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셀라증후군[3]
하준이는 습관처럼 고개를 뒤로 젖혔다. 손을 잠시 때면 피는 코에서 흘러나와 그의 살을 타고 입술 근처에서 잠시 멈췄다 아래로 떨어졌다. 너무 많은 코피가 흐르자 선생님도 어찌할바를 몰라 약간 당황한 듯 휴지를 찾아 하준이의 코에 대주려 했고 그 휴지를 넘겨받은 하준이는 여전히 코에 갖다대고는 손이 떨어질 줄 몰랐다. 교실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지자 호기심에 창 밖을 내다보던 정민이가 얼른 뒷문을 열고는 교실 안으로 들어와 하준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팔을 잡아 끌었다.
"아, 귀찮은 놈. 선생님, 하준이 데리고 양호실 좀 다녀올께요."
"지금 이 시간에 양호쌤 계시려나 모르겠다. 오늘 출장 가신 것 같던데. 어서 가봐."
다정이가 서둘러 하준이의 뒤를 뒤따랐으나 당연한 듯 누구도 말리지 않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웅성거리며 바라봤다.
"자자, 조용히하고. 다시 수업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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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숙인 하준이를 인도해 가는 정민이의 얼굴에 어둠이 가득 드리웠다. 하준이 팔이 아픈지 아까보다 팔이 아래로 쳐진 모습을 보고는 다정이가 얼른 다가와 하준이 대신 코를 누르던 휴지를 잡았다. 하준이는 다정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잠시 팔을 내리더니 손목을 풀려는 듯 몇번 털어내고는 손을 바라봤다. 금새 마른 핏자국이 있었다. 다정이가 잡고 있는 휴지는 이미 피로 뻘겋게 물들어 축축하고도 불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따라 다정이에게 복도는 너무 길고 낯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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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이는 습관처럼 난간에 몸을 맡기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반혁을 바라보는 원이는 혀를 찼다.
"떨어져 죽을라."
"내가 너한테 오늘 얼마 들고갔더냐?"
"음, 4천원."
"천원 잃어버린 셈이네. 근데 하준이는 아는 여자애 많나?"
"응? 몰라. 그냥 걔 1학년 때 학교에 근거없는 소문이 자자한 여자애 한명은 있었던 것 같은데. 넌 이하준 아끼는 후배라면서 그것도 모르냐."
"무슨 소문?"
"둘이 사귄다는 말도 있고, 사촌이라는 말도 있고. 동거녀라는 말도 있고. 궁금하면 귀여운 후배님 불러다가 직접 물어보세요. 왜 갑자기 후배 여자한테 관심이냐? 으아~"
서원이 발끝으로 서서는 기지개를 쫘악 펴자 180이 넘는 키는 더욱 더 길게 늘어났다.
"나 학교 다니지 말까?"
"뭐래. 갑자기 잘다니던 학교를 왜! 다녀. 알잖냐, 너 없으면 나 놀 친구 없다."
표정 좋은 얼굴로 웃은 원이는 대충 짐작하며 반혁이의 등판을 툭툭- 두들겼다.
"헛생각 하지마. 아참, 오늘 너 어머니 뵈러 갈꺼지? 오랜만에 나도 같이 가자."
"오늘 안가."
"왜? 오늘 간다고 했잖아."
"누나 온데."
"아..."
"오늘 기분 별로네. 내일 보자."
옥상 한쪽 구석에 박아두었던 크로스백을 매고는 삐거덕거리는 옥상문을 무겁게 열고는 나갔다. 옥상문이 닫히자 크로스백 안에 손을 집어넣어 자퇴서라고 적힌 얇은 종이를 매만졌다. 수업시간이라 조용한 교실을 지나가는 건 왠지 느낌이 좋았다. 시끄러운 복도보다 조용한 복도가 좋았고 짧은 복도보다, 긴 복도가 좋았다. 그런 느낌에는 역시 수업시간이 딱이었다. 역시 오늘도 그런 긴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이 울상을 해서는 점점 반혁이에게 다가온다. 반혁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고 그런 반혁을 느낀건지 정민이 고개를 들어서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아, 반혁이형. 안녕하세요."
반혁은 고개를 까딱거리고는 옆에 있는 울상인 여자애를 한번 바라보았다. 가슴이 먹먹한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까 흩어진 돈 때문일까.
"형, 죄송합니다. 지금 좀 급하게 양호실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정민이 하준을 잡아 이끌어 스쳐지나가려는 찰나 한손으로는 정민의 팔을 잡아 멈추고는 다른 한손으로 하준이의 앞머리를 잡아당겼다. 뒤로 젖히다시피 걷던 하준의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코피 날 때 뒤로 젖히는거 아니다. 신체 건강한 놈이 무슨 코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냐. 그리고 옆에."
