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3:1~11
3장에
베,요한과 대조적 인물 하나가 등장한다. 앉은뱅이로 소개된 이름없는 지체 장애우다.
그는 혼자다.
그런데
동료가 전혀 없는건 아니다. 외적으로 보면 2절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라고 기록됐다.
메고 올 정도면 적어도 2인 이상 4인 정도 그에겐 이동을 돕는 이들이 있다.
나아가 2절 중반절부터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적어도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동하고 사람들 대상으로 자기 일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한가지는 그가 얼마나 사람들 속에서 소위 말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 하는데 있어서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어쩌면 이용당하고,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자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성경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 3:2
작성자:소치영 목사
행3:1-10
제목: 손 내미는데 까지
1.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을 못주고 무엇을 주었습니까?
가. 은과 금은 못주고 나사렛 예수를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를 주는 종교입니다. 왜? 예수에게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들어가면 지존파 같은 천인 공로할 만한 사람도 부드러운 사람으로 바뀌기 때문이요, 예수가 들어가면 성격이 못된 사람도 살같이 부드러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 김익두 목사간증
나. 그럼 우린 예수만 주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를 주어야 하지만 우리는 예수와 함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이 있었다면 주었을까요? 안주었을까요?
오늘 날 기독교의 단점 중의 하나가 예수만 줄려고 하지 은과 금을 주지 않으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가 예장과 기장으로 갈리게 된 이면에는 물론 구원론의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장은 사회구원을 장로교는 영혼구원에만 서로 치우치게 주장하다보니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함께 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았다면 이제 사회를 구원하고 소외당한 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전 세계 64억 인구 가운데 매일 굶주림과 싸우는 이가 8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8명 중 1명이 끼니 걱정을 하는 셈이다. 특히 이 가운데 한창 자라나야 할 어린이의 숫자가 3억 명에 달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유엔과 산하기구들은 최근 ‘기아(飢餓) 지도’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최악의 영양실조를 보인 국가는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 무려 73%의 국민이 배를 곯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의 대표적인 기아국가인 에티오피아(46%)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프리카 국가 외에 영양실조율 35%가 넘는 나라 4개국 중에는 북한(36%)이 포함됐다.
미국의 뒷마당 격인아이티(46%)
보다는 낮은 수준. 중동의 예멘과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도 같은 대열에 끼였다. 아프리카의 기아상황은 사하라 이남지역이 특히 심각하다. 불안한 정치상황이 큰 이유로 꼽힌다. 수많은 민족과 종교 간 갈등을 틈타 권력 장악을 노린 군소세력의 충돌이 이 지역을 기아 지뢰밭으로 만들었다.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수십 년간 물자를 중심으로 원조를 펼쳐왔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일부 원조물자는 독재자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자원으로 오용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프리카 원조를 늘리지도, 국채를 탕감해주지도 않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아프리카 대륙을 휩쓰는 에이즈(AIDS)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또 콩고공화국의 경우 상당수 국민이 기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현지에 진출한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헐값에 금을 채굴·매입하고 있다면서 기업에 도덕적 책임을 묻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자원을 노린 다국적 기업들의 아프리카 러시가 이어지고 있으나, 실제 기아문제 등 경제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물론 예수를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주어야지요. 하지만 그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물질의 복을 받았으니 이제는 물질을 주고 예수를 주어야 합니다. 즉 복지사업이나 구제사업, 선교 사업에 교회가 물질을 투자하고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다. 이 말은 이제 교회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주고 예수를 준다면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 건축하고 교회식구들끼리만 행복하게 지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을 다 주어야 합니다.
예) 저는 남자집사님들에게 가정마다 방문하라고 합니다. 비록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은혜 받은 자가 먼저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함께 사귈 때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고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눅1:17에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사가랴에게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그 때 세례요한이 할 일을 말씀해 주시는 데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들로 하여금 힘들 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을 알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침묵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은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가. 이것은 말만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의 일어나려는데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단점은 기도는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서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기도해줄께”라고 는 곧잘 말합니다. 물론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교회가 그렇게 기도만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서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와 함께 삶을 나눠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교회가 열린 모임을 하고 앞으로 꼭 열린 모임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오기 전에 삶의 현장에서 그들이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에 먼저 꼭 해야 할일은 나를 먼저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가 꽉 찬 나를 그들이 만나므로 그들이 예수를 만나게 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3.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가. 그가 일어나 뛰며, 찬송하고 성전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 첫째 그 한 사람에게 놀라운 변화가 온 것입니다.
다. 둘 째, 그를 전도한 베드로와 요한이 기뻤을 것입니다.
라. 셋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놀라며 기이히 여기게 되었습니다.(9-10)
마. 이게 바로 두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첫댓글 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