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여! 자유여! 나의 친구들이여!
音波 吳銀鎬
한 동안 쭉 굶었지
쪼록 쪼록 소리 났었지
밤이면 담을 넘어
부엌으로 향 했었지
찬장 문을 활짝 열고
혹시 찬반 없을까?
기웃기웃 했었지
두리 번 두리번 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화풀이를 달님에게 했었지
1979년
난 시청앞에서 선배들을 따라 동기들과 민주화 운동을 하다 백골단에게 붙잡혔고
남대문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영등포 경찰서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기 일보직전 이었다
당시 신촌역 부근에서 수없이 끌려온 우리 또래들의 터지고 찢어진 얼룩진 모습을 보고 우린 기겁을 했고
난 운이 좋아 울아부지와 잘 알고 지내던 형사의 도움으로 거금 삼만원을 받아 가지고
어수선한 틈을 타 동기 둘과 화장실 담장을 넘어 서울역으로 달려가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야밤 도주를 하였고 대구 달성군 비슬산에 머물며 숨어 지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긴장하고 새우잠을 자면서 지낸 시간이 몇 일인지 조차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었다
몇 날을 굶었는지
무엇을 언제 먹었는지 가물가물하고
배가 고프니 잠이 밀려와 얼마나 깊은 잠을 잤을까?
방문 앞에서 두런두런 수상한 소리에 잠을 깨어 밖을 살펴보니 노인과 젊은 아낙들이 지서에 "신고해"라는 소리에
난 눈가에 두텁게 자리 잡은 눈껍 찌꺼기를 떼어 내지도 못하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음으로 나는 대충 가방을 챙기고 외곽 산등성이를 넘어 도망을 하고 말았다
잠시후 산 위에서 바라 본 도로에는 비상 검문 초소가 생기고
도로 좌우에 늘어선 순찰차와 군경들의 검문 검색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와
편안하지 못한 나의 삶을 살펴 보니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에라이" 이 더러운 인간이라는 이기주의적인 피조물들아!
모든 자연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약간식 비툴어질 줄도 알고
계절에 따라 자연에 순응해 자신만의 고유 색상 번호를 암호로 남기어 인간들을 깨우치게도 하는데
이도 저것도 아닌 인간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음을 비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각자 주여진 임무는 다를지라도
장애물이 있으면 서로 힘을 모아 거두어 내고 뿌리나 가지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너그러움을 베풀어야 하거늘
인간이라는 동물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얄팍한 변화에 따라 그리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난 그런 비약한 자들을 언제까지나 분석 대상으로 경계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이 비참한 오늘을 어찌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약자에게는 더 강하게 군림하려고 끝 없는 복종만을 강요하며
조금이라도 눈을 치겨 뜨면 두들기고 부수어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고만 하는 것에
어찌 감히 최악의 발악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흑을 흑이라 말하지 못하고
백을 백이라 말하지 못하며 산다면
과연 살아 숨쉴 수 있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순리에 의한 순응보다는
몇몇 권력자들에게 아부와 충성으로 만행을 일삼는 꼭두각시들의 놀음에
나의 그 어떠한 생각의 모든 것을 맟추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인간은 못말리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피조물인가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끝 없이 펼쳐진 산능성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빛바랜 햇살의 전령들이 반갑게 손짓을 하지만 힘이 들었던지 한참을 올라가고 또 한고개를 넘어서려는 순간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자연의 위대함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지난 시간 동안의 햇살을 입에 가득 베어물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뭇잎들이
햇살의 도움으로 그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모든 이파리들이 그 나쁜년 궁뎅이 처럼 흔들어 가며 환영 인사를 하는데
참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만 주저 앉아 엉엉 소리내며 펑펑 울고 말았다
그 고운 햇살에
그 보드러운 바람소리에 자신의 몸체를 드러내고
자신의 몸으로 햇살을 삼켜버리려 좌 우로 펼쳐진 자연의 줄기 세포는 자연만의 가장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온 갖 열매를 잉태하려 태양을 삼키려 또아리를 튼 용의 모습으로 비뚤어진 산 길을 따라
미끄러지 듯 걸어 가는 그 모습에 감탄에 경악을 하니 그 경치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석양을 바라 보며 얼마나 넋을 놓고 울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넘고 비탈진 계곡과 바위를 넘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길어진 햇살의 배려 덕분에 아직도 푸르름을 비추이고 있었다
1980년대
그해 5.17 계엄 확대로 노동민주운동은 처참하게 짓밟혔고
민주화의 봄은 침묵속에 신군부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민주노조 및 민주화투쟁을 주도 했던 간부들은 신군부의 정화대상자 명단에 올라 제거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계엄사 및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으며
일부는 산별적으로 격렬하게 저항을 했지만 힘의 논리에는 역부족이었으나
학생출신 노동자들과 재결합하여 새로운 민주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들어갔으며
한국현대사의 1980년대 학생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원은 수 십 만명 이었으며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일로 그중 1958년생들의 희생이 민주화에 기인하는 바가 가장 컷다
그런 과정속에서도 언론은 떳떳하지 못했고 비양심적이었으며 기생충같은 존재이었다
어느 덧 세월은 흐르고 흘러 내 나이 칠성판을 주문해야 할 나이....
