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임솔아-
너의 머릿속에는 도시가 내장되어 있다. 너는 그 도시를 자주 운전해 다닌다.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각하고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너는 편두통 때문에 한쪽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꾹꾹 누른다.
애국가가 끝나고 텔레비전이 이명을 내뱉는 시간, 너는 텅 빈 도로를 내다본
다. 깊어진다는 것만으로 공기의 압력은 강해진다. 수압을 못 견딘 페트병처럼
불빛들이 우그러든다.
한 사람이 너의 도시를 걷고 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눈동자를 고정
하고 있다. 그는 오늘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에는 카드 두 장과 신분증, 2달
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중요한 것들은 아니라고 그는 되뇌인다.
2달러 지폐는 다시 구하기 어려울 테지만 그 지폐를 이십 년 넘게 들고 다녔
지만 그랬다는 것도 지금에야 알았지만 그걸 준 친구와도 그만큼 멀어졌지만
그 친구와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갔었지 돈까스를 나이프로 처음 썰어 먹었지
그 일이 나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친구가 내 어설픈 칼질에 신경 쓰지 않기
만을 바랐는데
그는 불 꺼진 음식점 앞에 멈추어 선다. 유리창에 두 손바닥을 대고서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그는 오늘 그 자리에서 너무 많은 말을 했다. 누구에게도 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말을 할수록 말은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되어 갔고 아무
것도 아닌 말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많은 말을 하게 되어 갔고 그러나 지갑은
하얀색이었으므로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일지 모른다. 가보았던 모든 곳을 가보
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생각하며 그는 지나온 곳들을 향해 나아간다. 더
이전에 갔던 곳으로, 이전보다 더 이전에 갔던 곳으로
너의 귀는 점점 커져 간다. 너는 모든 것이 너무 잘 들린다. 그의 옷깃이 살에
부딪치는 소리와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와 그가 낮에 동창회에서 들은 소
문들과 내일 그가 내쉴 한숨소리와
너의 귀는 점점 커져 간다. 귀는 늘어지다가 귀를 덮어 간다. 귓속에 습기가
차고 세균이 번식하고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너의 도시에도 물안개가
내려앉는다. 너는 부엌에 걸어가 약을 꺼낸다.
한 알의 약이면
폭설이 내리듯
도시는 하얗게 덮일 수 있다. 너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서 너의 도시가
온통 하얗게 변해 가는 것을 내다본다. 도시는 여전히 어둡고 도시는 이제 밝
다. 눈발 때문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은 오래도록 녹지 않고
내일 아침이면 차들은 더욱 천천히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