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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뒤흔든 미스테리 사건 16가지
16. 마라도 어선 실종사건--한국판 버뮤다삼각지대
2009년 1월30일 울산시 동구 방어진 동쪽 54㎞ 해상에서 선원 9명을 태운 동해 선적
트롤어선 영진호(59t)가 선주와 마지막 교신을 한뒤 갑자기 실종된 경위를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꼭 4년 전인 2005년 1월26일 오전 5시25분. 영진호의 사고
해역에서 6㎞ 떨어진 방어진 동쪽 60㎞ 해상에서 영진호의 경우와 아주 흡사한 선박
침몰 사고가 또 있었다.
당시 51t급 트롤어선 대현호는 선체 오른쪽에서 갑자기 발생한 큰 파도로 갑판 위에
있던 오징어 500상자가 왼쪽으로 쏠려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또다시 파도를 맞아
침몰했다. 이 사고로 선원 10명중 7명이 실종됐고 선체는 지금까지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이어 지난해 11월19일 오전 2시42분. 영진호 사고 해역에서 북쪽으로 6㎞쯤 떨어진
경주시 감포항 동방 54㎞ 해상에서도 79t급 통발어선 115한일호가 갑자기 거세진
파도에 전복되면서 선원 10명 가운데 7명이 실종됐고 이 배 역시 지금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울산과 제주해경 조사 결과 지난 수년간 울산 방어진 동쪽 58㎞ 인근 해역, 제주도
마라도 남동쪽 65㎞ 인근 해역에서 조난을 당한 수 척의 어선들의 마지막 교신 내용은
공통적으로 "침몰중이다. 긴급 구조를 바란다"는 SOS 메시지가 아니라 "귀항한다.
기다려라"는 일상적 내용이었다. 또한 2005년 11월 여수로 돌아오던 79t 통발 어선
신화호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고 그것도 침몰 흔적이나 잔해 하나 남기지
않고.. 더 놀라운 건 1년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15. 역도산 의문사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인 일본의 영웅 스모선수 역도산 한국인 김신락.
씨름을 잘했던 그는 일본으로 넘어가 역도산이란 이름으로 스모판에 서지만
한국인이었던 그를 좋게 봐주지 않았다.
미국으로 넘어가 프로레슬링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온 역도산 당시 세계2차대전의
패망국이던 일본의 위신을 살린다는 등 일본내 영웅으로 급부상하였다.
어느날 부와 명예 권력 모두를 갖춘 역도산은 술을 마시다 야쿠자와의 시비로 칼에 찔려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거구의 그에게 칼에 찔린 상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금식을 어기고 콜라와 사이다등을 마셨다는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의 부검내용등 죽음에 관하여서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는 의문사로 남아있다.
그의 일화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그의 인생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천황 다음 역도산’ 으로 불릴 만큼 전후 일본인의 영웅으로 군림
했던 재일동포 역도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야쿠자의
칼에 찔린 상처가 덧나 죽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극우세력의 암살설도 제기됐다고..
14 .국새 미스테리
커지는 ‘민홍규 국새 미스터리’ -
① 정치인 상대 도장 로비 했나 ② 전통 옥새 기술 전수 받았나 ③ 판매용 ‘봉황국새’
진위.
‘국새(國璽) 재료 횡령’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민홍규 전 국새제작단장의 과거 행적에
대한 의구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되며
민씨가 정동영 민주당 의원, 최양식(현 경주시장) 전 행정안전부 1차관에 이어 민주당
L의원에게도 금도장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 민씨의 과거 경력부터, 올해초 판매용
으로 제작했던 수십억원 상당의 국새도 진위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국새 미스터리대한민국의 국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일파
만파로 확산된 이사건은 옥새전각장 민홍규씨가 2007년 4대 국새를 만드는 과정에서
800∼900g의 금을 빼돌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진 파문은 민씨가 유력 인사들
에게 금도장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폭로로 이어졌고.. 갈수록 의문을 낳고 있는 국새에
얽힌 국새 미스터리.
