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 운하의 개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운하구상을 제안했다.
이 전 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어가던 2005년 초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즉 경부운하에 대한 계획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 사이에 우뚝 솟아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막고 있는 조령 인근 지역에 수로 터널을 뚫어 서울과 부산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가 국회의원이던 1996년 15대 국회 본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그 한 해 전인 1995년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 내놓은 내륙주운(舟運) 건설론을 원용하는 수준이었다.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청계천 복원에 대한 칭찬 여론이 빗발치자 이 전 시장은 자신의 대통령선거 제1공약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건설로 확정했다. 2006년 8월17일부터는 3박4일간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는 정책탐사를 벌이며 지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내륙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계천의 성공(환경단체들은 ‘일부의 성공’ 또는 ‘실패’로 보지만)’은 그에게 10여 년 전 국회의원직 상실과 함께 묻힌 ‘운하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불어넣었다.
9월을 넘어서면서 이 시장의 경부운하는 명칭이 ‘한반도운하’로 바뀐다. 먼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 운하를 만들고 이어 영산강과 금강을 연결하는 호남 운하를 건설한 다음 이를 서로 연결, 여기에 전국 각지의 지선들을 연결하고 통일 후에는 북한 신의주까지 물길을 이어 한반도 대운하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다분히 지역 정서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것으로 현재는 계획으로만 존재할 뿐, 바로 실행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한반도운하 중 경부구간(이하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곳은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다. 1995년 4월 이 연구원은 경부운하뿐 아니라 경인, 경안(서울-안양-시화호), 호남운하(한강-금강-영산강)를 비롯, 전국 5대강을 운하로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세종연구원은 ‘물류혁명과 국토개조전략’이라는 테마로 1996년까지 관련 논문과 책을 쏟아냈는데, 여러 운하 중 특히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서울에서 충주댐까지의 한강운하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여 “타당성이 충분하다”는 결과 보고서를 낸 적이 있으나,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내기는 세종연구원이 처음이었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약 500㎞의 경부운하를 건설한다는 이 전 시장 측의 계획은 지난 96년 세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근거를 한 것이다. 그 뒤에 수자원공사에서 경부운하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98년에 연구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기술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측 한 인사는 “이 전 시장이 구상하는 경부운하는 1995년 세종연구원이 발표한 경부운하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수로의 통과지점, 터널의 위치, 길이, 바지선의 유형, 댐 설치 방식, 갑문의 위치, 형식 등 경부운하의 구체적 사안은 현재로선 밝힐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검토가 거의 끝났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공개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대선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어 경부운하 설계도를 공개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저촉될 수도 있고, 우리가 가진 패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반대 논리만 양산 시킬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내용이 이렇듯 추상적이다 보니 언론도 환경단체도 제대로 검증할 도리가 없다. 밑그림만 보고 완성품의 허와 실을 논하는 해프닝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운하의 설계도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효과만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보니 ‘과연 운하건설이 가능한가’ ‘선거용 빈껍데기 공약(空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쌓일 수밖에 없다.
운하의 노선 (통과지점)
이 전 시장 경부운하안의 골자는 ‘대부분의 구간은 자연하천을 그대로 이용하고, 강과 강을 잇는 수로터널의 앞뒤에 극히 짧은 거리의 인공수로를 만든다’는 것. 언론에 알려진 이 전 시장의 운하 노선안은 서울(김포대교, 신곡수중보)-구리-하남-팔당호(팔당댐, 이상 한강지역)-양평-여주-충주(이상 남한강 지역)-충주호(충주댐)-월악산 수로터널(국립공원지역)-문경 조령천-상주 영강-상주 낙동강-구미-대구-창녕-물금-부산 낙동강 하구언의 총 500.5km로 1996년 세종연구원이 제안한 것과 같다. 대부분의 구간이 세종연구원 안과 일치하지만 이 전 시장측 노선안은 남한강 수계에 있어 충주댐과 충주호를 통과하지 않고, 충주호를 서쪽으로 비껴 충주 조정지댐(탄금호)과 달천을 따라 수로터널과 연결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수자원공사 안(달천, 쌍천을 통과해 인공수로를 길게 만드는 안)과 세종연구원 안의 중간노선으로 충주댐과 충주호를 통과하지는 않지만 충주호의 물을 도수로(導水路)로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선택한 것이다.
인공수로의 위치와 크기
경부운하의 총 길이는 550∼600km로 예상된다. 경부운하 건설의 핵심은 물길이 없는 낙동강 상류와 남한강 상류를 잇기 위한 인공수로를 만드는 것인데 두 하천을 연결하려면 30km 안팎의 인공수로가 필요하며, 두 하천의 수위 차(110∼120m)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수로 양끝에는 배를 끌어올리고 내릴 갑문을 설치할 계획이다.
