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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개최하면서 대회 주관자가 필요했다. 학교의 힘만으로 해결이 안 됐다. 산악부에 요청했다. OB로서도 구심점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상황이었다. 재학생 산악부 창립멤버였던 서정길(20회), 박삼윤(23회), 김봉국(24회), 이창수(〃), 배태복(25회) 등이 나서 68년 능인고 OB 산악부를 창단했다. 이름은 불교 학교를 강조하기 위해 보리수산악회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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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0년 제35회 교내 등행대회를 팔공산에서 개최하기에 앞서 참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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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산악회가 교내 등산대회를 주관했다. 주최는 학교이지만 행사 경비와 모든 뒤처리는 전부 재학생 산악부와 OB인 보리수산악회 담당이다. 매년 1,500만 원 소요되는 경비를 전부 보리수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보충한다. 대회 전날부터 재학생과 OB들이 모든 음식과 행사준비를 도맡는다.
산악부는 OB 산악회의 공식 출범으로 더욱 힘을 얻어 각종 대회에서 혁혁한 성적을 올렸다. 출전한 거의 모든 대회를 3연패해서 우승기를 영원히 가져왔다. 70년 학교에서 산악부 명예를 드높이는 사건이 생겼다. 이우출 교장 선생이 교무회의에서 학교에 부서가 너무 많아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했다. 악대부, 핸드볼부, 축구부 등이 이 때 없어졌다. 학교 교기인 정구부와 산악부만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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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년 하계 바윗골 암벽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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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들어 학교의 공식적 지원에 힘입어 무서운 성적을 발휘했다. 74년 제8회 대통령기 전국 등산대회 우승, 동국대 이사장기 쟁탈 전국 등산대회 우승, 대산련 주최 하계산간학교 최우수 리더상, 60km 극복등행대회 3위 등을 차지했다. 대통령기 대회는 이후 내리 3연패하는 쾌거를 세워 대구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로 환영받았다.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멤버가 30회 정상모 강철규, 31회 권창대 이진수, 32회 윤태한 박영근, 33회 윤해보 김진문, 34회 주호영 허경달 등이었다. 주호영은 현역 국회의원이면서 보리수산악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도교사는 산에 전혀 문외한이던 류종환 선생이었다. 류 교사가 학생들을 이끌고 산에서 훈련하다 질문을 던졌다. “산에서 맹장염 걸리면 어떻게 하나?”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면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문외한이 아니더라도 대답 못할 질문인데, 산에 다니지 않던 선생님이 물으니 더더욱 웃음보가 터졌다. 열정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준우승 하자 학교선 환영, 선배들은 기합
최전성기를 이끌던 30회 정삼모는 영남대 산악부를 크게 활성화 시킨 장본인이고, 33회 김진문은 영남공전 산악부 창립 특기생으로 들어갔다. 이후 후배들을 매년 한 명 이상 특기생으로 받았다. 32회 박영근은 그의 아들도 대를 이어 능인고 산악부에 들었다. 아들은 지금 입대해 있는 박현명(62회)이다. 집안에서는 부자지간이지만 보리수에서는 형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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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2008년 1월 보리수 지리산 월례산행. / 87년 7월 재학생 설악산 하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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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우승과 축하 환영 퍼레이드는 78년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계속됐다. 영광은 후배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79년 입학한 김영호(38회)는 81년까지 3년 동안 우승을 한번 못하고 준우승과 3위만 수차례 했다. 그것도 우수한 성적이었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환영행사를 했다. 그러나 선배들은 성에 안찼다. 학교 환영행사가 끝나자마자 따로 불러 전부 꿇어 앉혔다. 회식도 없었다. 장시간 기합으로 대신했다. “한 마디로 우승과 준우승은 천지차이였다.” 그의 뼈아픈 경험담이다.
이들의 끈끈한 정은 결혼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누군가 결혼하면 신랑 친구, 신부 친구들 전부 모며 보리수산악회 회원들과 먼저 1박을 보낸 후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다. 지금까지 불문율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48회 정종엽은 2년 선배와 같은 날 결혼식을 올렸다. 팔공산에서 선후배 신랑 친구들과 두 명의 신부 친구들이 밤새도록 성대하게 피로연을 가졌다. 다음날 신혼여행 가서 쌍코피를 흘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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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크로스대회 참가 후 익산 맥문동산악회와 자매결연 합동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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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의 산악부는 대학입시 영향과 학부모들의 반대로 점차 없어졌으나, 능인고는 더욱 많은 재학생들이 명맥을 이었다. 단지 요즘은 세태를 반영해서 재학생들을 데리고 산행가기 전에 부모님 세대의 대선배들이 직접 학부모에 전화를 해서 허락을 받는다. OB들이 지도교사와 함께 재학생을 데리고 월례산행을 한다. 사고 터질 일이 없다.
