 선택하는 분)로서 계시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저주
의 작정(이중예정)은 신학적인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바르트와 브루
너는 그들의 주장 속에 포함된 의미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지만, 하나님께서 인
간을 보편적으로 구원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주장하신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