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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던 그 해 여름으로부터 만 60년, 올 여름 8월은 매우 뜻 깊은 달이다.
‘병자호란 치욕의 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남한산성에는 가볍게 오를 수 있는 훌륭한 등산코스가 있는가 하면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고, 더욱이 민족자존의 뜻을 되새기게 하는 호국의 불교사찰들도 산재해 있다.
이러한 유서 깊은 곳에 만해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만해 선생의 시 ‘님의 침묵’을 읽고, 선생을 향한 열렬한 경외심으로 평생을 살게 된 한 소년의 열정의 결실이다.
그 소년은 자라서 대학교수가 되고 일편단심 만해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드디어 그는 1998년 5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912번지 남한산성 속에다 만해기념관을 지었다.
지금 신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념관장직을 맡고 있는 전보삼교수(全寶三·56)가 그 주인공이다. 520평 대지 위에 지상 2층, 연건평 120평 규모로 주변의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지은 전통한옥인 기념관은 개인이 지은 기념관으로는 만만찮은 규모다.
1879년생인 만해 선생은 그렇게도 염원했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66세의 나이로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에 별세하셨다. 지난해는 선생께서 열반하신 지 60주기가 되는 해로 만해기념관에서는 ‘만해와 그 사람들 60인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만해 선생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60인을 지상(誌上)으로 모시고 만해와 함께 한 소중했던 인연의 실타래를 풀었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2005년, 올해는 이를 기념, 만해기념관에서 지난해의 특별전 연장선 상에서 ‘만해와 애국지사 특별기획전’을 연다. 8월1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전야제는 14일 저녁 7시에 기념관 마당에서 펼쳐지는데, 애국지사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진혼굿을 벌린다.
60평생 오로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시다 떠나신 만해께서는 ‘님의 침묵’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고 했다. 그렇다. 독립된 조국에 살아 남아 있는 님의 후진들은 결코 님을 보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세상이 어렵고 어지러울수록 님은 후진들의 가슴에 되살아나고 있다.
“오셔요! 님들께서는 이제, 저희들 곁으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오셔서 광복 60년, 후진들이 사는 모습들을 두루 살펴보시고 더 크고 더 숭고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만해기념관 031-744-3100)
식도락가들이 극찬한 그 맛
그때 그 산장
어떻게 이런 산속에 궁궐의 일부 같은 좋은 건물이 지어졌고, 그 건물이 식당이라! 놀라움을 갖게 된다. 지난 봄, ‘한국의 지성’을 자임하는 한강포럼(회장 김용원)의 남한산성 역사탐방 행사에 참가해서 점심을 먹은 집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행사를 주관한 회원이 이 집을 선정하는 데 고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1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산성마을에는 식당 90여 업소가 영업 중인데, 그 중에서 한 곳을 골라야하니 고민이 아닐 수도 없었겠다.
부인과 함께 몇 차례 답사하고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단체에 이 집을 추천했고, 결과는 참가회원 모두 극찬하며 만족스러워 했으니 이 식당에 대한 긴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도 같다.
‘그 때 그 산장(031-746-5748)’은 산성 안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식당이다. 1,700평 땅 위에 40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주차에도 문제가 없다. 취향에 따라 옥내와 옥외를 선택해서 앉을 수 있는데, 맛의 고장 나주 출신 미모의 집주인 김흥자씨(金興子·46)는 어릴 때부터 “너는 자라서 식당을 해야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솜씨가 돋보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주변에서 ‘조리의 달인’으로 평가를 해주었다고 한다.
산채비빔밥 6,000원. 산두부·도토리묵·돼지갈비 1대 각 10,000원. 갈비정식 13,000원, 한정식 15,000~20,000원, 복불고기 25,000원, 닭백숙·닭도가니탕 각 38,000원, 오리도가니탕 40,000원. 식전에 나오는 콩죽 맛을 못 잊어 다시 찾았다는 손님들과 텃밭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에 잘 구은 돼지갈비 안주로 석양주 한 잔 걸치겠다는 단체손님들로 넓은 식당은 늘 바쁘다고 한다.
남한산성 역사를 담고 있는
남문관
삼전도에는 청나라 병사들이 수항단(受降壇)을 높이 쌓아 놓았고, 인조는 거기서 홍타이치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의 예를 올렸다. 조선왕조 개국 246년, 임금이 적장 앞에 나가 머리를 조아린 일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남한산성 종로 로타리 주차장에는 이곳에만 24대째 살아온 광주이씨(廣州李氏) 집안이 있다. 이 집안 22대 며느리 임춘자(任春子·71) 할머니가 ‘남문관(031-743-6560)’이라는 옥호의 식당을 운영한다. 토박이 집안의 내력이라도 말해 주듯 이 집안에서는 내림으로 3대째 이장(里長)직을 맡아오기도 했다. 식당은 이 산촌마을의 전형인양 닭요리를 전문으로 차려내는데, 할머니의 청국장 담그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소문이고, 그만큼 청국장백반(7,000원)을 찾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산채비빔밥 6,000원. 닭·오리 요리(백숙·도가니탕·도리탕) 각 35,000원.