13. 농협해킹의 진범
2011년 4월 최근 농협이 해킹당해 전산망 마비로 곤란을 치룬 이사건은
그런데 ~까지의 검찰의 잠정 결론은 "북한의 소행 가능성에 염두를 두고 조사를 한다"
고 한다. 그 이유는 북한은 수시로 해킹용 IP를 통해 국내 주요 전산시설에 대한 해킹을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하고 있으며, 역추적 결과 무엇보다 북한발 IP가 식별되었고,
데이터를 빼가기 위한 복사 명령을 내리지 않는등 어떤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았으며,
기술적인 해킹만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북한 소행이라고 추측하는건 우스운 일이라고..
검찰은 북한의 소행이라 발표했지만, 인터넷 보안전문가들의 의문제기가 이어지며
범인들이 해킹 프로그램을 7개월간이나 농협 컴퓨터에 설치해 운용해왔다는데 서버
전문가들이 이를 몰랐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테리..
12. 김훈중위 사망사건
김 훈 중위는 1998년 1월 8일 JSA 경비대대 경비중대 2소대장으로 전입해 근무하다
15대 대통령 취임식 하루전인 1998년 2월 24일 의문의 죽음을 맞았는데 분명 타살의
증거가 있었음에도, 당시 조사결과 故 김훈중위의 자살로 2시간만에 성급하게 결론이
났던 사건이며 현재도 군당국에서는 자살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에는 김중위를 국립묘지에 안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살이기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군측의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아직도 영면에 이르지 못한 故 김 중위를 보면
가슴이 아픈데 사건당시 수많은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자살로 결론지어
대중의 의심을 사고..
11. 희대살인집단 백백교
‘백백교 사건’은 지난 1937년 2월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 교주 전용해 등이 10여년
동안 무려 6백20여 명의 신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2000명가량 망치로
머리를 부셔죽였다는게 미스테리이고 교주의 머리는 현재 국과수에 보관중인데
백백교맥이 끊겼지만 그후손들이 활동한다는게 미스테리이며
국과수에 전용해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돌려달라고 전화가 수차례 오는게 또한
미스테리..
10. 비운의 과학자 이휘소
1977년 6월 죽음을 맞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소재가 된 천재 물리학 박사
이휘소-
비운의 과학자 이휘소. 1977년 6월 16일 세계적인 물리학자 이휘소가 미국에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했고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박정희 정권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핵무기 독자개발을 위해 미국에서 기밀 정보를 들여오려다 당한 위장된 암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지만, 결코 사고가 나기 어려운곳이었다..
과연 진실은?
9. 김현희 KAL기 폭파
지난 1987년 오랜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간정부 교체의 호기를 맞는 순간 인도양
상공에서 난데없이 날아든 KAL 858기 폭파사건은 영화적 상상력마저 불러일으키며
끝없는 논란이 돼왔다.
급기야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까지 가동되긴 했지만 당국의
비협조로 아직까지 속시원하게 밝혀진 내막은 없다.
그 사건은 대선을 불과 10여일 남겨두고 터졌는데..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날아오던 KAL 858편이 공중폭발해 탑승자
115명 전원이 숨지고 범인 김현희는 대선 하루전날 서울로 압송됐고, 이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되며 막판에 대선 분위기가 확 바뀌어 다음날 노태우 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미녀여서 동정론이 형성되기도 했던 김현희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보름 뒤에 특별사면이 됐다! 일본 언론 등에선 김현희의 테러 행적이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
8. 김형욱 중정부장 납치살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져 73년 미국에 간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김형욱씨는 역대 중정부장중 가장 오랜 기간인 6년3개월
(63~69년) 동안 자리를 지킨 김씨는 77년 당시 박동선 로비 사건과 관련,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증언도 했고 이어 김대중 납치사건, 인혁당 사건 등과 관련해서도 박전대통령
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박 정권은 이를 막기 위해 150만달러 제공등 막후 협상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며..
김씨는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79년 10월 7일 오후 7시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연락이 끊기고 실종 6일 전 파리 리츠호텔에 묵던 그는
‘키 큰 동양인’과 함께 호텔을 옮긴뒤 카지노에 들렀다가 행방불명됐다. 프랑스 당국도
수사에 나섰지만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으며 우리 정부는 “모름.무관”으로 일관했다.
중정 요원에게 살해돼 무거운 추에 매달려 센강에 던져졌다느니, 비밀리에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당했다는등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다.
