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무엇을 위해 사는가?
Text Dnl 7,9-14
(9)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 아마 현대 이후의 시대를 어둡게 그린 영화 중에 최고봉은 호주 영화인 ‘분노의 질주’가 아닐까 합니다. 핵전쟁 이후 파괴된 인간성과 황량하게 변한 환경,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섬뜩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현재 세계는 그 영화의 예고편처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제세계의 동향, 각 나라마다 거의 예외가 없는 계층간 갈등과 이념 갈등 등이 뉴스 시간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뉴스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대부분은 더욱더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보편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경향 속에서 교회 또한 심각한 위기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않고 여전히 세상 위주의 조금 남아 있는 꿀물을 빨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평생 목회하면서 늘 ‘하늘나라에서 잘사는 사람’ 만들기에 목표를 두고 했었습니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세속 중심의 교회들을 보면서 오늘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현대의 성도들에게 성도는,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단7,9-14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다니엘서 7장은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한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고 그 모양이 각각 달랐습니다.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겁니다. 셋째는 표범과 같은 짐승이었는데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머리가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랍고,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세 머리를 발로 밟았습니다. 이 머리 넷 달린 짐승은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었는데,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단7,1-8)
그런데, 갑자기 장면이 바뀌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즉 하나님이 앉으신 왕좌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았습니다. 앉으신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었으며, 하나님 앞에서부터 불이 강처럼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천천(일백만)의 섬기는 이들이 있었고 그 앞에 모셔 선 자가 만만(일억)인 가운데, 심판을 하시는데 그 앞에 책들이 펴 놓인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 9-10절 말씀입니다.
나중에 다니엘이 이 광경에 대하여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물었고 그는 환상의 뜻을 알려 줍니다. 16-2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고, 특히 넷째 짐승의 머리에서 열 뿔 말고 새로 나온 한 뿔이 하나님의 성도들과 싸워 이기지만 하나님께서 오셔서 원한을 풀어주시고 때가 되었을 때 성도들이 나라를 얻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다니엘에게 미리 보여준 이 예시는 세상 역사에 여러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마지막에 더욱 강한 한 나라가 일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도들을 이기고 온 세상을 자기 뜻대로 하는 일도 일어나겠지만 결국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성도들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 역사는 끝없이 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을 받아 종말을 고하는 마지막이 있습니다. 세상은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세상이 종말을 고하면 내가 가지고 누렸던 재화도 사라질 것들입니다. 세상에서의 인생이란 나그네 같아서 크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곧 사라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구름 같은 것입니다. 너도나도 잡으려, 가지려, 애를 쓰지만 들숨 날숨 멈춰지면 모든 것들을 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집이고 품어도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소망과 꿈은 그 나라에 참여하고 그 집에서 살 부활의 소망뿐입니다. 오히려 가슴골 항아리에 가득하게 사라질 세상의 욕망이 차 있으면 정말 좋은 주님 나라에서의 소망을 담을 공간만 없어지게 됩니다.
믿음 장이라 하는 히11장의 신앙 영웅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죽었지만 단지 멀리서 그 오는 나라를 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처럼 여겨 스스로를 외국인이라 증거하였습니다. 본향을 사모하며 하늘나라를 목표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살았더니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시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이 말하는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11-12절은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정한 시기를 기다리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11)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지금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열 처녀와 같이 기다려야 할 것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어야 준비할 것을 준비하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과 고통은 하늘나라 소망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선택해야 하는 삶과 삶에서의 모든 선택에 있어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의 유무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인생에게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을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약속이 있음을 알고 주님의 은총으로 죄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힘든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세상에서 절망하고 있던 인생들에게 천국에의 소망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이 얼마나 놀랍고 크신 은혜인지도 깨달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망함으로써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동기를 얻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삶의 도전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희망을 제공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랑과 섬김으로 삶을 채우도록 격려합니다. 기다리는 시기에 기다리며 살 수 있어야 함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을 봤습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너무 힘들어 목매달아 죽으려는 결심까지 하지만 내일에 온다는 ‘고도’ 때문에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연극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알아야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기다리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목적과 의미를 추구합니다. 첫째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성장과 발전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학습하고 기술을 습득하면서 자기 계발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이며 연마하며 확인합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정, 친구,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며 정서적 안정감을 얻습니다. 넷째는, 기여와 서비스입니다. 자신이 남에게 필요한 존재인 것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기여할 때 허무감을 이기고 만족감을 얻습니다. 소유하는 것만큼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하지만 성도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좀 다릅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늘 옳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마지막까지 어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뿐이며, 확실하게 최후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다릅니다. 성도는 잠19,21을 믿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많으나 여호와의 뜻만 이루어질 것이니라” 사람이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최종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마6,33도 믿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고, 그 안에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고전10,31도 중요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사람은 모든 행동과 선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달려야 하며,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생명의 깊은 의미를 찾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리할 때, 다른 모든 것이 더해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최고선이신 하나님의 뜻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그런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내 신앙생활은 주님이 말씀하신 때와 그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잘 준비하는 생활입니까? 지금 내가 추구하는 신앙 생활은 그때에 잘했다 칭찬들을 수 있는 생활입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최대로 소비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그때에 당신의 삶의 질을 좌우할 것입니다. 잘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4. 끝으로, 13-14절을 봅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영원히 서 있을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며 그 나라는 지금까지의 어떤 세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나라이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영원한 행복을 보장받는 유일한 삶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신10,12-13은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생명의 목적임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잠3,5-6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지도를 받아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임을 암시합니다. 미6,8도 소개해 드립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람들을 섬기고, 옳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고후5,15이 가르치는 대로 주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이상 자기 이익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제물로서 살아가야 하는 뜻입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깊이 고민하다가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청년과 함께 마을 근처의 작은 강으로 가서 평온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 강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흐르고 있을까요?” 청년은 당황해 하면서 “강은… 그저 흐르는 것 아닌가요?” 목사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강은 그 자체로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강은 물고기와 새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도록 물을 제공합니다. 강은 주변 생명체들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어줍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과 관계를 통해 서로 돕고, 선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면, 우리의 삶은 의미 있고 풍성해집니다.” 무언가 마음에 느끼는 청년에게 목사님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그의 뜻을 이루며,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