향수 그리고 분위기 있는 음악
카페 오로지
자가 승용차로는 서울에서는 동문 진입로와 남문 진입로를 선택하면 된다. 남문 진입로의 경로는 잠실~복정 사거리~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코스,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현인릉 앞~세곡동~대왕교~~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코스,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양재대로~수서 나들목~동부간선도로~세곡동~대왕교~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코스, 암사(지하철 8호선)~잠실~송파~복정 사거리~산성역~산성종로 코스가 있다. 동문 진입로의 경로는 천호대교~길동~황산 삼거리~하남시~광지원~동문~산성종로 코스와 중부고속도로 경안 나들목~광지원~동문~산성종로 코스가 있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남한산성은 산성종로로 통한다’. 그래서 남한산성에는 산성종로(산성로터리)가 산성의 중심이자 핵이다. 모든 먹거리집들이 이 로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이 중심에서 닭요리 전문점들과 판이한 분위기의 카페 ‘오로지’(031-749-4006)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여느 집들과 별다름 없는 한옥인데, 집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집들과는 분위기나 먹거리들이 사뭇 다르다. 수십 년 전 일상으로 사용했던 낡은 가구들이 소품으로 여기 저기 놓여 있고, 국민학교 교실에서나 볼 수 있던 오르간을 만날 수 있는데, 다른 한 켠에는 최신식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노래방기기 앞에는 멋쟁이 여인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한 곡조 뽑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그런 분위기의 실내다. 커피, 칵테일, 맥주, 양주 등 각종 음료에 다양한 음식들을 차려낸다. 버섯덮밥·고기덮밥·생채덮밥·돈가스 각 8,000원. 닭 요리 35,000원.
향수 그리고 분위기 있는 음악
모란시장
사통팔달로 버스편이 닿고, 지하철 8호선 모란역이 시장과 맞닿아 있는 터라 장날이면 문자 그대로 성시(盛市)를 이룬다. 화훼, 양곡, 약초, 잡화, 생선, 담수어, 닭과 개 등 축산물과 온갖 음식들이 펼쳐지는 장터는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생동감이 넘쳐난다.
성남이라는 도시가 형성된 것과 때를 같이 한 시장이라 100년이나 200년의 긴 역사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전통재래 민속시장으로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덕분에 5일장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로 평가를 받는다. 매년 4회 열리는 모란민속5일장 축제에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고 색다른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들이 함께 펼쳐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모란시장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개고기다. 어림잡아 전국에서 소모되는 보신탕용 개고기의 30% 정도가 모란시장을 거쳐서 판매된다고 하니 가히 ‘통개들의 수난시대’라 할 만하다. ‘통개’로 팔려 나가는 ‘개값’은 kg당 10,000원 정도로 보면 된다는데, 5일장과는 관계없이 상설가게로 되어 있다. 5일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장터 넓은 공간이 주차장으로 이용된다.
단대동 닭죽촌의 닭고기 이야기
복골별장집
한 집안에서 절대군주와 같았던 할아버지가 어쩌다 덩치 큰 수탉을 잡아 백숙이라도 끓이는 날은 동네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쇠죽을 끓이는 큰 가마솥에 수탉을 잡아 넣고 펄펄 끓이다 무나 파를 숭숭 썰어 넣고는 소금만으로 간을 한다. 초청된 이웃들은 음식상에 둘러앉아 닭고기를 손으로 찢어 소금을 찍어 먹는다. 나이든 사람들이 흔하게 보아왔던 풍속도다.
닭은 고기만이 아니다. 달걀이 최상의 반찬이었던 시절 어린이들은 소풍이라도 가는 날, 삶은 달걀 하나로 복에 겨워했었다. 집에서 닭을 기르기야 했지만 집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은 모아져 시장에 나가서 팔아야만 했다. 집에서 갖고 나간 달걀꾸러미가 자반갈치나 고등어로, 아니면 긴요한 생활필수품으로 바뀌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형편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더 이상 닭장으로 달걀을 가지러 가는 사람은 없어지고, 백화점 식품부나 슈퍼마켓으로 가면 된다. 어렵지 않게 달걀 30알 한 판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 귀한 줄도 모르면서 먹고 있다. 고기는 또 어떤가. 인삼과 대추를 넣은 즉석삼계탕까지 나와 있는 판이다. 물만 부어서 끓이면 삼계탕이 된다. 그래서 닭은 귀한 음식에서 흔한 음식으로 격이 낮아졌다. 그래도 달걀과 닭고기는 좋은 식품이다.
이 닭죽촌은 원래 지금의 위치보다 낮은 산성 입구에 산재해 있었던 집들을 이주케 하고 집단화시킨 것이다. 집단화한 것이 7년 전이라는데 음식점 간판들에는 ‘20년 전통’ ‘30년 전통’이라고 적혀 있다.
통칭 논골민속마을 초입에 있는 첫 집으로 들어가 본다. ‘복골별장집(031-743-8929)’-. 다른 20개 업소와 별다름 없이 닭고기 요리와 오리고기 요리를 차려낸다는 것이 안주인 하부순씨(河富順·59)의 설명이다. 하부순씨가 아랫마을에서 영업을 처음 시작한 것이 23년 전이었으니 이제는 이 음식에 관한한 박사학위라도 받을 만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닭도가니탕(30,000~35,000원)과 한방유황오리(45,000원)라는데, 유황오리는 해남에서 기른 것을 가져다 쓴다고 했다. 새끼 때부터 유황을 섞은 사료를 먹인 유황오리가 50일에서 60일이 되면 식품으로는 가장 좋다는데, 이 집까지는 급냉동된 상태에서 옮겨진다고 했다. 내장을 들어낸 오리에다가 인삼 밤 대추 황기 녹각 천궁 등을 넣어 조리한 유황오리가 노인들의 원기회복에 효험이 크다는 소문으로 노년층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20년 넘게 영업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조리하는 닭과 오리 요리를 먹어 보지 못했다며 책에는 잘 한다는 다른 지역의 닭 요리 사진을 올려서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삼계탕 7,000~8,000원, 닭도리탕 30,000원, 유황오리주물럭 38,000원, 옻닭 40,000원. 11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공용주차장이 있고, 12인승 승합차로 교통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 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