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홀릭] 05
씬1. 레스토랑/다음 날 오전
4부 엔딩 씬에 이어서, 율주가 들어오고 있다.
강욱 (들어오는 율주를 보고는 바로 굳어지는)
율주 (강욱을 봤다. 굳는)
수진 어서 와.
율주 (굳은 채로 천천히 다가온다.)
영길 지배인님, 어제 말씀드렸던 제 제자, 서강욱군입니다.
강욱 (굳은 채로 율주를 보기만 하는)
율주 (굳은 채로 강욱을 보기만 하는)
수진 ? (이상한 듯 두 사람을 본다.)
영길 뭐해, 인사 안 드리고.
수진 두 사람, 아는 사이야?
강욱 (순간적으로) 처음 뵙겠습니다. (꾸벅 인사하며) 서강욱이라고 합니다.
율주 …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네. 안녕하세요.
영길 (장난스럽게) 우리 지배인이 여기 실세야. 곧 사장님 며느리 되실분이거든.
강욱 !… (율주를 보는)
율주 (강욱 보는)
수진 그럼 지배인이랑 나머지 얘기 끝내요. (자리를 비키고)
영길 얘기 끝내고 조리실로 와라. (조리실 쪽으로 가고)
율주 (말없이 강욱을 본다.) ……
강욱 (율주를 보던 시선을 걷고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불안한 얼굴 하지 마세 요. 시어머니 되실
분한테 들키게 하지 않을 테니까.
율주 (강욱을 보면서 말없이 마주 앉는다)
강욱 내가 지금 여기서 뛰쳐나가면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율주 (감정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
강욱 (애써 냉랭하게 보는)
수진 (멀리서 두 사람을 힐끗 본다.)
강욱 시어머니 되실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겠죠?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 고 하세요.
율주 …그래, 그럴게.
강욱 (숨이 멎을 것 같다)
율주 (엷게 웃으며) 다시 만나, 반가웠다.
강욱 (밀려오는데)
수진 (두 사람에게로 다가와서는) 아직 얘기 안 끝났어?
강욱 (벌떡 일어나며) 죄송합니다. 일당이 적어서 못하겠습니다. (나가려는데)
수진 잠깐만요.
강욱 (보면)
수진 소개한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가시는 거 아니죠. (율주에게 야단치 듯) 지배인, 얘길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가신대?
율주 (고개 숙이며) 죄송합니다.
강욱 !
수진 (강욱에게 웃는 얼굴로) 아쉬운 사람이 물러서야죠 뭐. 원하는 대로 해드 리죠.
강욱 ……
씬2. 조리실/오전
치솟는 불. 가스 마다 불꽃이 치솟으면서 소스가 끊고, 프라이팬에 담긴 고기들이 자글자글 거리고 있다. 메인
요리(스파게티류)를 만들고 영길, 능 숙한 칼 놀림으로 각종 해물을 썰어내는 민혁(주방의 또 다른 조리사).
샐러드에 들어갈 각종 재료들을 다듬던 굳은 표정의 강욱, 문득 홀 쪽을 바라본다. 조리실과 홀 사이의 미닫이
문(혹은 칸막이) 사이로 홀에서 왔 다 갔다하고 있는 율주가 보인다.
강욱 (다듬던 손을 멈추고 바라보는)……
영길 서강욱.
강욱 (눈 돌리며) 네.
영길 시간 없어, 왜 넋을 놓고 있어.
강욱 죄송합니다. (다시 샐러드를 고른다.)
레스토랑 홀, 율주, 칸막이 사이로 조리실의 강욱을 보고 있다.
율주 (잠시 보다가 시선 돌리는)
씬3. 레스토랑 앞/밤
레스토랑 앞에 다가온 태현,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주차 시킨다.
씬4. 레스토랑/밤
파티 분위기, 레스토랑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난 화분 몇 개, <김수봉 검사 축하합니다> 라는 리본이 달려있다.
레스토랑을 거의 메운 사람들이 테이 블에 앉아서 떠들며 음식을 먹고 있거나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수봉, 사람들이 ‘축하합니다’ ‘애 쓰셨습니다.’ 하며 인사를
건네고, 웃음으로만 답하는 수봉. 앞치마를 두른 강욱, 홀까지 나와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강욱, 테이블에 음 식을 놓으면서도 시선은 수봉 함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율주에게 가있다.
수봉 (율주를 어느 사람에게 소개 하고 있는) 얘가 제 며느리 될 아이입니다.
율주 안녕하세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는 신검사(33세/춘천지검에서 강욱 사건 담당 했던 당시 공판 검사)가 힐끗 힐끗 강욱을
보고 있다.
신검사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수봉 옆에서 미소 짓고 있던 율주, 문득 자신을 보고 있는 강욱과 시선이
마주친다. 잠시 시선을 교차하는 두 사람.
강욱 (시선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조리실로 가고)
율주 ……
태현이 들어온다.
수진 (입구에 가까이 있다가 보곤) 늦었다.
태현 네.
율주 (다가가서는 활짝 웃으며) 왔어?
태현 응. (활짝 웃고는 율주의 어깨를 잡고는 손님들 쪽으로 가는데)
강욱 (조리실에서 나오다가 태현과 율주를 본다.)……
태현, 아직 강욱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간다.
태현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굳어진 다.)
웃음소리가 난 테이블 앞, 강욱이 웃는 얼굴로 손님에게 음식 설명을 하고 있다.
율주 (강욱을 보고 있는 태현을 봤다.)……
태현 (옆의 율주에게 보통의 톤으로) 서강욱이가 왜 여?어?
율주 어, 부장님 소개로 왔어. (웃으며) ..나중에 얘기해.
태현 (말없이 강욱 보는)
강욱 (강욱, 율주를 스쳐 가려는데)
태현 (o/s) 서강욱씨.
강욱 (목소리 알아듣고 굳는다./ 돌아서면서 자연스러운 얼굴로 표정을 바꾸고 는 보는)
태현이 보고 있는.. 옆에 율주가 서있고, 테이블에 있던 수봉, 수진이 모두 두 사람을 보고 있다.
율주 (당황했다.)
태현 (웃는 얼굴로) 뜻밖의 장소에서 보게 되네?
강욱 (툭) 네.
수진 (듣고는) 두 사람 알아?
태현 (눈길은 강욱 보며) 그럼요.
영길 (옆 테이블에 있다가 다가와 서며 ??해져서) 알아?
태현 잘 알죠. 율주 제자에요.
강욱 (당황한)
율주 (그 순간 눈이 감기려고 한다.)
수진 그래? 근데 아까는 처음 보는 사이 아니었나?
태현 (실수했음을 직감하고)
율주 그게…… (좀더 깊이 감기는 눈)
수진 (이상하다는 듯 강욱과 율주를 보며) 왜 모른 척 했어?
율주 (당황한)
강욱 .. 제가 춘천에서 학교를……
신검사 (다가와서는) 아 맞다, 춘천! 난 또 누군가 했네.. (강욱에게) 이런 데서 보 네, 야, 벌써
오년이 지났네.. (하는데)
태현 (눈치 채고 얼른 신검사를 저지한다.)
신검사 ?
동시에 율주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옆에 있던 강욱, 율주를 안아버리게 되고 만다.
강욱 선생님. (자신의 팔에 안긴 율주를 보는)
태현 ! ... (강욱에게서 얼른 율주를 데려와 안으며 락커 룸 쪽으로 간다.)
웅성거리는 주변 사람들.
수진 (사태를 수습하려고 사람들에게) 괜찮습니다. 우리 애가 빈혈기가 좀 있나 보네요.
수봉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강욱 (태현에게 안겨 락커룸 쪽으로 가는 율주를 바라보는)
씬5. 레스토랑 밖/밤
차들이 떠나고 있다. 수봉, 수진이 떠나는 손님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태현 (수진 옆으로 다가오면)
수진 율주, 괜찮니?
태현 네.
수진 하필 오늘 같은 날... (막 앞을 지나가는 차 한대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 하며) 안녕히
가세요.
