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
마을(숲 이름) |
유/무 |
비 고 |
부안읍 |
옹정마을(甕井) |
無 |
마을의 옆이나 앞에 인공적으로 나무숲을 만들어 신이 깃들게 하기도 한다. 부안에는 나무숲을 울창하게 가꾸어 신이 깃들게 하여 수호하도록 한마을들이다. 지금도 당산 숲은 일부가 남아 있다. |
백산면 |
공작리(孔雀里) |
有 | |
계화면 |
창북리(倉北里) |
無 | |
용화동(龍華洞) |
無 | ||
하서면 |
돈지리(敦池里) |
有 | |
동진면 |
안성리(安城里) |
無 |
수목신(樹木神)은 큰 나무나 오래된 고목에는 목신(木神)이 있다고 믿고 있어 함부로 베거나 꺽지 않는다.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은 정성드렸다. 이 당산나무는 생명력이 있는 것으로 만일 늙어서 고사(告祀)하게 되면 다른 나무를 신목으로 교체한다. 마을의 옆이나 앞에 인공적으로 나무숲을 만들어 신이 깃들게 하기도 한다. 부안읍의 옹정(甕井), 백산면 공작리(孔雀里), 동진면 안성리(安城里), 계화면 창북리(倉北里)와 용화동(龍華洞)은 나무숲을 울창하게 가꾸어 신이 깃들게 하여 수호하도록 한마을들이다. 지금도 당산숲은 일부가 남아 있다.
부득이 큰 나무를 벨 때는 그 나무의 목신(牧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긴 노끈으로 작은 나 무와 연결하여 큰 나무에 깃든 목신이 옮겨 가도록 하고 나무를 벤다. 나무를 함부로 베면 목신한테 벌을 받아 급사하거나 동티가 붙는다고 믿는다.
▶ 우리의 민간신앙 원초적 형태는 자연을 숭배하는 자연신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천체신(天體神)인 하느님, 햇님, 달님, 별님, 칠성님(七星拰)을 숭앙하였으며 산신님, 용왕님
(龍王拰), 암석신(巖石神), 방위신(方位神)등을 믿고 받들어 왔으며 지금도 이 같은 신앙행 위와 의식이 남아 있어 볼 수가 있다. 지금도 마을 뒷산은 진산(鎭山), 또는 주령이라 하여
산신(山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신성한곳으로 상여나 묘지를 함부로 쓰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공동수호신(共同守護神)인 당산신의 주신(主信)은 어느 마을이나 산신이며 산 신제를 먼저 모시고 동구(東歐) 당산제(堂山祭)를 모신다.
예) 부안읍내 향교골의 당산제는 마을 뒤 향교(鄕校) 서편 산속에서 매우 엄숙하게
산신제(山神祭)를 모시는 것으로 끝낸다. 앞 당산인 동구벽사(東歐僻事)의 당산(下位堂山)을
모셧는데 뒷당산의 신격(神格)은 두말 할 것 없이 산신(山神)이다.
수신(水神)은 바다, 방죽, 하천들에 있다고 믿는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두 가지 용왕신(龍王
神)으로 가뭄에 비도 빌고 고기잡이와 사나운 풍파도 다스리는 위대한 힘을 가진 신이며
다른 하나는 물귀신이라 부르는 악귀(惡鬼)다. 이 물귀신은 원귀(寃鬼)로 나루터, 목욕터.
격포(格浦)의 [수성당 할미]는 서해바다를 다스리는 수신(壽神)으로 어부들의 숭앙을 받고
있다.
또 변산(邊山)안에 직소폭포(職所瀑布)나 와룡소(臥龍少),가마소(加麻) 등의 깊은 못 속에
용신(龍神)이 살고 있다고 믿고 가뭄에 비를 비는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는 것이나 물가에 제상(祭床) 을 차리고 수륙제를 지내는 것도 자연신을 섬기는 신앙의 한 형태라 할 수 . 암 석신(巖石神)은 산에 있는 큰 바위나 선돌(立石), 고인돌 등에 신이 깃들려 있다고 믿고 치 성을 드린다. 바위에 깃들인 신은 생명력이 길고 튼튼하여 아이들의 수면과 건강을 빌거나 바위신에게도 한다.
이런 경우 아이 이름을 [돌팩이], [바우] 또는 [석암이]라 하기도 한다. 보안면 입석리(立 石里)의 선돌은 아들 낳기를 비는 기자선앙(譏刺扇央)의 대상 신체(로)되어 여인들이 많이 찾아와 아들을 비는 치성을 드리고 있으며 하서면 구암리(龜巖狸)의 큰 고인돌 또 한 암석 신의 신체로 받드는 여인들이 치성을 드린다.
3) 당산제와 마을굿의 현황
부안지역의 당산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과 사라진 것의 조사에서는 총 87곳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부안지역의 1읍 12면의 지역 중에서 부안읍 13곳, 보안면 26곳, 진서면 9곳, 주산면 7곳, 동진면 3곳, 계화면 5곳, 변산면 9곳, 백산면 3곳, 상서면 6곳, 줄포면 8곳, 위도면 5곳 등 행안면과 동진면, 백산면 일부분은 현재 조사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에서 서문안 장승(짐대)는 중요민속 문화재 18호와 도 유형 문화재 59호인 서와리 당간, 도 민속자료 6호인 보안입석, 19호 내요리 당산 등 문화재적인 것이 많은 것은 바다와 산과 육지가 공존 하는 지역에서 용왕제, 풍어제, 당산제, 거리데, 반지락제등 과거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을제이다.
4) 당산제, 마을굿의 분포도
(현존하는 당산제, 마을굿, 사라진 당산제 포함)
부안읍 (13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동중2리 동문안 |
중요민속19호 |
오리 짐대 |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읍내 동북부 |
제액 초복 |
줄다리기 옷 입히기 |
1월15일 |
有 |
오리짐대당산 석장승 2쌍, 제관(원래는 무당) 유지협조, 호별거출, 격년제, | ||||||||
서외 1리 서문안 |
중요민속18호 |
장승 짐대 |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도로변 |
수수맥이, 안녕, 질병 |
당산제 |
1월1일 |
有 |
조선 숙종15년(1689)에 건립했다는 명문이 있는데 연대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것 | ||||||||
서외 3리 |
이용일
018-691-4071 |
솟대 삼거리 거리제 |
마을 중앙 |
무사안녕, 풍요기원 |
당산제 |
|||
서외리 당간 |
도 유형문화재 59호 |
당 간주 |
당산 하나씨 당산 할머니 |
읍내 |
재복, 번영 |
당산제 |
1월1일 밤10시경 |
有 |
화강석재 석간주, 줄다리기 유교식 50년전에 사라짐 | ||||||||
남문안 당산 |
도 민속자료 18호 |
당 간주 솟대당산 |
남문안 |
마을 안녕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내요리 석제 (돌모산 당산) |
도 민속자료 19호, 이정진 011-653-0892 |
돌 당산 |
진대 하나씨 |
마을 입구 |
무사안녕 풍요기원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아침 |
有 |
삼헌관, 집레, 축관 등 8명. 공동 거출(정부지원) 풍수비보책 유교식 제사 | ||||||||
동중리 향교 |
이은기 011-681-8962 |
산신 |
성황산신 |
성황산 중턱 |
무사 태평 |
성황산 산신제 |
1월1일 5-8년 전 |
無 |
부안읍 향교 |
당산 터 당간 주 |
짐대 하나씩 |
마을 뒷산, 마을 앞, 도로변 |
무사태평 |
당산제 |
1월1일 |
有 | |
부안읍 석하 |
짐대 |
당산 할아버지 |
마을 뒷편 |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당기기 |
1월15일 |
有 | |
옹중리 중리 |
김형호 010-9113-3782 |
당산나무 (회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요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3일 |
有 |
선은 1리 |
이영신 010-4714-2776 |
당산 |
선은1리- 용계마을 사이 |
무사 태평 풍요 기원 |
당산제 |
2월1일 |
有無 | |
신운리 운기 |
이종철 노인회장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有 |
모산리 신성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 5일 |
有 |
계화면 (5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대벌마을 |
민속자료 |
쌍조 솟대 (소나무) |
할머니 당산 장씨 하나씨 당산 |
마을 서북쪽 |
풍년 기원 |
당산제, 줄당 기기 |
1월 3일 |
중단 |
제과1, 집사1, 축관1(화주2집), 걸궁, 마당밝기, 베다리기 당산신, 각호 거출 | ||||||||
창북리 원 창북 |
당산나무 짐대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서남쪽 |
수구맥이 풍요 다산 |
당산제, 줄당 기기 |
12월 30일 |
有 | |
축원 고사굿으로 당산제, 마당밟기굿을 한 후 새해를 맞는다(당산제는 1970년경 끊겼다) | ||||||||
양산리 조포마을 |
당산나무 당집 (팽나무) |
산신 할아버지 |
마을앞 산등성이 |
무사태평 풍년기원 |
당산제 지신밝기 |
1월3일 |
중단 | |
`화주1, 축관3~4명, 유교식 제사, 호당 거출, 안당집, 바깥당집 | ||||||||
의복리 돈지마을 |
당산나무당집/입석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서돈, 동돈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3일 |
중단 | |
제관 2명, 풍물놀이, 호당거출. | ||||||||
궁안리 |
도 민속자료 17호 |
쌍조 석간 |
당산 할머니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
보안면(26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상입석리 상입석 |
도 민속자료 6호 |
입석 (선돌) |
선돌 할머니 |
마을 뒤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입석제 |
2월1일 |
有 |
음력 1월 15일 작은 입석제를 동네 몇 분들이 지낸다 | ||||||||
상입석리 흥산(덕산) |
김귀녀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중앙 앞 (모정 옆)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3일 |
有 |
2005년도에 당산나무를 세로 심었다 | ||||||||
우동리 우동 |
이장관리 |
당산나무 짐대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격년제) |
有 |
1990년대 이전에는 1년에 한번 당산제를 지냈다 (현재 격년제), 전날 산신제, 쥐불놀이 | ||||||||
우동리 만화동 |
보호수로 지정 관리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無 |
