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장마철이 오기 전 엄청난 가뭄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운남 맹해에서는 지난 겨울부터 우기가 올 때까지
이곳보다 훨씬 더 가물었던 모양입니다.
좋은 차맛을 보기 위해서는 가뭄이 나쁘지 않지만
현지민들에게는 아마도 엄청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을 알기에
더 죄송하고 또 한편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대해야 겠다 생각해 봅니다.
호암선생이야 늘 수고롭게 바삐 다니시는 분이기에
예년과 비슷하게 한국에 차가 들어왔겠지만
이런 저런 바쁜 일로 시간이 여의치 않던 필자는
몇 일 전에서야 반펀을 받았답니다.
차 친구들도 바빠서 내일은 되어야 올텐데
그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 편을 가지고 출근합니다.
바쁜 일이 어느정도 정리 되고난 후
혼자만의 차맛을 볼 준비를 합니다.
이전의 진기진 선생의 친필 '호암다도'로고가 붙은 차에
'2012 班盆(반펀)'이라 적어 두고는
현지에서 만들어진 전통종이에 쌓여진 차를 풉니다.
그 모습 하나 하나를 즐기고픈 맘에 유리다호에 차를 넣습니다.
진하게 마시는 분들과 먹던 것과는 달리
평소의 절반쯤으로 양을 조절해서 넣습니다.
당장 맛을 알아내기 보다는 혼자서 은은히
그 맛을 찾아내면서 즐기고픈 맘에섭니다.
다른 분들은 첫탕은 세차하여 버리지만
저는 호암이 만든 차만은 세차물로 버리지 않고
첫탕부터 즐깁니다. 첫탕은 그 향이나 맛, 기운이
본인의 경험으로 봤을 때 가장 바르고 무겁기에
도저히 세찻물로 버릴 수가 없는 아까움과
호암의 정성과 정갈함으로 만든 차인줄 익히 알기에 그렇게 합니다.
2리터의 물을 끓여 첫탕부터 버리지 않고 차를 우리면
다른 분들께서 다관으로 사용하는 백자 개완을 찻잔으로 쓰기에
2잔에 나누면 7번 정도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왔던 터여서 일까?
양을 조절해서 넣어서 그랬을까?
금년 반펀의 첫잔은 마치 녹차의 은은함과
부드럼운 느낌에 살폿한 허브향까지
더하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역시 30초정도만 우려서 차를 내립니다.
평소 여러 다우님들이 오셨을 때도 성격 급한 제가
거의 대부분 그정도의 시간으로 차를 내렸기에
그 때와 똑같은 시간을 두고 차를 우렸습니다.
역시 2번째 탕은 좀 더 진하게 나옵니다.
그 맛은 좀 더 진하게 나오나 여전한 부드러움과
상큼함이 코를 살짝 열리게하며
가슴을 스쳐지나가는 은은함을 주고 있습니다.
욕심을 내었던 대로 두 잔씩 가득 내어서는
반 잔씩을 따로 마시지 않고 옆으로 정열합니다.
하나 하나 함께 탕색을 비교해 보고픈 맘에서 입니다.
사실 탕색이야 별 의미을 두지 않고
대부분 그 맛과 향을 즐기는 편인데
오늘은 살짝 시각적 효과를 보태고 싶어진 것입니다.
사무실에 있던 조금 더 작은 백자 잔에 따로 부어 진열합니다.
이 잔도 사실 보통 찻 자리에서 나오는 잔보다는 2배 정도의 양이 들어가는데
사무실에 있는 잔을 모두 활용하다 보니 이렇게 사용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오늘 마시는 차중에
이 세번째 차가 가장 찐했습니다.
마치 이전의 차회에서 오늘 량의 두 배쯤 넣고
우려내어 마시는 것처럼 진한 맛이 올라왔지만
그 보드라운 감촉과 혀 끝의 쓴 느낌이
목젓을 타고 내려가면서 따뜻함을 넘어선
묵직하고 꽉 찬 그 느낌.