수봉 (같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안됐다는 듯이) 많이 나아졌다더니……
태현 좀 피곤했나 봐요.
신검사 (o/s) 김검사.
태현 (돌아보는)
씬6. 레스토랑 앞 일각/밤
태현과 신검사가 서있다.
신검사 (머리 긁적이며) 누군가 한참 생각했네.. 벌써 5년이나 됐나아~ 내가 춘천 지검에서 공판검사
할 때 첫 번째 맡은 사건이었거든 그게.. 김검사 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태현 내 약혼녀 제자였어.
신검사 (알겠다는 듯이) 아, 그랬구나아~ 그럼 그 현장에 있었던 선생님?
(말없는 태현의 표정보고 끄덕이며) 난 그 기면증이 참 이해가 안됐었는 데.. (크게 끄덕이면서) 눈으로 직접 보니
이해가 좀 되네..
태현 (보면)
신검사 조서에 사건 현장에서 선생님이 기면증으로 쓰러졌다 그래서.. 그게 뭔가 했거든.. 근데
김검사, 그 사건 좀.. 이상한 데가 있었어.
태현 이상하다니?
신검사 별건 아니고.. 자백에 의해서 종결되긴 했는데..
태현 (의미 있게 보는)
씬7. 락커 룸/밤
잠든 율주, 한곳에 누워있다. 강욱이 다가온다.
강욱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보기만 하는)
율주 (잠든)
강욱 (마음 아픈/잠시 보다가 돌아서려는데)
율주 (잠결에 작은 소리로) 오토키레 렌마위몬…… 오토키레……
강욱 ! (휙 돌아본다.)
율주 오토키레 지사토과…… 오토키레 렌마위몬……
강욱 (밀려오고)
중얼거리던 율주, 몸을 뒤척이다가 담요가 스르르 몸에서 떨어진다.
강욱, 얼른 다가가려다가 다시 멈칫 한다.
강욱 (흔들리는/ 천천히 다가가서 율주의 몸에 담요를 덮어주고 돌아서는데)
태현 (뒤에 서있었다.)
강욱 (놀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보는)
태현 (잠시 보다가) 얘기 좀 할까?
강욱 ……
씬8. 레스토랑 홀/밤
모두 퇴근했다. 작은 조명등만 켜있는.. 강욱과 태현이 창가 앞에 나란히 밖의 불빛들을 보면서 서있다.
태현 (앞을 본 채로) 부장님 제자였다고.
강욱 (툭) 네.
태현 인연이 깊네.
강욱 (끄덕이며) 질기다고 봐야죠.
태현 (강욱을 보며 웃는 얼굴로) 그 말이 더 어울리겠네.
강욱 (웃는 얼굴로)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태현 아냐. 특별한 얘기는 아니고……, (지그시 강욱을 본다.)
<플래시 컷>-씬6에서, 태현과 신검사가 서있다.
신검사 그 친구가 범인이 아니라는 제보 전화가 왔었는데……
태현 (강욱 보는)
강욱 (보는)
태현 (창가에서 떨어져 몸을 움직이며) 서강욱씨, 5년 전 자네가 저지른 그 살 인사건
말인데……, (말을 멈춘다.)
강욱 (긴장된 얼굴로 태현 본다.)
씬9. 락커 룸/밤
잠든 율주, 율주의 눈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씬10. 율주의 기억
머릿속을 떠다니는 퍼즐조각들. 조각마다 찢어진 사진처럼 누군가가 있다.
조각을 맞춰보면 5년 전의 사고 현장이다. 경오가 강욱에게 각목을 휘두르 는 조각, 강욱아! 하고 외치는 율주의
조각, 뒤엉켜버린 세 사람의 조각.
난간까지 몰아세워진 경오의 조각, 힘껏 발차기를 뻗고 있는 율주의 조각.
이 모든 조각들이 다 맞춰지지 않은 채, 어지럽게 떠다닌다.
강욱을 향해서 경오가 각목을 드는 조각이 그 어느 조각보다 선명하게 보 이는데,
씬11. 락커 룸/밤
감고 있는 율주의 눈, 더 파르르하게 떨리고,
씬12. 레스토랑 홀/밤
태현과 강욱이 마주 보며 서있다.
태현 난.. 율주 머릿속에서 5년 전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하는데, 가끔
악몽을 꾸나봐.
강욱 ……
율주E (비명) 강욱아!
강욱과 태현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다.
태현 (굳는)
강욱 (락커룸 쪽으로 가려는데)
태현 (저지하며) 됐어. 내가 가볼게. 자넨 그만 가보지. (락커룸 쪽으로 간다.)
강욱 …… (쉽게 발을 떼지 못하겠다.)
씬13. 레스토랑 앞/밤
태현, 율주를 데리고 안에서 나온다. 차문을 열어 율주를 태워주는 태현, 멀리서 두 사람을 보는 시선이 있다.
강욱 (몸을 숨기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율주를 보고 있다)……
율주 (태현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오르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는)
강욱 (몸을 숨기는)
율주, 차에 오르자 떠나는 차. 강욱, 뒤에서 떠나는 차를 바라본다.
씬14. 거리/밤
달리는 태현의 차안. 태현과 율주가 나란히 앉아있다.
태현 (부드럽게) 괜찮아?
율주 괜찮아.. 태현씨.. 나.. 또 봤어.
<플래시 컷>-방금 율주의 머릿속에 떠다니던 퍼즐조각 하나.
율주 꿈같지가 않아.
태현 (자르듯) 그 얘긴 그만하자.
율주 ……
태현 난 니가 어떤 이유로든 5년 전의 일을 떠올리는 게 싫어. 너한테도 계속 악몽이잖아.
...니가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르며 깨어나는 것도 기분 나쁘고,
율주 (미안해지면서) 태현씨 그건, (하는데)
태현 다신 서강욱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율주 ……
태현 오늘처럼 우연이라도 서강욱 만나지 마, 또 보게 되면 니가 피해. ... 계속 같이
일하는 건 아니겠지?
율주 오늘 뿐이야.
태현 (끄덕이고는 이 얘기 그만하겠다는 듯이 라디오를 켠다.)
자경E 안녕하세요. 밤의 멜로디 윤자경입니다.
율주 ! (라디오로 시선 가고)
자경E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새끼손가락에 빨간 실이 매어져 있답니다.
율주 ……
씬15. 스튜디오 부스 안/밤
자경 마이크 앞에 앉아있다.
자경 그리고 그 실의 끝은 그 사람의 인연이 되는 또 한사람의 새끼손가락에 매어져 있답니다.
호태, 밖에서 부스 안의 자경을 보고 있고 손으로는 날카로운 펜 끝으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고 있는..
테이블에 부딪히는 펜 끝의 뾰족함이 위 험해 보인다.
씬16. 시내 거리/밤
높은 빌딩들이 운집해 있는 도심 거리.
강욱, 야경의 불빛 사이를 걷고 있다. 신호등 앞에 선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강욱, 생각에
빠져 길을 건널 생각 않고 맞은편에 서 건너오는 활기찬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기만 한다. 그러다 천천히 걸음
을 뗀다.
자경E 그런데 그 실은 이리 저리 얽혀 있어서 그 실의 끝을 찾기도 어렵고 잘못 찾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답니다.
깜박이는 신호등. 강욱, 중간 신호등 앞에서 서고 만다. 강욱의 앞과 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들. 강욱,
차들과 도심의 불빛 사이에서 천천히 하늘 을 향해 고개를 든다.
강욱 (건너편, 야경으로 반짝이는 높은 빌딩의 불빛을 바라보는)
씬17. 율주의 방/밤
율주, 방금 찍은 듯 폴라로이드 사진을 흔들고 있다. 서서히 얼굴이 들어 난다. 멍한 표정의 자신의 얼굴.
사진 밑에 글이 써있다.
<너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 헤어졌다. 2005년 5월 16일>
율주 (사진속의 자신의 얼굴을 보는)
자경E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는 그 빨간 실을 들고서 자신의 인연 앞에 서게 된답니다.