1990년대까지 당산제를 지냈음 | ||||||||
영전리 제네 |
보호수로 지정 관리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줄다리기 |
2월1일 |
有 |
약 700년 이상의 팽나무 | ||||||||
영전리 원 영전 |
당산나무 (상수리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1970년대 새마을 사업과 동시에 없어짐 | ||||||||
영전리 신월 |
당산나무 (소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마을 입구 소나무, 1970년대 중반 없어짐 | ||||||||
영전리 냉정 |
소 나무 (4그루)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마을 중앙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냉정리 우물가에 큰 소나무 2그루와 안 동네 소나무에 당제를 지냈음. 23번 도로 공사로 우물가 옆의 소나무(당산나무)를 없어짐 | ||||||||
월천리 월천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모정 옆 |
마을 번영 무사태평 |
거리제 |
1월15일 |
有 | |
월천리 군당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작은 당산 옆 모정 앞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有無 | |
월천이 유관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유무 | |
월천리 판곡 |
당산나무 (감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유천리 원유천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아래 모정 옆 |
마을 번영 풍어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바닷가에서 어선을 묶어 놓았다, 800년 전 당산 불에 타사 베어버리고 지금 애기 당산나무 | ||||||||
유천리 내유천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아래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유천리 호암 |
최동춘 씨 |
당산나무 (팽나무) |
당산 할머니 범바위 |
아을 입구 바다 입구 |
만선 풍어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바닷가에서 어선을 묶어 놓았다 | ||||||||
하입석리 하입석 |
김병기 |
당산나무 (소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옆 |
풍년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하입석리 수랑 |
동네 삼거리 |
거리할머니 |
마을 큰도로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거리제 |
1월15일 |
有 | |
하입석리 반평 |
최영환 |
당산나무 (고로쇠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
풍년기원 마을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無 |
1920년 대(80년전) 사라짐(나무는 보호수로 있음) | ||||||||
상립리 가분 |
귀동냥 이장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남자 제외 |
1월15일 |
無 |
부녀자들만 당산제를 마을을 돌면서 지낸다. | ||||||||
상림리 하림 |
귀동냥 이장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자리 앞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감나무 1그루, 아카시아 4그루(새마을 사업으로 사라짐) | ||||||||
하석교 |
당산나무 (은행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창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상석교 |
당산나무 (모정 옆) 팽나무2그루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풍년기원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마을 부녀자 들이 주로 했다, 지금도 몇분만... | ||||||||
성산(성메)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풍년 기원 마을 번창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남포리 원 남포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창 |
당산제 |
2월1일 |
有 | |
1980년대 다시 당산나무를 심었음 | ||||||||
남포리 사창(만회)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1945년 1월2일 벼락으로 소실, 우물 폐쇠 | ||||||||
신복리 종곡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無 |
상서면 (6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분장 마을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앞(모정 옆), 입구(논둑)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3월 3~4일 |
有 | |
매년 정월에 손 없는 날을 잡아서 밤에 진행, 손 없는날 잡아서 당산제(밤)를 지낸다 | ||||||||
감교리 회시 마을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앞 (모정 옆)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거리제 |
1월3일 |
有 | |
모정 옆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23번 국도 다리옆에서 다리제를 지낸다 | ||||||||
성암 마을 |
석간주형 솟대당산 |
당산 할머니 |
마을 북쪽 |
당산제 |
1월15일 초저녁 |
有 | ||
화주1명, 제관1명(부녀자 중심), 원당산은 소나무 1980년 재계, 최근 2월1일, 마을돌기, 줄다리기, 옷입히기 | ||||||||
통정이 |
||||||||
주산면 (7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소주리 와상 마을 |
김종기 582-6040 |
당산나무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풍년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
2월1일 |
有 |
덕림리 신공 마을 |
이삼구 582-6634 |
상수리나무 |
당산할아버지 |
마을 뒷산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2월1일 현 1월15일 |
有 |
동정리 부서 마을 (큰 부골) |
최병엽 582-6106 |
당산나무 |
부부 당산 |
당산나무 마을 회관 |
무사안녕, 풍요기원 |
당산제 |
1월15일 현재 2월1일 |
有 |
원 사산리 사산 마을 |
당산 나무 당집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산 |
풍요 기원 무사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3일 |
有 | |
홍해 마을 |
당산 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언덕 |
제액, 무사태평 |
당산제 |
2월1일 |
有無 | |
화정 마을 |
모정 주위 (옛-감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야산 |
제액, 무사태평 |
당산제 |
2월1일 |
有 | |
동정리 부동 마을 |
채규봉 584-7721 |
당산나무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
무사태평 |
당산제 |
2월1일 |
有 |
진서면 (9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진서리 구진 마을(거무진) |
이한영 582-7324 |
당산나무 (느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산등성이 |
무사 태평 마을 번영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2일 저녁 |
有 |
당집 소실, 공양주(제관)1명, 화주(보호자)1명, 남자들 굿치며 유교식제사 헌식, 호당거출, 장승, 짐대 있었음 | ||||||||
원암리 입암 (내소사) |
수령-1000년, 700년 보호수 |
늘 당산 날 당산 |
당산 할머니 당산 할아버지 |
내소사 입구 내소사 안 |
* |
당산제 |
1월14일 1월15일 |
유 |
내소사 산문 밖-할아버지 당산과 내소사 산문 안-할머니 당산 1940년 당산을 지내지 않고 있다 1990년대 다시 부활 | ||||||||
연동 마을 |
최만식(이장) 010-4767- 7601 |
당산나무 |
당산 할아버지 |
뒷 마을 도로 옆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
有 |
작도 마을 |
배승곤(이장) 011-653- 7268 |
당산나무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
풍 어 무사 태평 |
당산제 |
2월1일 |
有 |
석포리 석포(돌개) |
당산나무 (팽나무) |
할아버지당산 할머니 당산 |
마을 입구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풍물 14일 |
有 | |
제과 2~3명, 호당거출, | ||||||||
운호 마을(열운계) |
최막동 할머니 |
당산나무 (팽나무) |
할아버지당산 할머니 당산 |
마을 입구 |
풍년기원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4일 (저녁) |
有 |
할아버지 당산부터, 제관 :주 이장. 호당거출, | ||||||||
작당(까지당) 마을 |
김용선(이장) 582-7655 |
당산나무 (팽나무) |
할머니 당산 (350여년) |
마을 앞 |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
有 |
호당 거출, 당집 소실. 오전 줄 만들고 제사는 밤에 지낸다. | ||||||||
관선 마을 |
강양길 부녀회장 |
당산나무 |
젊은 당산 |
이장 집옆 (강운구) |
풍어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2월1일 |
