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안입니다. 사물을 보는 눈입니다.
둘째는, 지안입니다. 지식의 눈입니다. 글을 보아도 읽지 못한 사람을‘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고 표현합니다.
셋째는, 영안입니다. 영적 세계를 보는 눈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아야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영안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안이 밝고, 지안이 밝은 사람, 그러나 영안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경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는 한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국가, 사회, 회사, 어떤 공동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늘 제자들에게 보는 것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마16:3). 인간의 육적인 눈은 물리적인 세계를 보고, 영적 눈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인식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 서기관, 제사장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주님께 인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나다나엘은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지만 아직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소개받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나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보니 주님께서 그의 고민을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참 만남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1. 영안이 열려 더 큰 것을 볼 때 어떤 축복이 오는가에 대해 은혜 나누겠습니다.
1)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해방을 받게 됩니다.
(1) 요1:45~46“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 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빌립은 나다나엘을 데리고 주님께 나갑니다. 변두리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나다나엘의 인간적인 관점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존귀한 메시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의 이름은 ‘바돌로매’로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진정한 축복이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며, 그분이 우리의 복된 환경이고 거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야곱(사기꾼)이 이스라엘(하나님의 왕자, 공주)이 됩니다.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참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2)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자신에게 해방되어 더 큰 것을 보게 됩니다.
(1) 요1:47~5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나다나엘은 ‘야곱이 밧단 아람 라반 삼촌 집으로 피신 할 때 꿈에 하늘 문이 열리는 사건과 야곱은 간사한데 하나님은 왜 간사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은 간사함이 없는데 하나님이 몰라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는 간사함이 없다”라고 하시며 무화과나무 아래서 고민하고 있던 자신을 보았다고 인정해주시니 이것이 결정적인 은혜입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몰라도 그분이 나를 알고 계심을 체험하면 비로소 자유가 옵니다. 나에게서 해방되면 남이 보이게 됩니다.
3)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리면 땅보다 하늘이 보입니다.
(1) 요1:50~5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주님을 만나 영적으로 거듭나면 영안이 열려 하늘이 믿어지고, 보입니다. 주님이 믿어지면 하늘의 사닥다리가 되어 땅과 하늘이 연결되어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지켜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14:6).
예수믿으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갈 때도 천사가 주님을 지키듯, 천사가 우리도 지켜줍니다.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들이 아닙니까?”(히1:14).
ㆍ세상 사람들은 육적인 눈과 지적인 눈만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중에도 영안이 닫혀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는 4차원의 세계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때, 말씀을 깨달을 때, 믿음이 생길 때 열리게 됩니다.
ㆍ영안이 열린 사람과 열리지 않은 사람은 같은 상황이지만 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1) 육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수 있기에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영적 해석을 합니다. 영안이 열리면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의 세계가 육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기에 위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있지만, 그 해답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2) 갑자기 닥친 어려운 문제, 비상식적인 상황,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위의 세계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안을 열어주기 위해 잠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영안이 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화려한 왕자 시절이 아닌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곳은 어부로서의 한계를 만났을 때입니다. 요셉이 주님을 만난 곳은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입니다.
4)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나의 신랑이신 주님이라는 것이 믿어지고, 고백되어 지면서 체험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 잠시 살면서 겪어야 할 운명적 명령입니다.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려 곧 임하는 하늘 세계를 보아야 이 세상의 삶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곧 임할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우리 모든 진주신부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