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나그네.” 시편39편 1~13절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자연인’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일해서 병들거나 열심히 방탕하게 살아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지요.
자연인은 혼자 산 속에 살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행복해 합니다.
톨스토이 단편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바훔이라는 농부가 나옵니다.
친구로부터 1000루블만을 내 뒤 하루 종일 밟은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하루 안에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훔은 동이 트자 한 평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장화를 벗고, 걸으면서 빵을 먹었어요.
해가 지려는 것을 보고는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려고 맨발로 뛰었지요.
가까스로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지만 쓰러져 죽고 한 평의 땅에 묻혔어요.
악착같이 땅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했던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평의 땅뿐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 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
우리는 나그네로서 사는 것이 서럽고 두려워서 이 땅에서 영원히 살려고 정신없이 끌어 모읍니다.
성경에서 성도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길 떠난 나그네로 말합니다.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부모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향해 떠난 나그네였지요.
그의 손자 야곱은 130세가 되어서 고향을 떠나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이렇게 고백해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 되었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돈에 눈이 멀어 아버지 형님, 외삼촌을 열심히 속여서 원수가 되었지요.
형,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속이고 빼앗은 죄를 해결하려고 회개하고 용서받아서 화해했지요.
야곱은 열심히 남의 것을 빼앗고 살았던 그 간의 세월을 조상들이 산 광야 4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나그네였다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도 베드로전서를 쓰면서 편지를 받는 상대에게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했지요.
나그네라고 고백한 사람은 누구보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어요.
세상 자랑을 악착같이 빼앗아 의지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을 나그네였다고 고백합니다.
시편39편은 다윗의 시를 찬양대에서 불렀어요.
다윗은 위대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되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산 다윗에게도 허물과 영광이 동시에 있었지요.
큰 죄를 지어 밤을 새도록 눈물의 기도를 하여서 베개가 흠뻑 적고, 눈물 병이 넘칠 정도였어요.
사울 왕에게 13년 동안 쫓겨 다니면서 살기 위해 미친 척 했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나서 피난할 때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면서 갑니다.
다윗과 함께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올라가는 백성들도 있었으나 군중들은 돌을 던졌고, 시므이는 저주까지 합니다.
다윗은 측근들의 배신과 허무, 비참을 뼈 속까지 느꼈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의지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4절에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자신의 생각의 한계를 압니다.
5절에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허무한 나그네가 되어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고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나그네라고 인정합니다.
6절에서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림자 같은 일에 헛힘을 쓰면서 어리석게 살았던 삶을 후회하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다윗은 손 뼘 같이 짧은 생각으로 부질없는 것을 붙들고 정신없이 살았다고 고백해요.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 부귀영화를 누려 보았지요.
그런데 전도서 1장2절에서 생각 없이 열심히 쾌락을 추구하여 허무하게 살았다고 후회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나그네로 깨닫고, 자신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말에 일체 대응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1절.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2절,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절,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말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사람들은 진리보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고 하지요.
악한 사람은 인간의 심리를 알고 근거 없는 비방과 가짜 뉴스를 유포시켜 돈 벌고, 자신을 과시하지요.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자신이 주인공 되는 가짜에 빨리 반응하지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을 사람은 세상의 소리보다 말씀을 듣고, 실천해요.
내가 듣고, 내가 믿는 것이 나의 인생이 됩니다.
다윗은 자신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모욕하는 사람에게 맞대응하다가 죄 짓지 않으려고 입에 재갈을 물었어요.
비난하는 말에 변명할 궁리를 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참된 말, 올바른 말을 듣고 말합니다.
다윗은 내가 다 안다는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서 필요한 말을 합니다.
헛된 일, 의미 없는 것, 부질없는 것을 의지했던 다윗은 탄식하면서 6절에서 이렇게 시인합니다.