有 無 有 |
제관1명 집에서 음식(떡,돼지머리,과일 등) 장만 당산지냈다-소실-무당에게 점을 본 후 당산제 | ||||||||
마동마을 |
김영수(70세) 태생 |
당산나무 |
모름 |
마을 앞, 100여년 전부터 지내지 않았다 |
無 |
줄포면 (8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난산리 목상 마을 |
당산나무 |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마을 뒷산 |
풍년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
有 | |
목상,목중,목하 3개마을 함께 줄다리기한다.(현재 소실) | ||||||||
난산리 목하 마을 |
582-0372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모정 옆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3일 |
有 |
줄포리 금동(장성동) |
숫당산(소실), 암당산(팽나무) |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앞 |
마을 번영 무사 태평 |
당산제 오후 줄다리기 |
1월14일 초저녁 |
중단 | |
6,25 이후 장승짐대소실, 제관1명 | ||||||||
용서리 용서(용골) |
소나무 (소실) 팽나무 |
큰 할머니 작은 할머니 |
마을 뒤 마을 입구 |
풍어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4일 자시 경 |
중단 | |
금동 부락에서 줄다리기 시작, 제관 1명, 호당거출 | ||||||||
신리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有 | |
화전 마을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
신정 마을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풍년 기원 마을 번영 |
당산제 |
1월15일 |
||
우포리 감동마을 |
소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입구 |
마을 번영 풍년 기원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일 저녁 |
有 | |
화주 1명, 금기제사, 폐지후 재계 |
위도면 (5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대리 마을 위도 띠벳놀이 |
중요무형82-다 서하석 582-7995 |
띠벳놀이 보존회 |
당신 원당 장승 각2기 |
동쪽 당제봉동서쪽 |
풍어 기원, 무사 안녕 제액 |
당제, 보름줄다리기 |
1월3일 |
有 |
당산제-원당제, 용왕제-띠베보내기, 장승제는 소멸 | ||||||||
진리 마을 |
오광률 583-3853 |
당산나무 |
천하장사 원당 장승 각2기 |
산제, 당, 마을 앞 (3곳) |
제액 풍요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2일 |
有 |
장승제-당산제(원당)-도제(도제봉), 1988년장승복원 | ||||||||
식도 |
조영만 583-4305 |
당집 |
당산 할아버지 |
좌측 가마귀산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지만 |
1월3일 |
有 |
치도리 |
정부군 010-9775-3978 |
당산나무, 당집 |
당산 할아버지 |
마을 뒤산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지만 |
1월15일 |
有 |
석도리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有 |
하서면 (2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신지리 섶못 마을 |
입석 (화강석) 원래-팽나무 |
할머니 당산 |
마을 동북부 |
제액, 풍농 |
당산제 |
1월15일 초저녁 |
有 | |
줄메고 마을돌기, 줄다리기, 옷 입힘, 화주,제관,축과 각1명, 1993년재계 | ||||||||
장신리 양지마을 |
촌재-훼나무 (반지락제) |
할머니 당산 |
마을 중앙 |
풍어, 제액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 1~3일 |
無 | |
화주1명, 유교식 제사, 소리꾼, 호당거출, 1월1~3일 중 택일(초저녁) |
변산면 (9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
격포 대막골 수성당 |
도유형 문화재 58호 |
수성당 (당집) |
수성 할매 |
죽막골 바닷가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제 |
1월15일 |
有 | |
옛날 대막 골 절벽의 여울 굴속에 수성할미가 나와 딸 여덞을 낳아서 칠산바다 주변의 당집에 한사람씩 수호신으로 나누어 주고 막내딸을 데리고 이곳 수 성당 에서 칠산 바다를 총괄하여 오고 있다는 것이다. | |||||||||
대항리 마을 |
당산나무 |
할머니 당산 |
마을 동편 |
제액, 풍농 |
당산제 |
1월1일 |
有 | ||
할아버지 당산 나무는 동네 뒤 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짐, 20년 전(1990년 초)정도 죽었음, 당산제 현재는 1월 1일(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고 객지의 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일 때 지냄) 옛날에는 음력 1월 15일에 지냈음) | |||||||||
대항리 합덕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有 | ||
마포 |
보호수 |
당산나무 |
할머니 당산 |
마을 중앙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有 | |
격포리 격상 |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
당산 |
마을 남쪽 |
무병 풍년 평온 무사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
有 | ||
마을에서 줄다리기, 당산 옷 입히기 | |||||||||
도청리 궁항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서쪽 바닷가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
1월15일 |
無 | ||
개인 소유로 관리 부실/ 유명무실 | |||||||||
도청리 모항 |
당산나무 |
당산 할머니 |
마을 뒤 |
풍어 기원 무사 태평 |
당산제 용왕제 |
1월15일 |
有 | ||
당집소실, 산제당도 있음(마을 뒷산) 산신제와 용왕제는 1월15일 제사 | |||||||||
지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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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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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면 (3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당상 마을 |
팽나무, 아카시아나무 |
당산나무 |
마을길 양측 |
자손 번창 풍년 기원 |
당산 굿 |
추석날 섣달 그믐 |
有 | |
당북리 마을 |
당산나무 |
할머니 당산 당집 |
당북산 정상 |
풍어 기원 무사 안녕 |
당산제 |
1월15일 |
有 | |
농원 마을 |
당산나무 |
할머니 당산 |
마을 중앙 |
풍년 기원 무사 안녕 |
당산제 |
1월15일 |
有 |
백산면 (3곳) |
문화재 지정번호 |
유 형 |
명칭(신격) |
위치 |
목적 |
관련의례 |
의례일 (음력) |
유/무 | |||
죽림리 공장마을 |
도 민속자료20호 |
석 장 생 |
상원금 귀주장군, 하원금귀당장군 |
마을 앞 평원 |
마을 안녕 잡귀 |
당산제 |
1월15일 |
有 | |||
원래는 마을에 있던 것을 1995년 마을 앞 개울둑으로 이전했다. | |||||||||||
계동 |
입석 |
당산할머니 |
마을 입구 |
무사태평 |
당산제 줄다리기 |
1월15일 |
有 | ||||
임방 신기 |
당산나무 |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
마을 중앙 |
재액,초복 |
당산제 |
2월1일 |
有 | ||||
5) 서낭(성황)당 분포도
부안군 서낭당(재) | |||
읍. 면 |
지역과 지역 |
지역 |
비고 * 서낭당은 현재는 사라지고 지내지 않지 (기도나 돌을 쌓아두지는 않는다)만 옛 날부터 많은 지역에서 내려오고,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 부안은 변산을 중심으로 야산지역과 변산(국립공원)의 넘어가는 산 마루, 고개가 많아 돌이나 나뭇가지와 돌 을 던져 행로(行路)의 안전과 복을 비는 신앙이 많이 있었다. 내소사 전나무 숲 중간의 서낭당 |
부안읍 |
부안읍과 동진면 경계지역 |
망기산 뒤쪽 | |
변산면 |
수랑동에서 모항 넘어가는 고개 |
봉화재 | |
마포에서 격포 넘어가는 길 |
지릿재 | ||
낙조대 옆 북재 고개 |
북재 | ||
유유마을 가는 유유재 고개 |
유유재 | ||
대항리 방포재 |
방포재 | ||
금구원 조각공원 앞 |
솟재 | ||
운산리 중산의 문산재 |
문산재 | ||
보안면 |
남포리 용사동에서 덕산 넘어가는 고개 |
남포재 | |
우동리 감불에서 남포리 넘어가는 고개 |
감불재 | ||
월천리 유점에서 주산면 사산 넘어가는 고개 |
사산재 (금동재) | ||
부곡과 월천 사이 소비재 |
소비재 | ||
보안면과 상서면 사이 바디재 |
바디재 | ||
진서면 |
진서면 진동마을에서 석포리 넘어가는 고개 |
석포재 | |
운호에서 마동에서 가는 길 말재 고개 |
말재 | ||
내소사 입구 입암 |
웃뜸 서낭당 | ||
상서면 |
가오리에서 창수동으로 가는 고개 |
가는골재 | |
청림 새재 고개 |
새재 | ||
하서면 |
백련에서 대광 가는 고개 |
문수재 | |
삼산리 가락골의 가락재 |
가락재 | ||
장신리 복용재 |
복용재 | ||
주산면 |
제네부락 뒤 |
베메산 |
▶ 서낭당은 거리의 잡귀가 깃들어 있다고 하는 곳이다. 고개마루나 십자로 등에 돌무더기로 쌓여 있다. 길을 가는 여행자나 행인이나 나무꾼 등 돌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던져 행로(行 路)의 안전과 복을 비는 거리의 신앙이다. 부안에서는 변산을 중심으로 야산지역에서도 서 낭당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현재는 변산면 수락도에서 모항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 한곳에 남아 있다.
