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단상
손 원
집 근처 무인자동인출기에서 얼마의 현금을 인출했다. 만 원권 새 지폐가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횡재를 한 기분이 들어 추가로 더 인출하여 승용차로 돌아왔다. 타고 있던 아내에게 내미니 "왜 이렇게 많이 인출했어?" "새 돈이 나오길래 조금 많이 인출했지. 상품권처럼 써야지"라며 아내에게도 몇 장 건넸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즉석 대답은 돈일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생명 유지에 필요한 공기, 물, 식량이 으뜸이다. 그런 데도 우선은 돈을 앞세운다. 그것은 사람의 욕심 때문이다. 공기와 물은 무한자원으로 공짜고, 식량도 해결되면 그런대로 만족하지만, 돈은 다르다. 돈을 더 가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다. 부족함 없이 산다는 것은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황금만능주의라고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듯이 배고픈 자에게 돈은 절실하기에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라고 했다. 부정할 수 없기에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은 어느 정도만 갖고 명예와 건강은 지키는 것이 참된 삶일까?
돈은 다다익선이지만, 최소한 살아가는 데 큰 불편만 없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충분치 않은 돈, 알뜰하게 품위 있게 쓰고 싶다. 돈을 인출하여 지갑을 채워본 지가 오래되었다.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 두 장만 들어 있다. 카드를 쓰다 보니 돈의 소중함이 예전 같지가 않은 듯하다. 물론 카드를 쓸 때는 예금잔고를 생각하고, 그것이 나의 지급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출할 때는 품위 있게 하고 싶다. 예전 돈 있는 선배처럼 술 마신 뒤 술값 계산, 종업원께 팁 줄 때 꺼낸 빳빳한 지폐가 얼마나 멋있고 품위 있게 보였던가? 그 돈을 받은 상대방은 허리 굽혀 감사해했다. 요즘 카드를 꺼내면 그러려니 하고 만다. 지난 설날 어렵게 새 돈을 준비했다. 조카들에게 세뱃돈으로 예년에는 오만 원씩 주었으나 올해는 만 원짜리 새 돈 두장씩을 줬다. 주는 기분 받는 기분 다 같이 만족한 듯했다.
각국의 지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지폐의 도안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엿볼 수가 있다. 지폐 한 장에 농축된 독특한 기술도 들어있다. 각국의 최고액 화폐 위주로 보면,
우리나라 오만 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1504~1551), 뒷면에는 조선 중기의 화가 어몽룡의 <월매도>가 그려져 있다.
일본은 개화기의 계몽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 뒷면에는 한 쌍의 꿩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1893~1976), 뒷면은 인민대표대회당이 그려져 있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 뒷면은 펜실베니아에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영국의 모든 화폐 앞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2022)으로 현존하는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고, 뒷면은 잉글랜드 은행 초대 총재인 존 호 흐림은 이다.
인도는 앞면은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인데, 1,000루피뿐만 아니라 모든 화폐의 앞면은 간디라고 한다.
유로는 유럽연합(EU)이 출범하고 통용된 화폐다. 앞면은 20세기 현대 건축양식의 문과 뒷면에는 다리와 유럽 지도가 그려져 있다.
나는 오만 원권보다는 만 원권 지폐를 선호한다. 하지만 만 원권은 새 돈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만 원권은 새 돈이 다소 여유롭게 발행되는 듯하다. 오만 원권은 소지하기가도 편리해 새 돈 한 두 장은 지갑에 넣고 다닌다. 새 돈이든 헌 돈이든 표시된 가치는 같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새 돈이 더 품위 있고 건네는 이의 정성이 담긴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 돈을 수집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지갑에 들어있는 지폐 중 헌 지폐를 먼저 쓰고, 새 지폐는 아낀다.
누구나 새 지폐를 좋아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 지폐를 많이 찍어 내면 되겠지만 발행비용이 따르기에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방법은 지폐를 소중히 다루는 시민의식이다. 요즘은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하는 나라도 있어 항상 새 돈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고액권만이라도 플라스틱 재질로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기에 앞서 돈을 소중히 다루는 국민 의식이 함양되면 좋겠다. (2023.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