씬18. 방송국 앞 거리/밤
강욱, 자경을 기다리며 발로 돌계단을 툭툭 건드리며 서있다. 입구에서 나 오던 호태, 강욱을 본다.
강욱 (호태 보지 못하고)
호태 (의미 있는 눈빛으로 강욱을 보다가 다가온다.)
강욱 (보곤) 어이, 정호태! 오랜만이다.
호태 (거만) 오랜만이다. 언제 나왔냐?
강욱 며칠 됐어.
호태 고생 좀 했겠다.
강욱 지낼 만 했어.
호태 (비실 웃으며) 억울하진 않았고?
강욱 !!!
호태 나 같으면 그렇게 못산다.
강욱 (굳는)
호태 (의미 있는 표정으로 비실 웃는)
강욱 …… (그런 호태를 깊이 보는데)
자경 (입구에서 뛰어오며) 강욱아!
호태 (달려오는 자경을 보고는) 또 보자. (간다.)
강욱, 건들거리며 걸어가는 호태에게서 눈 떼지 못하는데, 그 위로,
호태E 억울하진 않았고?
강욱 ……
자경 (다가와서) 오래 기다렸어?
강욱 아니.
자경 (기분 좋게 팔짱을 끼며) 가자.
씬19. 야구장/밤
환하게 붉을 밝힌 야간 경기장. 배트에 맞고 나가떨어지는 공.
앉아있던 관중석의 사람들 일제히 일어나 환호한다. 강욱과 자경도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서 환호한다.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춤을 추며 응원하는 치어리더들. 또다시 터지는 안타.
자경, 강욱 (동시에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른다.)
씬20. 88도로/밤
자경의 차가 오픈 한 채로 달리고 있다. 강욱, 조수석에 앉아서 창문에 팔 을 괴고는 한강 주변의 야경을 보고
있다.
한강 교각에 펼쳐진 조명들이 강욱의 시선을 지나쳐 가고,
자경 (환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는)
강욱 (무표정한 얼굴로 불빛들을 바라보며 캔맥주를 마시는)
자경 (운전하면서) 이제 그 레스토랑에 계속 나가는 거야?
강욱 아니, 다신 안가.
자경 왜? (아깝다는 듯이) 너 레스토랑 나가면 내가 밥 핑계 대고 맨날맨날 가 서 너, 볼
텐데..
강욱 (대답 않고 불빛들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씬21. 클럽/밤
홍대 앞 분위기의 인디밴드 클럽. 인디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고 몇몇은 밴 드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자경도
춤을 추고 있다. 춤추는 자경 가까운 탁자 앞에 앉아서 춤추는 자경을 보고 있는 강욱.
자경 (강욱을 보면서 춤을 추고 있는)
강욱 (자경 향해 엷게 웃으며 술을 마시는)
자경 (강욱 옆에 앉으며 목마른지 술을 마신다./기분 UP) 아, 시원하다.
강욱 ……
자경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강욱 코앞으로 가까이 확 대는)
강욱 (놀라서) 왜.
자경 (장난스럽게 싱긋 웃으며) 좀 슬퍼 보이는데?
강욱 (웃으며 고개 돌리고)
자경 무슨 일 있어?
강욱 .. 자경아.
자경 응?
강욱 니가 옛날에 그런 말 했었지. …사랑이라는 게,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가슴이
아프다.
자경 (끄덕이며) 응. 갑자기 왜?
강욱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대답 않고 다시 술을 마신다.)
씬22. 자경의 오피스텔/밤
스탠드만 켜져 있는 방. 강욱, 침대에 모로 누워있다. 자경, 강욱의 등에 자신의 등을 대고 앉아 있다.
자경 강욱아. 그때 그 얘기 말이야, 그건 내가 나한테 하는 소리였어. 지금 난 팔도 아프지 않고
가슴도 아프지 않아. 오른 쪽을 봐도 니가 있고 왼쪽을 봐도 니가 있고,
강욱 (모로 누운 몸을 똑바로 눕는/완전히 골아 떨어졌다.)
자경 (자는 강욱의 얼굴을 보곤) 내가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보고, 또 가끔은 니가 날
찾아오기도 하고…… (귀엽게 웃으며) 윤자경 신났네.
자경, 강욱에게 배게를 잘 받쳐주고는 잠시 바라본다. 조심스럽게 강욱 옆 에 눕는다.
자경 (기분 좋아 쿡쿡 웃는데)
강욱, 갑자기 몸을 자경 쪽으로 세우면서 저절로 자경의 코앞까지 얼굴이 닿고 말았다.
자경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라는)
강욱 …… (깊이 잠든)
자경, 천천히 강욱 가까이 얼굴을 댄다. 닿을 듯 말 듯한 코.
자경, 천천히 강욱의 냄새를 한번 맡아본다.
자경 (기분 좋아서 싱긋 웃는)
씬23. 검도장/오전
창가에서 빛살이 내려오는 아무도 없는 빈 검도장, 태현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도장을 울리고 있다.
태현, 도복을 입고 죽도를 휘두르며 하! 하! 기합소리와 함께 도장을 뛰어 다니고 있다. 힘과 날카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태현의 날쌘 동작.
태현 (호면 속에서 빛나는 날카로운 눈길)……
<플래시 컷>-씬7에서, 강욱이 잠든 율주를 바라보던 모습.
커지는 태현의 기합소리. 허공에 대고 죽도를 휘두르는 태현.
씬24. 레스토랑/오전
테이블 앞에 수진과 율주가 마주 앉아있다.
윤종을 비롯한 서버들이 주변에서 오픈 준비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수진 (난감해 하는 율주를 보곤) 왜, 서강욱씨가 마음에 안 들어?
율주 네. 전… 별로.
수진 제자라며.
율주 네, 그렇긴 한데요……
수진 일부러 모른 척 한거라며.
율주 ?
수진 어제 서강욱씨가 그러더라구, 학교 때 선생님을 너무 싫어해서 모른 척 한 거라고.
율주 ……
수진 (웃으며)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으면 모른 척을 다해, 암튼, 내가 보기엔 예사롭지 않은
솜씨야. 어제 메인요리를 서강욱씨 했다며, 연락해.. 옛날 제자면 오히려 잘됐어. 다 잊어버리자 그러고
데려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 이를 주며) 부장님한테 내가 연락처 받았어.
율주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받고)
씬25. 락커 룸/오전
율주,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다. 번호를 누르려다가 그만 둔 다. 미치겠는지 무릎사이로 얼굴을
파묻는다.
씬26.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자경이 앞치마를 두르고 북어 국을 끓이고 있다.
강욱, 웃통을 벗은 채로 침대에서 나와 자경에게로 간다.
강욱 (자경의 어깨너머로 보며) 뭐해?
자경 일어났어? 북어 국.
강욱 맛있겠는데? 그러고 있으니까 새색시 같다.
자경 (왠지 부끄럽다. 일부러 무뚝뚝하게) 일회용 인스턴트야.
강욱 (웃곤) 근데 내가 왜 여?냐?
자경 (몹시 귀찮았다는 듯이) 니가 오겠다고 떼썼잖아. 내가 안 된다고, 안된다 고 했는데..
강욱 (풋 웃는다.)
자경 할머니한테는 내가 전화 드렸어. (도도) 너 아예 여기서 살래더라.
강욱 (장난스럽게) 그러지 뭐. (욕실 쪽으로 간다.)
자경 (기분 좋아 쿡, 웃는)
씬27. 동장소 욕실 안/오전
강욱, 샤워를 하고 있다. 문득,
<플래시 컷>-호태의 ‘억울하진 않았고?’
강욱 (생각에 빠져 있는)
<플래시 컷>-호태의 ‘나 같으면 그렇게 못산다.’
강욱, 몸을 씻던 손을 멈춘다.
E 핸드폰 소리.
강욱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다.)
E 계속 울리는 핸드폰 소리.
씬28.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침대 옆 강욱의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진 강욱의 핸드폰을 집는 손.
씬29. 레스토랑/오전
율주 구석진 곳에 서서 전화를 걸고 있다.
자경E 여보세요?