4. 부안 지역의 마을별 당산제와 마을굿
부안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의 당산제 유형이 민간신앙에서 대표적인 제의(祭儀)는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 을 받드는 당산제(當山祭)일 것이다.
그 마을의 주령(主嶺)에 산신 격(山神格)의 당산 신을 모시며 이를 뒷 당산이라 하여 마을 수호의 주신(主神)
으로 받들고, 마을 앞 동구에 앞 당산을 배치하여 주 당산을 돕는 하위신격(下位神格)의 이중구조 형태를 이루
고 있다.
부안지역에서 여러 군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여러 군데 중 앞 당산과 뒷 수호신격인 할아버지 당산이 있
는 곳이 변산면 대항리 당산은 수령 250년의 보호수로 되어 있지만 마을 뒤 산 중턱에 있는 당산나무는 당산
제를 지낸지 않는 다고 한다. 주민들도 이제는 잊혀져 간다고 한다.
당산신은 당산나무라 불리 우는 큰 나무에 깃 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안지역은 솟대형의 석간주(石
竿柱)를 높이 세우고 그 위에 오리 모양의 새를 돌로 깍 아 올려놓은 솟대당산도 7개 마을에 남아 있으며 상원
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院唐將軍)이라 새겨진 돌장승도 여섯 시사 남아 있다. 그리고 격포(格浦)
의 대막골(竹幕洞)에 있는 수성당 (水聖堂)과 위도(蝟島)의 진말(鎭里), 대리(大里), 치도리, 계화면의 돈지,
계화리 그리고 변산면의 띠목에도 당집이 있었다.
당산제의 제일(祭日)은 거의 대부분이 음력 정월 보름달에 지내고 있으나, 부안지역은 섣달 금음부터 이듬해
3월 보름까지 있다. 보통 당산제는 마을의 안과태평(安過泰平)과 제액소복(除厄召福), 그리고 퐁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의(共同祭儀)다. 신과 인간의 만남, 신에게 드리는 축원제(祝願祭)이기 때문에 부정맥이
를 철저히 하는 여러 가지 금기(禁忌) 사항이 엄격하였으나 요즈음은 많은 개신교로 인하여 많이 약화되어 가
고 있다.
당산제는 굿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난다. 굿은 신을 부르고 신을 달래며 신을 즐겁게 하는 제의의 일부다. 당
산제에 따르는 풍물굿, 줄다리기는 이 지방 당산제에 의례히 따르는 것으로 남녀가 편을 갈라 승부를 내는 놀
이로 마치고 있으며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한다. 폐쇄된 유교사회에서 이 날만은 성(性)이 비교적 자유
롭게 개방되었으며 그래서 인지 많은 남녀가 어울려 흥겹게 놀이를 벌리는 마을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가. 진서면 지역의 당산제
부안군 진서면은 본래 옛 조선시대의 좌산내면 지역으로서 좌산방(左山坊·面)이라 하였는데 1914년에 일제(日帝)가 군면을 통합 개편하면서 우산방(右山坊)과 병합하여 산내면(山內面)이라 하였으며, 줄포항(茁浦港)이 토사의 유입으로 점차 폐항되어 감에 칠산바다의 황금어장에서 잡히는 엄청난 해산물의 집하 어항이 절실하게 되어 1938년에 곰소(熊淵)를 중심으로 인공어항(人工魚港)을 개설하니 염전까지 생겨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4년에 우산내면과 통합되어 산내면의 3개리(진서, 석포, 운호)로 편성되었다가 다시 분리된 곳이다.
1947년 3월에 산내면 진서출장소(3리 19분리)가 설치되고 1983년 2월 15일에 면에서 승격 분리(대통령령 제 11027호)되었다. 그후 1986년 10월 1일에 3리 23개 분리 59반으로 편성되었다. 해산물의 유통과 인구의 급증으로 진서지방의 발달이 활발하여지면서 1983년 2월 15일자로 산내면에서 분리 독립하여 진서리(鎭西里), 석포리(石浦里), 운호리(雲湖里) 등 세 법정 행정리를 중심으로 23개의 자연마을로 진선면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3면이 바다인 부안군의 지형을 이용한 진서면은 바다와 농촌을 연결해주는 지역으로 많은 분화 중에서 당산제 중심의 문화로 봐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① 진서면 입암(立岩)마을, 내소사(입암) 당산제
진서면 석포리 입암(立岩)마을은 천년고찰 내소사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입암(立岩)마을 유래는 서있는 돌이 많다 해서 선돌마을이라도 불리웠다. 또는 내소사 소승 월봉이 우뚝 솟았다 하여 입암마을이라도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약 270년 전 해주최(海主催)씨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金海金), 진주강(晋州姜)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입암(내소사)당산제의 역사는 문헌상 명확히 정립된 기록이 없다. 입암 당산제로도 불리우고, 내소사 당산제로 불리운다.
내소사 일주문 밖의 당산과 내소사 안쪽의 당산 나무가 있다. 그 역사를 가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 하지만, 신목으로 모시고 있는 느티나무의 수령이 각 각 1,000년(안쪽)과 700여년(일주문 밖)이 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를 즈음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과, 조선시대 민속신앙이 기층민들의 생활 깊숙이 전파되었을 때부터 시작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입암(내소사) 당산제 원형은 민간주도에 의해서 전승되어진 것이 아닌, 사찰(내소사)의 주도하에 오래토록 전승되어져 왔으며, 불교신앙과 민간신앙의 결합에 의한 복합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당산은 들 당산과 날 당산이 있으며, 각기 사찰 안에 있는 할머니당산과 사찰입구 마을 북쪽에 있는 할아버지당산으로 불리고 있다.
주민들의 토속적인신앙을 받들고 있어 주민들을 사찰 내로 자연스럽게 끌어 들임으로서 불교신앙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포교를 병행하는 형태였다.
원형적인 부분에서 기존의 당산제와는 그 형식과 의식이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며, 제례의식과 굿의 형태는 불교적인 의식을 따랐으며, 1980년대 후반 까지 전승이 되고 있었다.
입암(내소사) 당산제는 1990년 이후 민간주도로 마을 북쪽 할아버지 당산에서 전승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에 의해 음력 1월 14일 오후부터 다음날 보름까지 당산제를 치른다. 1980년대 후반에 여러 상황에 의해 사찰에서 전승해오던 당산제가 마을로 이관되어 지금은 마을주민들에 의해 당산제를 치르고 있다.
종래에 입암리 당산제를 치러오던 곳에 웃뜸 서낭당이 있었으나, 도로가 나고 토속신앙이 퇴색해지는 근래의 여러 영향에 따라서 1940년대부터 마을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었으며, 그 후 웃뜸 서낭당 당제보다 그 역사가 오래된 입암(내소사) 당산제에 자연스럽게 합류되었고 이후부터 내소사에서 당산제를 마을로 이관함에 따라 할아버지 당산(일주문 앞)을 마을 주신으로 받들고 있다.
당산제 폐지에 의해 전승이 끊겼다가 입암(내소사) 당산제를 통하여 재현됨과 동시에 마을에서 모시던 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며, 그 의식과 신앙의 형태가 더욱 굳건히 다져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당산제는 제관과 헌관, 축관, 집사 등을 선임해서 당제를 주관하며, 제물은 메, 국, 떡, 돼지머리, 삼실과, 포, 제주 등을 올린다.
당산주변은 왼새끼줄(외약새내끼)을 꼬아서 금줄을 치고 백지로 소지를 만들어서 금줄에 꽂으며, 당산 주변에 황토 흙을 군데군데 쌓아 벽사의식을 한다. 용줄을 감는 과정은 풍물패의 인도를 받으며 마을을 돌고난 후 당산나무에 감으며 약식으로 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헌식의 과정은 제를 끝마치고 백지를 촛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고 제상의 떡과 삼실과를 백지에 싸서 당산나무 아래에 바치고 황토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다.
당산굿은 풍물패를 결성해서 건립 굿을 통하여 비용을 거출하고, 당제를 마을잔치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당산굿, 길굿, 샘굿, 성주굿, 천룡굿 등을 함께 하면서 마을과 각 가정의 무사안녕 및 만복을 기원한다.
앞으로의 전승과 당산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찰과 민간이 함께 주도적으로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내소사 당산의 사계
2009년 입암(내소사) 당산제 모습
② 구진마을 당산제
구진 마을 당산은 거무진 또는 검모포진의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안군에서도 역사와 문화를 가진 당산제라고 할 수 있다.
마을 뒤 느티나무 1나무로 볼 것이 아닌 역사로 보는 측면에서 생각 했으면 한다.