3학년들에게는 공부하라고 닦달이다. 대학 합격하고 졸업하는 시기에 맞춰 성대하게 회식을 열어준다. 옛날엔 기합으로 선후배 관계를 유지했지만 요즘은 화합과 끈끈한 정으로 유대를 다진다. 또 있다. 재학생 1명에 분기별 장학금과 학생연맹에서 5명 가량 보내는 일본 산행 경비 일체를 부담한다. 교내 등산대회에, 장학금에, 해외 산행경비까지 지원해주니 재학생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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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88년 재학생 한라산 동계훈련. / 89년 60km 극복등행대회. 고등부 구보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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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 년 전 인공암장 붐이 일었다. 가만 있을 OB들이 아니다. 교내에 인공암장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학생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거부했다. 교장이 세 번 바뀌고 설득에 성공했다. 재단 이사장까지 승낙을 얻었다. 설치만 하면 된다. 기금도 모두 모아놓은 상태다. 김태욱 교장과 서일호 체육부장, 박성재 지도교사 등의 적극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올 상반기 중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김봉국 보리수 회장은 “능인고 산악부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후배들이 영원히 맥을 잇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글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보리수산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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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
“보리수 영광을 위해서…사회와 다른 또 다른 세계의 경험”
친형제는 1년에 5~6회, 선후배는 1달에 서너 번 봐
대구는 역시 지방 산악운동을 주도했던 지역다웠다. 고교 산악부가 전국 어느 도시보다 많고, 아직 그 열기를 느낄 만큼 활동적이다. 남고뿐만 아니라 여고도 많다.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대구 능인고 산악부 출신들인 보리수산악회 10여 명을 지난 4월5일 동창회관에서 만나 다양한 얘기들을 3시간 남짓 들었다. 많은 에피소드와 경험담을 들으면서도 모두들 오직 한 가지 결론은 끈끈한 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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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대를 뛰어넘어 능인고 산악부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창희, 최복식, 김영호, 정백영, 박삼윤, 김봉국, 윤태한, 김영동, 이원호, 정종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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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모르고 다니다가, 그 다음엔 좋아서 다녔고, 지금은 다니기 싫어도 후배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이젠 나이도 많이 들었으니, 능인고 산악부와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후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싶은 마음뿐이다.”-박삼윤(23회·전 동창회장 겸 보리수 회장)
“후배를 위해서 내 인생을 다 바치고 싶을 정도로 능인고 산악부가 자랑스럽다. 박삼윤 선배 따라서 산에 올랐지만 많은 후배들과 산으로 맺은 인연은 심산유곡만큼 깊다. 젊은 후배들이 환갑을 챙겨줄 정도이니, 어찌 인연이 아니겠나.”-김봉국(24회·전통매화당랑권 회장, 현 보리수 회장)
“친한 친구가 있어 산악부에 가입했다. 지금은 정 때문에 다닌다. 몸이 무거워 산에 가는 건 힘들지만 선후배들 만나 한 번씩 가는 산행은 옛날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서 좋다.”-김영호(38회·유일섬유 대표)
“달리기 잘 한다고 해서 등행대회에 억지로 끌려갔다. 그게 나에겐 산과 선후배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선후배로 만나다, 형 동생으로 바뀐 게 지금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한 사이가 됐다.”-최복식(40회·덕운광고 대표)
“산행은 나를 천천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성찰, 사색의 시간을 주고 나를 성숙시켜주는 게 바로 등산이었다. 친형제는 1년에 많이 봐야 5~6번이지만 보리수는 1달에 3~4번 본다. 더 끈끈해질 수밖에 없다.”-김영동(42회·유원산업 대표)
“개인적으로 산이 좋아 산악부에 들었다. 힘들고 가기 싫을 때, 왜 산에 가야하는지 모를 때도 언뜻 깨면 벌써 산에 있었다. 지금은 선배를 하루에 한번 보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이 됐다.”-정종엽(48회)
“선배들한테 워낙 많이 맞아 안 가려고 했는데도 이미 산에 가 있었다. 사실은 아직도 왜 내가 산에 가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건 필연이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편하고 좋다. 능인고 산악부 출신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이원호(48회)
“선배들이 가입하라고 해서 들었다. 정말로 그냥 갔다. 천천히 경치 구경하고 산에 다녀보니 좋았다. 선배들이 기합을 많이 줘서 졸업 후 안 가려고 했다. 군 제대 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선배를 만나 끌려 다시 나가게 됐다. 사회생활에서 느끼기 힘든 인간적인 관계의 경험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나의 밑천이다.”-김창희(51회·AIG생명 마스터플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