“그림자같이 다니고.” 그림자 같은 일에 발바닥에 땀나도록 살았으나 후회한다고 고백합니다.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다윗은 비참한 나그네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 가졌던 나쁜 생각, 가치관, 신앙을 회개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한계를 알고, 약점을 인정하는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여 은혜 베푸십니다.
8,10절에서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악인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공격하고, 우매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립니다.
생각이 얕으면 악인과 우매자의 지배를 받아 그들의 종노릇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윗은 비교, 시기, 경쟁, 비난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에는 귀를 닫습니다.
대신 주님이 자신을 사랑하여 하신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주님의 종노릇하려고 부단히 애씁니다.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과 주님의 종노릇하는 가운데 어느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행복하게 살려면 나의 연약함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나그네같이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뒤 자신의 죄를 해결하는데 집중합니다.
저는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세 가지로 물어본 뒤 그에 따라 해결하려고 합니다.
첫째, “주님, 이 고난이 주님이 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회개하여 바꾸겠습니다.”
둘째, “주님, 이 고난이 사람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셋째, “주님, 이 고난이 사탄이 준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를 주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성공,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지요.
시51편17절에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우기면서 뻔뻔하게 기도했했어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해요.
하나님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자비를 구하는 사람을 거룩하고, 의롭고, 아름답게 회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다 했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사람에게는 해주실 것이 없어요.
그리스 속담에 “신은 이웃 사람보다 속이기 싶다.”란 말이 있어요.
고르반하면서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사람을 속인 뒤 자신이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경건을 자랑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습니다.
의지할 대상이 없는 초라한 나그네로 느껴지면 두려워서 돈으로 텅 빈 마음을 채워줄 먹잇감을 찾아요.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대왕은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을 때 허무했어요.
죽을 때가 되어서 땅을 가져 갈 수 없어서 이런 유언을 남겼지요.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두 손을 바깥으로 내놓아라.”
인기와 성공, 권력, 돈을 부유하게 가졌던 사람이 허무하게 죽는 것을 자주 봅니다.
10년 전에 연기자 최진실 씨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요.
사단은 속임수의 우두머리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만들어서 넘어뜨렸지요.
왜, 열심히 살아도 허무할까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당장 나를 즐겁게 해줄 대상에게 자신을 바치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이 설교하신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살기 쉽습니다.
부자가 추수 한 뒤 이제 아무 걱정 없이 산다면서 잠시 기뻐했어요.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그의 생명을 취하셔서 재물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지요.
다윗은 세상에서 허무를 뼈 속까지 느낀 뒤 이제 참 좋으신 분을 붙잡습니다.
7절에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리고 9절에서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원대한 계획을 세울지라도 우주 만물을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눈을 들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갖은 비방을 들어도 입에 지퍼를 채우고, 잠잠합니다.
이제 내가 주인 되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면 행복할 줄로 알았던 착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12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다윗은 지나온 날을 회개하는 눈물을 흘린 뒤 그동안 비참하게 살았던 손을 씻어버리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주님을 붙잡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만을 주님으로 모시고, 십자가만 붙들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윗은 허접한 것을 붙잡았던 손을 펴서 영원하신 주님을 붙잡습니다.
자신을 용서해주시고, 새롭게 해주실 예수그리스도만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누가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여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인도해주실까요?
행복하게 살려면 세 가지 ‘유’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사유, 골똘히 궁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나답게 살도록 가르쳐주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향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진리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서 행복을 맛보고, 누려야 합니다.
셋째 공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제 소유의 시대가 지나고 공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계망이 발달되었지요.
아무리 부자, 박사라도 3유, 사유 향유 공유하지 못하면 가진 것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그네처럼 짧은 인생을 헛된 일에 분주하게 살아서 후회하지 마시고,
영원한 친구이신 하나님의 손을 꼭 잡으시고 동행 하여 건강한 인생을 삽시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크게 엽시다.
주님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여 주신 선물을 나의 삶으로 살아서 크게 즐거워하십니다.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나누어서 하늘의 부유한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