지금은 사리진 당집 대신 제상(돌)과 당산마무만 있지만 관리 부실로 많은 부분이 소실 되고 있다. 제관 1명을 선출하여 화주(보호자)와 남성들이 유교식 제사 헌식을 한다. 군 지역에서 자주 보는 유교식 제사는 내소사, 주산 사산리, 부안읍 돌모산 당산제, 보안면 제네 당산제, 주산면 큰부골마을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역사와 전통이 많은 지역이지만 군과 문화재로서 인정을 못 받기는 타 지방과 마찬 가질 것이다.
옛날에는 장승과 짐대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진 것이며 옆 지역인 우동일 같은 경우 군의 지원으로 많은 개보수를 통하여 문화재로 남기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하며 보다 빨리 문화재로써 기능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검모포진 1872년(서울대규장각 소장) 구진마을 당산제 모습
③ 진서면 운호 당산제
진서면에서는 구진 당산, 입암(내소사)당산, 운호리 당산이 제일 오래되고 역사가 깊은 것으로 내려오고 있다.
1월 14일날 오전에 줄을 꼬아 동네 한 바뀌 돌고, 줄다리기를 하며, 저녁에 당산제를 지내고 당산에 줄을 감는 다음 옆에 줄을 말아서 놓아둔다. 줄을 몰아서 놓아 준 것이 썩으면 그 위에 1년에 한번(당산제 때) 다시 그 위에 말아서 놓아둔다.
아래에 있는 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하고 위에 있는 당산을 할머니 당산이라고 부른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진서면에서 제일 오래되고 큰 당산이라고 한다. 운호마을 당산제만 해도 20명 안팎의 마을사람만이 모여 당산제를 치렀다. 과거 화려했다던 풍물의 간데 없고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하게 제를 올렸다. 거기에다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이 가늘어져 버린 용줄은 지금 농촌마을 당산제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④ 진서면 관선마을 당산제
진서면 관선 마을은 바닷가의 마을로 변산 해안길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갯벌에서 나는 석화로 유명한 마을
이 되어 버렸다. 1990년대 초에 나오기 시작한 갯벌속의 석화로 겨울철이 더 바쁜 시간이지만 음력 2월1일만
되면 마을 모든 사람들이 당산제를 오리고 1년 동사에 대한 기도를 올린다.
지금의 현 이장(강운구) 집 옆에 있는 당산제는 80년대까지 1년에 한 번씩 지내오다가 중단을 했으며, 동네에
좋지 않은 일이 자부 벌어진 후 무당을 데려 굿을 하고 90녀대 후반부터 다시 지내오고 있다. 제관을 뽑아 그
집에서 음식(떡, 돼지 머리, 과일 등)을 만들고, 동네 각자의 집에서 조금씩 모아 준다.
⑤ 진서면 작당마을 당산제
일명 까치당 마을로 까치당 당산제로도 불리는 마을이다. 까치댕이는 지금은 작당(鵲堂)이다. 이 마을은 까치 모양이고 몇 년 전만 해도 당산나무에 까치들이 많았다고 한다. 350여년이 된 당산나무로 1월 15일 당산제를 지내며 보름날 오전에 줄을 만들고 오후 및 밤에 당산 할머니에게 당산제를 지낸다. 집집마다 조금씩 거출하여 음식과 당제 준비를 하며, 당집은 지금은 소실되고 없다. 까치댕이는 20호 정도가 아름다운 바다를 껴안고 있는 작은 포구 마을이다. 손으로 쥘듯한 작은 마을과 불빛에 묶여진 아름다운 배들이 가지런히 매어 있다.
동구(洞口)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몬댕이에 할머니 당산이 있어서 풍요를 제사하고 아뢸 수 있도록 했는데 까치댕이에는 바다 들머리에 할머니 당산이 있어 바다 사람의 생명지킴이와 풍어를 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l 그 외 진서면 당산
▶ 연동마을 당산제 (음 1월15일 당산제)
▶ 작도마을 당산제 (음 2월 1일 당산제)
▶ 석포(돌개) 당산제 (음 1월 14일 당산제)
▶ 마동마을 당산제 (100여년 전에 사라짐)
나. 보안면 지역의 당산제
① 상입석 입석제(장자못 설화 담긴 보안입석) “먼 옛날 율지마을(현 줄포면 신흥리 율지)에 욕심 많고 심보가 고약한 부자 영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염불을 외며 시주하기를 간청했으나 부자 영감은 몰래 두엄을 퍼다 스
님의 바랑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맙다고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며 돌아서는 스
님의 뒷모습을 본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쌀 한 되를 몰래 퍼서 스님을 뒤쫒아가 시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빌었다.
이에 스님은 곧 이곳이 물바다가 될 것인 즉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도 말
고 따라만 오라고 하였다. 며느리는 부랴부랴 아기를 업고 스님을 따라 나섰다. 십리쯤 따라
가던 며느리는 집이 궁금하여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니 그 순간 천둥 번개가 치며 가족이 남아
있는 집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어 방죽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정신을 되찾은 며느리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이 “아까운 것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
도 베짤 때 두르는 허리띠가 제일 아깝네.” 이 소리를 들은 스님은 ‘이 여자도 사람의 생명보
다 물질을 더 중하게 여기는구나’ 라 여기고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돌로 변하게 하였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아이도 같이 돌로 변한 것이 지금의 선돌로 변하였고 뒤따라 오던 개(2마리)도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선돌에서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개바위’가 엎드려 있다.
십리쯤 떨어진 부자가 살던 집터에는 방죽이 있어 이곳을 ‘장자못’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이 선돌에 영험이 있다 하여 아이 못낳는 여인들의 소원을 비는 굿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는 며느리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의 영험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뒤로 이
를 시샘하는 이웃 마을에서 몰래 등에 업힌 아기를 떼어가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흔적이 역
력히 남아 있다.”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웃 선돌) 마을 뒤의 언덕에 서 있는 이 선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으며 높이가 2.6m, 가로 75㎝에 두께 59㎝이다.
이 선돌은 윗 부분이 약간 넓으며 앞면에는 불상형태의 무속탱화가 음각되어 있다. 이 선돌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에 부족 간의 경계표식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선돌에도 부덕한 부자(富者)를 도승이 응징했다는 「장자못 설화」가 전해오고 있으며, 이 지역 여인들의 아들바람과 재앙퇴치, 소원 등을 비는 무속신앙의 신체기능을 하고 있다.
출처<한국구전설화:전라북도편>(평민사)에서
사각 돌 우물, 깊이 약 5m의 우물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최초 4그루에서 현재 2그루)
입석제(마을제) 매년 정월 15일(보름)에 마을 주민들끼리 간단한 제를 지내고 있다. 제 10일전부터 집집마다 곡식 (재물)을 걷고, 전날(14일) 동네 부녀자들이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한다.
옛날에는 전주, 광주 등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500여명이 넘었다)이 모여들어 제를 크게 지냈으나 최근에는 시골의 인구 감소로 동네 주민들 위주로 간소하게 준비를 하여 마을 사람들끼리 제를 올린다.
동네 주민 전체(옛날에는 상주가 있었음)가 제례 준비와 제례 시 상차림과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한다.
마을의 평안함과 풍년을 기원하며, 특히 자손(아들)이 귀한 집 일수록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고 있다. 선돌에서 나타나는 부자보다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마음과 재앙퇴치, 소원 등을 비는 입석제이다.
12개의 촛불은 12달을 의미하며, 차례의 순서는 동네 남자(연장자 순으로)
-외부남자-동네여자-외부여자 순으로 제를 지낸다.
② 상입석리 흥산(덕산)마을
마을 앞 하천가에는 350년 수령의 홰나무가 있었는데 4 그루는 없어지고 한 그루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묵묵히 지키다가 태풍으로 넘어져, 지금의 당산나무(90년 말)를 심어 정월 보름이면 부녀자들이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③ 영전리 신월마을
정월 대보름날이면 마을 사람 남,녀 노소할 것 없이 한데 모여 줄다리기, 농악 등을 즐겨오며 마을 잡귀를 몰아내고 협동단결을 위해 이 행사를 줄곧 이어 왔으나1970년대에 접어들어 이 야산을 개발하는 바람에 동산은 그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토성(土城)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④ 영전리 제네마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천·수백년 전 이곳은 명산·명당을 찾아 조상을 모시면 입신양명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신념으로 많은 풍수객이 찾던 곳으로, 어느 노파가 명당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⑤ 남포리 남포 마을
마을 사람들은 현감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공적비를 세웠으나 일제 때 없어지고, 그 터는 폐허가 되었으며, 지금은 밭으로 변하였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마을의 악과 흉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매년 정월 당산제
⑥ 우동리 우동마을
우동리 당산은 우반(愚磻)의 동쪽 우동(愚東) 초입에 있는 당산으로, 반계 유형원(柳馨遠) 선생이 병란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세웠던 것이다.
