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7:1-10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같은 공간이라도 역사와 추억이 담기면 의미가 생기고, 가치가 부여됩니다. 예전에 살았던 고향 집이나 어릴 적 갔던 코스모스 밭이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장소와 일상이 다른 이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한 장소이자, 과거에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유효함과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은 포로 귀환자에게 성전이 가진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성전에 임한 영광(1-2)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성전 완공 후, 낙성식(봉헌식)이 열렸습니다. 먼저 언약궤를 지성소로 모시는 안치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마무리되자,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준비한 제물을 삼키듯 태워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전 봉헌식과 솔로몬의 기도를 받으셨다는 의미로, 성전 낙성식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우는 사건은 성경에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인구조사로 범죄한 다윗이 모리아 산,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사서 화목제를 드릴 때 불이 내렸습니다(대상 21:26).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대결할 때도 불이 내려왔습니다(왕상 18:38). 모두 하나님께서 제사를 열납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성전에 임한 영광 앞에 아무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조차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했던 모세조차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죽기 때문이었습니다(출 10:28).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출 3:1-6; 단 8:17). 이것이 사람의 본래 위치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는 심판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에 임하신 사건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자비와 은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다가오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택하지 않으셨다면, 그곳은 결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겠다 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을 성전이나 이 땅에 가둘 수 없습니다(대하 2:6; 6:18).
영광의 반응(3-8)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불이 내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본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두려움(출 3:5)과 놀라움, 경외로 땅에 엎드렸습니다. 성전 바깥 뜰의 삼면은 돌이 깔려 있었는데(대하 7:3; 에 1:6; 겔 40:17), 그곳에서 그들은 머리가 닿도록 몸을 굽혀 경배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 감사하며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 5:13; 시 106:1 136:1)"라고 찬양했습니다.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로, ‘은혜, 인자, 충성, 신실’이란 뜻이고, '선하심'은 '토브(טוֹב)'로 ‘좋은, 선한’이란 뜻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로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4-7) 이에 왕과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하게 하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솔로몬이 지은 놋 제단이 능히 그 번제물과 소제물과 기름을 용납할 수 없음이더라
성전 봉헌식의 마지막 감사제가 행해졌습니다. 소 이만 이천 마리와 양 십이만 마리가 드려졌습니다. 왕과 백성이 아낌없이 바친 제물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십이 일 동안 하루 열 시간 제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 분에 스무 번씩 계속해서 드려야 제물을 모두 바칠 수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전 앞에 설치된 놋 제단만으로는 쉬이 감당할 수 없는 양입니다. 솔로몬 왕은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여 그곳을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리는 임시 공간으로 추가 사용합니다.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를 사람들과 나눠 먹는 제사인데, 이때 나온 음식은 낙성식 축제와 이어지는 절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제공된 것으로 보입니다.
봉헌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서서 주를 찬양했습니다. 한쪽에서 제사장들은 이십사 반열로 도열하여 나팔을 불었고(대상 15:24 참조), 다른 한쪽에서는 레위인 음악가들이 악기를 들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악기는 다윗 왕이 여호와께 감사하려고 만든 것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알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주 앞에 서서 성전 가운데 임하신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정결과 은혜로 이끄시는 하나님(8-10)
(8-9)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 동안 절기를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심히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제단의 낙성식을 칠 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 일 동안 지키니라
성전 낙성식은 칠 월 팔 일부터 십사 일까지, 칠 일간 지켜졌습니다. 그 후, 칠 월 십오 일부터 이십일 일까지, 칠 일간 초막절(장막절), 이십이 일에는 성회가 행해졌습니다. 이렇게 연속되는 절기는 백성들이 성전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합니다.
초막절은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민 29:12–40; 신 16:13). 백성들은 초막을 짓고 일주일간 거주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인도하여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 날에는 노동이 금지되었고, 첫 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가 열렸으며, 매일 화제가 드려졌습니다(레23:34–43). 이 기간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였으나 은혜로 구원받았음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성전에 보이신 영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초막절 외에 지켜진 절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낙성식 중간에 행해진 대속죄일(욤 키푸르)입니다. 이는 일 년에 한 번 칠 월 십 일에, 대제사장만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에 들어가 온 이스라엘의 죄를 씻기 위해 피를 뿌리는 절기입니다. 이 날, 성도는 자신의 온전하지 못함과 지은 죄로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대속죄일이 낙성식 가운데 있기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경이로움과 기쁨, 즐거움을 누리다가 죄를 씻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아래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 죄인이자 자격 없는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정결이 빠진 임재와 영광은 없다."
온 이스라엘이 모여 낙성식과 대속죄일, 초막절을 함께 지켰습니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란 표현은 이스라엘 전 지역을 의미합니다. 큰 무리가 모였다고 하는데, 장막절이 순례 절기(레 23:33-43)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방문한 순례객들로 붐볐고, 다수가 낙성식에 참여했을 겁니다.
(10) 일곱째 달 제이십삼일에 왕이 백성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일곱째 달 제이십삼 일에 솔로몬 왕은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들은 기뻐하고(שָׂמֵחַ) 마음에 즐거워하며(טוֹב)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솔로몬에게 임했던 은혜를 백성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과 은혜로 백성들의 심령은 요동쳤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만 보였습니다. 그들은 응답하시는 하나님 앞에 전율했습니다. 과거 조상의 하나님이 현재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 모든 일이 성전에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히브리어로 보면 ‘토바(טוֹבָה)’로 형용사 ‘토브(טוֹב)’의 명사형입니다. '선함, 좋음, 신실'이란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백성들이 즐거워하였더라'에서 '즐거워하였더라'도 ‘토브(טוֹב)’입니다. 의미를 풀어보면, 하나님이 베푸신 ‘토브(טוֹב)’의 은혜가 백성들을 ‘토브(טוֹב)’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함(즐거움)이 백성들에게 즐거움(선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통한 감격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파괴 되었다가 다시 세워진 성전이 눈으로 보기에는 초라하여도,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임하는 곳이다. 과거 조상의 하나님을 현재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은혜의 통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한 사람은 다릅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깊은 감동과 눈물의 순간이 됩니다. 십자가를 볼 때 눈물을 흘려야 진정한 목회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 십자가를 볼 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죽음을 묵상해 보아도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감동을 느껴보고자 오랜 시간 발버둥쳐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가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는 하나님만 보였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저는 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자격없고 부족하다는 걸 깨달으니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의 영광을 발견하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달으면 우리 마음도 달라집니다. 어쩌면 예배의 감격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거하길 바라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반응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항상 만족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때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라" 또는 "현재에 만족하라"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흠뻑 젖으라! 성전에 임하신 영광과 위엄을 맛보라!" 하나님은 하늘이 주는 은혜로 우리 인생을 보게 하시고, 믿음의 역사 가운데로 이끄십니다. 그렇게 거룩과 은혜로 서는 길로 초대합니다.
이번 한 주, 주의 영광 앞에서 경배드림으로 은혜와 복음, 섬김과 헌신의 계주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배턴터치를 담당하는 교우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부족한 자에게 영광을 보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성전에 임하신 영광과 위대함 앞에 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주어지는 은혜에 흠뻑 취하게 하시고,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옵소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의지할 자가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주가 주시는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영광을 보이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영광이나 은혜에 압도된 경험이 있다면 서술해 주세요.
2. 지금, 하나님이 우리 눈앞에 계신다면 어떨 것 같나요?
3.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4.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작성: 김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