어쩌면 반펀을 즐기는 다른 분들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그 느낌, 예년의 그 느낌보단 살짝 더 은은하여
목 뒤에서 후두로 올라오는 따뜻한 향기는
눈이 살짝 멍멍해지는 듯하기도 하고
숨을 들여 쉬기라도 하면서 금새
가슴이 꽉 차오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더니
아직은 가녀린 소녀의 눈짓처럼
마냥 설래는 맛을 함께 간직하고 있어서
속으로 '이야 새롭네'를 되뇌일 수 밖에 없게 합니다.
다시 우려 낸 네번째 탕을 마신 후부터는
입안에 온통 단맛이 남습니다.
어떤 햇보이차도 이렇게 단맛이야 남지만
그냥 단맛을 넘어서 상큼한 달콤함을
금년의 반펀은 유난히 더 많이 냅니다.
'이 차는 벌써부터 이렇게나 달아지는구나'하면서
입술을 핱으니 입안과는 또 다른
포근한 달콤함이 혀 끝에 남습니다.
사진을 찍어나간다는 것은 차를 음미하는 즐거움을
많이도 앗아가서 내심 불편했지만
이렇게 차맛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따를 것을 생각하며 급히 급히
다음 차를 또 우려내게 됩니다.
다섯 번째 탕부터는
그 다양한 맛들은 조금씩 옅어지는데
숨을 쉴 때마다 달아진 목젓 뒤에서
올라오는 향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디까지 단 차향이 배인걸까요.
어쩌면 식도인것도 같고
어쩌면 위장벽 사이사이인 것도 같고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어디쯤에서
조금씩 조금씩 연동질 할 때마다
올라오는듯한 그 아련하고 달달한 향내.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창작을 하나 싶을 정도로
써내려가는 느낌이 과하다 싶은데도
사실 그대로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진하게 향이 올라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섯번째 차를 우려내기까지 걸린 시간을 보니
너무 급하게 차를 내렸구나.
아니 내린 시간은 같은데
너무도 급히 마셨구나 싶었습니다.
차친구와 차평도 나누면서 비교도해 보고
또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즐겁게 마셔야 하는데
이 무슨 숙제하듯이
아니 사실 고대하던 햇차가 고파
배고픈 아이가 너무 급히 밥을 퍼넣듯이
그렇게 급하게 차를 우려내고, 마시고,
또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그 느낌 하나 하나를
다 새롭게 떠올려보니 급하다 싶긴해도
오히려 혼자이기에 이렇게 빠져서
만들고 마시고 비교하고 느끼는게 가능하다고
스스로 만족해 봅니다.
일곱번째 차를 내릴 때는
그 향과 맛을 좀 더 진하게 하기 위해
내린 차를 한번 다시 더 내려 보지만
그렇게 진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진한 박하향과 달콤한 맛은
여전히 입안을 돋웁니다.
찻잔이 늘어나다 보니
한장의 사진으로 찍기위해 점점
멀리서 찍게되고 사진기의 빛 보정 특성으로
차탕색은 점점 흐려보이지만
사진보다는 조금 더 진하다고 판단하시면 될거같습니다.
입곱번의 내림으로 생긴 반잔씩의 차와
다구를 다소곳이 모아놓고 한 컷.
이 차들이 오늘 내 가슴을 설레게하고
입을 달게 하더니
진한 향과 여운을 남게 한
그 주범들입니다.
길게 늘어선 찻잔을
시계방향으로 두 줄로
다시 세워봅니다.
저마다 탕색은 달라도
그 차산의 특징이 여전한
운남성 시상반나자치주
맹해현의 반장산 네 그룹
노반장,신반장,노반펀,신반펀의
한결같은 맛과 무게.
그중 알려지지 않아
상업화된 노반장보다야
값은 조금 덜 나가지만
그만큼 가장 순수한
자연의 맛을 간직한
신반펀의 2012반펀보이차.
오늘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
새로운 즐거움을 하나 더
저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