터널을 뚫는 위치는 월악산을 서쪽으로 완전히 벗어난 충주 쪽의 박달산과 문경 쪽의 조령산 밑자락을 뚫는 것이라 한다. 수자원공사 안보다는 충주댐에 가깝지만 월악산 국립공원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 “충주댐과 월악산은 난공사에 따른 위험부담이 크고 국립공원 파괴라는 비난에 맞닥뜨릴 수도 있어 조금 우회하더라도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충주 조정지댐과 조령산을 통과하는 방안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전 시장측은 박달산과 경북 문경시 마성면 모곡리 조령산 서쪽 능선 아래 해발 105m 지점을 양쪽에서 뚫어 수로터널을 낼 계획이다. 연장은 총 24km.
일부 언론 보도에는 지면에서부터 계산해 산 위 105m 지점에 터널을 뚫는 것으로 나왔지만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시장측 안의 터널높이는 바다로부터의 높이, 즉 해발고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박달산과 조령산은 산 아래 지면이 이미 바다로부터 100m 높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터널이 뚫리는 위치는 지면과 별 차이가 없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비껴 박달산과 조령산에 수로터널을 뚫게 되면 경부운하의 총연장은 530km가 된다. 남한강에서 바로 낙동강으로 연결되지 않고 충주 달천으로 우회하는데다 달천과 조령산 수로터널을 연결하는 데 극히 일부지만 인공수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 또 조령산 남쪽에 있는 문경 조령천과 그 아래쪽에 있는 상주 영강을 잇는 부분도 물길의 굽이가 워낙 심해 곳곳에 인공수로가 필요할 수 있다.
터널의 높이도 달라진다. 세종연구원 안은 해발 120∼141m에, 수자원공사 안은 해발 210m에 터널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이 전 시장측은 105m 높이에 터널을 만들 계획이다. 터널의 높이는 배의 왕래에 있어 운행시간, 기술적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시장은 15개의 갑문과 보를 설치해 물의 낙차를 조금씩 줄여가기로 했는데 배가 도크에 들어오면 갑문이 서서히 열리고 물의 높이가 같아지면 진행하는 방식이다.
운하 건설에서 노선만큼 우선적으로 결정돼야 할 요소는 운하를 왕래하는 바지선의 규격이다. 그 규격에 따라 총 물동량과 수로의 폭이 결정되기 때문. 이는 운하의 물류 경제성과 총공사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 전 시장측이 공개한 바지선의 규격은 폭 11∼12m, 길이 110m에 2400t급. 이는 컨테이너 200개가량을 한번에 옮길 수 있는 규모로, 이를 1열2단으로 연결할 경우 한번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4800t으로 늘어난다. 또 구간에 따라서는 5000t급과 1만6200t급이 운행되기도 한다.
이 전 시장측은 자연하천 구간의 경우 수로의 평균 폭을 50m 정도로 할 예정이다. 조령산에 뚫을 터널 수로의 폭은 20m이지만 상행, 하행 터널(쌍굴)을 따로 만들어 양쪽의 수로 폭을 합치면 실질적으로 자연하천 구간의 수로 폭과 다를 바가 없다. 바지선 선폭이 11∼12m밖에 되지 않는데 수로의 폭을 이렇게 넓게 잡은 것은 충돌 사고를 방지하고 몸집이 큰 유람선이 왕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일정한 수량과 수심을 확보하려면 수량이 풍부한 충주호의 물을 터널수로를 통해 낙동강으로 흘려보내는 한편, 물을 항상 가둬두는 저수용 댐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낙동강 상류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하로 전국 평균보다 300mm 정도 적어 늘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또 내린 비가 하천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유출계수가 어느 곳보다 높다. 이 때문에 세종연구원과 수자원공사는 15∼16개의 댐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령산 수로터널과 상주시 영강 사이에 들어설 3개의 댐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댐은 이미 수자원공사의 장기 댐 건설 계획에 포함된 용수 공급용 댐으로, 운하와 관계없이 언젠가는 건립될 것들이다.
반면 이 전 시장측은 “댐은 전혀 필요치 않고, 저수용 보만 15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전 시장측은 “한강 상류와 낙동강 상류 각 지점에 보를 설치하면 수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댐 설치로 인한 수몰지역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터널을 쌍굴로 뚫는데다 연장도 길어지면서 총 공사비는 수자원공사 안과 세종연구원 안의 2배에 달하는 15조~20조원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전 시장측 추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