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친절해진 평양 "야경은 찍었습네까"

[백우]

친절해진 평양 "야경은 찍었습네까"

[르포-①] 3년만에 돌아본 평양, 주민 촬영도 저지 안해
대낮에 차량·터널 불켜고 종업원도 휴대전화 사용

2011년 09월 08일 (목) 00:36:56

불교닷컴 이혜조 기자 reporter@bulkyo21.com

평양이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친절해졌고 시내 곳곳이 사람과 차량들로 북적였다. 대낮 터널에 조명을 켰고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류경호텔은 유리로 외벽을 마감했고 새로 새긴 고층 아파트 사이로 대규모 아파트들이 속속 건설되고 있었다.

2011년 9월 3일 평양거리는 을씨년스러워 보였던 3년 전과는 딴판이었다. 필자는 2008년 9월 20일 평양을 갔었다.

사람들의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민들도 경계심을 푼 듯 남측 방문단에게 먼저 “반갑습네다” 인사를 건네기 일쑤였다.

호텔 직원들도 많이 친절해졌다.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농담엔 농담으로 응수했다. 식사를 위해 잠깐 방을 비운사이 방을 청소하고 늘부러진 빨래들을 세탁해 깨끗하게 정돈해 놓기도 했다.

거리 풍경이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촬영을 엄격히 금하던 이전과 달리 촬영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시내를 촬영해도 되냐”는 취재진 질문에 “흔들려서 사진이 제대로 안나오니께니 못하게 했던게지 딴 뜻은 없수다”라며 사실상 촬영을 허용했다. 평상시 북은 차량 이동 중 바깥쪽으로 카메라 앵글을 아예 돌리지 못할 정도 엄했다. 격세지감이었다.

▲ 평양 시내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앞 차량은 조계종 방북단이 탄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카운티 승합차. ⓒ2011 불교닷컴

평양시내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4일은 일요일임에도 거리마다 교복을 입은 수백명의 학생들이 가로수 밑에 삼삼오오 모여 잡초를 뽑거나 가로수에 병충해 방제를 위한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방북단을 안내하는 요원들은 “일요일마다 3~4시간씩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교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하얀 불라우스에 붉은색 스카프, 청치마나 바지를 입은 학생들이 거리 양측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퇴약볕에 그을린 얼굴을 보니 안쓰러웠다.

(사)국제태권도연맹(ITF)이 주최하는 제17회 세계태권도 대회엔 87개국에서 1천명의 선수와 감독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아리랑공연을 맞아 5.1경기장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렸고, 공연이 끝나는 9시30분부터 이 인파들이 걷거나 2층버스, 궤도나 무궤도전차를 타고 귀가를 서두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당초 양각도호텔에 묵을 것으로 예상했던 조계종 방북단은 태권도대회 참가차 방북한 외국인들 때문에 고려호텔에서 2인1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 참가자들을 안내하는 요원들은 저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뽐내며 선수들을 인솔했다. 44층 쌍둥이타워인 고려호텔에도 외국인으로 넘쳐났다.

재일교포 3세이자 세계적인 태권도 사범인 박정현 황수일씨는 <불교닷컴> 취재진에게 “일본인의 방북도 한국 못지 않게 어려운데 대회를 맞아 감독자격으로 2명만 일본서 방북했다”며 대회의 규모와 성격을 설명했다.

정대세 안영학 등 북한 축구의 대들보를 비롯한 선수단도 북경에서 같은 고려항공편을 타고 입국, 평양공항에서 취재진과 기념촬영을 흔쾌히 수락했다.

평양공항 메인 건물은 수리 중이어서 옆 건물로 입국 수속을 했다. 태권도대회 참가자와 아리랑공연 관람을 위한 외국인들 때문에 조계종 방북단의 수속에만 1시간20분 가량이 소요됐다. 대규모 입국을 좀처럼 처리해보지 못한 듯 수속 요원들이 많이 지쳐보였다. 5.24제제 조치 후 첫 대규모 방북이어서 기대했던 수속에서 특혜는 없었다.

▲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참관하기 위해 기다리는 북한 학생들.ⓒ2011 불교닷컴

2008년 9월 방북 때보다 평양시내 차량 수가 확 늘었다. 공항에는 벤츠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평화자동차에서 만든 '뻐꾸기'등 우리말 이름을 붙힌 차량들도 제법 있었다.

시내를 운행 중인 차량들은 대낮인데도 일제히 전조등을 켰다. 소속을 밝히길 꺼려한 한 안내요원은 “작년 10월부터 차량이 늘어 사고 우려 때문에 전조등을 의무적으로 켜도록 한다”고 말했다. 방북단을 태운 현대차가 만든 ‘카운티’는 주요 교차로마다 신호등을 지켰다. 미모의 여성 교통경찰이 어김없이 교차로에 배치돼 있었다. 남성 교통경찰도 더러 보였다.

전력 사정이 나아졌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관문인 금릉동굴(터널)에 대낮임에도 조명이 켜져 있었다. 조명이라고 해봐야 오랜지색의 백열등에 불과했지만 변화라면 변화였다.