율주 (당황한다.)
자경E 여보세요?
율주 저……, 서강욱씨 핸드폰 아닌가요?
씬30.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자경, 전화를 받고 있다.
자경 맞는데요. 지금 강욱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데…, (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실례지만
누구시죠? 혹시…… 이율주 선생님이세요?
씬31. 레스토랑/오전
율주 (자경임을 감지했다.) ……자, 경이니?
씬32.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자경 (굳어져서) 안녕하세요? …… 강욱이 지금 샤워하는데요.
씬33. 레스토랑/오전
율주, 전화기를 든 채로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말이 없다.
씬34.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자경 (말없이 저쪽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욕실에서 나오는 강욱을 보곤) 잠깐만 요.
강욱 (자경 보면)
자경 (강욱에게 전화기를 주면서 애써 침착하게) 이율주 선생님이네?
강욱 (받고는 냉랭하게) 여보세요.
자경 (빤히 전화 받는 강욱을 본다.)
강욱 (사무적으로) 왜요? (사이) 알겠습니다.
씬35. 레스토랑/오전
전화를 끊은 율주, 전화기를 든 채로 멀거니 서있다.
씬36. 자경의 오피스텔/오전
아침이 차려진 식탁. 자경과 강욱이 밥을 먹고 있다.
자경 어제 이율주 선생님 만난 거 왜 말 안했어?
강욱 (밥을 맛있게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먹었어. 어제 거기서 만났을 때는 좀 놀랐는데,
잊어먹었어 금방.
자경 (잠시 보다가) 왜 전화 했대?
강욱 좀 보자네?
자경 왜.
강욱 (계속 밥만 먹으며) 나한테 할 말이 있대.
자경 (반찬을 집어 먹으며) 만날 거야?
강욱 (여전히 자경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글쎄.
자경 내가, (강욱 똑바로 보며) 만나지 말라 그러면.
강욱 (계속 밥 먹으면서) 만나지 마?
자경 (말없이 강욱 본다.)
강욱 (대답이 없자 그제 서야 자경을 본다.)
자경 .... 아니 만나. (반찬을 하나 강욱에게 놔주며) 어제 처리 못한 일은 정리 해야지,
깨끗하게.
강욱 (잠시 보다가 국물 후르르 마시고는) 시~원하다!
자경 선생님 만나고 나서 바로 전화해. 오늘 봉기 포장마차 개업한대, 같이 가.
강욱 (끄덕이면서) 알았어.. (밥을 한 수저 먹고는) 아, 호태 연락처 좀 알려줘.
자경 왜?
강욱 뭐 좀 물어보려고.
자경 ……
씬37. 강욱의 집 앞/낮
강욱이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택배가 강욱의 대문을 두드리는 것이 보인다.
강욱 (다가가서는) 무슨 일이시죠?
택배 여기 서강욱씨 댁 맞죠?
강욱 네. 전데요.
택배 (과일 바구니를 주며) 싸인이요.
강욱, 싸인을 해주고는 과일바구니를 본다. 앞에 달린 리본에 <출소를 축 하한다. 김현철> 이라고
써있다.
<플래시 컷>-4부, 태현이 ‘김현철 한테 연락하면 전해줄 수 있나?’ 하던,
강욱 ……
씬38. 태현의 사무실/낮
태현이 들어선다.
건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며/표준말 화 된 사투리) 검사님. 김현철이 택배를 이용했습니다.
태현 택배를요?
건실 네. 수신자가 서강욱입니다.
태현 (굳는다.)
건실 잠복근무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태현 (뭔가 깊이 생각하는)
재철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냥 단순한 과일 바구니라잖아요.
건실 자네가 내용물 다 확인했어? 일단 가서 까봐야지.
재철 나참, 무조건 덤비지 맙시다.
건실 하튼 젊은 것이 게을러갖고는..
태현 (건실과 재철의 실갱이 속에서 뭔가 깊이 생각하는)
씬39. 커피샵/오후
강욱과 호태가 마주 앉아있다.
강욱의 뒤쪽으로 건실이 앉아서 신문을 보는 척 하면서 강욱과 호태가 주 고 받는 말을 듣고 있다. 건실의 옆
의자에 놓여있는 녹음기, 강욱과 호태 의 말이 녹음되고 있다.
강욱 (말없이 호태를 보기만 하는)
호태 (시계를 보며 짜증스럽게) 바쁜데.. 무슨 일이야?
강욱 아, 그래? (하고는 또 지그시 호태를 본다.)
호태 (짜증) 무슨 일로 왔냐니까.
건실 (귀를 세우고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는)
강욱 (배시시 웃으며) 어제 오랜만에 만났는데 섭섭하게 헤어져서.. 커피나 한잔 하자고.
호태 우리가 같이 커피 마실 사이는 아니지 않냐?
강욱 (몰랐다는 듯이) 아, 그런가.
호태 (잠시 보다가) 너, 혹시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왔냐?
강욱 (시치미) 무슨 말?
호태 억울하지 않았냐는 말.
강욱 아참, 니가 어제 그런 말을 했었지..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억울할 꺼 없어. 죄
값을 받은 건데 뭐.
호태 죄 값?
강욱 그럼, 죄 값이지, 다신 억울 하느니 어쨌느니 그런 얘기 함부로 하지 마 라, 경오한테
미안해지니까. (하고는 호태를 강하게 본다.)
호태 (비죽 웃으면서 마주 보는)
강욱 바쁘다며, 갈까? (일어서서 앞으로 나간다.)
건실 (신문을 접으며 강욱 본다.)
호태 (일어서 강욱의 뒷모습을 보다가 혼잣말로) ...까네 씨, 나 다 알아 새끼야.
씬40. 레스토랑 앞/밤
건실이 레스토랑을 바라보며 전화를 하고 있다.
건실 서강욱이 별거 없었습니다. 근데, 방금 누굴 만나는지 레스토랑으로 갔는 데요……
씬41. 거리/밤
태현의 차안, 운전하면서 가는 태현의 표정이 화가 난 듯 굳어 있다.
건실E 근데 검사님, 검사님 어머님이 하시는 레스토랑 같은데요?
태현 ……
씬42. 레스토랑/밤
모두 퇴근 한 레스토랑. 약한 조명등만 켜져 있다.
율주와 강욱이 마주 앉아있다.
율주 미안하다. 오고 싶지 않던 것 같던데.
강욱 (빤히 보기만 할뿐)
율주 사장님이, 널 오라고 하셔. 니가 마음에 드셨나봐. 어떻게 할래?
강욱 (툭)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요.
율주 (대답 않는다.)……
강욱 (낮고 건조하게) 걱정 마세요. 선생님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율주 (차분히) 꼭 나 때문에 여길 오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하는 구나.
(사이) 사실.. 너도, 날 보는 게.. 싫잖아.
강욱 !
율주 (엷게 웃으며) 아니니?
강욱 (끄덕이며) 그렇죠. 선생님 보는 거, 좀 불편하죠.
율주 (잠시 보다가) ...강욱아.
강욱 (O/L)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놀리듯)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율주 나한테, 가라고 한 사람은 너야.
강욱 (피식) 아참, 왜 갑자기 옛날 얘기를 하고 그러시나아~
율주 (냉랭하게) 그러니까 나한테 화난 사람처럼 굴지 말라구.
강욱 !
E 율주의 핸드폰 소리.
율주 (액정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받으며) 어, 태현씨.
강욱 (전화 받는 율주를 빤히 보는)
율주 손님하고 얘기하고 있어. (사이) 아냐, 금방 가실 거야.
씬43. 레스토랑 앞/밤
태현, 레스토랑 앞으로 오면서 전화를 하고 있다.
태현 (레스토랑의 강욱과 율주를 보며) 손님 누구? (사이/굳어지며) 왜, 내가 알 면 안 되는
손님이야?
율주E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하고는 대답 듣지 않고 툭 끊는다.)
태현, 굳은 표정으로 레스토랑의 두 사람을 본다.
씬44. 레스토랑/밤
마주 앉아 있는 강욱과 율주.
