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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개인의 과소비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주의라는 집단 심리가 어떻게 국가와 문화에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비를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이아니스 가브리엘과 팀 랭은 소비주의를 이해하는 다섯 가지 틀을 만들었다.
1.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는 개인이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2.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국민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성향의 보모국가(nanny state, 개인의 복지와 선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정책과 정부를 일컫는 표현-옮긴이)와 반대로 현대 국가는 초국적 기업을 비호한다. 또 현대 국가에 팽배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소비자가 화려하고 멋진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자유를 찬양한다.
3.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공산주의의 엄격한 금욕주의와 반대로 소비주의가 자유무역의 동인으로 찬양되며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는 일이 경제 발전의 열쇠로 여겨진다.
4.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물질적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 지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친다.
5. 사회 운동으로서 소비주의: 소비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종종 규제를 통해 가치와 품질을 보호하는 운동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30년 동안 인플레이션이나 경제 침체와 관계없이 사치품 소비는 꾸준히 증가했다. 존 드그라프와 동료들은 사치열병과 비슷하게 질병과 감염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빌려와 이런 현상을 '어플루엔자affluenza'라 일컫는다. 어플루엔자는 고통스럽고 전염성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증상으로, 더 많이 소유하려는 집착으로 생기는 과로, 빚, 불안, 낭비를 말한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풍요 때문에 과거 사치품이 이제 필수품처럼 여겨지면서 무엇이 '자연적' 욕구인지, 무엇이 '만들어진' 욕구인지 구분하는 관점까지 왜곡되었다.
내 연구는 실존주의심리학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실존주의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와 달리 대개 심리적 고통이 인간의 유한한 운명과 자유, 진정성 같은 존재의 조건을 둘러싼 갈등에서 생긴다고 믿는다.
특히 에리히 프롬은 현대 서구 산업사회의 자본주의 경제가 여러 심리 장애를 일으키는, 탐욕적 사회를 창조했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심리학자에 속한다.
소비문화에서 사용되는 이상화된 이미지와 서사는 그 상품이 치유해줄 것이라 여겨지는 결핍의 느낌을 우리 내면에 만든다. 이처럼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기대를 채우려는 더 절박한 시도를 낳아 결국 소비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곧 소비주의에 기대 심리적 욕구를 채우려 들면 과소비와 과식을 하게 된다.
소비주의를 지탱하는 문화적, 경제적, 심리적 요인은 서로 돌고 돈다. 이렇게 돌고 돌면서 소비를 통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한편 불행할 때는 물건을 사서 불행을 없앨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로새긴다.
지나친 선택과 쇼핑, 소비주의는 심리적 불만족을 낳을 뿐 아니라 너무 많은 소유물을 쌓아두고 관리해야 하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소득 불평등이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 가난해지는 이중의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냈듯, 세계 산업식품은 이중적 영양 '계급'을 창조했다. 이제 빈곤층은 부유층과 비교했을 때 훨씬 질 낮은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 겉으로 보면 이런 영양 계급은 경제 계급의 연장인 것처럼 보인다.
비싸지 않으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은 많다. 예를 들어 미국농무부의 '절약 식단Thrify Food Plan'은 계란, 칠면조, 다짐육, 양배추, 병아리콩, 렌즈콩을 값싸면서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추천했지만, 몇몇 연구자의 보고에 따르면 이런 음식은 저소득 가정에서 널리 소비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소비주의는 계층 상승을 가로막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창조해 빈곤층을 빈곤과 비만으로 붙들어 맨다.
빈곤층을 돕겠다는 의도로 소비주의를 누리도록 권리를 보장해줘서 결국 빈곤층의 심리적·육체적 건강을 해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회정책에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영양문맹과 금융문맹을 널리 확산시킨 또다른 요인은 아마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정에 통상 포함되던 가정과 실과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性중립적 가정 수업은 잘 가르치기만 하면 금융 지식과 영양 지식, 요리법, 신중하게 장보는 법, 개인과 가정 관리법을 배울 수 있다. 한편 실과는 물건이 어떻게 디자인되고 만들어지고 수리되는지 알려주기 때문에 사람들을 물질문화와 연결해줄 뿐 아니라, 도구를 직접 사용하게 만들어 스스로 행동과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요리하는 것과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는 증거가 있다.
식품산업의 심리전
초기호성과 다양성 그리고 편리성은 사람들이 음식을 더 먹도록 만들려는 식품산업의 토대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고에는 다른 강력한 무기도 무수히 많다. 이 모든 것을 넓게 지칭해 나는 '심리전'이라 부른다.
● 건강 후광 현상
'건강 후광Health halos'이란 '저지방' 같은 상대적으로 영양 효과가 있다는 광고문구를 사용해 적절한 섭취량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음식 섭취를 증가시키며 예상되는 소비자의 죄책감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 초개인화 마케팅
여성이나 어머니, 아이, 운동선수처럼 특별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음식 마케팅도 과식에 한몫한다.
