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덕유산을 종주하자고 7명이 의기투합했으나,
개인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운 두 친구와 족적근막염으로 이번 산행에 동참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창식이를 뒤로하고
6월 6일 용규, 종훈, 석규, 나 4명이 동서울터미널에서 14시 30분발 지리산 백무동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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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계곡과 장쾌한 능선,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넒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가 있는 너그러운 어머니산 덕유산을 이번에는 친구들과 또 찾는다.
땀 흘리는 고통과 행보에서 갖는 사색, 정상에서의 쾌감과 성취감, 정상에서 보는 일망무제의 조망, 숲길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숲이 풍기는 진한 향기, 이런 것 때문에 산을 찾고 또 가는 것이 아닐까?
3시간 넘게 걸려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서상버스터미널에 내리니 말이 터미널이지 구멍가게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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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육구종주의 들머리인 육십령에서 민박을 하기로 하고,
숙박 예약한 육십령 서상휴게소로 전화하여 교통편을 물으니, 택시기사에게 연락할 테니 터미널에서 기다리란다.
날씨는 잔뜩 찌푸린 것이 곧 비가 올 태세다.
콜택시로 육십령 서상휴게소에 도착하니 주인할머니가 반겨준다.
휴게소가 민박과 식당을 겸해 숙식을 함께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일부터 모레까지 고단하지만 가슴 뛰는 산행을 위한 장도식으로 돼지주물럭과 소맥주로 무사 종주를 위한 건배를 한다.
“덕유 육구종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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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주인할머니에게 부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우중으로 인한 할미봉과 서봉 사이의 난코스와 서봉 급경사 코스를 무사히 산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잠을 설친다.
친구들이 코 고는 것을 보니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잠을 청한다.
6시경 기상하여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하고 깨소금만으로 간한 김밥 두 줄씩을 받아
7시 넘어 민박집을 나서니 날씨는 꾸물꾸물하고 이슬비가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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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구종주의 들머리는 서상쪽과 장계쪽 두 군데가 있으나
몇 년 전 교직 후배들과 함께한 겨울 육구종주 때의 들머리인 장계쪽 충혼탑 앞에서 인증 샷하고, 큰 심호흡으로 32km 종주산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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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로 시야가 막혀 주변이 없으니 답답하고 적적하다.
지난해 설악종주 때와는 다르게 앞장 선 종훈이의 발걸음이 힘차다.
설악 하늘길인 공룡능선에서 고생을 많이 하여 그동안에 춘천 주변 산을 많이 섭렵했다고 한다.
로프 난간을 올라 붉은 글씨가 섬뜩한 할미봉에 올라섰다.
할미봉은 덕유산 종주구간에서 손꼽히는 암능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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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을 넘어서면 육구종주의 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사납다.
곳곳이 로프와 발 디딤대가 너덜거리는 사다리가 길을 대신한다.
이슬비에 물먹은 다 헤진 사다리는 우리에게 공포감을 준다.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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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 오름길은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 정도로 거칠고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거친 비바람에 손이 시려워 우리들을 힘들게 한다.
내일 모래 70의 나이에 이게 무슨 꼬락서니람.
그래도 우리는 간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한 우리나라 3대 종주 중 마지막 구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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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악인인 조지 맬러리는 “에베레스트는 왜 가려고 하는가?”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불과 200m 남겨둔 채 실종됐다.
그리고 75년 만인 1999년에 냉동 미라로 발견됐으나, 시신을 옮기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지금도 에베레스트에 냉동 미라로 잠들어 있다.
서봉에 다가설 무렵 우리와는 반대로 구천동을 들머리로 삿갓재대피소에서 1박하고 육십령으로 내려오는 50대로 보이는 부부를 만났다.
“너무 멋집니다” 인사하니 아저씨가 해말게 웃는다.
오후 1시경 서봉에 올라서니 온통 운무에 쌓여 지척 분간이 어렵고, 점심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매서워, 떨어지다가 다시 솟구치는 남덕유산으로 향했다.
맑은 날에는 장쾌한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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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지 운무가 숲에 걸려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후두둑한다.
서봉 내리막길 바람 잔잔한 곳에서 앞 선 종훈이가 김밥을 먹자고 한다.
비는 내리고, 솟아오르는 남덕유산 오르막길에 50ℓ 배낭은 어께를 짓누르고, 비에 젖은 등산화는 천근만근, 숨은 헐떡인다.
오후 2시30분경 남덕유산 삼거리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300m 떨어진 남덕유산에 올라 정상석을 안고 기념 촬영을 했다.
비 섞인 운무로 주변 전망은 없으나 친구들 모두가 야호를 부르며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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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풍광을 조망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직도 4km나 남은 오늘의 목적지인 삿갓재대피소로 향했다.
축축하고 숨찬 산행이지만 석규, 용규, 종훈이 모두 얼굴이 밝다.
오후에는 갠다는 비바람은 계속 불고, 체력은 점점 한계점에 도달한다.
월성재에서 용규와 석규가 갈 길을 확인한다.