율주 (일어서며) 그만 가봐라. 괜한 걸음 하게 해서 미안했다.
강욱 (천천히 일어서서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율주를 빤히 바라본다.)
율주 (보는)
강욱 (놀리듯) 지금이라도 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거예요?
율주 !
강욱 (율주에게 한걸음 다가와서는) 지금이라도 돌아와요?
문이 열리면서 태현이 들어왔다.
강욱 (태현이 들어오는 순간과 동시에/위협적으로) 돌아와요?
태현 ! (강욱의 소리를 들었다./굳는)
율주 (태현을 보고 당황해서는) 태현씨.
강욱 (율주의 시선 따라서 문 쪽을 보는)
태현 (다가오며) 서강욱씨 자주보네? (율주와 강욱을 번갈아 보는)
강욱 그러게요 자주보네요.. 지금 막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태현 (딱딱하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방해했나?
강욱 얘기 끝났습니다. 가보겠습니다. (하곤 두 사람에게 까닥 인사하고 가려는 데)
태현 잠깐만.
강욱,율주 (태현 보면)
태현 (율주에게) 강욱씨랑 같이 있다는 거 왜 말 안했어? 무슨 비밀스러운 손 님이라고.
율주 (갑자기 당황스럽다.)
강욱 (태현 보는)
율주 어머님이 강욱일 여기 데리고 오고 싶어 하셔. 그 일로 부른 거야.
태현 어머님이? 율주 니가 부르자고 한건 아니고?
율주 아니, 어머님이 어제 강욱이 일하는 거 보고 마음에 드셨나봐.
태현 그래? (강욱에게) 자네.. 올 껀가?
강욱 아뇨.
태현 (웃으며) 나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강욱 없습니다. 그런 일. (나간다.)
율주 (강욱 나가자) 태현씨 왜 그래?
태현 (싸늘하게) 뭐가.
율주 ……
태현 내가 어제 말했잖아, 다신 서강욱이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율주 (보는)
태현 (나갈 듯이 돌아서며) 가자. 어머님한테 집에 간다고 전화 드렸어.
씬45. 방송국 스튜디오/밤
자경, 강욱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E 벨소리가 메시지로 넘어간다.
자경 (굳어진다.)……
<플래시 컷>-강욱의, ‘나한테 할 말이 있대.’
자경, 다시 한번 전화를 걸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진다.
자경 (갑자기 속상하고 서러워지는데)
씬46. 권투 도장/밤
강욱이 링 위에서 어느 남자와 권투를 하고 있다. 강욱, 남자(아마츄어 선 수)에게 몹시 얻어터지고 있다.
주먹을 휘둘러보지만 역부족이다. 쓰러지면 얼른 일어서면서 악착같이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러본다. 강욱의 주먹을
맞은 남자, 강욱의 센 주먹에 한번쯤은 휘청하지만 여전히 쎄다. 터진 얼 굴로 남자를 힘있게 보는 강욱,
서로 주먹을 교차하는 강욱과 남자.
구경남자1 (링 밖에서 구경하다가) 저 친구, 저렇게 내버려 둬도 돼?
구경남자2 냅둬, 지가 스파링 상대 해주겠다고 박박 우겨서 하는 거니까.
구경남자1 별 특이한 놈을 다 보겠네.. (강욱 보며) 야. 그래도 완존 쌩짜는 아닌데.
강욱, 남자의 주먹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다. 겨우 겨우 다시 일어서는 강 욱. 남자를 향해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한다.
씬47. 율주의 집/밤
태현과 영애가 거실에 앉아서 체스를 두고 있다.
율주, 태현의 옆자리에서 과일을 깎고 있다. 영애, 나이트(knight)로 폰 (pawn)을 뛰어넘어 태현의
퀸(queen)을 잡는다.
태현 (안타깝다는 듯이) 아, 어머님 거기 나이트가 있었어요?
영애 (좋아하며) 김검사가 나한테 잘 써먹는 기술이잖아. (흉내 내며) 어머님, 가장 무서운 적은
한 칸 뒤에 숨어 있는 겁니다, 그래놓곤.
태현 (크게 웃는다.)
율주 (웃으면서 두 사람 보는)
영애 (다시 체스 판 보며) 자 얼른 둬. 김검사 차례야.
태현 이번 게임 제가 졌어요. 어머님.
영애 무슨 소리야.. 킹이 아직 살아 있는데?
태현 체스에서 가장 막강한 게 퀸인데 여왕이 죽었잖아요. 왕은 여왕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애 그래서, 여왕 없다고 포기한다고?
태현 (능청스럽게) 저랑 똑같거든요, 저도 율주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영애 (기분 좋아지면서) 김검사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태현 아 이거 말해놓고 나니까 무지 쑥스럽네.. (정말 얼굴 붉어져서 율주를 본 다.)
영애 (큰 소리로 웃고)
율주 (미소)
씬48. 포장마차 외경/밤
‘그냥 갈 순 없잖아요’ 라고 크게 써있다.
문 앞에 화환까지 있는, 리본에는 축 신장개업 이라고 써있다.
씬49. 포장마차/밤
봉기와 영화가 하는 포장마차.
커플 룩으로 맞춰 입은 봉기와 영화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영화 국자 들고 뛰어다니고, 봉기는 샌드위치를 입에 문채로 테이블에 소 주며, 오뎅 국물이며 안주를 가져다주고
있다.
자경 (한쪽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봉기 (다가와 앞에 앉으며) 자경아, 강욱이 언제 오냐? 기다리다 눈 빠지겠다.
자경 (자신에게 얘기하듯) 기다려, 곧 올 거니까.
봉기 눈에 진물나겠다아~ (은근슬쩍 술을 따라 마시려는데)
영화 (국자로 봉기의 머리를 치며) 어디서 장사하다 말고,
봉기 아!
영화 다림 아빠, 얼른 꽁치나 뒤집어라 응?
봉기 다림 엄마, 때리지 좀 마아~ 제바알~ 폭력은, 어떤 의미로든 정당화 될 수 없는거야~ (하다가
입구보고) 어, 정피디. (얼른 다가가면서) 어서 와 어서와.
호태 (자경을 보곤 자경 앞에 앉는다.) 너 왜 혼자냐?
자경 (보곤 무시한다.)
호태 (놀리듯) 강욱이 혹시 지금, 이율주 만나고 있는 거 아닐까?
자경 (쏘아 본다.)
호태 윤자경, 넌 서강욱이랑은 죽었다 깨나도 안돼.
자경 (피식 웃으며) 내가 충고 하나 할까? 강욱이랑 나 사이, 니가 모르는 게 있거든? 함부로
지껄이지 마.
호태 (비죽) 나도 충고하나 할까? 이율주와 서강욱 사이에도 니가 모르는 비밀 이 있어.
자경 무슨 비밀.
호태 내가 그걸 쉽게 말할 수는 없지.
자경 (보는)
호태 윤자경,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가슴에 남는다더라, 잘 생각해라.
넌 강욱이 바짓가랭이나 잡고 있는 세컨드 밖에 안돼.
자경 (순간 먹던 술을 호태 얼굴에 부어 버리고는) 세컨드?
호태 (인상 쓰고 자경을 노려보는)
봉기 야, 왜들 이래 왜, 어이구 이를 어째 다 젖었네에~ (닦아주는데)
호태 (닦아주는 봉기의 앞치마를 손으로 팍 치며) 어디서 드럽게,
(주머니에서 잘 다린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며 자경을 쏘아본다.)
자경 그래 난 강욱이 세컨드다. 근데 넌, 내 세컨드도 못 돼. (나가버린다,)
영화 (자경 나가자 진심으로) 그래 호태 너, 입 조심해에~ 옛날에 나 입 함부로 놀렸다가
자경이한테 따귀 맞았잖아.
호태 (서늘한 표정으로 젖은 옷을 턴다.) ……
씬50. 거리/밤
강욱, 여기 저기 터진 얼굴로 거리를 걷고 있다.
<플래시 컷>-율주의 ‘나한테, 가라고 한 사람은 너야.’
