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으로 본 로마서
임 학 균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
1.‘로마서’를 보기 위한 세 가지의 권장사항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보려고 하는 ‘교회론으로 본 로마서’ 이해를 위해 미리 세 가지를 권장합니다. 이 세 가지를 이해하시면 로마서 전체가 보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첫 번째는 일부만 보는 미시적(微視) 관점보다 전체를 보는 거시(巨視) 관점으로 로마서를 보라고 권장합니다. 로마서 속에 녹아 있는 일부의 특정 주제에 시선이 꽂혀 집착하다 보면 절대로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믿음, 칭의, 율법’ 등은 로마서의 부분 주제들입니다.
제주도의 중문 관광지에 있는 ‘여미지(如美地) 식물원’에 들어가면 다양한 특징의 식물군(群)이 나누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음 백과를 보면 “꽃과 나비가 어우러지는 화접원을 비롯하여 수생식물원, 생태원, 열대과수원, 다육 식물원, 중앙 전망탑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희귀식물을 포함한 2천여 종의 식물이 있고 온실 밖에는 제주도 자생 식물원과 한국, 일본, 이태리, 프랑스의 특색있는 정원을 꾸며 놓은 민속 정원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에서 보듯이 각각의 식물군(群)은 하나의 독립된 특별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아름다운 식물원 여미지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론으로 본 로마서’는 각 부분 주제들을 이어서 전체를 살피는 거시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로마서를 기록한 이유 또는 목적을 확인한 후 다른 내용들이 그 목적을 위하여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펴보라고 권장합니다. 바울이 쓴 모든 서신에는 각각 고유한 기록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 서신이 존재합니다. 로마서도 이 서신을 기록해야만 했던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쉽게 찾아낼 수만 있다면 로마서 이해는 매우 수월해집니다. 사실 이러한 독서법은 로마서를 포한한 바울 서신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사물은 존재의 이유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사람들은 ‘사명을 완수했다.’고 말을 합니다.
세일즈(sales)의 예를 들겠습니다. 세일즈의 목적은 고객을 설득하여 상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유능한 세일즈맨들은 자신이 팔려고 하는 상품을 꺼내기 전에 먼저 고객과의 친밀도를 형성합니다. 그래야 계약이 순조롭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성립되면 그제서야 물건을 보여주면서 상품의 특징을 다방면으로 설명하여 고객이 그 상품을 꼭 필요하도록 느끼게 만든 후 판매합니다. 반대로 다짜고짜 물건을 사라고 들이대면 그 계약이 성사될 확률은 거의 제로입니다.
복음을 파는(이 용어를 사용한 의도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능한 세일즈맨(복음전도자)인 바울은 이러한 계약성사의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로마서의 서두와 말미에 잘 적혀 있습니다. 로마서 서두인 1장에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로마교회를 사모했으며 방문하여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던지면서 친밀함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하고 싶었던 진짜 목적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선교(전도) 동참(1:8-15), 특히 자신이 꿈꾸고 있는 스페인 선교(15:22-33)를 위하여 손을 잡고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 후 이 위대한 선교에 로마교회가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려고 이 글을 썼다고 판단됩니다. 서두에 적혀 있는 논지(論旨)와 말미에 적혀 있는 목적어를 직접 읽으시면서 확인하겠습니다.
[로마서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2)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3)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위의 구절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선언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대상은 모든 인간들, 특히 로마인을 포함한 모든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고 싶은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서 1장에서 3장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을 위하여 로마교회에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서 성사되지 못해 속상하다는 뜻을 적습니다. 그렇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해도 로마교회도 동참하여 이 일을 위해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이 일은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가 해야만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라고 완곡하지만 간절하게 요청합니다.
여기까지가 바울이 말하고 싶은 로마서의 논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1장의 논지 이후 15장까지의 모든 기록은 자신이 세일즈(복음 전파)하려는 상품(복음)의 특징을 적어 줌으로써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 번째는 바울은 로마교회가 공감하고 자신과 함께 해야 할 선교를 위하여 그 선교의 핵심인 복음(상품)의 실체(특징)가 무엇인지를 알리며 이 일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설득하여 선교에 동역하게 만드려는 상품(복음)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죄(1장-3장), 율법과 믿음의 용도(4장), 은혜와 칭의(1장-4장),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5장), 구원을 위한 세례(6:1-11), 구원 받은 이후 성도가 경험하는 내면과 현실 사이의 갈등(6:12-7장), 성령의 도우심(8장), 유대인들의 존재와 역할(9장-11장), 그리고 성도답게 사는 법(12장-15장) 등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수행해야 할 주체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16장)임을 보여줍니다. 16장에 장황하게 거명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교회 구성원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서신에 비해 문안 인사가 과도하다 싶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렇게 보는 구도가 로마서의 전체 문맥상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바울이 쓴 로마서의 전체 구도가 이제 이해되십니까? 인류를 구원하는 선교는 로마교회를 포함하여 모든 교회가 적극 동참해야 할 사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여 보내기 전에는 로마교회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걸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로마교회가 먼저 로마서를 요청했거나 공개적으로 질문한 것도 아닌데 바울이 스스로 복음의 진리를 장편으로 적어 보낸다고 생각하면 그 상황은 참으로 어색한 설정이 되고 맙니다.