김씨는 실종 상태에서 82년 징역7년형을 선고받았고 84년 법원에서 실종선고도 받아
법률적으로는 사망자가 됐다..진실은?
7. 정인숙 살해사건
1970년 3월 40년전 정인숙이라는 미모의 술집요정이 오빠 정종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명확한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구속했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20년을 살고 출소했다.
그리고 정종욱은 어떻게 오빠가 동생을 죽일 수 있겠느냐면서 그 날의 상황을 고백하며
소형차가 오더니 괴한들이 동생을 쏘아 죽이고, 한 괴한이 옆자리에 앉아 강변도로로
차로 몰라고 했고 자신의 다리를 쏘고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출소 후에도 자신을
미행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군사권력하에서 최대 스캔들
사건인 정인숙 살인사건은 권력형 사건임이 드러난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20년간
감옥에서 인생을 허비한 정종욱의 피해배상은 국가가 해 줘야 하고 진범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인데..
6. 천안함 침몰사건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PCC-722천안'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되어
장병 46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계속해서 달라지는 정부의 발표는 결국 북한 어뢰 폭침에 의한 공격으로
종결되고 여러 의혹이 존재하는 가운데
미흡한 정부 발표에 많은 이들이 의혹을 제기를 했지만 천안함 사건은 반드시
'믿어야 하는' 종결된 사건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국민들은 사건 당시 느꼈던 의심과 분노를 가슴 속에 묻어둔채 또다시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도대체 진실이 모야?
5. 김대중 납치사건
1973년 8월 8일 일본 동경의 한 호텔에서 야당지도자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납치되었다. 당시 일본 경시청의 수사가 이루어지고 한국에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는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중앙정보부는 '납치 가담자들이 범행일체를 부인하므로 본 건
내사를 중지한다'는 내용으로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김대중 납치1971년 박정희에게
대선에 패배한 야권의 지도자 김대중. 근데 선거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사제
폭발물이 배달되지 않나 대형트럭이 덤비지 않나.. 결국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치료차
일본에 머무르던 중 괴한에게 납치됐다가 4일 만에 자택 앞에서 발견되고 수사하던 일본
경찰은 한국정부 개입 증거를 포착하지만 정부는 끝내 부인! 그럼 누가 그랬을까..
정부의 개입증거는?
4. 장준하 의문사
1975년 8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과 긴급조치로 서슬이 퍼런 시대에 유신
정권과 박통에 대해서 반기를 들던 장준하씨가 호림산악회와 경기도 포천 이동
약사봉으로 등산을 갔다가 약사계곡에서 실족해서 사망을 했는데, 당시에도 의문이
있었지만, 단순 실족사로 처리가 되었는데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故 장준하 선생.
일제강점기에는 저항운동의 상징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에선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고
유신개헌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계곡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사고에 의한 추락사라고 발표됐지만 의문점이 많았으며 시신에는
외상이나 골절이 없었고, 오른쪽 귀 뒤에 2cm정도 흉기에 찍힌 자국과 몸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었다고..
그의 죽음은 의문사인가, 실족사인가?
3. 사라진 명성황후 얼굴
많은 이들이 역사책을 통해 명성황후의 사진을 접해보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명성황후의
사진들에 대한 진위논란은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당시
황후를 만났던 이들의 증언과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사진과 초상화가 없을리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고종과 달리 명성황후는 단 한장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을까?..
2. 오대양 집단 살인사건
오대양 집단 사망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오대양 주식회사 식당
천장에서 발견된 32구의 시체. 손발이 서로 묶인채 죽은 이들은 박순자 대표와 종업원등 32명이었다.
오대양 대표인 박순자는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교주 행세를 했고
신도들에게 170억에 이르는 사채를 빌리게 한 뒤 집단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과연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리고 170억은 어디에?
1. 1979.10.26.궁정동 사건의 진실
1979년 10월 26일의 진실.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초유의 사태 발생하고 김재규는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제거했다”며
정의로운? 변명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는 과연 단순 배신자인가? 역사의 의인인가? 혼자만의 결정인가? 배후가 있었는가?
첫댓글 이러한 진짜의문은 묻히고 선거에 필요한 의문만 생산하는 새누리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