강욱 (밀려오는)……
씬51. 강욱의 집 앞/밤
자경, 강욱을 기다리며 쭈그려 앉아있다. 술에 취해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자경 (고개 드는/눈물이 맺혀있다.)
E 핸드폰 소리.
자경, 얼른 전화기를 본다. 액정 보면, 강욱이다.
자경 (잠시 보다가 받고는 숨을 몰아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보세요.
강욱E (밝게) 자경아, 오빠다.
자경 ……
강욱E 전화 못해서 미안하다, 이 오빠가 오늘 좀 바빴다! 나는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너는
뭐하냐?
자경, 그 소리에 돌아본다. 강욱이 전화를 하면서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다.
자경, 전화를 끊고 강욱 향해 일어선다.
강욱 (여전히 전화기에 대고) 너 왜 말이 없냐, 오빠 말 안 들리냐? (하는데 눈 앞에 서있는
자경을 보곤 배시시 웃는다.)
자경 ……
강욱 (다가와서는) 너 왜 여?냐? 나 기다렸어?
자경 (터진 강욱의 얼굴 보며) 너, 얼굴 왜 그래?
강욱 아, 이거.. 지나가는데 권투 도장이 있길래 스파링 한번 했다.
자경 (꼬인) 왜?
강욱 그냥, 오랜만에.. 창문에 글러브가 그려져 있길래.. 야, 이 오빠 주먹 여전 하더라.
자경 (속이 뒤틀려서) 그렇게 힘들디?
강욱 (진지해진 표정으로 본다.)
자경 다시 선생님 보니까, 이렇게 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힘들어지디?
강욱 (잠시 보다가 배시시 웃는다.)
자경 (꼴 보기 싫다. 시선 돌려버린다.)
강욱 오래 기다렸어?
자경 아니, 안 기다렸어, 안 기다렸는데, 하도 연락이 안돼서, 길 잃어 버렸는 줄 알고, (톤
높아지면서) 또 엉뚱한 데 가서 헤매다가 5년 동안 사라져버 릴 까봐, (눈물나려는 것을 참는)
강욱 (지그시 본다.)
자경 터진 얼굴이라도 봤으니까 됐어. 갈게. (눈물 안보이려고 얼른 돌아선 다.)
강욱 (잡으며) 데려다 줄게.
자경 됐어. (뿌리치고는 빠르게 걸어간다.)
강욱 (그 자리에서 서서 바라보다가) 잘 가.
자경 (잘 가라는 말에 그만 울컥 눈물이 나고)
자경,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 강욱을 본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강욱의 뒷 모습, 자경 빠르게 강욱에게 달려가서는
강욱을 뒤에서 와락 안는다.
강욱 !
자경 이번만 봐 줄 거야.
강욱 ……
자경 또 이러면, 다신.. 이제는 이렇게 뒤에서 안지 않을 거야..
강욱 ……
자경 (강욱의 허리를 더 꽉 잡는다.)
강욱 …… (천천히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자경의 손등을 토닥인다.)
씬52. 태현의 사무실/오후
태현, 건실이 가져다준 녹음기 속에서 나오는 강욱과 호태의 대화를 듣고 있다.
강욱E 억울할 꺼 없어, 난 죄 값을 받은 거니까. 죽은 경오한테 미안해지잖냐.
호태E 죄 값이라고?
건실 (옆에서) 며칠 잠복했는데 별다른 게 없네요.
재철 내가 뭐라 그랬어요, 잠복해 봤자라니까, 김현철이 어떤 놈인데 그렇게 쉽게 나오겠어요?
녹음기에서는 강욱과 호태의 대화가 끝나고 잡음이 들려온다.
태현 (녹음기를 끄고는) 두 분은 서강욱 보다는 김현철과 거래 전과가 있던 사 람들 우선으로
잠복해 보시죠.
씬53. 레스토랑 뒤뜰/낮
키 작은 화분들이 일렬로 서있다. 율주와 영길이 화분 앞에 서있다.
율주 (뒤뜰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본인이 싫다는데……
영길 지배인, 그 자식 그거, 진심 아니라니까, 그 녀석, 진짜 갈 데 없걸랑? 사 실 내가 그
녀석을 다른 곳에 취직 시켰었어. 근데 거기서 전과자라는 이 유 때문에 짤렸어.
율주 ! (물을 주던 손을 멈칫하는)
영길 그 녀석 여기저기 다 쑤시고 다녀봤지만 아무데서도 안받아줬어. 누가, 전 과자를 받아주겠어,
그동안 온갖 수모는 다 당했나 보더라구.
율주 (마음 아파오고)……
씬54. 거리/낮
율주, 생각에 빠진 얼굴로 걸어가고 있다.
영길E 그 자식 지금 수산시장에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생선 날라. 저렇게 놔두면 어떻게 될지 몰라.
교도소 갔다 와서 엇나가는 인간들 내가 숱하게 봤어.
율주 …… (가슴 미어지는)
씬55. 수산시장/낮
강욱, 여기 저기 터진 얼굴을 하고는 온 몸에 땀을 흘리며 생선 궤짝을 힘 들게 나르고 있다.
강욱의 동선이 훤히 보이는 일각 내 이층 건물, 태현이 몸을 숨기고는 강 욱을 보고 있다.
강욱 (눈치 채지 못하고 밝은 얼굴로 생선을 나르는)
태현 …… (강욱 지켜보는)
씬56. 춘천식당 안/낮
인자와 율주가 마주 앉아있다.
율주 (국밥을 먹고 있는)
인자 이제 오지 마. 약속했잖아. 오지 마. 나 선생님 얼굴만 보면 가슴이 뭉게 져.
율주 죄송해요. 그냥 지나가다가 할머니가 해주는 국밥 생각이 나서, 그래서 왔 어요. (애써
웃으며) 얼른 먹고 갈게요.
인자 그래, 얼른 먹고 가.
율주 할머니.
인자 그만 불러. 정 떼기 힘들게 왜 자꾸 불러.
율주 (웃으며 한 번 더) 할머니.
인자 (흘겨보며) 왜.
율주 제가… 만약에요, 만약에……, 강욱이랑…… (하는데)
인자 (자르며) 선생님. 우리 그냥 서로 잊고, 모르는 체로 살자. 그게 좋아.
율주 ……
인자 어서 먹고 가. (시선 돌린다.)
율주 ……
씬57. 수산시장/해질 녘
생선을 나르는 강욱을 보는 시선, 율주가 거리를 두고 서서는 보고 있다.
율주 …… (가슴 아프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서 그 옷으로 얼굴을 닦는.. 율주, 한걸음 다가간다.
태현, 이층건물에서 율주를 발견 했다.
태현 (굳어지고)
율주, 강욱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려다가 멈춘다.
강욱 (율주 보지 못하고 땀을 닦고 있는)
율주 (강욱을 보는 눈이 흔들리고)
율주,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듯이 휙 돌아서 빠르게 걸어가는데, 태현이 눈 앞에 서서 보고 있다.
율주 (놀라는)
태현 (싸늘하게) 내가 왜 널 여기서 봐야 하니?
율주 (아무 말 못한다.) ……
씬58. 수산시장 옥상 주차장/해질 녘
깡깡깡, 빠르게 주차장의 철근 계단을 올라가는 태현의 발소리.
옥상에 올라간 태현,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본다.
율주 (따라와서는 뒤에 서 있는)
태현 (버럭 같이 화를 내며) 이율주, 내가 언제까지 너와 서강욱 사이를 모른 척 해야 하니?
율주 (놀라서 벙해진다.)
태현 너, 대체 언제까지 걔 근처에서 맴돌건데?
율주 (차분하게) 다 알고 있으면서, 여태 모른 척 했던 거야?
태현 끝까지 모른 척 하려고 했어! 3년을 매일같이 면회 가는 너를 보면서도, 그냥 니가 잠시
한눈을 파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돌아 올 거라고!
(화를 삭히려고 애쓰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랬어.
율주 (처연하게) 태현씨.. 고마워.. 모른 척 해줘서 고마워..
근데 태현씨.. 다 지난 일이야.
