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개혁(改革)을 꿈꾸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주지하는 대로 종교개혁가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보고 종교적이라 읽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마틴 루터로부터 이순신의 개혁을 말하려는 때문이다. 물론 내가 종교인인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얼치기 기독교인임을 먼저 고백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예배를 보면서 “라 일라흐 일랄라흐 무함마드 라쑬랄라(알라 이외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임을 증언한다.)” 세상에!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증언을 되 뇌이고 있었다. 아무리 이슬람의 문화와 상관습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해도 기독교인으론 있을 수 없는 변명이다.
또 며칠 전 아침 예배에서도 설교내용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왜냐하면 10월의 마지막 날이 종교개혁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틴 루터를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이순신이 떠오르느냔 말이다. 예배시간 내내 마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저항하는 모습에서 이순신이 임금 선조에 항명하는 모습으로 오버랩 되고 있었다. 고작 일주일에 달랑 한번, 그것도 주일예배만 보는 주제에 이렇게 엉뚱한 짓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그러니 기독교인이 된지 50년이 되었어도, 서리집사가 된지 3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서리집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치기 교인이다.
그렇다면 10월의 마지막 날이 어떻다고 이 얼치기를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했는가, 그날은 1517년 10월31일,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장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게시판에 ‘95개조 항의문’을 게시한 날이다. 카톨릭교회(Catholic Church)로부터 개신교(Protestant Church)의 개혁을 탄생시킨 시발일이다. 그런데 마틴 루터와 이순신,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굳이 따진다면 마틴 루터(1483-1546)와 이순신(1545-1598)이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것 외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순신이 기독교인도 아니었고 마틴 루터가 유교사회를 살았던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부담 큰 행사를 치루면서도, 단풍진 필드를 걸으면서도, 내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불현 듯 아! ‘개혁사상의 닮은 꼴’ 아닐까? 종교개혁(religious reformation)을 추구했던 마틴 루터, 자기개혁(self-reformation)을 추구했던 이순신, 두 사람 모두 개혁의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부패해가는 로마 카톨릭, 기독교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상가 마틴 루터, 썩어져가는 나라 조선, 관료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상가 이순신이라면 상대적으로 비유 가능한 공통점일 것이다.
왜, 로마가 부패해가는 사회였을까?
마틴 루터는 당시 독일의 수도사이자 신부이며 신학 교수였다. 그런 그가 수도회의 일원으로 베드로 성당이 있는 로마를 방문하고 교황청 최고성직자들의 매관매직, 돈을 받고 성직을 파는 경박하고 세속화된 모습을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호화롭고 사치스런 베드로 성당 증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면죄부(免罪符)를 팔아 조달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교회의 제도화된 부패가 절정에 달했음을 깨달았다.
특히 독일지역에서 교황의 휘장을 앞세우고 면죄부를 팔던 테젤(Tetzel)이라는 수도사는 “돈이 상자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자유롭게 놓여날 것” 이라며 허언과 거짓으로 강매하고 있었다.