당산은 당목인 훼나무와 선돌ㆍ짐대로 구성되며, 솟대는 격년으로 세워진다. 팽나무 노거수와 그 사이로 파고든 입석 및 오리 솟대가 걸려 있는 나무 짐대 등으로 어려가지 당산신앙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우동리 당산은 나무당산 짐대할매와 마을 뒷산 산신인 천룡당산인 짐대할배로 짐대 높이는 246cm, 밑 둘레 182cm로 당산나무 옆에 세웠는데 벌써 300년을 훌쩍 넘겼다 한다.
그 모습은 당산나무 둥지 속에 입석이 안기듯 박혀 있으며, 입석과 나란히 잘게 자른 대나무 가닥들이 휘날리는 솟대가 있다.
당산나무에 있는 봉황모양의 높이 7m 솟대는 마을에서 2년마다 소나무로 새로 깎아 올리는데 솟대를 신간주로 부르며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좌, 우에 두고 있다. 신간주에 올려지는 오리 또는 봉황모양의 새는 몸통이 250cm이지만 죽편으로 일곱 가닥의 긴 꼬리를 늘어뜨려 놓고 정월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마을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동아줄로 줄다리기를 한 후 동아줄을 신간주 아래에 뱀 똬리 틀듯 감싸놓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줄은 암줄은 , 수줄은 . 그러나 장가를 못간 총각들은 암 줄편에 . 우동리 고어름이다. 고어름이란 . 암줄과 수줄이 . 이 때 줄 위에는 전통 혼례때 입던 예복을 갖추고 사모관대에 족두리까지 쓴 신랑 신부가 등장하여 흥을 돋군다.
우동리의 당산제는 정월대보름날 산에서 나무를 베어 솟대를 세운 후, 60m 되는 암줄과 수줄을 메고 농악을 치며 마을을 한바퀴 돈 후 남녀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여자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들며, 줄다리가 끝나면 동아줄을 솟대 밑에 감고 삼실과 편ㆍ밥ㆍ국ㆍ나물 등 다양한 제물을 갖춘 제상을 올려 마을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한다.
⑥-a. 우동리 당산나무와 마을굿(당산제)
⑥-b.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
⑦ 상림리 가분(駕紛)마을
가분 마을의 당산제는 1990년초 까지 마을 부녀자 들 중심으로 음식을 차리고 굿을 했다. 그 전에는 당산 나무에다 동아줄을 묶고, 돼지 머리를 올리고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원 1월 15일(보름날) 부녀자 중심으로 지냈다, 남자들은 참여 하지고 참가 하지 못했다고 한다. 80년대 당산나무 옆에 휴게소를 지었는데 당산나무가 죽어 갔다고 한다.
⑧ 상림리 하림마을
옛날 마을 회관 앞에 팽나무 1그루와 아카시아 4그루가 있었다.
동네 입구 길을 넓이고 마을 회관을 짓기 위해 사라 졌다. 1970년대까지 있었다. 당산재는 30여년 전에 사라
졌으며, 그 이후는 동네 몇 분들이 당산제 비슷하게 개인이 제를 올렸고, 당산 나무가 사라질 때에 당산제도
사라진 것으로 안다.
⑨ 상림리 하림 당산제 (새마을 사업으로 소실)
⑩ 상림리 하석교 당산제 (1960년대 사라짐)
⑪ 상림리 상석교 당산제 (여성들만 지내는 당제 형식 남아 있음)
⑫ 남포리 사창 당산제 (1945년 1월 2일 소실)
⑬ 하입석리 수랑 거리제 (거리제로 지냄)
⑭ 하입석리 하입석 당산제 (사라짐)
⑮ 하입석리 반평 당산제 (80년전에 사라짐)
⑯ 유천리 원유천, 내유천 당산제 (2곳 모두 사라짐)
⑰ 유천리 호암 당산제 (여성들만 지내고 있음)
⑱ 월천리 월천 거리제 (거리제로 지내고 있음)
⑲ 우동리 만화동 당산제 (사라짐)
⑳ 기타 신복리 종곡, 월천리 판곡, 월천리 군당, 하입석리 송정, 월천리 유관, 영전리 원영전, 영전리 냉정.
다. 상서면 지역의 당산제
① 상서면 감교리 회시마을 당산제
모정 옆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23번 국도 다리 아래에서 다리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마을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다리제는 23번 국도를 포장하고 많은 사고로 주민들의 목숨을
읽어 당산제를 지낸 후 다리 아래에서 다리제를 1990년대 초에 지내게 되었단다.
② 상서면 용서리 분장마을 당산제
매년 3월 초순 격(3~4일) 중 택을 하여 날자(재일)를 잡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밤에 당산제를 지낸다. 2009년에는 당산제 10일전에 송아지가 태어나 50일 가량 늦게 날을 잡아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 이장 및 연장자와 상의 후 결정.
라. 변산면 지역의 당산제
부안군 변산면 지역은 바다와 산이 있는 천혜의 지역이다. 타 지역과 다르게 여러 마을에서는 초하루부터 대
보름날까지 당산제와 용왕제가 줄줄이 이어졌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치러지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7~8곳에
지나지 않아서 숫자가 가진 의미로는 쇠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1960년대 산업화에 따른 농업인구의 도
시이농과 각종 기계장비와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의식에 자리에 신의 영역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
]
양상의 변화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바꾸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졌어도 반만년 이어져온 우리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버릴 수가 없다. 변산면의 몇 군
데 마을의 끊이지 않는 이들 당산제와 제의들을 살펴보면 그 대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변산면의 경우 마포, 격상, 도청, 모항, 합덕 당산제 특징을 보면 어업 농업의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지역
이며, 몇 몇 지역은 순수 농사를 짓는 단일 마을로는 농가의 규모와 밀집도가 다른 마을과는 비교할 수가 없이
크다는 것이다. 전통문화가 온존할 수 있는 이들 마을이라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산제를 지켜내
는 것은 그 무언가의 문화적인 면과 전통적인 면이 작용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현상은 2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지서2구에서도 드러나며 수성당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모항이나 대항리의 당제도 정초에 치러지는
풍어제라는 성격만 다를 뿐이지 대내외적인 변화의 와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원리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변산 지역뿐만 아니라 부안군 전체적인 당산제를 우리 지역의 전통적인 정체성를 담아내는 문화제 형식을 살
려보는데 있을 것이다. 자연부락의 이구 감소로 축소 변화 과정에서의 문화적인 의미만을 생각하고 어느 지역
적으로 행동해야하는 것은 그 문화를 죽이는 것일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며 이러한 문화적 형식은 상
품으로서도 훌륭하여 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결과적으로 높여주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변산면
뿐 만 아니라 부안군 전체적 문화적인 발전을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변산면의 경우 격상, 도청, 대항 마을의 줄다리기는 생긴 이래 지금껏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격
상의 줄다리기는 이 저잣거리의 당나무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바 그 줄의 굵기가 부안 전 지역에서 볼 때 보안
면의 우동 당산의 용줄에 버금가는 것이다. 격상, 도청, 대항 줄다리기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주민들의 자존심
과 사기가 높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규모의 당산제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서 뿌리가
있는 전통이 끊어지거나 축소될까 조마조마하다는 점이다.
① 변산 마포 당산제 (2008년 02월 21일)
2006년부터 옛 마포초등학교 참여단체들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찾고, 주민들이 더욱 친해지기 위해 만들
어온 행사였다. 작년(2007년)에는 학교입구에 솟대를 깎아 당산으로 세우고, 작게나마 용줄을 꼬아 당산에 감
아서 옛 당산제의 모양새를 재현하려고 했다.