● 혼란스러운 영양정보 흘리기
모호한 영양정보를 흘리는 것은 아마 식품산업이 쓰는 가장 오래된 수법일 것이다. 모호한 영양정보는 식품산업만이 아니라 신뢰받는 영양 단체들도 만들어낸다. 사실 이런 단체들은 거대 식품회사의 강력한 재정적·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다.
●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는 거짓말
음료산업은 돌팔이 '수분 보충 과학'으로 수분 섭취에 관한 거짓말을 창조하고는 탈수증을 염려해야 하며 "미리 수분을 섭취해서" 탈수 증세를 피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또 수돗물이 아니라 병에 든 생수나 주스, 스포츠음료, 청량음료를 마시라고 권한다.
● 엄마와 아이를 이용하기
식품산업이 판매를 늘리기 위해 건강과 상식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엄마와 아이들을 착휘한 것도 오래되었다.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통탄할 만한 사례는 영아용 조제분유 제조사들이 어떻게 엄마들, 특히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엄마들이 분명 더 좋은 모유를 져버리고 조제분유를 선택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식품산업은 상품을 팔려는 기만과 착취로 얼룩졌지만 과식의 모든 책임을 식품산업에 돌리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공모한 것을 감추고 또 나쁜 결정을 내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일지 모른다. 우리를 식품산업의 불쌍한 피해자로만 본다면 우리는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꼴이며, 결국 우리의 행위자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다.
부인과 합리화로서 기능하는 '건강 후광 현상'
안타깝게도 당근과 건포도 몇 그램이 더해진다고 해서 설탕과 밀가루, 버터, 크림치즈가 들어가고 당의를 입은 과당 제품이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엘리슨이 패스트푸드를 먹고 나서 느끼는 나쁜 감정을 '무효화'하기 위해 주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도 건강에 좋은 성분 하나가 들어 있으니 그 상품이 건강에 좋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건강에 좋은 컵케이크처럼 건강에 좋은 탐식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먹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초개인화와 나르시시즘
소유물이 자아의 확장된 일부로 종종 인식되므로 사람들은 상품과 브랜드로 자신의 개성과 고유함을 표현한다.
고급 식료품 가게를 찾는 부유층 소비자들이 특별 상품을 구매할 만한 영양 지식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특별 식품을 선호하는 성향도 상류층에서 더 뚜렷이 나타나는 특권의식과 권리의식의 반영이지 않을까.
거대 식품회사를 희생양으로 삼기
거대 식품회사나 광고·마케팅 전문가들을 우리를 조종하는 비도덕적 존재로 치부하기는 쉽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온갖 나쁜 것들에 대한 비난을 표출하기에 알맞은 표적을 만들기 위해 뒤틀린 악당 이미지를 창조하고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다른 산업이 자발적 노동에 토대를 둔 반면 카리브 해 지역의 영국 설탕농장은 노예 노동에 토대로 둔 점을 생각해보면, 설탕 생산은 처음부터 식민제도의 인종차별적 강제노동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었다.
서양이 지배하고, 서양에서 거래되던 설탕을 좋아하는 미각은 서양의 노동 착취와 우월의식, 정복과 팽창의 역사에서 싹텄고 그런 요소들에 의존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설탕을 좋아하는 취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에 단맛과 무척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착한 일에 대한 보상이나 생일 혹은 휴일을 축하할 때 단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단맛이 주는 쾌락적 보상은 행동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면 대개 부모나 조부모, 학교가 보상으로 단 음식을 주기 때문에 단맛을 보상으로 찾는 경향이 강화된다.
설탕섭취는 심혈관계질환, 비만, 고혈압, 뇌졸중 같은 많은 만성질환과 관련 있다. 게다가 첨가당을 다량 섭취하면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 섭취가 줄어든다.
설탕은 과체중과 비만에 뚜렷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요즘에는 대사증후군질환(2형 단뇨병, 고혈압, 지방질 문제, 심혈관계질환, 비알콜성 지방간)과 암, 다낭성난소증후군,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여러 질병의 결정인자 또는 영향인자로 여겨진다.
신경과학자들과 동물행동학자들이 설탕의 잠재적 중독성을 연구했는데, 몇몇 연구는 실험실 쥐들이 코카인이나 심지어 헤로인보다 설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발견은 설탕을 소량만 섭취해도 더 먹고 싶은 강렬한 갈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당 음료 소비가 무척 걱정스러운 이유는 당 같은 탄수화물을 액체 형태로 흡수하면 고체 형태로 흡수할 때보다 포만감을 덜 느끼므로 자신도 모르게 칼로리를 지나치게 섭취해서다. 포만감을 덜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뒤이은 식사에서 열량을 더 섭취해 부족한 포만감을 보상하려 한다. 달리 말해 가당 음료를 마시면 더 많이 먹게 되어 체중이 증가한다(가당 음료와 비만의 관계를 부정하는 몇 안되는 연구자들은 음료산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당 음료에 주로 쓰이는 액상과당과 자당은 많이 섭취하면 신진대사에 영향을 미쳐 비만과 2형 당뇨병, 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할 위험을 높인다.