“아직도 2.9km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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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시간보다 늦은 오후 6시경 삿갓재대피소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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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평일이라서 그런지 입실 정원 46명인 대피소에 입실객이 8명뿐이니 적막했다.
예약 확인 후 실 배정 받고, 담요를 각각 2장씩을 빌렸다.
삿갓재대피소에 올 때마다 느끼는데, 위아래 2층으로 되어있는 한사람 누우면 딱 맞는 관 같은 침상이 영 마음에 걸린다.
젓은 옷을 갈아입고 저녁식사 재료를 준비하여 경사진 1층에 있는 취사실로 내려갔다.
햇반과 훈재오리에 묵은김치, 양파, 마늘, 메운 고추 몇 개를 넣은 오리고기 두루치기와 소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옆 테이블에 부산에서 왔다는 50대 산객 3명과 죽이 맞아
흥에 겨운 종훈이의 구성진 뽕짝으로 취사장을 즉흥적인 노래방으로 만드니, 고단한 산행의 피로가 확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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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으로 자다 깨다 하다가 5시경 일어나 날씨를 보니 비는 멈췄지만 운무가 잔뜩 끼어 있다.
석규와 같이 100m 아래에 있는 참샘으로 내려 가 할배 오줌발보다 더 가늘은 물을 받아 취사장에서 햇반과 북어국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예정 시간보다 늦은 8시경에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을 향해 출발했다.
심한 오르내림 없는 능선을 걸으며 운무가 걷혀 장엄한 덕유 산세를 조망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무룡산에 도착할 때까지 마주치는 산행객이 없어 한적해서 좋으나 아직도 향적봉이 8.4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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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 서서히 하늘이 열리고 조망이 펼쳐지나 앞서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무겁게 보인다.
정오쯤 동업령에 도착하여 행동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갈 길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남북 종주 길은 오르내림이 연속인 능선길이다.
그래도 운무가 걷히고 시야가 트이니 답답한 마음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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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삼거리 초입에서 뒤 돌아보니 저 멀리 서봉과, 남덕유산, 삿갓봉이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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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삼거리에서 한 숨을 돌리고 갈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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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덕유 평전,
고산의 평야다.
우리나라에서 지리산 세석평전과 덕유평전, 소백평전은 서로 닮은 절경과 운치를 자아낸다.
눈 쌓이 덕유평전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6월 청록의 눈부신 덕유평전은 어머님의 품과 같이 부드럽고 평온하다.
천상의 화원인 덕유평전의 원추리는 아쉽게도 아직 필 기미가 없다
6월 중순 이후부터 피가 시작하여 7월 중순에 절정을 이루는 원추리 군락지인 덕유평전은 들꽃과 어우러져 온통 노랑 물결이 된다.
원추리 만발한 덕유평전에 꽃구경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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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발걸음이 무거고 숨이 턱에 찰 때쯤 중봉의 조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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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마운틴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일망무제의 조망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저 멀리 남덕유산으로 뻗은 산군이 강렬하게 온 몸으로 퍼지는 짜릿한 황홀감으로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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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천년 살아 천년의 주목과 군데군데 남은 화사한 연철쭉의 끝자락을 보며 향적봉대피소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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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시간보다 늦은 대피소에서 떡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을 향해 숨이 차도록 속도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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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에는 자연자원 보호를 위해 설천봉에서 향적봉 탐방로 구간을 6월 9일까지 통제한단다.
편하게 무주리조트 곤돌라 타고 향적봉은 탐방할 수가 없으니 산행객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여성 산행객에 부탁하여 모처럼 향적봉 정상석에서 4명이 인증 샷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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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하고 백련사 등로로 하산을 재촉하나 길의 경사가 급해 제 속도가 나질 않는다.
무릎 통증이 올 때 쯤 백련사에 당도하여 돌틈에서 흘러나오는 얼음물처럼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본당 석가세존에게 무사 산행에 대한 감사 합장을 올린다.
백련사에서 구천동 탐방센타까지 무려 6km에 이르는 탐방로는 묵언 수행길로 무념무상으로 걷는다.
두고가는 것도 없는데 두고 가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함께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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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산행의 날머리인 구천동에 도착 했으나 무주행 마지막 버스는 이미 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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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구종주의 날머리인 구천동 기념석에서 인증 샷하고 콜택시를 불러 무주로 향하는 길에
함께 고락한 자랑스러운 친구들의 얼굴을 본다.
덕유평전에 원추리 만발한 8월에 다시 올까!
에이!
꿈에서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첫댓글 작년 설악종주, 이번엔 덕유산 종주!! 친구 덕에 쉽게 갈 수 없는 종주를 무사히 다녀와 감사하오!! 비바람을 뚫고 구름위를 거닐고 헤처나간 육구종주는 평생 못잊을 추억이었오.
같이한 용규, 석규친구도 수고했고 감사하오.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종주의 성취는 커다란 기쁨이오 행복이었오!! 다 들 건강하고 행복하시게!!
멋 있는 친구들 이네요
진짜 멋쟁이 칭구들...!
나도 합석했었으면.
다음에는 꼭 챙겨 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