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그릇이 찌그러지거나
구멍이 났는데 마음이 온전히 담아지겠습니까?
앉아서 차분히 마음 닦는 수행을 하고자 해도,
몸이 사나운 짐승처럼 이리저리 헐떡인다면
수행인들 제대로 되겠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유난히 산만하다고 합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어수선해진 것이라는 얘기겠죠.
그러니까 요즘 아이들은 이미 그릇을 버려 놓았다는 것이죠.
요즘은 몸에 대한 담론이 한창입니다.
몸매 가꾸기 열풍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다이어트와 헬스 붐이 일고 있는거죠.
마음을 담는
그릇을 가꾸는 일이라면 물론 대 찬성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고 있는 몸에 대한 관심은
‘보여주는 몸’에 대한 관심일 뿐입니다.
그 곳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거죠.
옛날 수행하던 분들은 채식에서
더 나아가 생식을 하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밥조차 불로 익힌 음식이기 때문이고,
반찬도 양념으로 버무린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생식이 좋다고 해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특별히 생식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몸이 예민하게
그런 음식들에 반응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익힌 음식과 자극적인 반찬들을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의 먹거리를 찾는다는 것이지요.
도를 닦고 담아야 할 몸이기 때문에
생식을 통해 한 치라고
더 대자연의 모습에 다가가려고 했고,
그런 몸속에 큰 도가 깃들였었습니다.
보조 지눌 스님이
〈계초심학인문〉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지수식 단료형고 위성도업
須知受食 但療形枯 爲成道業
(음식을 받는 것은 몸이 여의는 것을 치료하여
도업을 이루기 위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불자들에게 음식은 약입니다.
무엇을 위한 약입니까?
몸이 마르고 여위는 것을 막는 약 일 뿐입니다.
약을 먹을 때 맛을 따지나요?
색 예쁘고 향기도 좋아서 먹기 좋은 약이 좋은 약입니까?
아닙니다.
약은 입에 쓰더라도 병을 낫게 해야 훌륭한 약입니다.
불자들은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도를 이루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수행의 치열함을
내 건강이 뒷받침하지 못할 까봐 걱정으로
음식도 먹고 휴식도 취하는 것입니다.
얼굴의 옛 날은 ‘얼꼴’ 입니다.
얼의 형태라는 것이지요.
얼은 정신입니다.
마음이기도 합니다.
40살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듯이,
지나 온 인생살이가 그대로 드러나고,
마음먹은 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몸 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용한 의사는 맥을 짚어 보지 않고
얼굴만 보아도 몸 상태를 아는 것입니다.
얼꼴과 몸꼴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의지합니다.
물론 부처님은 때로 육식도 하셨습니다.
찾아 먹는 것이 아니라,
공양 받은 것은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입니다.
또 제자들에게는 병들어 허약할 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약으로 육식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이는 것을 보거나,
죽이게 하거나,
공양을 위해 죽이는 것은 확실히 금지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을 때 먹기는 하지만,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 근본 가르침입니ᅟᅡᆮ.
살리기도 바쁜데
죽이는 악업을 지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의 법 안에는
이미 인류의 재앙을 물리칠 지혜가 다 들어 있습니다.
대단한 가르침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4월 10일 오전 05:16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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