3년 째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조금씩 살이 붙고 자연스럽게 발전한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마포와 산기 마
을에서 공동으로 마을 주민들이 올해 보름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오전 11시부터 마을주민들과 각 단체 회원들이 모여 용줄을 꼬면서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러 가닥으
로 꼬는 용줄들 주변에서는 옛날 경험이 있는 나이든 분들이 중심이 되어 젊은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자리였다. 식당에서는 손맛 좋은 아주머니들이 보름나물과 돼지찌개를 준비했고, 개중에는 연날리는 아줌마,
용줄꼬는 아이, 찌개 끓이는 아저씨,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성스레 준비한 오곡밥과 돼지찌개와 각종 나물들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서, 참가자들 모두 천둥소리의 풍
물에 맞춰 용줄을 매고 마포마을과 산기마을을 돌았다. 대략 1시간 정도 걸려 마포마을을 돌고 당산나무 아래
서 막걸리와 음식을 나누며 잠시 쉬고, 다시 산기마을을 돌며 마을회관 앞에서 모두 어우러져 춤추며 부녀회
에서 준비한 정성스런 음식을 나뉜다.
풍물패 상쇠이자 이날 잔치진행의 총책임자인 박형진 씨가 풍물을 울려 이날 하이라이트인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팽나무 당산 아래로 이동했다. 지푸라기로 만든 용줄이 대단히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2시간 동안 어깨에
메고 다니기에 가벼운 무게는 아닐 것이다.
용줄이 20여년 넘게 사라졌다가, 작년에 흉내를 내기 시작해서, 올해 좀 더 크게 흉내를 내 보니, 처음 하는 사
람들도 신나지만, 나이든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더불어 되살아난 추억의 감동이 몸에서 느낄 것이
다.
이제 당산나무에 용줄을 감고, 마을에서 준비한 음식을 어른들이 정성스레 차린 제상 앞에서 산기마을 이장
조정식씨가 대보름 맞이 풍년기원문을 읽었다. 대자연의 순리에 기댄 삶이란 점에서, 기원문은 미신이 아니
라,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자기 위치와 지위를 스스로 인정하는 생태적으로 올바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문을 읽고 난 뒤, 마을 어른들부터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제상 앞에 절하며, 소망을 기원하고, 우리 마을
과 학교와 전체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노력할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다시 신나게 풍물에 맞춰 춤추며 어우러
졌다.
당산제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지만, 하여간 당산제를 지낸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소원지를 적어 붙인 달집을
태우고, 아이들은 숱을 깡통에 담아 돌렸다. 어두워질 때까지 주민들과 학교 구성원들, 그리고 손님들이 남은
돼지고기를 굽고 막걸리를 마시며 이날의 신명난 잔치를 마무리했다.
▶ 대 보름 맞이 풍년 기원문
조상님께 기원합니다. 2008년도 무자년 엔 마포·산기 주민 모두가 건강하고 농사도 잘되고 하는 일 모두가 번
창 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의 잔치를 함께 준비한 생태 문화 활력소, 천둥소리, 산 들 바다 공동체,
변산 공동체도 번창하게 하여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조상님이 남겨주신 당산나무에 마포·산기 주민들이 함게 모여 대보름 잔치를 하오니 더욱 화합할 수 있게
도와주시길 기원합니다. 조상님들은 산기·마포 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화목하게 살라고 마을의 중심에 당산나
무를 주셨는데 저희는 제각기 잘난 맛으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화합하며 살겠습니다. 마을에 여러 종교가 있어서 신앙이 다를 수 있지만, 남녀노소가 있어서 생
각의 차이가 있지만, 조금 가난하고 조금 더 부자인 사람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화목하게 살겠습
니다.
▶ 조상님께 기원합니다.
2008년도 무자년에 육체의 건강을 주시되, 마음의 평안을 더 주시길 기원합니다. 농사도 잘되고 사업에 번창
을 주시되, 함께 나누는 마음을 더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동네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잘 모시고 어른들은 젊은이에게 귀감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마포·산기
정월 대보름 풍년 맞이 한마당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무자년 정월 열사흘 마포·산기 주민이 마음을 합하여 조상님께 기원 드렸습니다.
② 변산면 도청리 당산제
변산면 도청리 마을은 적은 규모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당산제를 치른다.
용줄 꼴 힘도 없으시는 노인들이 1년 한 번씩 치르는 행사가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마을의 당산제의 원형을 어는 정도 보존하고 간직해오는 곳이 도청리 당산제이다. 정월보름 전 부터 정월보름날 줄꼬기, 줄다리기, 마을돌기, 당산나무 옷 입히기 순으로 아침 일찍부터 해질무렵까지 축제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도청의 줄다리기도 그 규모와 역사성에서 매우 자랑스럽다. 줄의 길이가 변산면을 통틀어 가장 긴 것인데 이는 줄을 꼬고 당긴 다음에 메고 동네를 도는 과정에서 ‘어후이-차’ 소리하며 어루고 장난하는 전통 때문이다. 이런 놀이가 아직도 면면이 도청 줄다리기에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놀랍다. 단언컨대 이 전통은 계속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노인들만으로 줄을 꼬아 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모두가 마찬 가지일 것이다.
③ 변산면 모항 당산제
변산면 도청리 모항은 변산반도의 남쪽에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주위 경관이 빼어나고, 소나무 숲을 낀 아담한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에는 피서객들로, 그 밖의 계절에는 낚시를 겸한 관광객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변산일주도로가 나기전인 6∼7년전 만해도 인적이 드문 어촌이었다. 지금은 55가구 130여명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마을 공동제로 산신제와 당산제, 그리고 용왕제를 모시고 있다. 모항 같은 곳은 아예 없어진지가 40년이 넘고 제의만 남았다.
산신제와 용왕제는 정월초하루날 모시는데 예전에는 당산제 모시면서 장승제까지 간단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그리고 정월보름날에 용왕제를 모셨으나 6.25무렵 끊겼다가 최근 다시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갑남산 중턱에 있는 「부엉바위」라는 곳 아래에 산제당이 있어 이 곳에서 지내고, 당산제는 마을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지낸다. 음력 정월 보름날 지내는 용왕제는 마을의 남쪽 바닷가 언덕에 있는 팽나무 아래 공터에서 올린다. 이 곳은 해방 무렵까지만 해도 당집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당집에서 제사를 올렸으나 지금은 당집이 없기 때문에 바닷가 팽나무 옆에 천막을 치고 제를 올린다. 특이한 점은 제상에 올려놓는 제물 중, 돼지머리 대신 소머리를 올려놓는 점이 타 지방과 다르다. 제사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오전 내로 지내고 오후 내내 굿을 치면서 동네잔치를 치른다. 제사비용은 당산제와는 별도로 걷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동네 기금으로 제사비용을 마련하기도 한다. 당산제 같은 경우 마을사람 누구나 당연히 낼 것으로 생각하나, 용왕제는 바닷일이라 하여 제비를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제사비용을 마련한다.
④ 대항리 당산제
대항리의 경우는 초사흗날 하던 것을 귀성객들이라도 있을 때 하기 위해 초하루로 옮겨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
이다. 마을 동편에 있는 할머니 당산만 지내고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 나무는 사람이 출입이
할수 없는 곳은 아니지만 사람의 왕래가 할수 없을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다. 뒤 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짐,
20년전(1990년 초)정도 죽었음, 당산제 현제는 1월 1일(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고 객지의 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일 때 지냄) 옛날에는 음력 1월 15일에 지냈음)
l 그 외 변산면 당산
⑤ 격포 대막골 수성당(도유형 문화재 58호, 1월15일)
⑥ 대항리 합덕 마을 당산제 (풍어제, 1월15일)
⑦ 마포리 마포 당산제(줄다리기, 1월15일, 사라졌다 다시시작)
⑧ 격포리 격상 당산제(줄다리기, 1월15일)
⑨ 도청리 궁항 당산제(1월 15일)
⑩ 지서리 당산제
⑪ 격포리 격하1리 당산제
5. 당산제와 마을 굿의 미래가치
현재 부안군에 지원되는 곳 중에서 우동리 당산제, 돌모산 당산제, 수성당 당제, 띠벳놀이 등등 1년 아니면 2년에 한 번씩 지원이 되다보니 여러 문제점이 발생 되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문화관광축제 선정방식을 대폭 개선하여 2009. 12. 29(화) 보령머드축제, 안동국제탈춤축제 등 2개의 대표축제와 최우수축제 8개, 우수축제 10개, 유망축제 24개 등 2010년도 문화관광축제 44개를 선정하였다.
ㅇ 경쟁력 있는 축제에 대한 집중 지원과 유사축제에 대한 통폐합 유도를 위해 2010년도 문화관광 축제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선정하였다.(‘09년 57개 → ’10년 44개)
ㅇ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축제의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표축제는 3회까지만 지원하고 최우수 축제 등은 등급별 3회, 총 7회까지만 지원하는 등급별 지원기간 한도를 설정하기로 하였으며, 지원이 종료되는 대표축제는 명예대표축제로 간접지원만 할 방침이다.
