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투사하기 1
의식적으로 그림자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만일 의식적으로 시소의 왼편에 균형을 맞추지 않거나,그림자가 자기표현을 하도록 영예로운 길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식적으로 그림자 작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그림자를 저도 모르게 투사하게 된다. 이 말은 자기 그림자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뭔가에 슬쩍 내려놓아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중세에 이런 투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중세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는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의 번영은 요새나 갑옷, 성벽처럼 막힌 사고방식, 무력으로 쟁취한 소유, 남성에게 부여된 특권과 이에 따른 여성적인 것에 대한 지배, 왕권의 보호, 끊임없는 포위와 공격을 하는 도시국가들로 특징지을 수 있다. 심지어 교회조차 그림자 정치에 동참했는데, 흔히 성인이라 불리는 극소수의 사람들, 베네딕트회 수도원, 그리고 일부 신비가들만이 투사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날은 온갖 업계에서 우리 대신 그림자를 떠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림자를 전가하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 영화, 패션 디자인, 소설 등이다. 언론에서는 매일 그림자적인 특질을 외부에서 충족하도록 재앙이나 범죄, 공포의 뉴스를 다룬다. 이는 원래 각자의 내면에서 의식의 일부로 통합되어야 할 그림자 특질들이다. 그런데 언론이 그 역할을 분담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내면의 어두움을 바깥세계의 몫으로 돌릴 때, 인간의 심리는 전일적인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으로 머문다. 본래 의식 속에 동화시키는 것보다 투사를 하는 것이 쉬운 법이다.
인간 역사의 어두운 장은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전가할 때 펼쳐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가톨릭이 개신교에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게, 무슬림이 힌두교에게 그림자를 투사한다. 이웃 간에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한 가족을 희생양으로 택하여 마을 전체의 그림자를 그 가족에게 짊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웃뿐만아니라 대부분의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구성원 중 한사람을 왕따로 만들어 그로 하여금 공동체의 어두움을 혼자 감내하게 만든다. 이것은 문화의 태동기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남미의 아스텍 종족은 해마다 처녀나 총각 한 명을 선별해서 희생시키는 의례를 행했다. 그들은 의례를 통해 희생되는 젊은이와 함께 종족의 그림자도 부락을 떠난다고 믿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유사한 의례가 행해졌다. 공동체마다 '보기bogey' 한 명을 뽑아 그해가 저물어갈 즈음 그를 죽인다. 이 사람이 죽어서 공동체를 떠날 때 집단의 어두움도 함께 가져가는 것이다. 전 집단을 위해 희생되는 이 역할은 영예롭게 받아들여졌다. 보기는 죽는 순간까지 일에서 자유로웠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공동체는 이들을 내세를 위한 대변인으로 이해했다. 이들은 전 집단의 그림자를 내면에 지닐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집단에서 제일 강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인도를 비롯한 서양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보기맨이 너를 잡아갈 거야"라고 말한다. 이는 어린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겁을 주는 방법이다.
구약성서에도 사람들의 죄(그림자)를 몰아내는 방책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고대인과 중세인들도 그림자를 다루는 방편으로 우리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투사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대인은 더 이상 이런 위험한 과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길 꿈꾼다면 의식의 진화가 요청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해야 한다.
그림자는 종종 사소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시다 은퇴를 하셨다. 그 친구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아버지 연세가 많으시고 키우기도 힘들어 겨울이 되면 보관소에 맡겨 졌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개가 돌아오면 온 집안이 유쾌해졌다. 하지만 친구 아버지는 자기 그림자를 자신, 혹은 식구들 대신 늙은 개에게 전가했다. 개한테 발길질을 해댄 것이었다. 이처럼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그림자를 동물들에게 전가한다.
그림자를 전가하는 최악의 상태는 부모의 그림자를 자녀들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던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일 부모가 자신들의 그림자를 어린 자녀에게 부가하는 경우, 자녀의 마음은 분리된다. 자아와 그림자의 전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자녀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 짊어지는 그림자보다 훨씬 더 큰 그림자를 성장기에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결혼을 하면 다시 자녀들에게 그림자를 전가하려 든다. 인간의 죄가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 즉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면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덜어주라. 심리학적으로 말해 자녀에게 깨끗한 유산을 넘겨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상속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본인의 심리구조 안으로 되가져옴으로써 자신의 의식도 진일보하게 된다. 자기 내면의 심리구조 안에서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그림자는 전일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