살을 빼려고 할 때 첨가당을 완전히 끊는 것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단 음료를 먹지 않는 것이다.
앨리슨은 과식이 인지, 행동, 심리에 미치는 부정적 결과를 자주 경험하면서도 과식을 멈추지 못했다. 다른 물질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앨리슨 역시 어떻게 과식이 자기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문제 때문에 생긴 고통을 달래기 위해 다시 문제의 근원에 의존해버렸다.
앨리슨은 중독의 많은 진단 기준을 충족하지만 현재로서는 '음식중독'이라 불리는 질환은 없다.
과식을 낳는 신경화학물질장애와 호르몬조절장애는 식품과학, 마케팅, 소비주의의 증가, 세계 산업식품이 낳은 결과다. 구체적으로 말해 세계의 음식 환경을 장악한 초가공식품은 칼로리만 높은 게 아니라 신경화학적으로도 강력한 영향을 미쳐 인체의 정교한 자기조절 매커니즘을 방해한다.
음식 보상(특정 행동을 강화하고 동기를 유발하는 음식의 효과)과 쾌락적 가치(초기호성과 쾌락을 주는 특성)라는 두 메커니즘 때문에 음식을 잠재적인 중독성 물질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무척 원하거나 갈망하지만, 막상 욕망하는 물질을 얻고 난 뒤에는 기대했던 것만큼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약중독에서 종종 드러나듯 욕망의 대상은 우리가 기대했던 보상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더 간단히 말해 우리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하면 만족을 얻으리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상품을 소비해도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실망한다.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지 않는다. 반대로 욕망은 욕망을 욕망한다."
연구자 애슐리 기어하르트와 동료들은 음식중독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초기호성식품과 중독성 물질의 유사성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1. 도파민과 오피오이드 신경회로를 활성화한다.
2. 인위적으로 보상 수준을 높인다.
3. 혈류에 빨리 흡수된다.
4. 신경생물학적 체계를 바꾼다.
5. 내성을 유발한다.
6. 보상을 강화하는 첨가제와 결합한다.
7. 계기자극cue으로 갈망이 일어난다.
8. 부정적 결과가 생겨도 소비된다.
9. 줄이고 싶은 욕망에도 소비된다.
10. 빈곤한 계층에 편중된 영향을 미친다.
11. 높은 공공의료비 지출을 유발한다.
12. 태아기에 노출되면 장기적인 변화를 유발한다.
장애는 신경화학이나 신경해부학 병리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문화적 병리 때문에 시작되거나 악화되기도 한다. 우리는 개인이 어떻게 문화를 대신해 병을 진단받는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진단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병리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폭식장애의 문화적 병인은 과소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몸에 해롭거나 몸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음식을 과하게 먹는 풍조다. 그러나 DSM은 과식이 개인의 질병이라는 오해를 만들어낸다.
앨런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정책의 과감한 변화다. 우리 사회는 새로 만들어진 폭식장애의 유행으로 살찌고 있는 게 아니다. 값싸고 지나치게 맛이 좋고 편리한 데다 칼로리가 높고 지독하게 건강에 해로운 패스트푸드와 스낵, 탄산음료가 늘 눈앞에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에 살이 찌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문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에 속하는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은 소비자의 욕망을 끌어내기 위해 비슷한 작전을 사용하며 똑같은 수법도 수없이 동원한다.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수요를 창조하기 위해 같은 수법을 쓸 뿐 아니라 서로에게 수요를 만들어주며 공생한다.
식품산업과 마찬가지로 제약회사 역시 주주들에게 의존하면서 끊임없이 이윤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과식은 두 가지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다. 첫째, 과식으로 입은 피해가 클수록 심각한 건강 문제에 시달리며 결국 비싼 의료산업의 소비자가 된다. 둘째, 과식으로 부대끼는 거의 모든 사람은 다이어트와 다이어트 식품, 개인 트레이너, 영양사, 체중 감량 상품, 책, 운동 비디오, 피트니스클럽 회원권의 잠재적 소비자가 된다.
문제는 자격이 부족한 전문가의 쓸모없는 서비스가 사고팔리는 미친 시장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의미 있게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약품과 식품을 소비하는 일은 복잡한 소망을 충족하고 욕망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는 소비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소비자 문화의 산물로 실존적 질병을 치료하려 애쓰는 셈이다. 이는 애초에 우리를 감염시킨 병원체로 치료하려 드는 꼴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불안은 소비와 욕망을 만족시켜주겠다고 약속하는 상품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상품들이 소비와 욕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소비자 문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앨리슨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한 실패를 자아의 실패로 경험하기 때문에 뒤이은 절망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형태의 소비에 또다시 의존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에 나타난 '욕망의 쾌락주의'다.
분명히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소비의 문제를 새로운 형태의 소비로 푸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소비주의의 다섯 가지 유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