로마서의 전체주제는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사명을 이행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로마서에서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주제인 하나님의 의, 이신칭의(以信稱義) 등은 전체주제라기보다는 전체에 포함된 부분 주제가 분명합니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던 여미지에서 한국 정원만 따로 떼어서 관람하는 것도 그 자체로 유익하듯이, 로마서에서 이신칭의를 따로 떼어서 살핀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주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이해할 때는 ‘죄(罪)’와 ‘의(義)’만 말하지 말고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로마서에 들어 있는 교회의 사명 요소
1) 힘을 합해 행하는 전도(선교)(κηρύσσω)
바울은 자신과 로마교회가 힘을 합해서 서바나(스페인, Spain)의 선교사가 되기를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로마교회에는 특히 후원자(sponsor)로서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면 ‘발로 뛰는 역할은 내가 할테니 여러분은 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세요.’라고 생각하시면 무난할 것입니다.
[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 바울의 로마교회를 향한 교제(κοινωνία)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듯이 바울은 서언(序言)에 해당하는 1장과 결언(結言)에 해당하는 15장에 로마서를 기록하고자 했던 핵심 이유를 직간접으로 기록합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15:23) 했듯이 바울은 로마교회가 선교, 특히 스페인 선교에 힘을 쏟아 주기를 절절히 호소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로마교회가 손을 잡는다면 스페인 선교는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훌륭하게 성공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리를 살펴보면 더욱 이해가 됩니다. 바울의 본 거주지인 안디옥에서 스페인으로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닷길로 가거나 육로를 통해 로마를 거쳐야 합니다. 아시아는 지중해 동쪽에 있고, 스페인은 지중해 서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그 가운데 지점인 지중해 북쪽에 있습니다. 로마교회는 지리적으로 선교의 거점이 될 수 있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이 되리라고 바울은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과 로마교회의 친분이 그다지 넓거나 깊지 못했을 거라는 점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한 교회가 아니었기에 친밀도에서 본다면 데면데면했을 것이고, 로마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이라는 사람은 명성이 자자한 사도요 복음전도자 정도였을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데살로니가 교회같이 자신이 직접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교제를 청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대다수인 당대 최고의 도시 로마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에 적지 않은 금액의 후원을 요청해야 하는데 갑자기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하면 누가 선뜻 손을 내밀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10-11) 라는 언급은, 말 그대로 따뜻한 교제를 희망한다는 의미 외에도 로마교회와 함께 스페인 선교를 하기 위한 바울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3) 동참을 희망하는 선교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복음 설명(διδάσκω)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교회가 가르쳐야 할 복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내용은 이러이러한 것들입니다’라고 알리면서 로마교회 역시 좀 더 정확한 복음의 토대 위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되는 방법, 구원의 진리 및 세례에 대한 정의, 일상생활에 대한 정보,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받은 사명 등은 로마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알아야 할 진리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이러한 복음의 핵심 내용은 로마교회나 스페인 전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서가 침묵하고 있기에 잘은 모르지만, 감히 상상해 본다면 뵈뵈 자매(16:1)가 배달하여 준 이 서신을 받아 읽은 로마교회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 바울의 스페인 선교 후원 여부를 토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가결하였을 것 같습니다.
