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씨는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졸업한 지 56년이 지났다. 젊은 시절에도 간간이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정울 나누곤 했었다. 두 사람은 고교동창이라는 기본 값에다 종교가 가톨릭이라는 동질감이 두 사람의 믿음을 돈독하게 하는 데 작용해 왔다고 본다. ㅇ씨는 대구 MBC에 근무했다. MBC의 판촉물로 나오는 사은품을 가난하게 사는 우리에게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작은 것이지만 보내주곤 했다. 자신의 재량권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형편이 자기보다 어렵게 사는 친구 (남편)생각이 났나 보다. 아들이 어릴 적이었다. 어린이 만화 시계가 흔치 않았을 때에 MBC로고가 새겨진 어린이 시계를 우리 아들 손목에다 손수 끼워줬다. 아들이 날아갈 듯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년퇴직을 했다. ㅇ씨는 퇴직 후에 식당을 개업했다. 슬하에 건강하고 똑똑한 남매를 키우면서 장애자를 입양하는 ㅇ씨에게 나는 외경감을 느꼈다. ㅇ씨는 교구평신도회장 직분으로 봉사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 가톨릭 신자 고객들이 많았다. 우리 집 텃밭 채소가 유기농 작물인 고로 한 번 씩 오면 차떼기로 해갔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말려 놓으면 몽땅 쓸어 갔다. 무말랭이, 가지말랭이, 묵나물 등을 그분 내외가 가져가면 나는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내 유기농법을 믿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젊었을 때 소소하게 진 빚을 일부나마 갚는 시원함이 더 컸었다.
식당은 깔끔하고 아담하고 평화로웠다. 우리 내외도 몇 번 정도 집안 행사를 거기에서 치루었다. 왜 제주도로 이사 갔는지 확실하게 모른다. 착실하게 잘 되던 식당을 미련 없이 때려치우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밀감 농사를 친환경으로 짓고 있다고 한다. 아동안전지킴이 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택배가 와 있었다. 뼈를 발라낸 고등어가 한 박스였다. 발신자가 제주의 그분이었다. 고향에 계신 노모와 형제(친정언니도 포함)에게 나눌 양을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겨울철엔 주근깨 투성이의 친환경 밀감이 바다 건너 택배로 온다. 우리 남편도 우량 참외 한 박스로 보답을 할 터이지. 진실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는 나무와 같다.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라는 에머슨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