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크리스마스
12월은 축복의 계절이다.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거리를 따뜻하게 해주며 김이 나는 차 한 잔의 사랑과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더없이 행복해지는 계절이다. 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12월! 이 계절은 크리스마스가 있어 거리가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라면 잊을 수 없는 것이 성탄절 새벽에 집집마다 다니며 새벽송을 돌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깜깜한 새벽에 어머니, 아버지와 교인들을 따라서 새벽송을 도는데 산골이라 마을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 어떤 마을은 고개를 넘어야했다. 그때는 성탄 때가 유별나게 추웠다. 아직 학교도 다니지 않았던 어린애라 못 따라오게 야단도 맞았지만 나는 떼를 써서 따라 가곤했다. 솜옷과 목도리로 무장을 했지만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추위라 바들바들 떨면서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새벽송을 불렀는데 그때 불렀던 것이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었다. 춥고 어두운 마당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찬송을 끝내면 방으로 안내하여 몸을 녹이라고 뜨거운 국을 대접한다. 시골에서는 겨울동안 산속 여기저기에 토끼 틀을 놓아 토끼를 잡고 꿩도 잡는다. 그런 고기로 맛있게 끓인 국을 대접했는데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고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국을 구경할 수가 없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성탄절 새벽, 내가 살던 산골 동네는 그 추위와 적막함에도 불구하고 고요한 밤의 선율과 훈훈한 인정으로 언제나 뜨거웠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쯤이면 산골 작은 교회는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로 열기가 넘친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형님, 누나들의 열성이 대단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익히고 율동과 연극도 준비했다. 그때 불렀던 수많은 캐럴 중 독특했던 노래가 잊혀 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분장으로 한명한명 차례로 무대에 나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미국아이 : 아이얌 해피 아이얌 해피 아이얌 해피 해피 에부리데이. (아이 엠)
일본아이 : 와다시와 우레시 와다시와 우레시 와다시와 우레시 잇스모 우레시. (이츠모)
중국아이 : 워장캘라 워장캘라 워장캘라 장케장캘라. (창 콰이러. 창콰이 창콰이러)
한국아이 :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발음도 틀리게 불렀지만 모두들 즐거워했다. 기쁘고 즐겁고 박수와 환호ᄁᆞ지 받았으니 그보다 더 훌륭할 수가 없다. 지금 되돌아보니 미국, 일본은 대충 맞는데 중국아이가 순 엉터리다. 캐럴을 부르는 것도 즐거웠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연극이었다. 크리스마스 공연에 빠질 수 없는 연극은 ‘동방박사’를 주제로 하는 연극이었다. 연극에는 많은 아이들이 배역으로 참석할 수 있어 왁자지껄 열기가 넘쳤다. 합창공연을 할 때는 이웃 정자누나가 풍금(오르간)을 쳐주고 전도사님이 지휘를 했다. 참으로 열심인 정자누나는 자기 동생 끝순이를 나와 짝지어 유희를 가르쳐 발표케 했다.
-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
찬송가 496장에 맞추어 정자 누나가 창작한 율동인데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다.
내가 여섯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 때는 전도사님이 원고 한 장을 가지고와서 인사말이라며 외우라고 했다. 그때 시골에서는 학교 들어 갈 때까지 한글을 깨우치는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다 보니 글을 다 깨우쳐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교인들이 공연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데 무대가 열리자 어린아이가 또박또박 긴 인사말을 했다. 처음 있는 일이고 신기한 일이라 교회가 놀라움으로 왁자지껄했다. 시골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삼동네 사동네 금방 소문이 퍼지게 되어있다. 그해 크리스마스 소문은 인근에 빠르게 퍼져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날이 밝아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인들은 떡이며 과일 엿 과자 기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서 보따리에 싸들고 교회에 온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떡이며 엿 과자 공책 연필 등을 선물로 받는데 참 기쁘고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치면 교인들은 여기저기 둥그렇게 둘러앉아 떡과 다과를 나누며 담소를 즐긴다. 산골 작은 교회지만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사랑과 열기가 넘쳤다. 아이들에게 그 때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기다려지고 행복했던 명절이었다. 그때의 크리스마스는 늘 추웠지만 사랑과 행복이 넘쳤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참으로 아름다운 찬양이 산골마을에 울려 퍼지곤 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지구촌 곳곳에서도 내 어릴 때 산골의 크리스마스처럼 감동적이고 뜨거운 ‘고요한 밤거룩한 밤’이 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교의 오번도르프 작은 마을에는 세계 각국에서 순례 객들이 찾아와 붐빈다. 이곳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처음 만들어져 불린 곳이다. 200여 년 전 1818년 12월 24일 오번도르프 ‘성 니콜라스 성당’의 신부였던 조셉 모어(J.Mohr)와 이웃마을인 안스도르프의 교사였던 그루버(Gruber)에 의해 ‘고요한밤 거룩한 밤’은 탄생되었다. 당시 26세의 젊은 신부였던 모어는 오르간이 고장 나서 성탄절 찬양을 고민하게된다. 결국 성탄절 예배 시 기타연주로 찬양을 하기로 생각하고 키타 연주에 적합한 노랫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쓰게 된다. 그렇게 만든 가사를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루버에게 곡을 부탁했다. 그루버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가사에 매료되어 곧바로 곡을 붙였다, 크리스마스 날 모어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맡고, 그루버는 베이스를 맡았으며, 교회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다. 불후의 명곡 ‘고요한밤 거룩한 밤’은 그렇게 하여 탄생하게 되었다. 해마다 12월 24일이 되면 오번도르프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의 기념미사가 열린다. 해가지면 성당 앞의 키 큰 가문비나무는 근사한 크리스마스트리로 변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은 성당을 둘러싼 채 저마다의 언어로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합창한다.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에 그들은 소년 소녀 시절에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처음 배우면서 가졌던 꿈과 희망을 회상하면서 아기예수를 영접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1차대전중 대치하고 있던 영국과 독일군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이끌어낸 기적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 이후 오번도르프의 성 니콜라스 성당은 '고요한 밤 성당'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월은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아기예수, 동방박사, 산타클로스 이야기로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달이다. 더러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그리움과 설렘으로 가득할 수 있는 달이 12월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세월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했다. 세월도 민심도 경제도...
올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부활하여 연말연시의 거리를 훈훈하게 녹여주었으면 좋겠다.
2022. 12. 9. 石泉
첫댓글 그때의 기억들이
이젠 삼류극장의 영사기처럼
희미하게 흘러만 갑니다
비록 춥고 배고픈 시절이였지만
좋은 시절이였읍니다
다시 한번만 그시절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오늘은 왠지 눈이내릴것같은
날씨 입니다
고맙게 잘 읽었읍니다
비탈길 돌밭길 때로는 찔리고 깨어지면서
달려 달려 온길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도 많지만
돌아보면 모두가 값지고 소중한 순간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제 남은 길 사랑하며 달려가야지요
감사합니다.
복 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