▲ 고려호텔에서 내려다 본 평양의 낮(위쪽)과 밤.ⓒ2011 불교닷컴

밤12시께. 150m 높이를 자랑하는 주체탑, 능라도의 5.1경기장 등은 화려한 조명으로 밤을 장식했다. 고층의 살림집(아파트)도 많은 가구들에 불을 켜두었다. 도로와 인접한 상점들도 간판을 켜두었다. 호텔로비에서 만난 북측 안내요원이 “야경은 촬영했느냐”며 은근히 야경을 자랑했다. 간판을 점등한 가게는 영업을 하지 않았고 상점 내부의 불은 꺼져있었다.

그렇다고 전력 사정이 나아보이진 않았다. 고려호텔의 텔레비전 화면은 간간히 지지직거리며 전력이 약한 듯 보였고, 한 호텔의 노래방 기기는 노래가 반주되는 도중에 전압이 약해져 끊어지기도 했다.

▲ 수십년째 짓다말다를 반복하던 류경호텔이 외벽을 유리로 마감해 평양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2011 불교닷컴

건설하다 말다를 반복하던 105층 규모의 류경호텔은 외벽을 유리로 마감한 채 위용을 자랑하며 평양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었다. 오리콤이 자본을 대 완공 직전이라고 했다.

보통문 바로 옆 새로 생긴 고층 아파트는 쑥색으로 단장하고 사람들이 입주해 있었고, 만수대 아래 창전거리에는 수십동의 고층 아파트들이 건설 중이었다. 못보던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에서는 반복해서 창전거리 살립집 건설현장을 보여주며 36층짜리를 3개월만에 건설한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밤새도록 아파트를 건설하는 기계음이 고려호텔에서도 생생히 들렸다.

휴대전화 사용이 보편됐다고 안내요원이 설명했다. 기종은 거의 한 가지를 사용하고 선불형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요금이 늘어 집집마다 걱정이 태산이지 않느냐고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자기들처럼 미리 돈을 주고 사용하면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훈수했다.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매점의 여 종업원도 휴대전화를 사용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 평양 시내는 새 건물을 짓는 사업이 한창이다. 우측이 만수대, 만수대 좌측 아래 창전거리에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들이 보이고 왼쪽 뒷건물이 류경호텔이다. 7일 오전 주체탑에서 내려다 본 대동강 건거편 모습이다.ⓒ2011 불교닷컴

개인화는 거리마다 늘어난 매대(간이상점)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고기밀쌈, 어름과자, 청량음료 등을 주로 팔고 있었다. 4일 고려호텔 앞 고기밀쌈 매대에는 십여 명이 줄을 서 사먹는 모습도 보였다. 한 참사관은 “개인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며 “식당도 국영이고, 바로 옆 식당들에서 매대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최근 새로 문을 연 묘향산 입구의 향산 호텔은 평양시내와 달리 고급스러웠다. 하룻밤에 250달러의 요금이 말해주듯 욕실, 침대, 로비 등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러나 투숙객은 조계종 방북단 외에는 없어 보였다. 세갈래의 복도 가운데 방북단이 투숙한 쪽만 불을 켜놓았다. 식당을 제외한 편의시설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호텔측은 방북단을 위해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하게 했다.

평양에서 묘향산을 가는 도중 만난 청천강은 사금으로 유명한 곳이다. 검게 그을린 사람들이 윗옷을 벗은 채 사금캐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들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는 가족 단위로 강가에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천과 나뭇가지로 텐트를 만들어 쉬면서 멱을 감기도 했다. 묘향산 계곡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포커를 하거나 카세트 음악에 맞춰 춤과 노래를 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보현사 못미쳐 한국의 유스호스텔 형태의 숙소에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베란다에 나와있거나 묘향산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 북한 주민들이 묘향산 계곡 옆 숲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다.ⓒ2011 불교닷컴

평양을 비롯한 전국에서 성적이 우수하거나 당성이 뛰어난 학생들을 불러모아 교육과 유흥을 제공한다고 한 참사관이 귀뜸했다. 단체 티셔츠를 맞춰입은 관광객들도 더러 보였다. 하비로암 주차장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굽고 반주를 곁들이는 가족들도 있었다. 주차장에는 각 지역명을 표기한 버스와 트럭들이 이들을 태워가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방북단을 알아보고는 가볍게 목례하거나 “또 오시라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고 평양이 온전히 경계심을 푼 것은 아니다. 방북단 일행 중 한 명이 야간에 차 안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후레쉬를 터트리며 촬영하자 참사관이 버럭 화를 냈다. 순간 차 안은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 평양 = 이혜조 기자

(르포-'3년만에 가본 평양' 2부에서 계속됩니다)

[정수]

북한도 사람사는 곳인데 변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요 좋은 소식입니다. _()_

[염화]

이념과 사상을 떠나 사람사는 사회는 정감있고 훈훈하지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