"저요?"
반혁의 시선이 다정이를 향했다. 덩달아 정민이도 다정이를 바라보았다.
"무작정 코 감싸고 있는다고 되는게 아니야, 코 위쪽에 살짝 잡아주면 지혈 된다고 하더라. 하여간 이하준, 너나 니 친구나. 도움 안되는 두명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
디정이는 얼른 고쳐 잡았고, 그제서야 반혁이는 정민이의 팔을 놔줬다.
"형, 저 하준이보다 머리 좋은데요!"
"됐고, 가봐라."
"에에, 네. 형!"
하준의 걸음에 맞춰 지나가는 다정과 눈이 마주친 반혁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동그랗게 붙였다.
'돈'
"천원이다."
"아!"
다정이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걷자 불편해진 하준이는 자신의 코를 잡고 있는 다정의 손을 쳐냈다. 그제서야 다정이가 하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정이는 자신의 손으로 코 윗쪽을 잡았다. 인상이 막 일그러진 것보니 분명 빈정 상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몰랐으나 다정이의 입에서 저절로 사과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교실에 들어가."
행여 피가 입 속에 들어가기라고 할까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낮게 중얼거리 듯 말했으나 힘있는 목소리가 다정이의 귓속을 파고들어 잠시 멈칫하였으나 그렇다고 거기서 그대로 발을 돌려 반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끈임없이 하준이의 뒤를 졸졸 따라왔고 하준은 그녀에게 두번 말하지 않고 아예 신경을 끈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민이가 양호실의 문을 두번 노크하고는 벌컥 열었다. 그러나 휑하니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양호실에 약품 냄새가 알싸하게 풍겼다. 문 앞 서랍에 놓여있는건 휴지와 구급상자뿐. 국어선생님 말대로 양호선생님은 출장가고 없구나싶었다. 3층에서 1층까지 힘들게 내려온 보람을 느끼지 못한 정민이가 하준이를 앉혀두고는 신경질적으로 하준이의 콧구멍으로 조금 크다 싶은 휴지를 쑤셔 넣었다. 피를 과하게 쏟아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코피로도 사람이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느꼈다. 아침에 두통약을 더 챙겨 올 걸 그랬나. 하준은 양호실 안 세면대로 향해 손을 씻고 얼굴에 묻은 핏자국도 완벽하진 않지만 대충 사람 몰골이 나올 정도로 닦아냈다.
"병원가자."
"됐어."
"임마! 지금 몇분째인 줄 아냐? 코피가 안 멈추잖아!!!"
하준이 짜증난다는 듯이 거칠게 휴지를 뽑아 새로 코에 끼웠다. 빼낸 휴지에게 피로 금새 물들어 있었다.
"한다정."
"응?"
"손 씻어."
"하준아, 병원가자."
다정이가 문 앞에서 멀찍이 하준을 보며 동문서답을 했다.
"손 씻으래두."
하준의 시선을 다정의 손으로 가 있었다. 손에 빨간테두리의 코피자국이 있는데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병원 갈테니까 손 씻어."
다정은 세면대로 쫓아와 하준이 옆에서 서 차가운 물에 자국을 씻어내렸다.
달칵- 차가운 물로 손이 빨개져 시린 손 비비고 있을 때 양호실의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한명 들어왔다.
"왠일로 이곳에 손님이 계시네."
인자하게 웃는 젊은 남자. 우리를 향해, 정확히 말하면 하준이를 향해 발걸음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이리 앉아."
의자를 툭툭 치며 양호선생님만이 앉는 자리에 그 남자가 앉았다. 아, 새로온 양호선생님이구나 싶은 다정이
하준의 팔을 잡고는 양호선생님이 앉으라고 이끈 자리에 털썩 앉혔다.
"양호선생님이 남자라고 어찌나 찾아오지도 않던지.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 남자애들은 이쁜 여자양호쌤이 아니라고 안오지. 여자애들은 창피하다고 안오지. 이왕 온 김에 땡땡이라도 좋으니 종종 이 양호실을 찾아오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마. 아, 대신 걸리면 너희들이 덤탱이 쓰고 벌받는거 잊지말고."
하준이의 코에 마지막으로 솜을 끼워넣으며 한 말이었다.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털털하고 웃겼다. 멋있는 사람이다.
"보아하니 피흘린지 좀 오래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병원가보는게 좋겠다. 지금 당장 가봐. 선생님께는 내가 말해주마. 몇반인지 종이에 적고."
