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비름 당신
-임 맹진-
코로나19 감염으로 누구든지 창살 없는 감옥이다. 아내는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줬다. 예쁘진 않지만, 쇠비름처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착하고 수수한 미모를 지닌 아내별명을 지었다. 쇠비름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찾아 제주도로 여행을 가려다. 날로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 차원 방역의무에 협조하느라 서울 근교로 나들이를 정했다.
유월의 햇살이 내리 꽂이는 날에 우리 부부는 광릉수목원을 찾았다. 태고의 신비를 보여주는 울창한 삼나무 숲길 입구에 들어선다. 도시 생활에 억눌렸던답답함이 바람같이 사라지며 이내 마음이 평온하다. 가슴이 확 트인다. 호기심 가득히 비밀스런 숲길을 한발 한발 내딛는다. 길 양쪽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 쭉쭉 솟은 삼나무들의 힘자랑에 약간 위압감도 느낀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 년 전 멈춘 시간에 들어온 것 같다. 길옆 개울에 누워 있는 푸른 이끼 덮인 고목이 거센 바람으로 가지가 꺾였던 자신의 삶 이야기를 듣고 가란다. 고요의 창을 두드리며 우리가 왔다고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과 새들의 합창이, 나의 남은 삶을 잘살아가라 격려하는듯하다.
아니 벌써, 당신이 66회 생일날이라고‧‧‧.
“여보! 오늘 생일을 축하해요. 늙도록 고생만 시켜 미안하고, 부족한 나와 함께 살아 주어서 고마워요. 세월이 그토록 빨리 지났네요.” 오랜만에 둘만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아내는 가난한 흙담집 농부 유복녀로 태어났다. 장인어른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해방 이 되어 고국에 돌아왔는데 골병 이 들어 얼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군함도 에서 탄을 캐는 일을 하였다한다. 장모님은 31살에 청상 이 되었다. 아버지 중매로 나와 결혼하여 맨주먹으로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규학교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중, 고, 대학의 검정고시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했다. 장인 사랑을 모르고 자란 탓에 홀어머니는 더 강인하게 키우려 한 것이 몸에 밴 정신과, 자신의 노력으로 쇠비름처럼 보란 듯이 잘 자랐다. 풀을 뽑아 뿌랑구를 하늘로 쳐들어 놓아도 잘 자란다는 이처럼 끈기 있는 풀도 드물다. 처음부터 나를 만나 끈질기게 살아왔으니 내 아내야말로 꼭 쇠비름이다. 가방을 메고 화장품 팔러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 가슴이 짠해진다. 하루는 고객과 다투고 속상해서 쇠비름 풀줄기처럼 눈알이 빨개져 집에 돌아와 말없이 앉아있을 때 나도 몹시 마음이 아렸다. 한눈팔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성실히 살아온 아내가 감사하다. 그 모습은 뜨거운 뙤약볕에도 잘 견디며 앞만 보고 살아온 착하고 끈질긴 ‘쇠비름을 닮은 당신’ 이었다.
딸들을 출가시키고 98세 친정어머니를 한집에서 20년 동안 모시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일이다. 그동안 장모님이 알면 안 될 것 같아서 큰처남의 죽음을 숨겨왔지만, 나중에 알고 큰 충격으로 쓰러져 깊은 밤중에 119로 병원에 실려 갔다. 또 몇 달 전 일이다. 장모님이 약간의 치매기로 행방불명되었다. 가까운 파출소에 가출 신고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밤늦게 전화벨이 울렸다. 다른 동네 파출소에 발견되어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미안해요. 요양원에 모실 수도 있지만, 엄마는 내가 끝까지 모시고 싶어서요.” “아니에요. 장모님도 내 어머님인데요.”라며 다독거리며 웃곤 한다. 거친 세상에 가정을 지키고 위기에 내몰렸을 때마다 아픈 세월을 극복한 모습이 오늘따라 더 곱다.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 때문인가 부부가 함께 살면서 알게 모르게 쌓였던 삶의 찌꺼기들도 날려 보냈다. 비 온 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비추는 상쾌한 아침 햇살이 발걸음에 더 힘을 준다. 길옆 바위틈에 작고 귀여운 분홍색 쇠비름 꽃이 눈에 띈다. 내가 말했다. “여보! 저 꽃 좀 봐요. 처음 맞선볼 때 당신 모습이야 그때 당신 볼도 분홍색이었지” 아내가 말한다. “오늘 정말 행복해요. 고맙고” 그 말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제주도 숲길이 아니어도 둘만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유월의 태양처럼 고운 당신이 있었기에 나도 건강하고 우리 가정도 행복해요. 아내 자리를 앞으로도 건강한 가정으로 잘 지켜줘요.
착한 “쇠비름 당신이 고마워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