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10월 내내 중구청장의 증인참석 거부로 서소문특위 계속 연기됨.
중구의회는 11월 16일 중구청장 불참에도 속개하여 구의회의 입장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11/15 중구의회는 중구청이 제출한 추경예산안을 부결시켰다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9641
http://ch1.tbroad.com/content/view?parent_no=24&content_no=57&p_no=44163
중구의회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또 다시 부결시키면서 국가사업인 서소문역사문화공원 건립이 중단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번이 6번째로 사실상 올해는 예산 확보가 힘들어 올해 미사용된 예산을 반환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기사내용] 김기래 중구의장 (이번 임시회 상정안건인 서소문역사문화공원추경 예산안은 부결됐음을 알립니다...탕탕탕)
반대 5에 찬성 4표.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추경예산 52억 원이 또 다시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으로 6번째. 문화체육부가 제시한 마지노선인 17일까지 예산확보가 어려워 사실상 공사 지속이
불투명해졌습니다. 현재 서소문역사공원 공정률은 28%. 이미 공사에 들어간 예산만 160억 원에 달합니다.
올해 공사비로 중구청은 국ㆍ시비 206억 원을 받았는데 구예산 52억 원이 확보되지 못하면서 공사 진행이 어려워 진 겁니다.
문체부는 올해 구 예산 확보를 못하면 아직 사용되지 않은 예산 150억 원을 환수 조치한다는 카드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만약 중구청이 예산을 반환할 경우 예산부족으로 공사 중단은 불가피합니다.
내년 공사 중단은 물론 사업백지화까지 거론되는 이윱니다. 문체부와 서울시, 중구청은 오는 12월 초 다시 예산환수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입니다. 지방자치 역사상 기초의회 갈등으로 국가사업이 중단되는 오명을 중구의회가 쓰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11월 16일 서소문특위를 앞두고
가톨릭서울대교구는 염수정 추기경 명의로
자신들이 전시관 인테리어비용 부담하겠다, 완공후 관리비도 부담하겠으니
중구의회에서 추경예산을 편성해 달라, 내년도 예산도 편성하라며 압박을 넣고 있다.
* 참고 : 가톨릭에서 부담하겠다는 인테리어비용-100억원대, 매년 예상 관리비용40억원 대
11. 16일 중구의회 서소문특위에서 구의원들은 참고인들에게 동학, 민족진영에서는 얼마정도의 돈을 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세상. 정위원장은 "국가사업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영상참고).
16일 채길순 교수는 바쁜일정으로 참고인으로 불참, 증언자료 보내주심. 정갑선위원장이 발췌하여 발표
이날 관련된 다른 자료도 함께 올림
중구의회에 도착. 중구자치신문보니...
박영한의원 발언은, 공사중단을 서소문사업을 아예 하지 않는 걸로 왜곡한 것.
서소문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아, 제대로 사업을 추진하자는 것이 중구의회특위의 입장이며 동시에 서소문범대위의 입장이기도 하다.
더디가도 제대로 해야. 일단 공사중단이 필요하다.
특위의원들이 내년도 서소문관련 예산전액을 삭감하겠다니...기초의원으로서 제 몫을 단단히 하는 것.
중구의원 9명 중 5명이 서소문특위 위원으로. 우리역사를 왜곡하는 서소문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 5명은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의원들 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있다.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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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인 채길순 증언(요지)
가. 중구청(청장 최창식) 서울시 중구 의주로2가 16-4 일원에 추진하고 있는 역사공원 사업이 처음부터 <천주교 성지화>로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중구청에서 2014년 2월 14일 공문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공모실시> 에서 밝힌 ‘설계 지침’에 따르면 온전히 천주교 성지화였다. 공간배치는 아래와 같다.
즉, 순교성당이라고 구분 짓고 기념성당 800석 규모, 소성당, 제의실, 다목적실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100% 천주교 시설로 설계하라는 지침임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겉으로는 역사공원이라는 이름 붙이고, 속은 천주교 성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당선작은 이에 부응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 지하부 통로. 순례길을 모티브로 한다.
▲ 주 단면도. 왼쪽부터 지하부 침묵광장, 순교성당, 진입광장과 지상부 중앙 순례타워가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구민과 시민, 나아가 국민을 속였다는 뜻이다. 특히 2015년 11월, 천막 농성을 풀기 전에 범대위 사료발굴위원회에 전시실 공간을 채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료 확보 혹은 스토리텔링화 작업을 요구하면서 농성천막 철거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7일 첫 삽을 뜬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사업은 전날의 합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주교 성지사업으로 진행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총사업비 575억이 투자된 이 사업은 명백한 종교 편향이다.
이는 중구청이 정보 공개한 문서(2011.11.04.-2014.11.05.까지)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기회에 2014년 11월 6부터 지금까지의 문서도 공개할 것을 중구청에 공식 요청 한다.
