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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음[잘못된 표현 전간(全僩)→바른표현 전한(全僩)]
고려사 기록을 번역하는 과정의 오류를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바로 잡았습니다.
즉, 의주부사를 역임했던 전한(全僩)을 번역자의 오류에 의하여 전간(全僩)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어 제가 오류신고 및 정정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잘못된 표현 전간(全僩)→바른표현 전한(全僩)으로 바꾸었습니다.
◎ 오류 신고 및 정정요청
한자 사전에 의하면 [僩 굳셀 한] [僴굳셀 한]입니다.
사람인변에 한가할 한閒 자를 써도 굳셀 한이고,
사람인변에 사이 간間 자를 써도 굳셀 한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全僩 은 [전한]으로 번역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전간
수정요청: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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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 신고 및 정정요청하기 전의 상황
조숙창[ 趙叔昌 ]
조숙창(趙叔昌)1)은 평장사(平章事) 조충(趙沖)의 아들이다. 고종(高宗) 18년(1231), 방수 장군(防戍將軍)에 임명되어 함신진(咸新鎭 :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을 지켰는데 몽고 원수 살리타이[撒禮塔]가 침공해 와 진(鎭)을 포위한 후, “나는 몽고 장군이다. 너희들은 빨리 항복하라. 불응하면 모조리 죽일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부사(副使) 전간(全僩)이 겁을 집어먹고 조숙창과 함께, 성을 나가 항복하면 성안의 사람들은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의논했다. 조숙창도 옳은 말이라 여기고 마침내 성을 내어주고 투항하면서 몽고인들에게, 자신은 원수(元帥) 조충(趙沖)의 아들로 부친이 전에 몽고 원수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전간은 창고의 곡식을 내어 몽고군의 군량을 대어주었으며 조숙창은 삭주(朔州) 선덕진(宣德鎭 :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군 선덕)에 글을 보내 투항을 권유했다.
몽고인들은 가는 곳마다 먼저 조숙창을 시켜, “진짜 몽고군이니 빨리 나와 항복해야 한다!”고 외치게 했다. 철주성(鐵州城 :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군)에 당도한 몽고군은 더욱 세차게 공격해 판관(判官) 이희적(李希績)을 죽이고 마침내 철주성을 철저히 짓밟았다.
잠시 뒤 함신진(咸新鎭)으로부터, 조정에서 배를 보내주면 몽고인 소미생(小尾生) 등을 몰살시킨 뒤 성 사람들을 다 데리고 수도로 가겠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에 김영시(金永時) 등 30명을 시켜 배를 준비해 그리로 가게 했는데 과연 몽고인들을 거의 다 죽였으나 소미생(小尾生)은 먼저 알고 도망쳐버렸다. 전간은 이민(吏民)을 거느리고 신도(薪島 : 지금의 평안북도 통천군 비단섬)로 입보(入保)하였는데 뒤에 가족을 데리고 배편으로 수도로 돌아오다가 익사했다. 조숙창(趙叔昌)은 벼슬이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으나 필현보(畢賢甫)의 반란에 연루되어 큰 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참고자료
한자 원문 보기 : 조숙창
각주
1 조숙창 : 본관은 횡천(橫川 : 지금의 강원도 횡성군)이다. 조숙창의 세계는 『고려사』 권99, 열전12 조영인전과 『고려사』 권103, 열전16, 조충전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조숙창 [趙叔昌] (국역 고려사, 2006.11.20, 경인문화사)
조숙창
[ 趙叔昌 ]
趙叔昌, 平章事冲之子. 高宗十八年, 以防戍將軍, 在咸新鎭, 蒙古元帥撒禮塔來, 圍鎭曰, “我是蒙古將也. 汝可速降, 否則屠之.” 副使全僩懼, 與叔昌謀曰, “若出降, 城中之人, 猶可免死.” 叔昌然之, 遂以城降, 謂蒙古人曰, “我趙元帥冲之子. 吾父曾與貴國元帥, 約爲兄弟.” 僩發倉, 餉蒙古軍, 叔昌爲書, 諭朔州宣德鎭, 使迎降. 蒙古人所之, 令叔昌先呼曰, “眞蒙古也, 宜亟出降!” 至鐵州城, 蒙古攻之愈急, 判官李希績死之, 蒙古遂屠其城. 未幾, 咸新鎭報于朝曰, “國家若遣舟楫, 當盡殺蒙古人小尾生等, 卷城如京.” 乃命金永時等三十人, 具舟楫以往, 果殺蒙古人幾盡, 小尾生先覺亡去. 僩率吏民, 入保薪島, 後挈家乘舟, 還京溺死. 叔昌官至上將軍, 畢賢甫之反, 辭連, 斬于市.
[네이버 지식백과] 조숙창 [趙叔昌] (국역 고려사, 2006.11.20,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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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반영 후의 상황
국역 고려사 : 열전
조숙창
[ 趙叔昌 ]
조숙창(趙叔昌)1)은 평장사(平章事) 조충(趙沖)의 아들이다. 고종(高宗) 18년(1231), 방수 장군(防戍將軍)에 임명되어 함신진(咸新鎭 :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을 지켰는데 몽고 원수 살리타이[撒禮塔]가 침공해 와 진(鎭)을 포위한 후, “나는 몽고 장군이다. 너희들은 빨리 항복하라. 불응하면 모조리 죽일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부사(副使) 전한(全僩)이 겁을 집어먹고 조숙창과 함께, 성을 나가 항복하면 성안의 사람들은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의논했다. 조숙창도 옳은 말이라 여기고 마침내 성을 내어주고 투항하면서 몽고인들에게, 자신은 원수(元帥) 조충(趙沖)의 아들로 부친이 전에 몽고 원수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전한은 창고의 곡식을 내어 몽고군의 군량을 대어주었으며 조숙창은 삭주(朔州) 선덕진(宣德鎭 :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군 선덕)에 글을 보내 투항을 권유했다.몽고인들은 가는 곳마다 먼저 조숙창을 시켜, “진짜 몽고군이니 빨리 나와 항복해야 한다!”고 외치게 했다. 철주성(鐵州城 :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군)에 당도한 몽고군은 더욱 세차게 공격해 판관(判官) 이희적(李希績)을 죽이고 마침내 철주성을 철저히 짓밟았다.잠시 뒤 함신진(咸新鎭)으로부터, 조정에서 배를 보내주면 몽고인 소미생(小尾生) 등을 몰살시킨 뒤 성 사람들을 다 데리고 수도로 가겠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에 김영시(金永時) 등 30명을 시켜 배를 준비해 그리로 가게 했는데 과연 몽고인들을 거의 다 죽였으나 소미생(小尾生)은 먼저 알고 도망쳐버렸다. 전한은 이민(吏民)을 거느리고 신도(薪島 : 지금의 평안북도 통천군 비단섬)로 입보(入保)하였는데 뒤에 가족을 데리고 배편으로 수도로 돌아오다가 익사했다. 조숙창(趙叔昌)은 벼슬이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으나 필현보(畢賢甫)의 반란에 연루되어 큰 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참고자료
한자 원문 보기 : 조숙창
[네이버 지식백과]조숙창 [趙叔昌] (국역 고려사, 2006.11.20,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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