4)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예배(λατρεία)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 진정한 예배를 드리라고 당부합니다. 특히 교리 부분에 해당하는 1장-11장이 끝나자마자, 생활윤리에 해당하는 12장의 첫 구절인 1-2절에서 강조하는 영적 예배는 교회가 행해야 할 첫 번째 사명입니다. 엎드려 절하는 예배인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드리는 예배(λατρεία)야말로 ‘제사보다 순종’(삼상 15:22), 또는 ‘제사보다 인애(호 6:6)’를 강조한 하나님의 뜻이 잘 반영된 예배였습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λατρεία)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5)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교회(διακονία)
바울은 로마서에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것 중 섬김의 방법과 대상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우리가 받은 은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로마서 12장의 1절의 ‘라트레이아’를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12장 전체에 적었습니다.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3. 구원의 단계로 본 로마서의 시제(時制) 구분
1) 구원 받기 이전-죄인된 옛사람의 실체(1:1-5:21)
구원을 기준으로 인간의 위치를 시제로 살폈을 때, 로마서는 정확하게 구분해 줍니다. 첫 번째 시기는 구원 얻기 이전의 인간입니다. 이 시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1장-5장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하여 서신을 전하면서 모든 이방인(로마인 포함)들은 죄인임을 논증합니다. 혈통 상 유대인이었던 바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방인이란 유대인 아닌 모든 인류를 말합니다. 따라서 그 이방인의 범주에는 로마교회의 성도들도 포함되어 있었을텐데 이 편지를 읽은 로마의 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신들이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죄와 그들이 믿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깨달아 확신에 거하면서 바울의 선교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1장에서 5장 사이에 기록된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를 간략하게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당신들 로마인도 포함된 이방인들은 모두 범죄한 죄인들이며 그에 대한 형벌은 사형입니다.(1:18-2:16)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의인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모두 죄인입니다.(2:17-3:8)
당연히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들입니다.(3:9-31)
그러면 모두가 죄인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율법이 그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3:20)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은혜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실례이자 증거입니다.(4:1-2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과 우리가 화평하게 할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도 왕이 될 수 있습니다.(5:1-21)
2) 구원의 현재-믿음으로 받는 침수세례를 통하여(6:1-11)
구원의 현재 시기에 해당하는 구절은 로마서 6장 1-11절입니다. 왜냐하면 죄인되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인 침수세례(βάπτισμα)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죄인되었던 과거의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수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침수세례의 의미는 ‘죄인된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의미를 담습니다. 이와 동일한 강조는 로마서 외에 골로새서 2장 12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로마서 1장 17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만 아는 무지(無知)의 소치입니다. 정작 이 말을 한 바울도 구원을 받기 위하여 침수세례를 받았는데 그 외에 무슨 논쟁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에 대한 정황과 기록은 놀랍게도 사도행전에 세 번이나 나옵니다.(행 9:18, 22:16, 26장).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취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6)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성으로 들어가서 아나니아에게 침수세례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6절을 보면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수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말합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침수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울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다메섹 도상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알고 있으나 그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만약 그때 구원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 만난 아나니아는 “침수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요? 종교개혁의 역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인 16세기의 개혁 주제 중 가장 뜨거운 주제는 ‘구원론’이었는데 로마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은 ‘믿음+행위’인데 여기서 말하는 ‘행위’란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가 정한 7품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백, 결혼, 신품, 성유)입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 중에서 ‘세례와 주의만찬(성체)’ 두 개를 제외한 모든 것을 성례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행위’를 반박하기 위하여 ‘믿음’만을 강조했던 겁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행위를 제외하고 은혜와 믿음만을 강조하다가 결국에는 성서의 가르침마저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1)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3) 구원받은 이후인 미래-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6:12-15:33)
구원받은 이후인 미래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에 대한 기록이 바로 6장 12절-15장 33절입니다. 구원받은 현재인 침수세례를 언급한 직후 6장 12-14절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자세에 대하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라고 확고하게 언급합니다. 이 구절들을 요약하면 ‘더 이상 죄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믿음으로 침수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나면 뭔가 달라지고 놀라운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갈등만 더 생기는 겁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나타낸 곳이 바로 로마서 7장인데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호소한 14-15절과 24절은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성도들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8장에는 이러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었듯이 우리가 침수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9장-11장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 쓰임 받은 유대인들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사용하신 ‘역사라는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들’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혈통을 통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2장-15장에는 구원 얻은 이후의 성도들의 살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이 기록됩니다. 그것을 한 한마디로 요약한 논지 같은 구절이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한 12장 1-2절입니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특히 15장에는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여 보낸 직접적인 이유인 자신이 꿈꾸고 있는 스페인 선교에 로마교회가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 또는 선교는 바울만의 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꿈꾸고 행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4)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그리스도의 모든 교회(16:1-27)
로마서 16장으로 눈을 돌리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경이 펼쳐집니다. 바울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던 뵈뵈(16:1-2)를 시작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의 이름이 호명됩니다. 그런데 읽다가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 앞에 수식된 내용을 보면 참으로 감동이 됩니다.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된 뵈뵈’,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인 에베네도’,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사랑하는 스다구’,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고 헌신한 모든 성도들, 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공적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울이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16:16)입니다. 말은 바울이 했으나 사실은 “[디모데 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듯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을 통해 이제까지 순차적으로 체계적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로마서에는 우리가 꿈꾸고 이루어 가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형과 실체가 들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죄’, ‘하나님의 의’, ‘은혜’, ‘믿음’ 등을 부분적으로 말하며 로마서를 운운하지만, 그것은 코끼리 몸의 여기저기를 각각 만진 시각장애인들이 주장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 은혜, 믿음, 예수 그리스도, 침수세례, 구원, 예배, 사랑, 선교(전도)’ 등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누리고 나누어야 할 하나님의 은총들입니다.
[로마서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발표일시: 2023. 7. 4(화)
* 발표장소: 화곡 그리스도의교회
* 발표단체: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협의회 중부지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