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탐방 메모(80)
<2014년 6월 18일 수요일> 두브로브니크 7
레블린(Revelin) 요새의 뱃머리 같은 곳을 지나 바다 쪽으로 돌아가니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따라 요새의 출입문 쪽으로 바싹 다가서니 돌로 된 길이 끊어지고, 나무로 된 다리가 나왔다. 쇠사슬이 양쪽에 걸려 있어서 비상시에 들어 올리게 되어 있는 나무다리였다. 나무다리를 지나니 아치형 돌문 안쪽에는 육중한 문짝이 열려 있었는데, 비상시에는 닫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번째 문을 지나 두 번째 문으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코발트색 물 위에 떠 있는 많은 보트들이 바다로 나가자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 두 사람은 배들과 눈 맞춤 오래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두 번째 문을 통과해 사라지고 없었다.
두 번째 문으로 서둘러 다가가는데, 문 왼쪽 벽에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브로브니크와 인근에서 출토된 중세초기의 조각품을 위주로 고고학적 발굴 성과물들을 레블린 요새 안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레블린(Revelin-레벨린) 요새는 북쪽에 있는 해자(垓子, 현재는 복개를 해서 도로로 사용하고 있음)를 통제하려고 1449년에 지었으며, 16세기에 건축가 안토니오 페라몰리노 디 베르가모(Antonio Ferramolino di Bergamo)가 리모델링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레블린 요새의 서쪽에 있는 두 번째 문에는 나무로 만든 문이 따로 없었다. 문을 통과하니 바로 돌다리가 나왔는데, 이 다리 아래는 옛날 해자(垓子)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두브로브니크의 동쪽 출입문인 플로체 문(Vrata od Ploča)이다. 이 플로체 문의 입구 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聖) 블라이세(St. Blaise)상이 있는데, 성(城)을 지키는 상징으로 두브로브니크의 모형을 왼손에 들고 있다.
이중의 아치문을 통과하면 구 시가지의 플로체 구역이다. 저만큼 점처럼 멀어지는 일행을 따라잡으려 걸음을 서두르는데, 바로 앞에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바로 14세기에 완성된 도미니크 수도원(Dominican Monastery)이었다. 이 수도원도 1667년 지진으로 많이 훼손된 것을 재건축한 것으로, 현재 수도원의 박물관에서 옛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유물인 그림과 공예품 및 보석 등이 전시되고 있다. 혼자 왔다면 틀림없이 어슬렁거리며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을 터이지만, 대중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면 모른 체 통과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성(城)에는 문이 여럿 있다. 대개는 동서남북 네 개 정도 있게 마련이다. 각각의 성마다 제각기 다른 풍광을 지니고 있기에 어느 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성의 첫인상이 달라진다. 그러나 수시로 드나들게 되면 이제 온전히 하나의 성으로 인식된다.
깨달음의 성(城)에도 여러 가지 문이 있다. 염불로 들어가는 염불문(念佛門), 경전을 공부하여 들어가는 간경문(看經門), 참회를 통해 들어가는 참회문(懺悔門), 참선을 수행하여 들어가는 참선문(叅禪門) 등이 있다. 만약 하나의 문만 통과하여 그곳에 머물러 버리면 계속 그 문만이 유일하다고 강조를 하겠지만, 성 전체와 완전히 하나가 된 이후는 어느 문만이 유일한 문이라고 고집하지 않게 된다.
▣사진 - (1)레블린 요새의 출입구는 해변 쪽으로 돌아가면 나온다. (2)레블린 요새의 입구에는 들어 올리는 나무다리가 있고, 문 안쪽에는 여닫는 문이 있다. (3)레블린 요새에서 본 두브로브니크의 옛 항구로 지금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4)레블린 요새 안에 옛 고고학적 발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안내. (5)레블린 요새의 서쪽 문에는 여닫는 문짝이 보이지 않는다. (6) 레블린 요새의 서쪽 문에서 본 두브로브니크 성으로 건너가는 다리. (7)이곳이 두브로브니크의 동쪽 플로체 구역으로 들어가는 동문인 플로체 문이다. (8)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 상이 성문 위에 있다. 왼손에 성의 모형을 들고 있다. (9)두브로브니크의 동쪽 문인 플로체 문을 통과하면 곧 나타나는 도미니크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