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십자가 네온등이 밤에는 멀리서도 확연하게 잘 보입니다. 그러나 낮에는 가까이서도 등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오는 빛은(요8:12) 환경이 어두울 때는 잘 보이지만 밝을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세계에 낮과 밤이 있듯이 이 세계를 사는 사람의 마음에도 생명이 밝을 때가 있고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마6:23). 그래서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면 얼굴이 어둡고 또 누구에게나 마음이 힘들었던 흑역사들이 있습니다.
노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애굽을 떠난 히브리 노예들은 홍해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의 군대를 보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이들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게 됩니다(출14:21~31).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40년을 함께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광야의 깊은 어둠에서 하나님을 알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주인의 신분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 땅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신6:5).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살기 전에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신31:20~22).
이스라엘이 광야에서는 만나와 반석에서 터지는 생수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보았는데 가나안에서는 입 안에서 젖과 꿀이 터지는 달콤한 과일들과 포도주를 즐기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광야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의 힘과 재물을 더 의지하고 섬겼습니다(계3:17). 이렇게 밝을 때는 십자가에서 나오는 빛을 보지 못하는 육신에게는 고난이 유익입니다(시119:6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