크게 실망한 마틴 루터는 면죄부의 사기성과 죄악성을 지적하며 설교를 펼쳤지만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자 1517년 10월 31일 95개조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게시했던 것이다. 공중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당시 로마교황청의 절대교권에 맞서 신성로마제국의 변두리, 독일의 무명 수도사 마틴 루터라는 한 사람이 ‘양심의 소리’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진리를 외치는 용감한 개신교도들에게 ‘항의하는 자들’(protestants)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세상의 비리와 불의를 보고도 항의는커녕 도리어 타협하고 아부하는 오늘의 세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왜, 조선이 썩어져가는 사회였을까,
조선성리학을 완성시킨 사상가이자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李珥)에게서 그 해답을 구한다. “2백년 역사의 나라가 지금 2년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조선은 나라가 나라도 아닙니다. 이 어찌 한심하지 않습니까?”(栗谷 李珥 陳時弊疏)
“오늘 나라의 형세는 마치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萬間大廈, 여러 간의 큰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대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어, 근근이 날만 넘기며 지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동쪽을 수리하면 서쪽이 따라 기울고, 남쪽을 뜯어고치면 북쪽이 휘어 넘어져서, 어떤 장인(匠人)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날로 더 썩어 붕괴될 날만 기다리는 그 집과 오늘의 나라꼴이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栗谷 李珥, 萬言封事)
율곡의 경고대로 조선은 무너져 내리는 썩은 집이었으니 임진왜란을 당해 도성은 불과 20일 만에 무너졌고, 임금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쳐 명(明)으로 망명을 시도했고,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은 조선의 반란군에게 붙잡혀 왜적들에게 포로로 넘겨졌다. 굶주린 백성들은 명군이 토해놓은 음식찌꺼기를 핥아 먹는가하면, 급기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이 성행할 정도였다. 심지어 공공연한 매관매직으로 공명첩(空名帖)을 팔아 관직을 넘겨주고 양식을 조달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조선은 “나라가 나라도 아니었다(國非其國).” 율곡의 말씀대로 조선사회는 무너져 내리는 누각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만연된 한국병(韓國病)을 치유하기는커녕 도리어 조선시대의 조선병(朝鮮病)으로 회귀하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순신의 자기개혁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내건 항의문은 결코 가톨릭의 전복을 선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항의문은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어 종교개혁을 알리는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되자 교황청에서는 마틴 루터를 로마로 소환했으나 그는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독일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의 보호아래 바르크부르크의 한 성에서 저술 활동과 함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중심사상은 '오직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으리라'는 이신득의(以信得義)에 있었다.
유교사회에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 사상은 어느 군주나 선비도 어려서부터의 배움이었다. 그러나 국왕은 백성이 바라는 군주가 아니었고, 대신은 백성이 원하는 관료가 아니었다. 절대 권력에 절대 순종해야 살아남는 관료들에게 “아니 되옵니다, 불가 하옵니다”란 외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항명은 곧 반역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료들끼리 물고 뜯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음해하며 생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임금의 대충징발금지 명령을 거부하고, 가토 기요마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거부했던 것은 결코 항명도 아니었고 반역도 아니었다.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한 충언이었고 충심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파직 당했고 생명을 잃을 뻔 했다. 간신히 대신들의 헌의(獻議)로 사형을 면했지만, 백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나라를 구할 수 만 있다면, 고문(=刑訊)과 백의종군 따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응당 수군재건으로 왜적을 물리쳤던 이순신의 자기개혁 중심사상은 ‘오직 백성이 하늘’이라는 이민위천(以民爲天)에 있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가끔 임진왜란과 선조 그리고 이순신을 말하는 사람들이 섬뜩한 주장을 한다. “그때 이순신이 혁명을 했어야 한다.”고, “막강 수군총사령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겐 군사도 있었고, 백성도 따랐고, 왕조는 불신을 받았기에 충분히 가능했다”고, 그러나 이순신에겐 민유방본과 더불어 군위신강(君爲臣綱), 군신유의(君臣有義), 삼강오륜의 유교사상과 선비인성이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다. 이순신의 개혁사상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투철한 도덕의식과,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섬김의 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먼저 변화하는 자기개혁이 있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은 개축이 신축보다 어렵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혁명(revolution)은 완전히 새롭게 뒤집는 것이다. 개혁(reformation)은 기존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기존의 타당성을 전면 부인하지 않고 잘못된 요소의 갱신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모든 체제에서 개혁은 항상 필요한 것이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교육개혁, 국방개혁 등 개혁을 외치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의미는 그만큼 개혁은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다.
이순신이 꿈꿨던 자기개혁
추정컨대 이순신이 꿈꿨던 자기개혁의 사상은, 먼저 자신이 변하면 다른 이가 변하고, 다른 이가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나라가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즉 진정한 개혁은 바로 나로부터였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지고 개혁되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의 모든 위기극복 모습들은 자기개혁의 실천이었다. 예컨대 살아남기 위한 창제개발도, 홀로서기 위한 자주자립도, 승리하기 위한 정보획득도, 법치질서를 위한 원리원칙도, 입현무방을 위한 인사원칙도, 혼연일체를 위한 소통화합도, 갈등극복을 위한 사랑실천도, 역사진실을 위한 기록보존도 모두 기존의 관습과 악습, 구태와 퇴행에서 벗어나는 변화추구의 자기개혁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자기개혁은 사회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순신은 죽었고 변화를 두려워한 조선왕조는 개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백년을 지속했기 때문에 또다시 조선은 일본의 제국주의 강점 36년의 치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면 편하다. 개혁에 도전하면 힘들다. 그래서 개혁가의 현실은 곤고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기개혁의 실현이 있었기에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역사의 성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존경은 로망이고, 롤 모델이고, 따라 하기다. 이제 시공을 초월한 오늘의 우리가 이순신의 자기개혁을 사회개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사회에 만연된 부정과 부패, 불법과 불신, 불공정과 부조리 같은 한국병(韓國病)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순신이 꿈꾸던 개혁을 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순신을 쓰고 있다. 나는 내일도 이순신을 말하러 갈 것이다.(끝, 2015.11.3)
첫댓글 요즘 if에 빠져지내지요!