1. 문서 : 2011.09.30. 서소문공원 역사관광지원화사업 추진 계획(중구청 도시관리국 도시디자인과)
위 문서에 의하면, “사업 추진 목표 및 추진 방향 (1) 서소문 역사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 개최, 서울문화사학회 주관 서울시 중구청, 천주교서울대교구(주최, 2011년 12월 8일) (2) 국제현상공모 실시 9억 2천만원 (3) 기본 및 실시 설계 수립 2억” 등으로 내용이 구성 되었다.
→ 결론 : 처음부터 명백하게 천주교 성지 계획으로 출발했다. 추진 목표에 “세계적 천주교 성지 위상에 맞는 명소 조성”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도 천주교 성지가 아닌 역사공원인가? 특히 서울문화사학회는 일반 사학자들이라기보다 천주교인들로 구성되었다. 그 뒤에 이 학회는 어떤 전전된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지 묻고 싶다.
2. 문서 : 2011.11.04. 서소문공원 역사관광자원화를 위한 심포지엄 개최 계획(중구청 도시관리국 도시디자인과) 주관 서울 중구청 천주교 서울대교구 / 환영사 축사가 구청장과 염수정 추기경으로 진행되었다. → 결론 : 중구청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3. 문서 : 2013.05.14. 서소문 역사유적지 기념사업 관련 테스크포스팀 구성 및 운영 계획 공문(천주교 성지화 계획이 더 구체화 되었다.)을 보면 모든 사업이 중구청 독단으로 진행되었다.
1) 사전 검토 항목 난에, 시민 참여 고려사항 / 법령 및 기타 고려 사항 / 타 자원의 활용 / 관계기관 및 단체 협의 항목 12개 중 11개가 무(□)에 체크되었고, 오직 서울시 중구 1항만 유(■)에 체크되었다. → 결론 :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독단적인 사업 팀 운영임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고도 시민 혹은 국민의 뜻이 반영된 역사공원 사업인가?
4. 문서 : 2013.07.00. 서소문 밖 관광자원화 사업 / 이 공문에 의하면, 역사적 배경에서 순교 성지는 5번에 배치하고, 사업배경과 목적 항목에는 “세계적인 가톨릭 순교성지 조성으로 국가 브랜드 향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 기념 및 전시 공간 구상(안)에 의하면 “핍박받던 순교자의 고립과 고통 체험”이 강조되었다. → 결론 : 이미 전시 공간 구성에 천주교 성지 계획으로 추진된 사실을 알 수 있다.
5. 문서 : 2014.06.02. 서소문 밖 관광자원화 사업 계획서(안)에 따르면 “서소문공원은 과거 조선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개혁사상가들이 핍박을 받았던 장소로 당시의 시대상이 근대에 미친 영향을 체험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 가능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천주교 순교성인을 배출한 장소로 국내외 천주교 성지 순례자를 흡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시행 주체인 서울특별시 중구청과 관련단체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사업추진 협약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2014년 4월 2일) → 결론 : 우리는 협약서(MOU)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근거로 공무원의 종교 편향 정책을 고발할 것이다.
6. 문서 : 2014.08.18. 서소문 설계공모 작품 전시회 추진 계획(중구청 도시관리국 도시디자인과) 2014.09.01.- 17까지, 이 문서에 의하면 명동성당 평화화랑에서 15작품이 전시되었고, 구청장의 인사와 추기경의 축사로 진행 되었다. → 결론 : 앞에서 제시된 중구청의 공모 지침대로 기념성당 800석, 소강당, 제의실 등으로 공간 구성을 마쳤다. 이로써 천주교 성지화 계획이 완성되었다.
7. 문서 : 2014.08.22.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 및 통보 → 결론 :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천주교 성지사업”이라는 문구가 빠졌다. 왜냐하면 종교 편향 사업에 국고 보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무원의 종교 편향에 대한 고발이 있었지만 거듭 부결되었다. 자료를 보충하여 계속 진행할 계획임을 밝혀둔다.
8. 문서 : 2014.10.30. 서소문 공원 내 윤관 동상 이전이 가능한 지 조회 요청 → 결론 : 이로써 역사공존이 아닌 독단적인 천주교 성지 화를 위한 계획이 다시한번 확인 되었다.
9. 문서 : 2014.11.04. 2014년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 보조금 교부 통보 → 결론 : 15억 원이 교부되었다. 여기도 “천주교 성지화”라는 명목이 빠졌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특별시에서 보조금 지급의 경우에는 종교 편향 시비 때문에 한결같이 “천주교 성지”라는 말을 뺐다. 국민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분명해진다. 이 점은 서울시청의 보조금 지급 경위와 일치한다.