2019년
물론 지금도 언론은 기생충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
12월
대한민국의 잘못된 국가 권력에 항거하며 투쟁하던 곳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계절의 순환에 의해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도심의 골목길까지 우렁찬 목소리의 함성이 귓가에 쟁쟁하던 그날
내가 알고 있던 누이의 은은한 목소리가
아직도 나의 마음을 장악하고 자유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날 방송이란 최고 권력에 기생해서 에매모호한 전파로 알권리를 침해하던 시절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였고
그 시절에 눈으로만 말하였던 그러한 날들이었지만
이제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며
이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녹여주지 못함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젠 어느 덧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강물처럼 빠르게 흘러 갔어도 변하지 않은 저 햇살 만큼은
누이가 살던 동대문 담장을 넘어 월담을 하여야 할텐데....
아직도
그 긴 그림자에 꼬리를 잡히어 쩔쩔 매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슬퍼 눈물이 나는 것을 참지 못 하겠다
난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사면으로 자유스런 몸이 되었지만
아직도 영등포 구청에서 호적을 열람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빨간줄로 표시되어 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데모 주동자로 몰린 것과 부모님 고향이 북쪽이라는 것과
그래서 종로 경찰서 방범과장과 수사 게장이
내가 결혼하면 처갓집이 자동 보증인이 되어 빨간줄을 지워준다 하고서는
아직도 담당자가 누군지 모른다며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
나도 이젠 지칠대로 지쳐 내 멋대로 하고 살며 신경쓰지 않는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우리 아들이 GOP 수색대 특수부대에서 근무를 했고 무사히 제대를 했다
나도 신문사 편집국장 일을 했지만 더 이상 감시대상은 아니 었는지 감시조가 철수
조금은 자유로움을 맛보며 살았던 것이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였다
1980년대 처절하게 부르고
또 외쳐 보았던 꿈이여! 자유여!
자유가 그리워 하늘 바라보면
난 문득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네
우리들 마음속 하얀비둘기 너를 생각하다 가슴이 울적할 때 마무리 짓는 말
사람은 말이야
저마다 나름대로 몫아치를 챙기고 나온듯 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귀하게 물려받은 숨소리로
혼자가 아닌 모두의 삶의 질을 향하여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하였던 우리들....
그날 누이는 사홉들이 소주와 새우깡을 사가지고 오면서
"먹고 힘내요“라며 웃어 주었지
내일의 꿈을 품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형‘ 소주 한잔어때요“ 하며 날 보고 쏟아 내던 그렁그렁 하던 그 눈물방울들....
그 강하던 마음 덩어리들은 어디에 기대어 살라고
이 어려운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고 붙들고 살았던 우리들의 누이여!
우리는 소주를 나발 불면서
그래 팔자라면 지지리도 못난 팔자라 했지
아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궁상스런 이 고단한 삶의 투쟁 현장에서
화려한 자태로 똥 폼을 잡은 권력을 가진 위선자들이
어찌 누이와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울분을 토하며 실컷 울어대던 그런 날이 어제 같은데....
혜화동 거리에 서있는 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1958년에 태어난 그 시대에 잘못 태어난 젊은이들은 미군부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청바지에
푸르디 푸른 물 빠진 초록색 티셔츠 한 장 그리 걸쳐 입고 산업현장으로
새마을 사업에 동참한다는 명분으로 바쁘게 뛰었지만
현실은 야속하게도 어찌 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를 풀어주지 못하였는지...
“그래”
지금 생각하면 운명도 팔자도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라던데
나 역시 아직도 호적엔 빨간 줄이 밑그림을 치고 있으니 언제나 자유가 구속을 풀어 줄 까 나?
아무리 떠들어도 몰라주는 서럽고 슬펐던 우리들 마음
2019년 종로 하늘의 희뿌연 모습을 다시 올려다보니 많이 마음이 아프다
진보니 보수니 엿장수 마음대로 인 정치권력
시시각각 변하는 대한민국 정치에 혐오감을 강하게 느끼지만
이미 정신은 누렇게 녹이 슬어 이젠 치유하기도 힘이 들겠지만
"그래" 은호야" 너라도 마음 오지게 먹고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그날이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참 좋겠다는 기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