태현 지난 일이라고 ? 니가 이렇게 변하지 않았는데?
율주 (어렵게) 아무래도.. 강욱일 데려와야 할 것 같아서 와 본거야.. 그것뿐이 야.
태현 (어이가 없어서) 뭐? 걜 데려오겠다고?
율주 ……
태현 (불끈) 서강욱 데려다 놓고, 니가 그만 둘 꺼니?
율주 태현씨.
태현 내가, 다, 전부 알고 있다고 하는데도, 너 지금 걜 데려오겠다는 말이 나 와?
율주 (애원한다.) 태현씨 나 변했어.. 이제 강욱인 그냥 갈 곳 없는 나의 옛 제 자 일
뿐이야.. 다 지나간 일이야.
태현 …… (화난 얼굴로 보고 있는)
율주 (웃는 듯 우는 듯) 이제 나한테 걘 아무것도 아냐, 그냥 불쌍해서, 안 됐어 서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그게 다야. 부탁할게.. 강욱이 데려올게.
태현 니가, 이렇게까지 매달릴 정도로 걔가 그렇게 걱정스럽니?
율주 ……
태현 (자조의 한숨이 나오고/애써 화를 삭히려고 한다.)
율주 태현씨, 고맙고 또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근데 태현씨, 태현씨가 걱정하 는 일, 다신 없을
거야. 그러니까…… 부탁할게.
태현 (잠시 보다가) 너, 자신 있어? 걜 니 옆에 가까이 두고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
율주 (강한) 자신 있어.
태현 (잠시 보다가 고개 돌려버리고는) 너 그거 아니? 너 단 한번도 나한테 사 랑 한다고 말한
적 없는 거?
율주 (마음 아프다.)……
태현 (율주 보지 않은 채로 힘들게) 사랑한다!
율주 (그 말에 가슴 미어진다.)
씬59. 야외 사격장/오후
탕!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부서지는 피젼(클레이 접시). 총을 내리는 수봉. 태현 옆에서 총을 쏠 자세를
취하는.. 접시가 튀어 오르자 태현, 힘 있게 총을 쏜다. 명중이다.
수봉 (다시 장전하면서) 오랜만에 같이 오니 좋긴 좋구나. 근데 어쩐 일이냐, 갑 자기 여기까지
오자고하고.
태현 특별한 이유 없습니다.
탕! 탕! 수봉 다시 튀어 오르는 접시를 명중시킨다.
수봉 말해봐, 뭔가 할말이 있는 거 같은데.
태현 .. 아버지, 처음 저를 사격장에 데려오시면서 해 주신 말씀 기억하세요?
수봉 (보면)
태현 현재를 보지 말고 미래를 봐라. 그리고 너 자신을 믿어라.
수봉 (웃으며) 피젼은 움직이니까 현재 위치를 보고 쏘면 맞출 수가 없으니까.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고 그곳을 조준해서 쏴야 명중이니까.
태현, 수봉의 말이 끝나자마자 날아오르는 피젼을 다시 쏴 버린다.
수봉 (잠시 보다가) 오늘 한마디 더 해야 겠구나, 목표를 향해 어느 길을 가든 너의 선택을
믿어라.
태현 (미소 지으며) 네 아버지.
수봉 (웃으며) 한 게임 더 할까?
태현 네.
씬60. 서울 근교/낮
율주,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옆에 앉아있는 강욱.
차에 꽂혀있는 흔들리는 샌드백 열쇠고리.
강욱 (잠시 샌드백 열쇠고리를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 돌린다.)……
율주 (앞만 보고 있는) ……
씬61. 서울 근교 공원 묘지/낮
율주부의 무덤이다. 강욱을 등 뒤에 두고 율주, 무덤 주변에 소주를 뿌리 고 있다.
율주 (어둡지 않게) 아빠 오랜만이야.. 강욱이랑 같이 왔어.. 아빠. 강욱이 알지?
강욱 (거리를 두고 서서 율주를 보고 있는)
율주 아빠, 아빠 소원대로 우리 이제 아무사이도 아냐.. (글썽해지면서) 혹시 아 빠가 아직도
걱정할까봐.. 아빠한테 얘기해주려고 같이 왔어..
많이 드세요 아빠아~ (주먹 불끈 쥐고 애써 웃으며) 태권!
강욱 (들으면서 가슴 미어지고)
씬62. 묘지 일각 거리/낮
한적한 비포장도로 길. 강욱과 율주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다.
율주 .. 강욱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 우연히 널 보게 되면 옛날 생각이 나서 참 힘들
거라고. 근데 아니더라. 내가 널 완전히 잊었더라구.
강욱 (보는)
율주 너를 봤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너하고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둘이 뭘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아무것도.
강욱 (보고만 있는)
율주 후회하지도 않아.
강욱 (툭) 잘됐네. 나도 그래요. 기억나는 게 없어요,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시간 지나니까 그냥 윤리일 뿐이더라고요.
율주 (미어짐을 숨기고 애써 웃으며)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웃으며) 그럼 너, 우리 레스토랑에 와서 일할 수 있겠네?
강욱 ! (뚫어져라 본다.)
율주 너만 좋다면, 우리 레스토랑으로 와서 일해. 난 상관없어. 니가 가까이 있 다고해서 달라질 껀
없으니까.
강욱 ……
율주 너한테 기회니까 기회 잡아. 너도 다 잊었다니까 문제될 꺼 없잖아? 실은 나, 너 못 데리고
온다고 사장님한테 좀 혼났거든. 너 나한테 빚진 거 있 잖아. 옛날에 학주한테 맞을 때 내가 많이
막아줬잖아. 이번에 갚아주라.
강욱 (냉소적으로) 정말 능력 있는 지배인이시네~ 그래서, 그 얘기 하려고 여기 까지 데리고
왔어요?
율주 응. 돌아가신 우리 아빠 앞에서 하는 말이니까 확실이 믿으라구.
강욱 (갑자기 쿡쿡 웃고는) 애쓰네요 정말, 이렇게까지 안 해도 다 아는데..
(일어서며) 그만 가죠. 지배인님 말은 한번 잘 생각해볼게요.
율주 (웃으며) 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씬63. 비포장 도로/낮
율주의 차안. 율주가 운전하고 있고 강욱이 타고 있다.
키에 꽂힌 샌드백 열쇠고리가 달랑거리고 있다.
강욱 (시선 돌려 열쇠를 보는)
율주 (앞만 보고 있는)
강욱 (시선 창밖으로 돌리며) 그거 버리세요.
율주 뭘?
강욱 열쇠고리.
율주 !
강욱 그걸 왜 아직도 가지고 다녀요. 다 잊었다면서.
율주 (서늘하게) 아무 의미 없어. 그냥 열쇠고리일 뿐이야. 니가 아직도 그 시계 를 차고 있는
것처럼.
강욱 (보는)
율주 넌 그걸 왜 아직도 차고 있는데.
강욱 (냉랭) 나한테도 그냥 시계 일 뿐이에요. 아무 의미 없어요.
율주 (비웃듯) 고장 난 시계가 시계일 뿐이라고?
강욱 ……
강욱, 갑자기 시계를 풀더니 차창 밖으로 휙 던져 버린다.
율주 (차를 멈추고 강욱을 빤히 본다.)
강욱 왜요.
율주 너 참, 잔인하구나.
강욱 몰랐어요?
율주 아니, 알고 있었어. 그럼 잘 알지. 니가 얼마나 잔인한지.. 교도소에서 머리 를 찧으며 가라고
할 때, 그때 알았어. 니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인지.
강욱 (툭/심드렁하게) 알면 됐고,
율주, 갑자기 차를 세게 후진시킨다.
강욱 뭐하는 거예요?
율주 (서럽다.) 부숴버리려고, 완전히 부숴버리려고.
율주, 백미러로 보이는 바닥에 떨어진 시계를 향해 차를 후진으로 돌진시 킨다. 빗나가고,
율주, 다시 차를 앞으로 뺐다가 뒤로 돌진시킨다. 여전히 빗나간다.