'보건교사 강성준'이라고 적힌 메모지를 하준이에게 내밀었고 펜을 받아든 하준은 몇반인지 적고는 일어나 곧바로 양호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정민이 서둘러 따라나가자 얼떨결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된 다정이도 벌떡 일어나 나가려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멈춰버렸다.
"잘지내고 있네."
"네?"
다정이가 돌아보자 밝고도 귀엽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성준을 보았다.
"저기..."
다정이가 아무래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머리를 긁적이며 성준이 문을 향해 손가락을 쭈욱 내밀었다.
"애들 벌써 가버리고 없겠다."
"아! 안녕히계세요."
쾅-
"단희를 잊어줘서 정말 고맙다, 꼬맹아."
모두들 나가고 난 양호실 안에는 조용한 정적이 맴돌았다.
28살이 되어 부쩍 정신적인면이 커버린 자신과 나이만 28살이된 단희. 성준은 그런 그녀를 잊어줘서 고맙다고 지금의 꼬맹이게 혼잣말로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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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
날카로운 여자의 소리에 반혁이는 집에 오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산동네에 제대로 되지도 않은 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저 집에 들어가 있을 끔찍한 여자를 생각하니 평소에 아프지 않던 다리가 내일이면 걷지 못할 것처럼 유난히 힘들었다.
"이것도 일찍 온거야. 본 수업만 끝나도 5시야. 뭘 바래? 4시간이나 일찍 왔으면 된거 아니야?"
"됐어, 그건 됐고... 반혁아..."
저 여자 참 못됐다. 날카롭게 도끼눈을 뜨고 바라봐 사람을 짜증나게 할땐 언제고 이젠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금새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구역질 났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안다. 지겹도록 그 여자는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찾아와 요구한다.
"돈 좀 줘."
"나 이제 누나한테 줄 돈 없어."
가방을 문 옆에 내려다 놓고는 냄비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뚜껑을 닫자 빈소리가 났다. 오늘도 그 안을 가득 채운건 오로지 먹어도먹어도 배고픈 공기밖에 없었다.
"뭐?! 너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누나만 오면 혼자인 이 조용했던 집이 시끄러워진다. 평화가 깨지고 그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녀와 입씨름하기도 질려버렸다. 대체 줘도줘도 끝이없다. 그 많던 돈을 어디에 쓰는건지.
"차라리 죽어. 나한테 엄마가 먼저야. 병원비내기도 빠듯해. 더 이상 누나 뒷바라지 할 생각 없어. 학교 다니면서 그러기도 힘들고."
"학교? 그딴거 다니지마! 학교가 너와 나에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학교 다니면 뭐, 이 가난 따위 없어질 것 같니? 학비 내고 급식비내고...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이야!!!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 너 뭣 모르고 어릴 때!! 나 그 일 다 겪어왔어."
"불쌍한 건 나지, 누나. 그때 어렸던게 무슨 죄라고 지금까지 누나한테 이런 소리 듣고 있으니. 불쌍한건 둘째치고 나 학교 포기 못하겠네. 다니나마나이긴 한데 누나가 그딴 개소리 짓거리니까 오기로라도 다니고 싶어지네."
"한진혁, 그 자식만 아니어도!! 내 청춘, 니 인생 이렇게 되지 않았어."
"난 이제 그 딴 일 기억도 없어. 과거 강박관념에 그만 시달려. 지긋지긋하니까."
"가만 안 둘꺼야! 너 혼자 잘되는 꼴 볼꺼 같아?!"
한참을 눈길을 주지 않던 반혁이 자신의 누나를 똑똑히 쳐다봤다. 굵게 말린 웨이브와 치렁치렁한 귀걸이. 아직도 잊지 않은 과거로 얽매여사는 저 불쌍한 사람. 그런데 그 이쁜 입에서 내뱉는 마지막 말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나 누나 동생 맞아?"
결국 어릴 때부터 당연한 듯 누나이기에 챙겨줬던 모든 것이 언제부터인가 무작정 내뱉은 단희의 마지막 말에서 용서가 안됐고 늘 머릿속을 지배하던 물음을 이제서야 뱉었다. 달지도 않은 눈물과 함께. 그녀는 그런 동생을 외면한 채 비싸보이는 핸드백을 들고 일어나 반혁을 지나쳐 문을 쾅 닫고 다가버렸다.
[ps.읽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무드셀라증후군은 주말에만 연재됩니다♡
가상이미지 올려봤습니다, 마음에 안드실 수도 있구, 아마 매우 엉성할꺼예요ㄷㄷ,
그래도 부디 읽으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래요♡]
첫댓글 재밌어요^^그리구길어서좋아요>.<
재밌다니 다행이네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우................11111111111111111111쵝오입니다!
길어서너무고맙구수고했어열ㅋㅋ다음편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