역사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다가 개화기라는 생각에 머물러
만일 이랬다면..
만일 저랬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장군의 개혁이 통하였다면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
if에 빠진 나날들입니다!
조석으로 일기가 고르지 못하옵니다!
건강하시옵기를 바라며..
if 보다는 in fact 입니다. 역사를 현실로 불러왔을 때, 역사는 역사로써 의미가 담길 것이라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심오하게 쓰신 글을...
앉아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니..참 행복함을 즐깁니다.
방진님이 주신 책, "역사 속의 이순신, 역사 밖의 이순신" 두 번을 읽었지마는.
군데군데 새길 만한 부분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모든게 이순신으로 귀결되는 삶의 형태가 자못 걱정스럽기조차 합니다. 혹여 등불 밝혀 엄한 곳을 헤매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조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
무엇이 다를까요!
글쎄요,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제도 오늘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이순신을 말하다의 상징적 아이콘 방진! 이배사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도 멋진 어른이심에 틀림 없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아주 작은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일 뿐 입니다. 다만 이순신을 일상 말하고 있음은 더 배움을 얻고자하는 일입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이정표 의 등불을 밝혀 주는글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분의 삶에서 '세상 사는 지혜를 배울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내일도 이순신을 말하려 갈 것이다. '깊이 깊이 공감. 저는 언제 어느 때나 이순신을 말하고 찬양할 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자칫 글만 쓰고 말만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항상 그게 염려됩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언행일치, 표리일체, 시종일관의 실천으로 이행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순신의 자기개혁은 바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여'(弘益人間), '이 세상을 좋게 변화'(在世理化)하고저 했던 투철한 정신에서 비롯된 샘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렇군요. 弘益人間, 在世理化, 좋은 가르치심에 감사드립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게 자연의 진화론이고, 경영의 혁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진님의 이순신 사랑이 커져 가는 만큼 관찰과 사색은 더 깊어지시고 혜안과 통찰은 더욱 높아져 감을 느낍니다. 저도 방진님께 더 많이 배우겠습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항상 무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산도님^^오랫만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도 여전히 많이 바쁘시지요. 조국을 지키시는 진짜사나이!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칼럼방에 들어와 글 읽어봅니다.
십자군 원정 후 약화된 교황권 회복을 위해 '로마 재건'에 들어가죠
막대한 비용은 종교의 부패로 이어집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거대한 권력들의 대립은 약자들에겐 가혹한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기에 民은 정치에 민감해야 할겁니다...긴 세월, 수없이 흘린 피로 얻은 교육이겠지만요.
[자기개발]
언젠가 읽은 철학책에서 제시한 물음이 생각납니다.
개인의 善과 국가의 善은 다른다? .... 생각할수록 어려운 명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 대목에서 그 명제가 생각나는군요 ^^
오랜만에 곰곰히 생각하며 글 읽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반가운 마음으로 보스턴에 앉아서 답글을 드립니다. 종교적 색채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레 쓴 글입니다. 종교개혁은 종교만이 아니라 문명차원의 역사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개혁은 아픈 겁니다. 개혁의 대상과 개혁의 주체 모두에게 많은 댓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선과 국가의 선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처럼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기도 하고 명약관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유를 필요로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ㅎㅎ 감사합니다.
오늘도 짬을내어 칼럼 읽고갑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사람은 못되고 무조건 읽고싶은 글 새겨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