계속 차를 앞으로 뺏다가 시계를 향해 후진시키는데,
강욱 그만 둬요!
율주 (멈추지 않는다.)
강욱 (핸들을 잡으며) 그만 두란 말야!
율주 (멈추고 보는/화가 있는대로 났다)
강욱 (쏘아보며)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는 게 아니었어. 당신하고 나, 죽을 때 까 지 보지 맙시다.
강욱, 차에서 내려오던 길을 돌아 가버린다.
뒤돌아 가는 가욱을 보던 율주, 요란하게 차를 출발시킨다. 빠르게 가는 율주의 차. 강욱도 뒤돌아보지 않고
화난 듯이 빠르게 걸어간다.
율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멈추지 마. 그냥 가는 거야, 그냥 가는 거야 그냥,
그냥, 멈추지 마. 됐어, 멈추면 안돼. 그냥 가.
씬64. 비포장 도로/낮
강욱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강욱 돌아보지 마. 그냥 가. 그냥 쭉 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면서) 그냥, 그냥, 그냥 가!
(버럭) 다 잊었다잖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 없다잖아! 없다잖아!
빠르게 걷던 강욱의 발이 천천히,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멈춘다.
그대로 서서는 망설이고 망설이던 강욱, 휙 뒤를 돌아본다. 율주의 차는 보이지 않는다. 강욱,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간다. 조금 전 율주와 싸웠던 그 곳. 멀리, 강욱이 버린 시계가 떨어져 있다.
강욱 (시계를 보는)
씬65. 근교 유채꽃 밭/오후
근교 일각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나비도 날아다니고)
율주, 멍한 얼굴로 꽃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율주 (조금씩 울음소리가 밖으로 나기 시작한다.)
씬66. 근교 물가/오후
강욱, 물가 풀숲에 앉아서 소주를 병째 마시고 있다. 손목에는 여전히 고 장난 시계를 차고 있다.
강욱 (소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는)
풀숲에 앉아 연신 술을 들이키는 강욱의 모습. Fade Out.
씬67. 수산 시장/낮
활기찬 시장 풍경. 강욱, 생선궤짝이 잔뜩 든 수레를 밀며 힘들게 걸어가 고 있다. 누군가 눈앞에 선다.
태현이 보고 있다.
씬68. 수산시장 옥상/해질 녁
태현과 강욱이 멀리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있다.
태현 서강욱씨..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자네가 율주랑 가까이 있는 게 싫 어.. 근데, 혹시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싶다면 들어와도 상관 않을게.
강욱 왜죠?
태현 율주 스스로 악몽을 극복 할 때도 됐으니까,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있 을 순 없잖아?
율주도 자신 있대.
강욱 (보는)
태현 (강한 어조로) 나도 자신 있고. 난 내 선택을 믿거든.
강욱 .. 그래요? 그럼 나도 자신을 한번 가져볼까요?
태현 (미소 띤 채로) 나 때문에 결정 못하는 거 같아서, 알아서 결정 하라고.
이 말 하러 왔어.
강욱 (보는)
씬69. 강욱의 집 앞/밤
강욱, 생각에 빠진 얼굴로 아무데나 걸터앉아서 집 아래 풍경들을 바라보 고 있다.
씬70. 레스토랑/오전
강욱이 들어온다. 레스토랑에 있던 수진, 율주, 윤종을 비롯한 서버들이 모 두 쳐다본다.
강욱 (모두에게) 안녕하세요?
윤종 어머! 오늘부터 출근하는 거예요?
율주 (강욱 보는)
강욱 (율주 보는)
씬71. 레스토랑 조리실/낮/몽따쥬 분위기
치솟는 불, 강욱 둥근 프라이팬에 각종 해산물을 볶고 있다.
영길 (옆에서 보면서 기분 좋아서 히죽 웃는)
프라이팬에서 해산물을 볶던 손, 옆의 도마위에 있던 해산물을 능숙한 솜 씨로 빠르게 다듬는다. 강욱의 빠른
손놀림.
씬72. 락커룸/낮
율주, 락커룸을 정리하고 있는.. 강욱 들어온다. 두 사람 시선이 마주친다.
강욱 (사무적으로) 지배인님 앞치마 하나 주세요.
율주 (사무적으로) 네.
율주 (락커룸에서 앞치마를 하나 꺼내주며) 여기요.
강욱 (받으며 사무적으로) 고맙습니다.
강욱, 돌아서면서 입고 있는 앞치마를 풀려는데, 매듭 없이 꽉 묶은 탓에 잘 풀리지 않는다.
율주 (뒤로 가서 말없이 풀어준다.)
강욱 ……
씬73. 화장실 앞 복도/낮
자경, 전화를 하면서 화난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자경 뭐라구?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다고?
호태 (걸어오는 자경과 마주치고)
자경 (신경 안 쓰고 걸어가며/치솟아) 그러니까 너, 이율주 선생님이랑 같이 있 단 말이야?
호태 (걸어가는 자경의 뒷모습을 보는)
씬74. 화장실/낮
호태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생각에 빠진 얼굴로 면도를 하고 있다.
턱을 베는.. 피가 나온다. 피를 닦을 생각 않고 털이 묻은 칼만 손등에 쓰 윽 문지른다. 거울 앞 자신을
향해서 갑자기 칼을 세로로 쭈욱 긋는 호태.
씬75. 태현의 사무실/오후
태현, 책상 앞에 서서 서류를 정리하다가 녹음기를 본다. 잠시 보다가 버 튼을 눌러본다. ‘바쁘다며, 갈까?
하는 강욱의 말끝에 나오는 커피샵의 잡 음 소리. 태현, 녹음기를 끄려는데,
호태E (잡음이 섞인 채로) ... 까네 씨.. 나 다 알아 새끼야.
태현 ??
씬76. 레스토랑/오후
창가 옆 테이블,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면서 커튼이 펄럭이고 있다.
마치 앞으로의 위험을 암시라도 하듯, 호태와 율주가 마주 앉아있다.
율주 (웃는 얼굴로) 출장 요리?
호태 네. 우리 프로가 100회를 맞아서 공개 방송을 하거든요.
출장 요리, 하시죠?
율주 물론 하지.. (웃으며) 일부러 우리 레스토랑에 부탁하는 거니?
호태 강욱이도 여기서 일하게 됐다 그래서.. 겸사겸사 해서요. (하곤 옆을 보 면)
강욱 (조리실에서 나오다가 율주와 호태를 보고 놀란다.)
호태 (다가오는 강욱을 보며 의미 있게 웃는)
씬77. 태현의 사무실/오후
녹음기를 들고 굳어있는 태현, 다시 버튼을 누른다.
호태E 나 다 알아 새끼야..
씬78. 레스토랑/오후
호태와 강욱, 율주가 마주 앉아있다.
호태 (강욱에게) 축하한다.
강욱 고맙다.
호태 (뭔가 말할 듯이 율주에게) 선생님.
강욱 (순간 긴장하는데)
E 레스토랑 전화벨이 울린다.
율주 잠깐만.. (전화를 받으러 가면)
강욱 (잠시 호태를 보다가) 정호태, 왜 하필 출장요리를 여기에 부탁하는 거냐?
호태 재밌을 거 같아서.
강욱 (잠시 보다가 피식 웃고는) 잘 가라. (가려는데)
호태 선생님이 언제쯤 진실을 알게 될까?
펄럭이는 커텐.
강욱 ! (굳어진 표정으로 호태를 본다.)
호태 (생글 웃으며) 언제쯤 진실을 알게 될까?
강욱 무슨 진실.
호태 5년 전 사건 말이야, 살인범은 니가 아니라 이율주 선생님이잖아.
강욱 (그대로 굳는)
율주, 뭔가 들은 듯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완전히 굳어지는 강욱, 다시 한 번 호태를 보고 율주를 보는, 율주도
강욱을 보는.. 창문에서 갑자기 센 바람이 불어오는지 커튼이 펄럭, 요동을 친다. 비실 웃는 호태, 굳어진
채 로 율주를 보는 강욱의 얼굴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