부안지역의 당산제와 마을굿 등 많은 문화재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보존과 전승을 지역문화와 연계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치와 보존과 전승의 가치가 많은 곳보다 정치적인 면이 앞선 곳 이 많은 것 같다.
내소사의 당산제는 이제는 불교와 유교의 만남으로써가 아닌 문화적인 전통을 이어가는 지역 주민생활로 봐야 할 것이다. 내소사의 일이 아닌 부안군 전체적인 일이요 우리 모두 의 일인 것이다.
2) 위의 말한 곳 중에서 모두는 그렇다고는 보지는 못하지만 몇 곳은 정책성과 문 화적이 가 치가 지금 주민들끼리 하는 당산제, 당제, 마을 굿, 용왕제 등 보다 떨 어진 것과 떨어지 고 있다.
보안면의 우동리 당산제의 경우는 상입석의 입석제(도 민속자료 6호), 제네 마을의 당산 제, 만화동 당산제, 원유천의 당산제(지금은 당산제 없음)보다 후에 당산제를 이어 왔음에 도 타 지역은 정부의 보존과 무관심으로 점차 소외되고 있는 다.
3) 전승과 역사와 문화적인 가치를 보고 정부의 지원금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지원금을 많은 지역에 배분을 했음을 한다.
격포 수성당은 오래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당집을 새로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선사시대의 제사 유물이 출토 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 역사나 의미에서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당제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살아오고 생활을 하면서 전통과 문화를 지켜 낸 것이 지금은 외부 사람들의 축제로 변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축제여야 할 당제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4) 위도의 띠뱃굿과 수성당을 비교를 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용왕제와 당제, 마을 굿은 누구 를 위하여 하는가 ? 어디에 있으며 누가 만들어내며 누가 즐기는가의 시각으로 볼 때 띠벳 굿과 수성당제는 진행과정에서 당사자들인 지역민이 소외 돼고 전문가들의 기계적인 면만 보여주고 그 뒤의 뒷바라지는 지역 주민의 목이 되는 것이다.
5) 수성당의 당제는 죽막동 주민들로 구성된 제관이, 용왕제는 죽막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 다는 민속예술연
구원의 무속인들이 하는데 그들만의 잔치인 듯 하다. 수성당제는 지역주민 의 삶에 밀착하여 보다 생산적인
축제로 거듭나야 되리라본다.
6) 이번 내소사 당산제도 사찰만이 아닌 지역 주민과 먼저 화합의 장이 되고 이 이후 관광객 과 타 지역의 손
님맞이가 되어 야 할 것이다.
7) 이제 부터라도 부안군 전 지역의 신목과 고목 등 문화제로 격상을 높일 수 있는 은 소 잃 어버리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맺은 말
이글은 자연과 종교와 생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사용 용어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산제와 마을 굿으로 정했으며, 사라져간 마을 굿에서 나타나는 지역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특히 부안 변산반도(邊山半島) 지형은 3면이 바다인 이유에 다른 지역 보다 많은 마을 굿이 열리고 있으며 문화가 많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미래가치의 중요성을 종교적인 면이 아닌 세시풍속과 생활민속에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부안군의 마을굿에서 나타나는 내용이 필자의 개념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다만 자연과 전통과 생활까지 포함하여 부안지역의 당산제(堂山祭)의 전승과 전개에 대하여 알아보고 지역적인 분포도에서 나타나는 것을 확인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대한 개념정립은 차후의 문제로 넘긴다.
종교의 금기와 종교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려서 당산제에서 마을 굿에서 그것을 하지 않도록 하거나 하지 않게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접촉의 의식(衣食) 행위, 보는 것과 듣는 것, 말하는 것 등에 대한 모든 행위를 금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에서는 보여주며 같이 하는 행위가 종교를 지탱해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 부안군 동제(당산제) 현지조사 항목
* 개인적인 조사와 부안군청 문화 관광과의 고재욱 과장님의 일부 협조(209년) 를 얻어 몇 차례 조사를 했음.
부안군 동제(당산제) 조사서
1. 조 사 일 : 2009년 3월 17일
2. 조사지역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회시마을)
3. 제 보 자
이 름 (한 자) |
나이 |
성별 |
직 업 |
고 향 (태어난곳) |
연 락 처 | |
자 택 |
휴 대 폰 | |||||
노 철 만 (辭悛撞) |
64 |
남 |
농업 |
회시마을 |
582-5348 |
018-736-5483 |
4. 조사마을 일반현황
마 을 명 |
가 구 수 |
마 을 인 원 |
비고(기타) | |
남 |
여 | |||
회시 |
76 |
71 |
75 |
5. 동제 형태
○ 이 마을에서는 마을 제사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 => 다리 제
○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지요? => 거리제
○ 동제의 유형은 (당산나무, 당집, 입석, 징승, 솟대, 짐대, 당간주)
당산나무, 다리
6. 동제는 언제(날짜와 시간)모십니까 ?
○ 1년에 언제 모시는지? 또 다른 날짜 => 음력 2월 초하루
○ 제사를 모시던 날과 시간이 옛날과 똑같은지요? => 같음
7. 마을제사를 몇 곳에 모시고 있는지요?
○ 제사를 모시고 절하는 곳은, 다르면 어느 곳에 또 있는지요?
=> 2군데 (마을모정, 마을앞 다리)
8. 마을에 모시는 신의 이름은 ? => 당산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9. 당산의 위치는 ? (마을 앞, 마을 중앙, 마을 뒷산, 기타 )
=> 마을모정, 마을 앞 다리(국도 23번 도로 주민의 많은 사고 이후)
10. 당산의 목적은 ? => 무사안녕 (사고방지)
11. 제사를 모시는 사람은 어떻게 뽑는지요 ? => 동네 이장 주관
○ 무당이 참여하는지 ? => (몇 년 전 까지 만해도 참여함)
○ 당고래미가 참여하는지 ? => 無(없다)
○ 마을 분 중에서는 어떻게 뽑는지 ?=> 無(없다)
12. 제물 (祭物)
○ 제사의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 약 100만원
○ 제물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 마을주민들이 장만
○ 제물은 어디에서 준비하는지 ? 마을회관
13. 당제 후 (뒷풀이)
○ 제사를 모시고 음복을 하는지? 음복 후와 전의 행사는 ?
=> 음복 함. 음복 전에 촛불을 켜고 소지(흰 종이를 태움)
14. 제사 때 외부의 사람이 오는지 ?
○ 고향의 출향민이 참여하는지 ? => 無(없다)
15. 제사가 언제 제일 번창했는지 ? => 1960 ~70년대
16. 언제부터 제사가 없어졌는지 ?
=> 1980년 정도 없어졌다가 1995년 정도부터 부활함
17. 마을에서 제일 잘 알고 계시는 분 연락처 및 성함은 ?
=> 노철만 (회시마을 이장, 018-736-5483)
l 참고 문헌
ㆍ1871년에 편찬된《호남읍지》
ㆍ1942년 소화17년에 편찬된《전주부사》풍속편
ㆍ1964년에 발간된《전주시사》자연환경과 주민편의 풍속 절이다 풍속이라 붙여진
항목에서 정월 초 하루에서 제석절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절기에 따른
세시의례를 다루고 있다
ㆍ1970년 대 말부터 전라북도 각 시 군의 문화재 지표 조사보고서가 발행
ㆍ1971년에《한국 민속 종합 보고서》전북편이 발간
ㆍ1980년 전라북도가 펴낸《전북전통민속》
ㆍ국립민속박물관 1987
ㆍ향토 문화와 민속 1996
ㆍ 표인주 《공동체 신앙과 당신화 연구》 집문당 1996
ㆍ박환용의〈위도의민속지〉
ㆍ세시풍속항목《향토문화연구》제집1987,
ㆍ김형주 함께하는 부안 기행,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민속원 2002,
ㆍ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기술한
《우반동 우반동 사람들》 (한국향토사전국협의회 1997)
ㆍ이규창의 《전북지방의 의식주》《전라민속논고》1994
ㆍ내고향 保安 《재경보안면향우회》 2001년
ㆍ부안 독립신문
ㆍ부안 21 김형주의 부안 이야기
ㆍ부안군청 고재욱 과장님 이하 각면 문화계(2009년)
ㆍ이종호,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주)한문화멀티미디어, 2003
ㆍ《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ㆍ《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2004
ㆍ 김성식 외 《전라북도 마을 지킴이의 정악》 전라북도 2004
ㆍ 이필영 《마을신앙의 사회자》 웅진출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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