나. 그동안 중구청에서는 범대위에 역사적 사실 보완을 요청하거나, 공동 학술대회 개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단독으로 실시한 학술대회는 다음과 같다. 이에 비해 천주교 중심으로 진행한 학술대회는 몇 차례 진행되었는지 묻고자한다.
서소문범대위에서 도출한 역사적 연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조선 시대에 반봉건 개혁투쟁과 정변 주도자들이 처형된 사건
(1) 사회 개혁을 주장했던 허균이 1618년에 처형되었고, 1811년에 평안도 지역에서 난을 일으킨 홍경래와 주동자들이 처형되어 서소문 밖에 효시되었다.
(2) 1868년 8월 3일, 정덕기 윤내형 박윤수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이들은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 외세 침입의 어수선한 틈에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사건이었다.
(3) 1882년에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기 위해 훈련도감의 군병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이 위협을 받았고 민비(왕비)가 피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모든 주동자들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4) 1884년에 정치 개혁을 위해 선각자들이 정변을 일으켰으며, 정부 요인들이 살해되었다. 갑신정변 주동자들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5) 1898년, 동학농민혁명이 끝나자 민주주의 정권을 염원하는 독립협회가 생겨났다. 조선 정권은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하여 서소문감옥에 투옥하거나 서소문 밖에서 처형했다.
(6) 1897년 8월, 일본이 조선침략의 일환으로 강행한 대한제국 강제 군대 해산에 저항하여 서소문에서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조선군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었고, 시체가 1개월이 넘도록 서소문 밖 만초천변에 방치되었다. 이때부터 전국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2. 동학 및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이 처형된 사건
(1) 1871년 3월, 이필제 정기현 정옥현이 영해에서 교조신원운동을 위해 영해 부사를 처단하고 관아를 점령했으나 붙잡혀서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어 효시되었다.
(2) 1894년은 동학농민혁명 시기였다. 이해 10월과 12월에 동학지도자 안승관 김내현 김개남 성재식 안교선 최재호 등이 서울에 압송되어 처형되었고, 서소문 밖에 효시 되었다.
3. 서소문범대위에서 발표한 논문은 아래와 같다.
(1) 제1차 :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2015년 1월 22일,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 ‘서소문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 제목 : “조선시대 서소문 지역의 역사적 의미 고찰”
(2) 제2차 : <서소문공원 역사적 가치 발굴 학술토론회>(2015년 5월 21일, 서울특별시 중구청 주최) 제목 : “조선 후기 민중사가 집약된 서소문 지역의 역사적 의미 연구”
(3) 제3차 : <서소문공원 저항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2015년 9월 3일, 서울 국회헌정기념관, 주최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제목 :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한 조선시대 서소문지역 저항의 역사”
(4) 제4차 : <조선시대 서소문 지역 역사 바로보기>(2016년 1월 14일, 서울 국회헌정기념관, 주최 :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천도교중앙총부, 동학학회·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사료발굴위원회) 제목 : “스토리텔링으로 본 조선시대 서소문 민중사 전개과정”
다. 현재 핵심 문제인 <서소문 역사공원>의 공간 배치 계획을 중구청으로부터 듣고 싶다. 왜 문화 공간 배치를 위한 “역사 고증에 대한 자문위원회” 같은 것이 없는 지, 왜 천주교 자료 전시만 고집하는 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서소문 밖 동학농민군 지도자 효시(梟示) 장면 사진(머리의 주인공은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 최재호 성재식 안교선 중 한 명이다.)
2017년 9월 9일 로마 바티칸 박물관 내 브리치오 디 카를로 마뇨 홀에서 ‘한국천주교230년’ 기념전시회 개막식, 리셉션, 만찬이 열렸고,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 염수정 가톨릭추기경, 최창식 서울중구청장 등 한국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시기에 맞춰서 범대위 임남희 회원이 2017년 9월 8일부터 11일까지 로마 바티칸에서 <서소문공원 가톨릭성지화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다. 우리의 역사바로잡기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라. 결론 : 여기서 현대사의 한 사건을 상기하고자 한다. 1974년 4월9일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8명이 사형 당했다. 민청학련 사건을 수사하던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재건위원회가 민청학련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관련자 240명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 가운데 최종 기소된 것은 38명이었고, 대법원은 4월 8일 8명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사형 판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4월 9일 새벽, 8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전격 단행되었다. 이 거짓 사건의 중심인물인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카톨릭 신자였다. 이런 거짓 역사에 맞서 투쟁한 정의사제구현단의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문정현 함세웅 신부를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최근, 특정 종단에서 작성한 15만 명의 탄원서가 중구청 의회에 제출되어 예산 편성을 압박했다고 들었다. 역사 공원이 숫자에 의한 강압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역사에서는 소수의 희생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국비 시비 구비 575억 원이 투입되는 중구청의 “국민 시민을 기만하는 서소문 역사공원 공사”는 중단되어야 하며, 사업이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